은혜의 말씀

[스크랩] 왜 십자가의 피가 중요한가? /히10:19~25 / 2016년 7월 10일 주일 설교

☆ 주님의 머슴 2016. 7. 24. 15:27

왜 십자가의 피가 중요한가?

히브리서10:19~25

2016년 7월 10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설교: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재빠른 비행기의 편대가 나타나 수없이 많은 전단지를 뿌리고 사라졌습니다. 온 시민들은 갑자기 뿌려진 종이쪽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0시까지 50키로 밖으로 대피하라”

시민들은 영문을 모를 경고장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그러나 그 중 몇몇 소수의 무리는 급히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과 함께 정든 히로시마를 떠나 50키로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단지에서 경고한 8월 6일 아침, 서쪽에서 날아온 비행기는 상공을 2번 선회하더니 조그만 물체 하나를 떨어뜨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죽음의 구름은 온 시가지를 뒤덮었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 그 전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불신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종이쪽지 한 장의 경고를 받아들인 소수의 무리들은 살아나서 그날의 증인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여기 그때 그 공군 비행기에서 떨어진 전단지의 경고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경고를 알고 계십니까? 이 경고는 참되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9장27절의 경고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셨습니다. 또 막9:49절에는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고후5:10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이미 그 경고의 전단지를 받아서 예수님 안에 피해 있는 자들임을 믿습니다. 내가 치러야 할 죄 값을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문제는 이 경고의 전단지를 받아보고 무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요3:16절은 다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우리 주님의 경고의 전단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 주셨는데 그분을 받아들인 자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무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 기다린다는 경고입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계신분이 있다면 히로시마에 전단지를 받아들이고 피했던 사람들처럼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시고 믿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길 축원합니다. 요3:36절을 보세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첫 언약이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두 번째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아담이 깬 첫 언약을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代贖(대속)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나를 위한 죽음으로 믿으면 그 언약을 따라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내용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혹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한사람이라도 아직 모르고 있거나, 처음 듣는 분이 있다면 믿게 하기 위해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왜 피 흘려 죽어야 했나요?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최초인간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2:16~17절을 보세요.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언약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라는 언약이고 이 언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격체로 대접해 주시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담 할아버지가 이 언약을 받은 후 하와 할머니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나 봅니다. 뱀이 언약에 취약했던 하와 할머니를 유혹했습니다.

 

이 뱀은 배후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이 뱀이 간교하여 언약의 당사자인 아담을 찾지 않고 언약에 취약했던 하와에게 찾아와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때 하와가 언약에 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의 대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3:2절 이하를 보세요.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만지지 말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와가 첨가했습니다. 또 “죽을까 하노라”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와가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뱀은 곧바로 거짓말로 들이댑니다. 창3:4~5절을 보세요.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분명 거짓말입니다. 반드시 죽는다 죽는다 했는데 결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말합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결국 하와 할머니는 그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그리고는 아담에게 가져와 같이 먹습니다. 아담이 그것이 선악과인줄 알고 먹었을까요? 모르고 먹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어떻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이 맺은 첫 언약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죽음이 찾아왔고 모든 인간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인간을 포기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독생자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인간을 대신하여 죄 값인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인간이 죄를 범할 때마다 소나 양의 피로 죄 씻음을 누리려고 대속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피는 짐승의 피요 그러기에 그 효력이 유한한 것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의 피는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세례요한은 그를 보고 곧바로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기에 우리 주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를 믿는 자는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롬6:3~4절을 보세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는 즉시 예수님과 연합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내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고 그가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신 것은 내가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는 순간 주님이 나와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감격스런 진리를 알고도 믿지 감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원의 진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왜 꼭 예수님이 그 피를 흘려야만 했나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꼭 예수님이어야 할까요? 왜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며 죽어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분만이 죄가 없기에 그분만이 대속할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 중에 어떤 이가 누군가를 위해 죽었다면 그는 자기 죄로 인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속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피 흘림은 죄 없는 자의 代贖(대속)의 죽음입니다. 죄 없는 분이 대신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인이 대속해야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인간은 죄인인 아담 할아버지 하와 할머니 자손이니 역시 죄인이기에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 없는 자의 대속, 이것을 위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누굽니까? 그분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세전부터 살아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을 보시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늘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길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처럼 누구나 그를 믿는 백성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얻어진 것이 뭡니까? 영생입니다. 롬6:23절을 보세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 죄의 삯인 사망을 우리 주님이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그를 믿는 우리에게는 영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제 사망은 사라지고 영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요5: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얻을 것이고”가 아닙니다. 믿는 자는 이미 얻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것이니라” 가 아닌 “옮겼느니라”입니다. 아멘?

 

그 증거를 찾아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옆에 달려 죽는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옵소서”했을 때 주님이 야! 나같은 놈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냐 내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강도의 그 말이 마치자마자 대답하십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멘?

 

성도 여러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의 선언입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이 말씀은 다른 길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다른 길이 있다고 떠듭니다. 왜 다른 길은 없나요? 다른 길은 죄인이 죄인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기에 그분만이 죄 없으신 분이기에 그 대속이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는 특별한 힘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이 뭘까요? 십자가의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무엇이 주어지나요?

 

1) 하늘의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19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여기 聖所(성소)는 이 땅에 성막의 지성소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계신 하늘성소를 말합니다. 그곳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하는 것이 예수의 피입니다. 왜죠? 그분은 죄가 없었기에 우리를 넉넉히 대속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세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 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주님이 열어 놓으신 길입니다. 그러기에 성소에 들어갈 이 자격은 결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길을 만들 능력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학문으로도 안 되고 돈으로도 안 됩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님만이 당신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겨지므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산길입니다. 그곳에 들어갈 자격은 그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죄 사함 받은 깨끗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됩니다.

22절을 보세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구약에 제사장은 소나 양을 잡아 물로 깨끗이 씻어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상의 제사장이 아닌 하나님 우편의 큰 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변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분이 나를 깨끗하게 해주셨기에 새사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 속죄하셨기에 우리는 거저 의롭다함을 받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격이 없지만 우리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 덕분에 죄 사함을 받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명심해야 합니다.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완전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피를 힘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예수 피를 믿는 구원받은 백성이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으니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요? 한마디로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는 세상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이 어떤 삶일까요?

 

1) 신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구원은 받았는데 순간순간 구원이 의심이 드는 분은 없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진짜 불쌍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자녀가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가 맞나? 하고 의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진짜로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자기 엄마가 계모라고 확신하고 살았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자기는 결혼을 하면 친엄마를 찾아본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다 가끔 아빠가 말하기를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진짜 주워온 자식인줄 알았답니다.  

왜죠? 엄마가 자기를 미워하는 것 보니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예수 믿으면서 기도 응답도 잘 받고 복도 많이 받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23절을 보세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라는 부분을 쉽게 해석하면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붙잡고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멘?

왜냐하면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고 믿을만하기에 믿는 신앙고백에 흔들림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2)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처럼 남을 돌아보는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성도는 혼자가 아닙니다. 모두가 가족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죠?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갚아야 합니다.

 

3) 열심히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5절을 보세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마지막 때가 되면 모이기를 폐하려는 악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했습니다. 모이기를 페하는 이유가 뭐죠? 바쁘고 번거로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뭘 자꾸 모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열심히 권하여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래야 신앙이 더욱 든든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솔직히 저도 오후 예배에 대해 갈등이 있었습니다. 몇몇 분이 안모이고 중직들조차도 나몰라하고 가버리는데, 우리교회도 다른 대형교회처럼 오후 예배를 없앨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더욱 열심히 모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구원받은 우리라면 그 구속의 피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관도 달라져야하고 대인관계도 변해야 합니다.

왜죠? 예수의 피로 값을 치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독자 예수님의 거룩한 피 값이 지불된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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