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살 길은 이것뿐입니다/ 삼하12:1~15 / 2016년 6월 5일 주일 설교
살 길은 이것뿐입니다.
삼하12:1~15
2016년 6월 5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설교:
사람들은 성경을 거룩한 책이라 합니다. 聖經(성경)이라는 이름 자체가 거룩한 경전이란 뜻이니 그 말이 맞기는 합니다. 영어로도 Holy Bible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이 거룩한 하나님과 거룩한 구원사역이 기록되어 있기에 성경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거룩한 일들만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한 죄인인 것을 그대로 다 들어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사건, 덕이 되지 못한 사건을 감추지 않고 다 들어냅니다.
형이 동생을 돌로 쳐 죽입니다. 형들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고는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자기 아버지를 자그마치 22년을 감쪽같이 속입니다.
또 며느리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기도 하고, 딸들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는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근과 전쟁으로 굶주리자 어미들이 자식들을 삶아 먹는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좀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는 감추어야 할 텐데 성경은 다 들추어냅니다.
이유는 뭔가요? 하나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한 사건이 오늘 봉독한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던 다윗이 왕이 된 후, 나라가 안정을 찾고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군대가 변방의 암몬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군대장관 요압과 부하들만 내보내어 전쟁을 치르게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왕궁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즐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낮잠을 잔 후 저녁 무렵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멀리서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됩니다. 그때 다윗이 淫慾(음욕)이 발동하여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합니다. 그가 자기의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 장군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데리고 오라하여 동참합니다.
엄청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전쟁터에 나가 있는 신하를 불러들여 휴가를 줍니다. 그래서 태중 아이가 우리아 장군의 아이로 위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패하자 편지를 써서 요압 장군에게 돌려보내는데 전쟁 최전방에 우리아를 투입하여 죽게 하라 지시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아 장군은 그 편지를 요압에게 전했고 결국 전쟁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아내 우리아를 왕궁에 데리고 와 부인으로 삼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훌륭했던 다윗왕도 죽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행한 짓은 죽어 마땅하고 혹독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오히려 그를 메시아의 조상으로 삼으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반드시 죽어야 할 죄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살게 되었고 어떻게 쓰임을 받은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다윗은 어떻게 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늘 유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성경에 다 담아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하나님의 사람의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인 다윗 왕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죄를 범합니다. 그가 지은 죄가 어떤 죄인가요? 간음,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그 간음죄를 저지른 후 그것은 은폐하기위해 거짓말로 속임수를 행하고, 그러다 실패하니 암몬자손의 손에 죽게 하여 살인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도 그 신하의 아내를 부인으로 맞이해서 사랑이 많은 왕인 것처럼 대중을 속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악하기 그지없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이 세운 왕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다 타락했고 본질상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인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다윗이 지은 죄목 중에 가장 큰 죄를 간음이나 살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를 거명합니다.
9절 상반 절을 보세요.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그의 죄목은 하나님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10절도 보세요.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다윗 왕이 저지른 죄는 간음죄, 살인죄, 도적질도 있지만 그런 죄가 왜 자행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을 업신여겼기에” 그런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간음, 살인, 도적질, 배후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업신여겼다”는 말의 원어에는 “경멸했다” “무시했다” “얕보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윗 왕이 그토록 무서운 죄를 저지른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심판하심을 무시하거나 얕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혹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심판하심을 무시하거나 얕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것까지 아시려나?” “이 정도야 하나님도 이해하실거야” 하며 저지르는 죄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얕보고 무시하는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믿는 성도라면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기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적당히 눈감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삽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내하시며 기다리실 뿐입니다.
2) 하나님은 회개를 기다리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윗이 범죄 하자마자 그를 책망하시고 그를 찾아와서 심판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가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데도 그저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렇게 기다린 것이 약 1년입니다. 나난 선지자가 다윗에게 찾아와서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선고할 때는 이미 밧세바가 자식을 낳을 무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까지 뭐하고 계신 것일까요? 왜 악을 막거나 즉각 심판하지 않고 계신 것일까요? 이유는 기다린 것입니다. 다윗이 믿음을 갖고 있는 왕이기에, 그리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긴 왕이기에, 스스로 회개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회개를 안 하니 하나님은 직접 선지자를 보내셔서 죄를 책망하시고 무서운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어떤 심판입니까? 10절 이하를 보세요.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그 심판 내용은 한 마디로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충성스런 신하를 칼로 죽였으니 “그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그 말은 가족 간에, 자식 간에 칼부림과 전쟁이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아들 압살놈이 그의 형 암논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들 아도니아도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집안에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윗이 쫓겨 다닙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궁들과 백주에 동침을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심판입니다. 왜 이런 심판이 있나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용서는 받았으나 그의 행위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에 다윗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스스로 일찌감치 회개했다면 어찌했을까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렇게 무서운 심판을 선고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1년을 기다렸는데 회개치 않으니 이런 결과가 찾아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었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기다리고 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 순간순간 깨닫게 하시거든, 스스로 즉각 회개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설교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거든 즉각 회개하시고 자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백하면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일 1:9절을 보세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기에 죄가 느껴지면 대충 넘어가려 하지 마시고 철저하게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작은 죄라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곧바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보내셔서 그의 죄를 깨닫게 하시든지, 사건에 휘말러 깨닫게 하시든지 합니다.
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다윗이 죄를 범하자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죄를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기회를 부여하십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었고 구약에 엘리사의 종 ‘게하시’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늦게나마 붙잡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회개케 하나요?
오늘날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우신 종들을 통해 말씀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 느껴지면 즉각 회개해야 합니다. 제발 나중으로 미루지 마시고 변명하지 마세요. 통렬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機會(기회)라는 말은 그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뜻이 그 찬스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시 32:6절을 보세요.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를 만날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그 기회가 회개입니다. 이 기회를 붙잡으면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2. 죄를 범한 다윗은 누구인가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왜 다윗이 이런 죄를 지었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 왕은 죄 지을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한가하게 낮잠을 잤습니다.
그는 자기 신하들이 암몬군대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왕궁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게으르거나 한가하게 빈둥거리면 죄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다윗의 결정적 문제점은 불붙은 정욕을 통제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자기의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인 것을 알았다면 돌려보냈어야합니다. 그런데 절제치 못하니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왜 다윗이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성적 탐욕, 이것은 다윗의 가장 큰 핸디캡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거기다가 막강한 권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적 탐욕을 부리는 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밧세바 경우는 절제 했어야 합니다. 그녀는 남의 아내였습니다. 그것도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였습니다. 그런 것을 알았으면 당연히 절제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정욕을 절제치 못하고 죄를 범했습니다.
결국 그 육체의 탐욕은 무서운 결과를 맺었습니다. 밧세바가 잉태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그것을 은폐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살인도 저질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죄를 지으면 그 죄는 결코 한가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가 죄를 낳게 되고, 결국은 죄의 삯은 사망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엄청난 심판을 선고받으면서도 망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즉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그랬을까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책망과 심판을 달게 받고 즉각 회개했습니다.
13절을 보세요.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 받았을 때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즉각 회개합니다. 그 즉석에서 죄를 인정하고 자복합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하나님도 즉각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죄만 보면 즉형에 처해도 시원찮은 죄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이 말 한마디에 그는 죽임을 면합니다.
그러나 죄의 대가는 혹독하게 당하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도 이것이 살길입니다. 혹독한 심판과 형벌이 있지만 그래도 용서를 받았으니 이것이 살길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윗이 저지른 죄와 같은 무서운 죄가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내 죄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남이 저지른 죄는 죽일 놈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은 달리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이 어떤 죄를 지었든 내가 신경 쓰고 난리 칠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내 죄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속히 자수해서 광명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2) 왕의 체면과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죄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체면과 자존심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선지자 앞에 섰을 때 그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거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윗왕은 여러 사람 앞에서 죄를 지적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체면도 구겼을 것이고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는 죄를 부인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당대 왕은 최고 권력자였기에 그 권력으로 얼마든지 나단 선지자를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보면 그가 회개하는 내용의 시가 몇 편 있습니다. 그 중에 시32편도 보세요.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또 5절도 보세요.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그는 죄를 깨닫는 순간 자복하고 아뢰되 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사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다윗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죄가 없나요? 우리도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수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못하는 것도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길은 뭔가요? 체면과 자존심 다 내려놓고 두 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죄를 범했나이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여기에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 나라가 이 모양입니까? 왜 우리 한국교회가 이 지경입니까? 왜 현대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破綻(파탄)이 나는 것일까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우리 죄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여러 번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회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회개의 때를 놓치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회개치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치 않은 것이 곧 망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때 어찌해야 합니까? 감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깨닫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