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육

[스크랩] 한국교회 설교의 갱신

☆ 주님의 머슴 2017. 3. 26. 16:48

Sergei 선교칼럼]

요즘 정치 기사를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 한 마디로 정치인들이나 정당들이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직 자기들에게 유익한대로 제멋대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랄까! 좁게는 본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고, 조금 더 나가면 사회 속에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과 바람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크게 나가면 이 민족과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계 교회의 요구와 바람이 무엇인지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 중에 심각한 문제가 바로 목회자의 생명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설교다. 매주일 30-40분씩, 1주일에 수십 번씩, 백성들을 교육하고 훈계하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단체는 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가도록 제시하는 면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존재 그 자체는 사회의 등불이요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청난 기회와 역할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흔들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많은 원인 중에 한 가지는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외람된 이야기이고, 아킬레스건인 것을 알지만 함께 생각하고 변화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니 큰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설교의 홍수시대

1. 기독교 사이트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수백 편의 설교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설교를 자세하게 들어보면 몇 가지로 분류가 된다. 어떤 설교는 본문을 읽어놓고 다른 지방에 가서 놀다가 오는 경우, 어떤 설교는 본문이나 주제가 일치하지 않고 서로 따로 노는 경우, 어떤 설교는 혼합형인데 본문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로 빠지고 가족이나 가정 이야기로 일관하다가 다시 본문으로 회귀하여 마무리하는 식이다. 훌륭한 분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한국교회 많은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설교는 간증과 잔소리와 푸념과 세상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마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주제도 내용도 없는 것을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말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2. 오늘의 한국교회의 설교는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다. 교회 절기력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사사 시대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목회자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관심거리가 우선적으로 본문으로 선택되는데, 그것이 온 성도들의 관심거리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이 더 핵심이다. 이러한 부분에 목회자가 깊이 묵상하고 방향을 잡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원하심과 역사성 시대성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설교의 방향을 상실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면에서 시대적 상황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독교 공동체에서 합의되어 하나의 주제와 방향으로 전달된다면 통일성을 유지하고 말씀이 개인의 성향이나 경험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나는 작년, 대회가 있어서 한국교회를 순방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본부에서 설교 본문과 내용이 하달되었다. 그대로 하라고 하면서 두세 개의 설교를 주어 선택하게 하였다. 통일성 있는 주제에는 동감을 하였지만, 내용도 없는 설교를 그대로 읽으라고 하달한 지침에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먼저는 동의가 없었기 때문이고, 방향과 주제만 제시하면 되는 것인데 로봇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3. 어떤 설교는 정치적 이야기와 보수주의를 주장한다. 혹은 시사문제로 일관한다. 심지어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동영상을 상영하기도 한다. 미국의 수천 명이 모이는 어떤 교회는 건강 이야기를 가지고 두 달씩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목회자들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성도의 입장에서 듣는 설교

첫째, 많은 경우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성도들은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한 설교를 들어주어야 하는가? 한 주간 동안 삶에 지치다 영적인 갈급함과 말씀의 새로움을 찾기 위하여 예배에 모인 자들에게 잔소리와 개인의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은 맡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아멘으로 화답하여야 하는가? ‘많은 경우 목회자들은 한국성도들을 우롱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 오만일까?

둘째, 말씀의 시대성도 없고 구체적인 적용 점이 없는 이야기를 또한 왜 들어주어야 하는가? 성도라는 이유로, 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설교를 참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가? 교인들의 인내심인가? 무지함인가? 이 모든 것을 목회자는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준비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기도하고 시간을 투자하는가? 경험이 많을수록, 세월이 지날수록, 기술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말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성도들은 허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일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말씀의 성육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실성이 없고, 사회성이 전혀 없는 종교적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2-3천 년 전의 이야기를 원색적으로 길고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을 들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이러한 경우에 목회자는 은혜가 없다고 할 것인가? 믿음이 부족하다고 할 것인가? 아니다. 차라리 연자 멧돌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이스라엘 무협지 같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전하기에는 30분 설교시간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한국교회의 설교의 방향

1.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물질주의 성공주의 스마트 시대에,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어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가? 십자가는 무슨 의미인가? 복음은 어떻게 적용 되는가? 거짓이 난무하고 극단적 이기심이 사람들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시대적인 흐름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인의 복음적인 삶을 선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2. 무슬림이 한국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매우 전략적으로 도전해 나가고 있는데도 목회자가 아무런 대책이나 생각이 없이 나가고 있다. 한두 번 홍보성으로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도전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처하고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를 기도하면서 찾아 정기적으로 선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3. 핵실험을 꿈꾸며 공멸의 길로 나가고 있는 북한정권, 수백만의 백성들이 굶주려 죽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며, 이 땅의 풍요로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권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이며, 정의는 무엇이며, 편협함이 없는 성경적인 국가관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그러한 말씀을 주제로 국민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4. 목회자가 물질주의의 타락한 세속정신을 극복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주님의 원하심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한국교회가 존재함으로 한국은 복받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이 심히 어지럽고 부패한 것은, 전반적 방향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설교가 그렇지를 못하여 소망을 상실하고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러시아 정교회 예배를 1년간 참석하면 신구약 성경을 다 읽게 된다. 예배 의식 속에 낭독되는 말씀이 1년 동안 성경 한 권에 이른다는 것이다. 설교도 월별로 분기별로 혹은 절기별로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여 1년이 지나면 무엇인가 뚜렷한 기억이 남도록 계획되어야 하지 않을까? 외람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6. 각 교단 총회는 종교력을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틀을 구성하여 통일된 주제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 어떨까? 이러한 일로 고민하며 나갈 수 없는 것일까? 주일예배 시간은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공예배인 만큼, 한국교회가 공적인 주제를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말씀의 통일성과 더불어 한 뜻을 품고 기도하며 나가는 일에, 또한 국민 교육에도 더 없이 유익할 것이라 본다.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출처 : 행복동산
글쓴이 : 배불뚝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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