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9월04일,종말
주일설교(2016/9/4)
종말
계20:11-15, 2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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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살이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저녁에 헤어지면서 “내일 또 만나! 그래, 내일 만나자!”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집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다들 다른 친구들은 “내 일 또 만나자”라고 하는데, 내일이 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내일이 뭐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확히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은 내일이야!, 하룻 밤 자고 일어나면 새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 하루살이는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라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종말”이나, 다음 세상인 천국의 개념은 이 세상적인 개념과 육적인 개념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개념이요, 성경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는 요한계시록을 설교하기 위해서 먼저 몇 가지의 중요한 것을 먼저 설교하고 요한계시록을 설교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일들에 대한 교리, 전문 용어로는 ‘종말론’(eschatology)입니다. ‘종말론’이라는 단어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으로 마지막 일, 즉 궁극적인 결과까지 가 보는 것을 말합니다.
‘종말론’은 매우 중요한 성경의 교리이며, 우리 모두는 여기에 대해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죽음에 직면해야 하며, 만일 성경이 이 마지막 일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성경은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멋지고 놀라운 책인 이유는 바로 이 종말에 대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고,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기독교만이, 그리고 성경만이 이 종말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이 종말에 대해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과 기독교는 인생의 전체, 인생의 모든 부분과 모든 문제, 모든 단계에 대해서 까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속한 것 중에 성경이 철두철미하게 다루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 다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 인생의 끝에 일어나는 문제, 죽음 뒤에 오는 문제까지 다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사람들이 궁금해 했고, 지금도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류역사에 수많은 학자들, 철학자들, 종교학자들, 역사학자들 등 지성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의 삶 전체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미래는 무엇이며,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운명, 개인적인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사실 갈수록 더 미래에 대해 궁금해 집니다. 이제는 종말이 다가 오고 있다는 인식은 누구나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요한계시록은 더 중요해 졌습니다. 창세기부터 모든 성경을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해석되어 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주 텍스트로 해서 모든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시대에 왔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시대는 이상하게도 종말시대에 산다고 하면서도 사실 종말에 대해 관심이 없어져 갑니다. 현세에서 풍성하게 잘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돈 많이 벌고, 풍성하게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곳에서 종말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종말이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과 종말에 메시야가 올 것에 대한 기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사도들도 종말과 주님의 오심을 말하고 있고, 고대하고 사모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에 주님이 오실 것과 반드시 때가 되면 종말이 있을 것을 수 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우주적인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로 나눕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어느 때가 되면 이 우주 전체는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은 다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물건들도 때가 되면 폐기처분하고 쓰레기로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물들도 마지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인간의 종말은 좀 다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는 하였지만, 이 우주의 피조물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래 종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의 종말은 죽음입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옴으로 죽음이 함께 따라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보는 견해가 두 가지입니다. 사람은 왜 죽는가? 죽음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가? 이것에 대해 이 세상의 철학적인 견해나, 이 세상 사람들의 주장은, 죽음은 삶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과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여기에 한 생명이 태어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무엇이든 똑같습니다. 생명이 태어나면, 싹이 트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생장이 일어납니다. 생명이 커나가고 꽃이 피고, 완전히 성숙한 후에는 쇠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처음부터 거기까지 도달하도록 만들어 졌고, 끝에 도달하면 쇠하여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시들게 되고, 점점 더 내리막으로 내려오게 되고,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인간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태어 날 때 영원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죽음은 삶의 일부로서 삶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죽음은 죄로 인해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서 에덴동산에서 살 게 될 때는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처럼 죽지 않고 천국과 연결되어 살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사탄처럼 사탄화가 되어져서 몸과 마음(혼)과 영이 다 오염되고 죄로 덮여서 죄 덩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와같이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죽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단절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이 존재의 단절,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혼과 육체의 분리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영혼과 육체가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지만 죽으면 육체는 땅으로 들어가고 영혼은 육체를 떠나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혼과 육체의 분리일 뿐이요, 인간은 영원합니다. 계속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또 있습니다. 죽음이 왜 오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됩니다. 죄의 형벌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내 죄는 사해졌고, 나는 의롭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해 졌는데,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도 죽어야 하는 겁니까?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도 청년 때부터 궁금해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 때문에 죽음이 왔다면,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죽지 않아야 되는데, 왜 예수 믿는 성도들도 늙으면 다 죽는가? 왜 예수 믿는 성도들도 육체의 질병과 육체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마태복음 8장17절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와 질병과 고통을 다 짊어지셨다고 했는데, 왜 여전히 예수 믿는 성도는 죽어야 하며, 질병으로 시달려야 하며, 육체의 고통으로 살아야 하는가?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는 우리 육체의 죄와 육체의 질병과 고통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속죄가 그런 식으로 죽음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육체는 이 땅을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죄가 계속 우리의 육체에 달라붙는 것입니다. 많이 살면 살수록 우리의 육체에 죄는 더 많이 달라붙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의 육체는 계속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9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요한일서 5장 18절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육체는 죄를 짓지만, 우리의 영, 우리의 구원 받은 영은 죄를 짓지도 않고, 악한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는 우리의 육체의 죽음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구원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롬8:23) 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는 몸이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도 육체에 질병과 죽음과 죄가 남아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셨다면, 우리를 즉시 육체의 죽음과 질병을 즉시 없애 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재림 하실 때, 우리의 이 현재의 육체로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가 가득한 이 육체로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는 새로운 부활체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는 변화체로 변화시켜서 데리고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 51-52절에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만약에 주님의 십자가의 속죄가 우리의 육체까지도 속죄했다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체로, 변화체로 바꾸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죽지만, 죽음에 대한 견해는 저 불신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 뒤에는 끝이 아니고, 단지 인간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일 뿐이며, 우리 인간은 여전히 영원히 삽니다. 어떻게 영원히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흑암의 세력이 있는 지옥에서 영원히 사느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은 끝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은 종말에는 온데 간데 없이 다 사라집니다.
오늘 읽은 본문 계시록 20장 11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계시록 21장 1절에도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2절에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종말에는 끝입니다. 온데 간데 없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영원합니다.
다시 베드로후서 3장 12절,13절을 다시 보십시오.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종말에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없어지지만, 하늘과 땅과 바다도,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다 없어지지만, 우리는 영원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본문은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상세히 설교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우리 인간에게는 종말이 끝이 아니고, 주님의 나라에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하면 종말은 우리에게는 끝이 아니고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영원히 사느냐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느냐? 지옥으로 들어가느냐? 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지옥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지옥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조금 전에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는 이 우주의 피조물과는 다르게, 인간에게는 죽음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인간 속에 죄가 들어와 사탄화가 되어버리면서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도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옥은 본래 타락한 천사들, 사탄과 그 사탄의 졸개들을 가두려고 만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불만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지옥을 만드셔 가지고, 예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지옥에 보내는 겁니까?’ 라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지옥은 인간을 집어 넣으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보좌를 찬탈하려고 한 타락한 천사들을 가두려고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천사들에게 속아서 사탄 편에 서면서 사탄화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사탄의 졸개가 되어 사탄을 돕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가야하는 그 곳에 사탄화가 되어 버린 인간이 함께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을 읽으십시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창세로부터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나라가 따로 있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이곳에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반대로 사탄을 위해 예비해 놓은 지옥이 따로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25장 41절을 보십시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곳‘입니다. 이곳에 왼편에 있는 염소들을 향하여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에 대해서 많이 말씀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종말을 많이 말씀하는 것은 종말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모든 것이 없어지고 끝이 나지만, 우리 인간의 개인적인 종말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도 나의 개인적인 종말에 속하지만,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어떻게 영원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지옥에서 영원할 것인가, 천국에서 영원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천국에서 영원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