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1월27일,[대림절1-요한계시록5]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주일설교(2016/11/27) - 요한계시록(5) - 대림절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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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긴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악의 세력을 다 멸하고, 그리스도의 나라, 메시야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느냐 하면, 멸망할 악의 세력, 이 세상의 세력에 동조하면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중심되는 말씀은 “내가 너희 형편을 다 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이겨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마다 “내가 안다” 라는 말과 “이겨라”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제대로 바로 믿고 있는가?’ 그걸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오늘도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서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마음 같으면 요한계시록 1장을 길게 하지 말고 바로 2장, 3장으로 쭉쭉 넘어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요한계시록이 의도하는 내면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왜 기록되었으며, 요한계시록을 왜 주셨으며, 요한계시록을 왜 우리가 배워야 되고, 알아야 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한번도 읽어보지도 않고, 요한계시록 전체를 한번도 설교를 들어 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알아야 우리의 눈동자가 메시야의 나라, 주님의 나라에 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목회를 마치기 전에 이 요한계시록 전체를 설교해야 되겠고, 여러분들도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 가기 전에 한번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설교를 듣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요, 특히 그 중에 일곱 영, 즉 성령이 강력하게 활동하는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앞날의 미래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미래의 종말이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지를 보여 주고, 그리고 그 중에 특히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며, 강력한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은혜와 평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점점 갈수록, 신앙을 지키기가 어렵고, 예수 믿는 환경이 나빠질 것인데, 심지어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소유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 계시록을 썼던 당시는 로마가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팍스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던 때였습니다.
pax romana, 이 로마의 제국주의적 사상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황제 숭배만 따른다면 더 없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로마에 의해 세계가 평정되었기 때문에 전쟁도 없었습니다. 평화가 왔습니다. 살기가 좋아졌습니다. 예수만 믿지 않는다면 박해를 받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예수 믿지 않고, 로마제국의 사상을 지지하고 따르기만 하면 너무 너무 편안하고 살기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정말 평화입니까? 진짜 평화가 아닙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미국의 뉴올리언즈의 유흥가나, 라스베가스에는 좀도둑들이 없답니다. 마피아들이 자체 치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기분 좋게 와서 돈을 많이 잃고 가야하는데 좀도둑들이 많이 설치면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지요. 그래서 평화롭습니다. 그게 진짜 평화입니까?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한 평화는 마치 거미가 자기 먹이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먹이가 사랑스러워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그러한 거미의 배려에 속아 평안하게 거미줄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바로 그런 형국인 것입니다.
그렇게 로마의 강력한 제국이 무사안일과 평화와 안녕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영적 생명력을 상실케 하는 사탄의 공격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가해져 오는 엄청난 핍박 앞에,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서 은혜가 뭔지 다시 확인시키시고 진짜 은혜와 평강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안에서 사탄은 로마라는 제국의 힘과 로마가 가져다 주는 평화를 앞세워서 성도들을 공격하고, 교회를 말살하는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보면, “큰 음녀”가 “붉은 짐승”을 타고는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큰 음녀”는 로마제국과 같은, 로마제국에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강력한 국가, 정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붉은 짐승”은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사탄의 세력은 국가를 앞세워서, 특히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세계 정부를 앞세워서, 평화와 안식과 민주주의를 앞세워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를 말살 할려고 할 것입니다.
점점 갈수록 참으로 믿는 자들은 줄어들고, 교회의 숫자도 줄어들고 신앙생활하기가 어렵게 되는 환경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숫자가 줄고, 교회 다니다가도 안 다니고, 믿다가도 안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교인 수가 줄고, 앞으로 50년 쯤 지나고 우리 세대가 지나고 나면 교회는 텅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말세의 징조입니다. 거품이 다 꺼지고, 알맹이만 남는 징조입니다. 진짜 믿는, 참 믿음을 가진 자들만 남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나라에는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남는 자가 가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요한계록으로 들어 가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야 요한계시록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가 세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1)그분은 ‘충성된 증인’이시고
2)‘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이시며
3)‘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 진짜 왕 중의 왕이시다’ 이렇게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왕/제사장/선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3중적 역할과 지위’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충성된 증인 – 선지자
②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 제사장
③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 - 그 분이 진짜 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참 선지자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왕이십니다. 이 3중직에 대해서 뒤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은혜와 평강은.. 오직 왕/제사장/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계1:5)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참 은혜와 평강이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엉뚱한 왕, 다른 제사장, 거짓 선지자를 섬기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계시록 뿐 아니고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이시며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라고 표현해 놓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지위, 즉 그분의 이 땅에서의 삼중직(三職)에 대해서 묘사를 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떤 분이셨습니까?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셨습니다.
그 역할을 하던 사람을 우리는 선지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암시했던 바로 그 참 선지자 이셨습니다.
(신18:18-19)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은 바로 그 선지자 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완벽하게 그 역할을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충성된 증인의 삶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늘 반대하는 사람들과 회유하는 사람들과 노골적으로 야유를 하는 사람들과 때리는 사람들과 배신하는 사람들과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난을 당하시고 죽는 모습으로 그 증인의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교회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처럼 다 참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증인은 선지자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모두 이 시대의 증인으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고 계십니까?
(민11: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곧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의 부추와 마늘과 고기를 그리워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 ‘각기 장막 문에서 울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백성들이 고기 달라고 저렇게 웁니다. 제가 저들을 낳았습니까? 제가 왜 이렇게 불평을 듣고 고생을 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 짐이 많이 무겁구나, 내가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게 해주겠다. 그리고 네 짐을 나눠 질 70명의 장로를 택해라‘
70명의 장로를 택해서 성막으로 갑니다. 거기서 성령이 임합니다. 그리고 70인의 장로가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진중에 있던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진 중에서 예언을 하니까 어떤 소년이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을 한다고 고자질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옆에서 모세에게 ‘금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 때 모세가 한 말입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모두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 선지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시키고 실패시키고 절망시키기 위해 우리 삶에 염려와 탄식과 눈물로 공격을 해 올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낙담시키기 위해서 사업을 치기도 하고, 건강을 치기도 하고, 자식을 치기도 하고, 길이 잘 안 열리게도 하고, 하다못해 남편이 속을 썩이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미 충성된 증인으로 우리가 겪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난을 당하시고 그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해 내신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까짓 거 이겨낼 수 있다. 예수님도 그 길을 미리 가셨다. 그리고 미리 다 겪으시고 승리하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것으로 위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 분은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 승리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죽으셨다’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이고, 자신이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히5:8-10)“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은 당신이 제사장이시면서 또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제사가 완전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제사가 완전하지 못했을 때 제사장은 죽어야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완전한 제사가 드려졌고 더 이상의 짐승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나셨다는 것은 장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나중에 날 자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롬8: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1: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그 분은 살아나셔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맏아들이라는 것은 그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장자라는 것은 가족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면서 애굽의 장자는 다 죽였지만, 이스라엘의 장자는 다 살려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의 장자는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장자라는 것의 개념은 어떤 무리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는 말을 초대교회 신자들이 들었을 때 그 장자의 개념을 금방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대표이시고 우리가 그 분과 형제가 된 자들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맏아들이 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들이 된 것입니다. 양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물려받고 그 권세를 누리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동일한 수준으로 대접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롬8: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런데 그 맏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살아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를 믿음으로 죽음에까지 내몰려 벌벌 떨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 우리 교회의 삶을 대표로 미리 살다 가신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평강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는, 예수님은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은 로마 황제의 그 권세 앞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진짜 왕은 너희의 영혼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되신 예수님이라는 표현을 대할 때, 금방 구약에 예언된 왕이신 메시아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 분이 우리 편이라면 우리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왕 이신 그 분이 우리를 지키고 계신데 지금 우리에게 환난과 핍박이 닥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저까짓 로마 황제의 권세는 우리 예수님의 권세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고 평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 분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입니다.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땅에서도 완전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왕들이 아닌 자들이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진짜 왕인 예수를 죽여야 자기들이 왕 노릇할 수 있으니까, 예수를 죽이고, 예수가 오시는 것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과 왕들, 그리고 마귀의 세력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죽이고 대적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있다는 것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가신 그 분이 이 우주와 이 땅에 왕이다 라는 표시입니다. 다시 예수님은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교회가 메시야의 왕국에 들어가고, 주님이 교회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주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권세를 가진 왕이십니다. 신약성경 제일 처음에 나오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분임을 말씀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마2:2)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처음 한 말입니다. 또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을 모아 놓고 헤롯왕이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마2:4).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붓는다’는 뜻으로 당시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으므로 역시 “왕”이라는 말입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로다”(마2:6) 선지자가 말한 “한 다스리는 자”도 역시 왕을 의미합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그 시대 최고의 값진 선물로 왕에게 진상하는 물건들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 분이 오셔서 우리를 영육간에 괴롭히는 질병과 저주와 마귀와 사단과 귀신을 파괴해서 다스리시고,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왕이신 그 분이 만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왕이신 그 분이 붉은 용,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를 물리치고 이기고, 주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고 승리한 교회, 믿음을 지키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에게 메시야의 나라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