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월22일,[요한계시록9]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보라(1)
주일설교(2017/01/22)-요한계시록(9)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보라(1)
계1:12-13, 2:1
====================================================================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입니다. 그 중에 사도요한이라는 제자가 있어요. 이 사도요한이 오순절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읍시다. 교회에 와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80세 다 될 때까지 50년 동안 1,전도하고 2,교회세우고 3,가르치고 4,병고치고 5,돌보고, 이러한 일을 일생동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로부터 황제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핍박을 받고, 외경 중에 “요한행전”에 보면, 요한은 로마로 압송되어 도미티아누스 황제 앞에 끌려가서 아주 독한, 마시기만 하면 바로 즉사하는 독약을 먹이도록 했습니다. 그 독약을 한 사발 마셨는데, 죽지 않으니까, 그 독약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다른 죄수를 하나 데리고 와서, 요한이 마시고 남은 약사발에서 찌꺼기 조금을 그 다른 죄수에게 먹였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 때문에 저 죄수가 죽었으니, 그 죄수를 내가 살릴 테니 석방시켜 달라”고 합니다. 황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가 마신 약사발의 찌꺼기를 먹고 죽은 그 죄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바로 그 죄수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는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황제의 권위로 당신을 해방시켜 줄테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합니다.
그 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요한을 향하여 “내가 너를 석방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내 줄 수가 있지만, 황제의 권위가 홰손 될 수 있기 때문에, 너를 석방 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정해진 기간 동안 밧모섬으로 추방하노라.”(요한행전 13장) 이렇게 해서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고, 네르바 황제(96-98년)가 등극하고, 국가에 반란을 주도했던 죄수만 빼고, 모든 죄수들을 석방하라는 황제의 명에 따라 이 때 다시 에베소로 돌아 오게 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서 있을 때 환상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밧모섬에 보냈더니 거기는 죄수들만 갇히는 곳입니다. 역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이 밧모섬은 유황을 채굴하는 곳입니다. 죄수들을 동원해서 유황을 캐는 곳입니다. 여기서 요한도 80세가 넘은 연로한 나이이지만, 중노동을 했습니다.
그 중노동 중에서도 주일을 기억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에베소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든 것을 그리워하면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 예배장소를 정해 놓고, 매주 혼자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든 중에 어느 주일에 혼자 예배하면서 기도 중에 성령의 충만으로,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더니 사도요한에게 환상이 보여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환상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예배 때마다 주의 성령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사도요한이 본 환상은 이런 환상입니다. 구약시대에 성막이 있습니다. 번제단, 물두멍, 떡 상, 향단, 촛대, 지성소 안의 언약궤,,, 성막 안에는 여러 기구가 있는데, 성소 안에는 불을 켜는 촛대가 있습니다. 이 촛대는 일곱 개의 불을 켤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성막 안에는 대낮에도 캄캄합니다. 밤이고, 낮이고 항상 불을 켜 두는 일곱 촛대가 있는데, 이 일곱 촛대가 환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촛대 사이로 예수님이 거니시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것입니다.
그때 사도요한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요?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실 때 3년 반을 경험을 하고, 그리고 어느 날 십자가에 죽으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여 가셨습니다. 사도요한은 늘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나타난 환상 속에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이 아니고, 촛대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니까, 과거에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았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있고, 그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계1:13-16).
그리고 “네가 지금부터 보는 것을 그대로 기록하여 일곱 교회,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네가 본 것 중에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일곱 별, 즉 일곱 교회의 사자를 붙잡고, 일곱 촛대, 즉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시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곱 교회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곱 교회은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교회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일곱 교회는 예언성이 있어서 일곱 시대별로 나누어 나타나는 형태의 교회입니다.
예를들어,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부터 초대교회시대
서머나 교회는: 순교시대
버가모 교회: 국교시대
두아디라 교회 : 중세 암흑시대
사데 교회 :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 교회: 선교시대
라오디게아 교회: 종말시대, 현대교회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 교회를 시대별로 잘라서 예언한 것인가 ? 이 2가지인데,
제가 볼 때는 저는 첫 번째인 일곱 교회에 대한 속성은 주님이 재림하기까지 이 땅에 나타나는, 교회시대에 나타나는 일곱 가지 형태의 교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지구상에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나타나는 모든 교회의 모습이 이 일곱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하면, 세 가지의 직분을 말합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의 직분입니다.
“나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지금부터 촛대사이로 다니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이 촛대사이로 우리 예수님이 다니시면서 세 가지의 권세를 사용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으로 다니면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왕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고, 다스리시고,
선지자권으로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해 주시겠다고 예수님이 촛대 사이로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보라.
따라서 합시다. 옷을 보라, 제사장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는 것은 - 난 너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하겠다. 아멘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의 옷을 보라
예수님의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는 것은- 내가 너에게 왕이 되어주겠다. 악한 마귀를 물리쳐주겠다. 대적을 쳐 부셔주겠다 .아멘 나는 너를 지켜주겠다. 는 것입니다. 아멘
따라서 합시다. 선지자의 옷
선지자의 옷을 보면, 나를 주님이 인도해 주신다.
가르쳐 주신다. 깨닫게 해주신다. 바로 이것입니다.
벌써 예수님은 옷을 입고 나타날 때부터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난 너에게 제사장이다
나는 너의 선지자다
나는 너의 왕이다. 할렐루야
이게 요한계시록 1장의 핵심 키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키워드입니다.
우리는 키워드를 알면, 그 다음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 알게 됩니다.
사도요한이 하늘나라로 예수님을 승천해 보내고, 50년간의 주님의 사역을 하면서 그의 머리 속에 예수님 하면, 하나님 나라의 보좌우편에만 있다는 생각만 하고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본 환상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도 계시지만, 거기만 계시는 게 아니고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비밀을 가르쳐 주리라. 계시록에 나타난 첫 번째 비밀을 가르쳐주리라 하시면서,
“이 촛대가 뭐냐? 일곱교회야”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일곱교회는 지금까지 있은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요, 앞으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있을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촛대 위로 다녔다는 것이 아니고, 교회 위를 다녔다는 것이 아니고, 일곱 촛대 사이, 즉 일곱 교회 사이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예수님은 교회 사이를 거니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교회사이로 다니시는 모습을, 사도요한이 이 환상을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봤으면, 얼마나 더 큰 역사가 일어났겠습니까? 일생 하나님의 일하면서 설교하면서, 병 고치면서, 가르치면서, 교회세우면서, 늘 사도요한의 머릿속에 예수 그러면 이 환상을 기반으로 하여 주의 일을 했으면 얼마나 더 큰 역사가 일어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80세가 되어서 하늘나라 가기 직전에 이 환상을 본겁니다. 왜 주님은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모습으로 나이가 80세가 넘어 곧 하나님 나라로 갈 때가 다 된 사도요한에게 나타난 것일까요? 이 환상은 사도요한에게 주시려고 나타난 환상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주시려고 나타난 환상이냐 하면, 우리에게,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 즉 이 땅의 모든 교회에 기록하여 보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상을 보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기도하다가 성령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는 것도 있어요. 그것도 환상이예요. 그러나 이것은 우리 같이 기도도 잘 안 하는 우리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도도 잘 안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환상을 볼 수 있느냐? 환상을 본 사도들의 환상을 기록한 “말씀의 환상”입니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말씀의 환상”, 말씀을 통하여 사도들의 환상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 환상은 더 확실한 환상입니다. 환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1) 신령한 환상
따라서 합시다. 2) 말씀의 환상
이 말씀의 환상이 더 분명합니다.
신령한 환상은 영계의 교란이 있어서 틀릴 수도 있어요. 영계의 저항을 받아서 사고 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말씀의 환상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령한 환상보다 더 좋은 말씀 환상을 봐야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촛대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환상을 공유합시다. 말씀의 환상을 공유하는 자에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벌써 열 두 촛대와 다니신 적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 열 두 촛대, 즉 열 두 제자들과 다니셨습니다.
3년 반 동안 이 열 두 촛대와 다니시면서 뭐하셨나?
첫째는, 따라서 합시다. 병고치고, 공관복음의 2/3가 병 고치는 이야기예요. 복음서의 기록에 3분의 2가 병 고치는 역사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기록 중에 3분의 2가 병 고치는 일을 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날도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도 이 병 고치는 일을 지금도 집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배드리다가 병 나을 수 있어요! 오늘도 병 나을 수 있어요. 병 고침과 예배는 불과분의 관계예요.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야예요. 촛대사이로 다니는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따라서 합시다.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르치신 것처럼, 오늘도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과 가까이 다니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직접 계시하시고, 직접 깨닫게 하시고, 직접 가르치십니다. 할렐루야. 촛대의 능력입니다. 촛대의 능력! 아멘. 할렐루야!
셋째로, 따라서 합시다. 보호하시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부터, 헤롯의 권력으로부터, 마귀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지금도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은 동일하게 보호하신다.
♬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믿습니까?
넷째로, 따라서 합시다. 인도하시고,
이러한 촛대의 능력이 열 두 촛대에 다니시던 때에도 예수님은 동일하시고, 일곱 촛대에 다니시는 예수님도 동일하시고, 오늘날도 이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님은 똑같은 일을 집행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환상을 공유해야 합니다.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을 공유하자. 할렐루야!
이 환상을 믿음으로 공유하는 자에게는 사도요한에게 나타난 능력이 오늘 이 현장에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의 눈이 어두워서 촛대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못 보는 것입니다.
못 보니까 감정이 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지성이 거기에 대하여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영의 눈이 어두우니까요.
사도요한이 본 환상이 안보일지라도 기록된 환상 이것을 보고 내가 직접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것 같은 그와 같은 환상을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요? 주님이 이 자리에 다니시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의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말씀의 환상을 공유를 못하고 있습니다.
계3:14-18을 찾아 읽어 보십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영의 눈이 먼 사람은 지금 주님이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것을 모릅니다. 느끼지를 못합니다.
촛대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저와 여러분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 사이를 다니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먼 사람은 주님의 환상을 받고도 주님의 환상을 인정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여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영으로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예수를 느끼는 것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만 듣는 것이 아니고,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가 되면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이 나에게도 오셔서 내 안에 거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떡하면,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은 다음 주일에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되면,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이 내 속에도 거니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기까지하고 점심 먹어야 되잖아요? 설교가 자꾸 길다고 하는데, 짧게 할려고 애를 쓰는데, 하다가 보면 또 길어집니다. 원고에 없는 말을 덧붙이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번 밖에 안 오는데, 어떡하든지 많이 먹이려고 하다가 보니까 또 길어집니다.
촛대가 분명히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예배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촛대의 능력이 죽어 갑니다. 왜 그러냐? 촛대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촛대에 불이 꺼져 있기 때문입니다. 불이 켜진 촛대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거니시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불 켜진 촛대가 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