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스크랩] 4월30일,[요한계시록19]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1)

☆ 주님의 머슴 2017. 5. 7. 18:35

주일설교(2017/4/30) - 요한계시록(19)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1)

3:14-22                                                           

 ======================================================================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현대 교회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주일에 걸쳐서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설교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이 교회시대의 이 땅의 모든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은 사탄이 교회시대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미혹하는 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성도들이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영적세계의 현상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세계의 현상만 보고 따라 가다가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고, 구원의 역사에서 벗어나 사탄의 밥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이야기가 끝나면 4,5장의 천상의 세계를 들여다 보게 될 텐데, 이 천상의 세계가 영적세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일곱 교회의 모습은 영적세계의 영향을 받는 이 지상에 있는 교회들을 들여다 보면서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 일곱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의 요약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책망은 전혀 받지를 않고, 칭찬만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입니다. 특히 사데 교회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네게 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합당한 자다라고 하면서 칭찬 받는 그 몇 명 때문에 칭찬을 조금 받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칭찬은 전혀 없고, 예수님의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들 가운데서 최악의 상태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일곱 교회를 보면, 점진적으로 더 타락해 가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잎만 무성한 교회요, 교회 역사는 오래 되어서 배운 지식은 많은데, 형식적인 신앙만 남아서, 바른 복음에 근거한, 은혜로 말미암은 자발적이요, 복음적인 삶을 살지 않는 가식적이고 외식적인 교회였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리니까 오래 믿었다라는 자랑은 있는데,  처음 믿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랑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핍박과 궁핍이 심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도 다른 핍박, 로마제국으로부터 오는 핍박도 많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유대인들의 핍박이 심한 교회였습니다. 이 서머나 교회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자칭 유대인' '사탄의 회당'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과 복음의 능력을 붙잡고,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을 다 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화형을 당해 순교했던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이 교부로 있던 교회로, 지금도 폴라캅 기념 교회로 남아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버가모 교회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 같은 잘못된 교리와 교훈이 교회로 스며들어 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그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을 좇다보면 언제든지 그러한 잘못된 교리에 현혹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도 사탄이 교회를 거짓 여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아 드리게 함으로, 우상 숭배나 기복주의, 윤리와 도덕이 없는 영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엉터리 교리에 미혹되어 교회가 이단으로 넘어 가 버린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몇 명은 이단과 싸우면서 바른 신앙을 굳게 지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마다 이단은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종말에 가까워질수록 이단은 더 판을 치고, 성도들을 더 미혹합니다. 우리는 바른 신앙과 복음 위에 내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데 교회는 부자 교회로 건물도 크고, 교인 수도 많은 교회로 하나님의 일을 많이 만들어 한 교회입니다. 선교도 많이 하고 교육도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한 교회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을 많이 하게 만들고, 사람도 많이 모아 주고 물질도 풍성하게 공급해서, 그 자체에 만족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했고,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책망을 들은 교회였습니다. 사데교회는 오늘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슷하게 닮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배운 빌라델비아 교회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 하였다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가난과 궁핍과 초라함으로 교회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으로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을 바라보며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도 아니고, 건물도 크고 화려한 교회가 아니지만, 내 믿음도 내어 놓고 자랑할 만한 믿음도 못되지만, 내 작은 믿음, 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굳게 지키고,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때에 있는 시험의 때를 면제받는 최고의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한마디로 최악의 상태에 있는 교회입니다. 주경학자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현대교회, 종말시대에 나타나는 교회의 상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교회도 부자고, 교회 건물도 화려해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다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형식적인 믿음만 있고,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교회 안에 안 계신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와는 정 반대입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는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2:9) 라고 했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고 하지만 가난한 것을 모른다"(3:17)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의 하나가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둔 교회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구원을 다 잃어버린 교회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그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무도 문을 열지를 않았습니다. 만일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은 자들이 단 몇 명만 있었더라도, 예수님은 분명 그들을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는 구원을 지킨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도시 라오디게아>

도시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아래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도시들 중에 가장 남쪽이면서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주전3세기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2세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안티오커스 2세는 루커스(Lycus) 계곡에 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도시를 자기 아내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아라고 불렀습니다.

 

루커스 계곡에는 세 개의 도시가 있었는데, 라오디게아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히에라볼리 라는 도시가 있고, 라오디게아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골로새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들 세 도시는 바울 서신인 골로새서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4:13), “그가(에바브라) 너희(골로새)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4:16) “이 편지를 너희(골로새)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바울은 제자인 에바브라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많이 수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편지를 보냈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로부터 오는 편지도 읽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제자 중에 에바브라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에바브라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세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가서 세우지는 않았지만, 바울에게 전도 받고, 복음을 배운 에바브라가 이 세 도시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바브라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많이 수고했다”(4:13)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세 도시들은 모두가 루커스 계곡에 세워진 자매 도시들로서 서로 인접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라오디게아 도시의 그 당시 특징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라오디게아는 물 사정이 매우 나빴습니다.

라오디게아의 북쪽에 있는 히에라볼리는 온천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히에라볼리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도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오면 식어서 미지근해졌습니다. 반면에 라오디게아의 동쪽의 골로새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솟아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물도 라오디게아까지 흘러 내려오다 보면 역시 미지근해졌습니다. 이 두 물이 라오디게아에 와서는 함께 만나 흐르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미지근한 물 속에는 다량의 석회석과 철분, 그리고 각종 폐수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미지근한 물은 그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몸에 해로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물은 맛과 냄새가 역겨웠습니다. 그래서 그 물을 마시면 그대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라오디게아의 물) 뜨겁지도 아니하고(히에라볼리의 물) 차지도 아니하니(골로새의 물)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어쩔 수 없이 라오디게아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돌로 큰 수도관을 만들었습니다. 지름이 1m나 되는 거대한 수도관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이 수도관을 통해서 오염되지 않은 물을 멀리서 끌어와야 했습니다.

 

둘째는, 라오디게아는 부자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의 여러 곳을 연결하는 허브 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오디게아는 상업이 발달하고, 특히 금융산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여러 은행들이 세워졌습니다. 주후 60년에 대지진으로 라오디게아가 파괴되었을 때, 이 도시는 로마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자력으로 도시를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재건했습니다. 그만큼 라오디게아의 금융 자산이 많았습니다. 그 만큼 라오디게아 도시는 부자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라오디게아는 양모 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라오디게아에는 검은 양들이 많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이들 검은 양들은 까만 색깔의 윤기가 나는 털을 제공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이것으로 오늘날의 밍크코트처럼 값비싼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패션을 주도할 만큼 아주 인기가 있는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옷을 입고 많이 사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18),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은 검은 양털로 만든 옷을 입고서 한껏 뽐내기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이 벌거벗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흰 옷, 의의 옷을 사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라오디게아에는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각종의 약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안약이 유명했습니다. 이 안약을 구하기 위해서 각처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3:18),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신령한 안약을 사서 자신들의 심령에 바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안이 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영안이 열려야, 그들은 자기들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늘 본문 이외에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관련된 몇 가지 짧은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설립과 당시의 형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의 설립 배경입니다.

성경의 기록에는 사도 바울이 루커스 계곡에 위치해 있는 이 세 도시, 즉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한 적은 없었습니다.

 

(2:1), “내가 너희(골로새)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사도 바울은 골로새나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얼굴을 대면해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루커스 계곡에 있는 세 교회들을 간접적으로 세웠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삼 년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별히 그가 두 해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열매는 대단했습니다. 각처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예수를 믿고, 평생을 예수님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다짐하고, 자기들의 고향에 돌아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중에 에바브라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에바브라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1:7-8),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 에베소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골로새 교회를 세우고, 그 인근을 돌면서 전도하여 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에도 각기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2. 라오디게아 교회의 당시 형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루커스 계곡에는 세 개의 도시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골로새’, ‘라오디게아’, 그리고 히에라볼리였습니다. 이들 세 도시는 서로 인접해 있어서 세 교회들의 사정과 형편도 서로 비슷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초대교회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준 영지주의 사상에 물든 이단들이 판을 쳤습니다. 이단들의 뿌리는 똑같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이단들은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 영지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심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으심도 부인하고, 부활도 부인하고, 재림도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에게는 영이 중요하다,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육신으로 죄짓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만 거룩하면 된다. 영이 중요하다. 육신으로는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 우상 앞에 절해도 되고,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고, 육신이 짓는 죄는 죄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 골로새 교회는 이 이단사상으로 인해서 심각할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단 사상의 주된 이슈는 기독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게 되면,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에게로 보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사랑하는 제자 에바브라가 찾아 왔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와 그 주위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서 그 당시 퍼져나가던 이단 사상의 잘못된 기독론을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 구세주요, 예수님이 모든 통치의 근원이요, 권세의 머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골로새서 26-10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복음에 깊이 뿌리를 박으라. 예수에게 붙어 있으라, 세상의 어떤 철학과 학문에도 미혹되어 넘어가지 마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시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히 담겨 있고, 예수님의 육체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모든 통치자요, 권세의 머리이시다. 그 분만이 우리의 왕이시며, 그 분만이 우리의 통치자이시다 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관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그에게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이단 사상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해 들어와서 골로새 교회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인근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기록하면서

골로새서 416절에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골로새서를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골로새 교회와 마찬가지로 라오디게아 교회도 똑같이 이단 사상이 침투해서 물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에만 보내 편지가 아니고 그 주위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에 회람형식으로 돌아가면서 읽혀진 서신서라고 봅니다.

 

에바브라에 의해 라오디게아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는 사도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으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복음 안에 든든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시기, 즉 한 30년이 지난 후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많이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단 사상을 물리치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단적 기독론에 완전히 물들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예수님을 교회의 문 밖으로 내쫓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이 없는 교회,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교회, 구원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은 전혀 받지를 못하고, 예수님의 책망만 잔뜩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동안 출석을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심령 속에 없으면 예수님 믿는 성도가 아닙니다. 내 심령 속에 예수가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성도요,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11:27). 또한 마르다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어아 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

마찬가지로 도마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 대구영은교회
글쓴이 : 주님의 머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