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7,8,6(일)[요한계시록29]순교자의 삶

☆ 주님의 머슴 2017. 8. 6. 18:36

주일설교(2017/8/6)-요한계시록(29)

순교자의 삶

1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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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까지 네 번째 인을 떼는데 까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계시록6장 전체는 2절의 흰 말 탄 자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흰 말 탄자가 가짜 그리스도라고 했지요? 그 뒤에 숨어서 이 세상을 통치하는 붉은 용,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2장에 가서 정체를 드러내는 붉은 용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이 세상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이야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초림해 오신 이후부터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징조로서, 그 연장선상에서 계속 있어 왔던 사건들이 말세에는 더 크게 확대되어 나타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6장 전체는 일곱째 인을 떼기 전의 이야기이고, 7년대환난으로 들어가기 전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7년대환난기간으로 들어서게 되어도 사람들이 알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 세상에 푹 빠져서 믿음 없고, 말씀 없이 사는 자들에게는 말세지말를 지나 7년대환난기간으로 들어와 있어도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나타나는 징조들이 과거에 늘 있어 왔던 사건들 쯤으로 취급해 버리고 그냥 막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장 전체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사람들이 잘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는 이 6장의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면, 두루마리 책이 열리기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6장에 나타나는 이런 징조들을 통해서 앞으로 마지막 때에 일곱 째 인이 떼어지고, ‘정말 진짜 어마어마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것을 예견하고 깨닫고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인들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일어났던 전쟁, 기근, 질병, 사망, 음부(지옥)가 뒤 따라 오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후에 지금도 그 악한 세력의 수중에서 놀아나고 있는 타락한 인간들의 죄의 결과이며 하나님은 그것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룩을 완성시키시는 도구로 쓰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다섯째 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 말세지말에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9-11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다.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다섯 번째 인부터는 장면이 바뀌면서 순교자들이 등장합니다. 계속해서 전쟁, 기근, 질병, 이런 것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순교자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순교자 하면 예수 믿다가 살해를 당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럼 하나님의 제단 앞에는 그렇게 순교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순교자들은 단순히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해를 당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고 죽일 것이다. 모든 민족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하십니다.

 

말세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즉 전체 교회시대를 말세라고 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6장 전체는 예수님 초림하신 이후부터 계속 있어 왔던 그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마지막 말세의 끝, 즉 말세지말에 나타나는 더 강력한 현상, 더 확대된 현상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이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는 사탄의 조정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환난에 넘겨지고, 죽임을 당하고,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모든 교회는 반드시 이 땅에서 환난과 궁핍과 핍박을 통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마치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이 힘이 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단 아래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이 기도는 단순히 복수를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상의 교회가 하나님 빨리 보복을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뭔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죽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과 위엄과 권세를 가지신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죄를 증오하시고 처벌하신다는 면에서 거룩하시고 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씀에 신실하시다는 면에서 참되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이 성도들의 기도는 그 거룩하시고 참되신 성부하나님의 정의의 통치가 완성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흰옷을 주시면서 아직 잠시 동안 쉬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야 할 자들이 다 죽어서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해 놓으신 그 수가 다 차면 완성이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죽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은 다 순교해야 된다. 다 죽어야 된다 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보면, 이 땅의 교회, 성도들은 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죽어야 다시 살고, 죽어야 휴거된다는 것입니다.

 

11장에 보면 전 삼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한 두 증인이 다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두 증인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70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보낸 것처럼, 전 세계에 보내어진 전도자들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을 대표하고, 성도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전3년 반 동안 예언하고 죽습니다. 그리고는 3일반 후에는 다시 살아나잖아요. 그리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뭘 말하느냐 하며, 성도는 말세를 보내면서 죽어야 산다 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살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휴거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교는 예수 믿는다고 목 베임을 당하고, 화형식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고, 이렇게 육신이 죽는 것만 순교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죽임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습니다. “제단 아래 있다라는 말은 제물로 드려진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 염소처럼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번제단에 올려져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입니다. 이게 순교자들입니다.

 

순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아 육신이 죽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이것이 순교입니다. 자기 자아를 죽이고, 예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우리가 언제 죽었느냐 하면,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장례식을 치루었다고 말씀합니다.

(6:3-8)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을 때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장사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옛 사람 때문에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어야만 죄에서 벗어나고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야만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심령부흥회하면서 전한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서 자기 뜻, 생각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골고다에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뜻을 반납하는 과정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 뜻을 반납하는 것이 더 큰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자기 뜻 대로, 자기 고집대로 할려고 하는 것이 선악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출발이요, 이것이 옛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죽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뜻대로, 자기 고집대로 살면서, 자기 뜻을 내려 놓지 않고 살고, 내가 죽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펄펄 살아 있으면, 천국 못 가는 것 아닙니까?

 

요한계시록은 죽어야만 휴거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 자아를 죽이는 것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는 진짜 십자가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는 것만이 십자가가 아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 뜻을 내려 놓고, 자기 뜻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것이 진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이것이 진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고,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긴 원죄 때문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긴 원죄가 바로 나의 뜻인 것입니다. “나의 자아”, 이것이 원인입니다. 이 원죄 때문에 계속 죄가 생기는 것이고, 죄가 계속 나에게 붙는 것입니다.

이 원죄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고, 예수 믿으면 원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것이고, 세례를 받으면 세례 받을 때, 예수님과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왜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핍박 속에 던져져서 마치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고통을 당하게 되는가? 거기에 대해서 제가 두 가지로 답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치 죽임을 당하는 자들처럼 순교자로 살게 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새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옛 사람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옛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이 옛 사람을 죽이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순교자적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러한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죽습니다. 첫 창조의 부산물들을 하나하나 죽여 갑니다. 그러면서 거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6:6-7에서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죄의 몸이 죽고, 옛 사람이 죽어야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요? 우리의 죄 된 옛 몸이 되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시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옛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가는 길에 한 방법으로 십자가를 두었습니다.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오는 환난, 핍박, 곤고, 역경, 시험, 어려움, 모든 힘들 일들이 오는 것, 심지어 내 옆에 힘들게 하는 한 사람을 붙여서 힘들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고, 거룩함으로 살게 하고, 자기 자아를 죽이고, 나를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여서, 나를 죽는 경험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마귀는 우리를 속일 것입니다. ‘그건 단지 고통일 뿐이지 너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도 하나님을 원망해라그러면서 우리를 속일 겁니다. 가짜들은 거기에 금방 넘어가겠지요?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 땅의 것들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은 고난이 닥치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고난을 통해서 옛 사람, 옛 몸, 옛 성품을 죽여 갑니다.

 

옛 사람을 죽여 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모든 사람이 어떤 모양으로든 고난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 좀 나오다가 그만 두겠지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순교자, 죽임을 당한 자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나를 죽이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힘들어요.

 

이런 면에서 9-11절의 다섯째 인은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박해해서 고난을 주고, 환난을 당하게 하는 가운데서도 성도는 도리어 자기의 옛 사람을 죽이고, 자기의 자아를 죽이고, 선악과를 반납하고 순교자의 삶을 살게 됨으로 내가 거룩성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죽은 순교자들이 휴거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6장은 예수님이 초림해 오신 이후부터 일어난 모든 사건들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쟁, 기근, 질병, 죽음 등등,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계속 있어 왔던 종말의 사건들의 연장선에서 앞으로 말세지말을 보내면서 더 강하고, 더 확대된 재앙에 가까운 징조들이 일어난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세지말을 보내면서 우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교자적인 삶은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자기 자아를 죽이고, 자기의 뜻, 의지를 죽이는 것입니다.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선악과를 반납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 죽은 자들에게만, 흰 두루마기(흰 옷)”입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흰 옷을 입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어디에 들어갑니다. 어린 양 혼인잔치입니다.

 

(19:7-9)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노래를 부르는 자들도 흰 옷 입은 자들이고(7:9), 어린 양 혼인 잔치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들도 흰 옷 입은 자들입니다. 198절에서 이 흰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 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뭐예요? 순교자적인 삶입니다. 이것이 죽는 삶입니다. 선악과를 먹어서 생긴 내 뜻을 반납하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라고 하는 삶, “(24)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하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 수가 차기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수가 차야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12절부터 나오는 여섯째 인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지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오려면, 기존에 있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왜요? 지금까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탄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1:1-2)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는 이 말씀과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는 이 말씀은 다 같은 말씀입니다.

 

인간이든, 자연만물이든 다 재 창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살아나게 되고, 내가 죽어야 생명수 강이 내 속에 흐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자적인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이 타락을 하고 부패해서 더럽고 추악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것들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재창조해 내시는 것을 우리가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도 역시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 선악과로 말미암아 생긴 내 더러운 자아가 씻겨 나가야 하는 것처럼,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지배하게 된 이 자연계인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도 재창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옛 우주도 죽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습을 좇는 옛 사람도 죽는 것입니다. 안 죽고 살아 있으면, 새 생명이 일어나지 않으며, 새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주일은 여섯째 인을 떼는 말씀을 가지고 새 창조의 역사를 일으켜야 하는 말씀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