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7,8,13(일)[요한계시록30]새 창조의 역사

☆ 주님의 머슴 2017. 8. 13. 15:32

주일설교(2017/8/13)-요한계시록(30)

새 창조의 역사

16: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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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부터 나오는 다섯째 인을 떼는 말씀과 오늘 읽은 여섯째 인을 떼는 말씀은 그 연장선상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섯 번째 인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모두가 순교자의 삶을 살자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내 자아를 죽이고, 내 뜻을 하나님께 반납하고, 또 죽고, 또 죽어야 된다. 그래야 휴거된다. 죽지 않으며 휴거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순교자(Martyr)는 증인이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래서 11장의 두 증인도 순교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를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 증인들입니다. 예수를 삶으로 나타내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삶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속에서 오는 고난인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이 일곱 인을 떼는 이야기는 재앙이 아니고, 재앙에 가까운 징조라고 보고, 이것을 어떤 관점으로 풀어가고 있느냐 하면, 앞으로 주님 오시기 직전에 더 큰 재앙들이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첫 창조의 더러운 것들을 소멸시키시고, 새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난과 천재지변 등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 일곱 인을 떼는 사건을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서 4장 말씀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우리 안에 공존하는 옛 사람, 우리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환난과 궁핍과 핍박에, 그리고 천재지변 같은 것에 그대로 노출시키신다는 관점으로 이 처음 여섯 인을 떼는 이야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종말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것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종말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있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그 반대로 사단과 마귀의 세력, , 그리고 그 더러운 것들, 사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완전히 멸하는 것이다맞지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옛 것들이 남아 있고, 사단은 그 옛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추하고, 어둡고, 더러운 것들을 우리의 성품이나 인격과 관계없이 깨 버리시기 위해서 우리가 십자가라고 표현하는 환난, 고난, 핍박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12절부터 나오는 여섯째 인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 다시 읽으십시다.

(6:12-14)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큰 지진이 일어나고,

2)해가 빛을 잃고 검어지고,

3)달은 반대로 온통 피 같이 빨개지고,

4)별은 수천 억개가 떨어지고,

5)하늘은 말려서 없어져 버리고,

6)산은 옮겨져 바다에 침몰하고,

7)섬은 대륙으로 올라와 산이 되고,

이런 현상은 우주가 처음 만들어 질 때처럼, 재창조를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도 다섯째 인을 떼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처럼, 옛 것은 없애고, 새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21장을 공부할 때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은 계21장과 연결시켜서 생각해야 합니다.

(21:1-2)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려면, 기존에 있던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는 없어져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 되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왜요? 지금까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탄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다. 점점 갈수록 더 강력하게 이런 자연재해가 일어나겠지요? 나팔재앙, 대접재앙을 거치면서 점점더 강해집니다. 사탄이 활동한 곳은 없애버리고,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려면 새롭게 재창조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우주와 우주의 삶인 역사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인 성도와 교회의 삶과 동일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이 타락을 하고 부패해서 더럽고 추악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것들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재창조해서 새 사람을 내시는 것을 우리가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도 역시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 선악과로 말미암아 생긴 내 더러운 자아가 씻겨 나가야 하는 것처럼,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지배하게 된 이 자연계인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도 재창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옛 우주도 죽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습을 좇는 옛 사람도 죽는 것입니다. 안 죽고 살아 있으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일어나지 않으며, 새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옛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다 지옥에서 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망이며 그게 최후의 심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여섯 번째 인을 통해서 바로 우리가 이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단순히 언젠가 마지막 날이 되면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이라는 것만 알고 넘어 가는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분명 이 사건들은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미래의 어느 날 인간들에게 더 크게 닥칠 종말의 사건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나팔 재앙에도, 대접 재앙에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는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 번째 인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자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은 제 자리에서 옮겨지고...“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문자 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아니다.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말들이 많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실재적으로 처음 에 창조된 하늘과 땅과 바다, , , 별들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핵 전쟁이다. 또는 3차세계대전이다. 미국의 멸망이다. 등등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씀들이 성경 여러 곳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2429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베드로후서 310-13에도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려면, 기존에 있던 하늘과 땅과 바다가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1:1)에서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의 마지막인 일곱 번째 대접을 쏟으실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16:17-18,20)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분명 마지막 종말의 때를 설명하는데, 여섯 째 인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으로 말합니다.

 

(20:10-11)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기존의 땅과 하늘은 없어져 버렸더라는 말씀입니다.

 

역시 최후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제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게 되는 장면입니다. 보좌와 거기 앉으신 분 앞에서 땅과 하늘이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올라가고 각 산과 섬이 자리를 옮기웠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렇게 여섯 번째 인의 환상은 마지막 종말에 일어날 재앙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게 미래에 있을 종말의 사건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면, 현재의 우리의 삶과도 깊은 관계 속에서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은 항상 그 말씀을 접하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과도 깊은 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여섯 번째 인의 환상이 우리와도 어떤 관계가 있는지 좀더 깊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3:10,13)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가 돋아도 어두우며, 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오늘 본문과 흡사하지요? 그런데 이사야서에서의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언은 바벨론의 심판과 종말에 관한 이중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데, 이런 것을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작은 종말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인류역사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심판을 말하면서, 동시에 종말과 연계시켜서 종말에 대한 이중성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작은 종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말씀하면서, 그것과 연계시켜서 세상 끝에 나타날 심판에 대해서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종말의 이중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앞으로 있을 마지막 때의 대심판의 징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초림해 오신 이후부터 쭉 있어왔던 사건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고, 미래에도 나타나게 될 온갖 고난과 핍박과 전쟁, 질병과, 재연재해 등등은 앞으로 더 크게 확대되어 나타날 작은 종말들의 사건들입니다. 작은 종말들은 앞으로 있을 큰 종말들의 징조인 것입니다. 이런 작은 종말들은 신구약을 통 떨어 구석 구석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4:1,4)를 보십시다.

“(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오늘 요한계시록의 본문과 거의 같은 단어, 비슷한 표현들을 쓰고 있지요? 그런데 이 대목도 1절의 말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열국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도 열국에 대한 심판과 종말의 사건, 역시 이중적 예언입니다.

 

(2:31-32)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오늘 계시록 본문과 거의 똑같지요? 이 요엘서의 말씀 역시 당시 하나님을 거역하는 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의 예언입니다. 이 구절 역시 그 열방의 나라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종말의 사건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이중적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이 모든 구절들은 역사 속에서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종말의 궁극적 심판을 동시에 한 사건인 것처럼 그 연장선상에서 경고하고 선포하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알아야 할 것은, 1)언젠가 이 우주는 최후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2)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역사와 우리의 인생이 그 최후의 종말로 향하여 가는 과정 속에 있으며, 3)작은 종말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나게 될 것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은 그 작은 종말들을 겪으면서 결국 궁극적인 실재적인 종말로 치닫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작은 종말을 겪으면서 1)하나님의 경고를 알아듣고, 2)하나님께로 돌이켜 구원을 얻으며, 3)이미 구원을 얻은 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거룩으로 연결시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종말에 일어날 일들, 악이 완전히 소멸되고 , 타락으로 인하여 첫 창조의 더러운 것들이 소멸되고,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게 되는 마지막 종말의 사건들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작은 종말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하고 삽니다. 다른 것은 다 사라져도 해와 달과 별과 땅과 바다만은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은연중에 우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하고 수많은 죽음들을 보면서도 그 죽음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삽니다. 마치 자기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삽니다. 자기는 영원히 건강할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영원히 부자일 것처럼 삽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흔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마지막 날 다 불 타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날에 첫 창조를 대표하는 해와 달이 검어지고 핏빛이 되고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하늘이 말려 올라가고 섬들이 옮겨져 버리는 것처럼, 너희들이 추구하고 있는 그 땅의 것들은 언젠가 다 불 타 버릴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의 삶의 작은 종말들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복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가 나타날 때 여러분은 , 난 진짜구나하고 감격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작은 종말이든, 마지막에 나타날 큰 종말이든, 하나님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삶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날 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올라가고 각 산과 섬이 자리를 옮겨지고...‘ 할 때, 제일 두려워하는 자들이 누구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615절부터 다시 읽어 보십시다.

(6:15-17)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15절에 있는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종들, 자유인들이 모두 산과 바위틈에 숨어서 벌벌 떱니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은 요한이 일곱이라는 완전수를 써서 전 세계의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관계없이 사는 전 인류는 모두 그 하나님의 진노 앞에 벌벌 떨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이 말씀이 있는데,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이사야 2장에 보면 나옵니다. 이사야 218-22을 찾아 읽겠습니다.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오늘 본문 계시록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지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다시 앞의 이사야 212절부터 17절까지 보십시오.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한 마디로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권력이 있으니까, 돈이 있으니까, 다 교만하고, 거만하게 된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귀인이고, 천한 자고, 노예고, 자유인이고, 종교인이고, 누구든지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다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마지막 때가 큰 진노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26, 28절에 보면, 이날이 되면, “이들은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그러나 반대로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진노 앞에 설 자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 절 17절에 보면, 누가 능히 서리요?” 라고 질문을 던지고, 7장으로 넘어가서 이 일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144,000”(1-8)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들(9-17)이 나와서 하나님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에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감히 설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설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 받은 자들이지요.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고후4:17-18)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환난들이 진짜 경한 것입니까? 가벼우세요? 아닙니다. 정말 미치도록 무겁습니다. 이 인생만큼 무거운 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왜 가볍다고 표현합니까? 그 미치도록 무거운 인생의 고난들이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그 나라의 삶과 비교하니까 그것은 가볍다고 표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천국의 삶은 엄청난 영광의 삶인 것을 사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삼층 천에 올라가서 천국을 보고 왔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까짓 거, 이런 환난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벼운 환난은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계시록을 통해서 그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 이 계시록을 경험하시는 것입니다. 이 미칠 것 같은 인생 속에서 세상은 그렇게 미친 짓들을 하며 살다가 영원히 불타게 되지만, 이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며 오히려 내가 그 일로 거룩하게 되어지고, 버려야 할 옛 것들을 버리게 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자들만이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참 평안을 누립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여러분의 거룩부터 챙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거룩을 완성해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작은 종말들을 우리의 삶 속에 허락하실 때, 그 작은 종말들이 여러분의 삶에 닥치는 이유를 명확히 분별해 내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기뻐하는 겁니다. 그게 실력입니다. 그게 거룩입니다. 그게 계시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이 땅에 쌓는 것은 모두 침몰해 버리고, 떠나가 버리고, 옮겨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땅도 바다도 해도 달도 별도 모두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인 여러분뿐입니다. 그러니까 불타버릴 것들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지 마시고 영원한 것들을 위해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