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7(일)[요한계시록35]다섯째 나팔 - 첫 번째 화
주일설교(2017/9/17)-요한계시록(35)
다섯째 나팔 - 첫 번째 화
계8: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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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섯 번째 나팔로 넘어갑니다. 황 충, 즉 메뚜기가 나오고 그들이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그 기간이 다섯 달입니다. 그리고 그 황 충들의 생김새가 자세하게 묘사가 되고 있지요? 이게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가? 오늘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네 번째 나팔 재앙까지를 배웠습니다. 그 네 가지 나팔재앙은 자연 재앙입니다. 자연계와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그로 상징되는 첫 창조를 지탱하고 있는 것과 그 첫 창조의 부산물들을 하나님께서 쳐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재앙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오히려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완성이 되어져 가면서 순교자적인 삶을 살 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복음서의 말씀보다도 더 확실하게 십자가의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8)”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이 말씀들을 선명하게 그대로 요구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핍박을 통하여 순교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자기 자아를 죽이고, 옛 습관, 옛 성품을 버리고, 내 의지와 내 뜻과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입어 가는 모습이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와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그로 상징되는 첫 창조를 지탱하고 있는 것과 그 첫 창조의 부산물들을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피조물들도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피조물들도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들도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는 다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성도도 순교자적인 삶을 통과해야 하고, 자연 만물도 재창조의 과정을 통과해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계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2)
하나님은 궁극에 가서는 다 타 버릴 첫 창조의 것들을 하나하나 재창조 하시는 수순을 밟고 계시고, 우리도 그 속에서 새 창조의 아름다운 것들로 지어져 가는 구속사의 역동성을 네 가지 나팔 재앙을 통해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paradox(역설)를 보여 주면서 8장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8장 13절을 함께 읽으십시다.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이 13절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의 서론 부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을 7중 재앙 3대 환난이라고도 부르는데, 7중 재앙 안에 3대 환난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섯 째, 여섯 째, 일곱 째 나팔이 3대 환난에 속합니다. 일곱 째 나팔은 일곱 대접 재앙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9장에 나오는 다섯 째, 여섯 째 나팔 재앙과 16장에 나오는 일곱 대접 재앙을 3대 환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3대 환난이라는 말은 오늘 13절에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니” 라고 세 개의 화를 말하고는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는 것을 보면, 세 천사가 부는 나팔이 3대 환난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네 번째 나팔 재앙이 끝나고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등장합니다.우리가 성경에서 ‘독수리’하면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출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신32:10-12)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독수리“는 심판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신28:49)
“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
이렇게 독수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하나님의 심판을 동시에 나타내는 동물입니다. 그 독수리가 “화, 화, 화가 있으리니“ 하고 ‘화’ 세 개를 선포하며 날아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이 세상에는 ‘화’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일곱 재앙이 주는 메시지가 전부 이 구절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성경 전체에도 용해되어 포함되어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출12:12-13)을 보면,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애굽의 열 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를 죽이는 재앙인데,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인방과 문설주에 피가 발려져 있는 집은 오늘 본문 4절의 말씀대로 하자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 죽음의 천사가 그냥 넘어 갑니다. 여기서 ‘넘어간다’ 는 말 히브리어 js'P; ‘파싸흐’는 영어로는 ‘hovering’ 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전에 설명해 드린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 하신다’ #j'r; ‘라하프‘와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품어서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넘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이라는 것은 타락한 첫 창조의 것들을 멸하시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재창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품어 안으시고 그들을 새롭게 재창조해 내시는 모습으로 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우주의 역사는 창조 때부터 종말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계속 심판을 당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이제 다섯 번째 나팔로 넘어갑니다.
1-3절까지를 읽으십시다.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다섯 번째 나팔을 부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습니다. 그가 무저갱을 엽니다. 그랬더니 그 구멍에서 연기가 나와서 해와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는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옵니다.
여기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아주 분분합니다. 카톨릭에서는 ‘마틴 루터’라고 해석을 합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카톨릭에서 보면 만고의 역적이지요? 그래서 그 별을 마틴 루터라고 해석을 합니다. 반면에 개신교측에서는 그 별은 ‘교황’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이 무저갱의 문을 열어서 타락한 교리, 뉴 에이지 같은 것들이 나온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서 감정을 갖고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서로 사이만 나빠지지 결코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지요?
그리고 또 어떤 분들은 그 떨어진 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계1:18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라고 말씀합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신 분은 예수님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 마지막을 자세히 보세요. 그 떨어진 별은 무저갱의 열쇠를 받습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고 합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가진 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로부터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무저갱의 열쇠를 그 떨어진 별에게 주신 분이 그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열쇠를 받은 자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별이 땅에 떨어지다’의 ‘떨어지다’는 헬라어 원어로 보면 pivptw ‘핍토’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악한 천사,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눅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이 구절을 좀더 원어에 맞게 번역을 하면 “하늘에서 별 같은 사탄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입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도 ‘핍토’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권세를 내어 준 것입니다. 욥기 1장에서 하나님이 욥을 치도록 사탄에게 권세를 내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떨어진 존재인 사단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여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 무저갱은 사단 마귀들이 갇혀있는 곳입니다. 그들을 풀어서 세상을 치게끔 허락하시는 것은 이제 심판 받을 자들에게 그 심판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이 다섯 달입니다.
다섯 달은 어디서 나온 거지요? 노아의 홍수 때 비가 며칠간 왔습니까? 150일. 5개월이죠?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세상은 심판의 비로 다 죽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방주에 의해 보호를 받고 살아나는 기간이지요? 이렇게 성경은 일관성이 있습니다.
2절을 보시면, 그 하늘에서 떨어진 악한 천사가 무저갱의 문을 여니까 연기가 납니다. 성경에서 연기는 어디에 자주 등장합니까?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할 때 연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무저갱을 열었는데 그냥 연기가 아니라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옵니다. 뭡니까? 속임수죠?
사단은 하나님의 흉내를 내어서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을 미혹해서 심판의 자리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 연기 같은 연기가 해와 하늘을 어둡게 만듭니다.
진짜 하나님의 임재, 진짜 하나님의 거룩의 연기는 구름입니다. 구름 기둥, 불 기둥,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연기 같은 연기’, 가짜 연기는 오히려 해와 하늘을 어둡게 만들어 버리는 연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빛으로 임합니다. 밝게 합니다. 어둡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가짜 연기로 어둡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 연기 같은 연기에 속아서 결국 사망으로 심판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에는 전차부대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K9 자주포라는 게 있습니다.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고, 명중률도 100%입니다. 북한도 전차가 있습니다. 명중률이 거의 100%입니다. 그래서 먼저 보고 먼저 쏘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래서 화염탄이라는 게 있습니다. 전차가 포를 쏘기 전에 화염탄을 쏘아서 가짜 연기를 만듭니다. 적이 자기 위치를 못 보게 합니다. 연기가 100미터 정도 자욱하면 포를 쏘고는 다른 데로 이동해 버립니다. 적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오늘 3절에 보면, 그 연기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황충입니다. 메뚜기를 황충이라고 합니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어두워져 있는 상태에서 황충이 나옵니다.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나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이 황충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습니다. 누구한테요? “땅에 떨어진 별”, 즉 사탄에게 받습니다.
권세를 받아서 무엇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으십시다.
“(4)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메뚜기의 특징이 뭡니까? 땅의 풀이나 곡식, 채소, 각종의 나무의 푸른 잎, 줄기, 푸른 식물이란 식물은 다 갉아 먹어 버립니다.
그런데 4절에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인침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고 하는 것을 보면, 메뚜기가 아닌 거죠? 황충은 자기 신분을 속이고 나타난 사탄의 무기입니다.
인 맞지 않은 자들을 괴롭게 합니다. 죽이지는 않고 괴롭게만 합니다. 그러면 인 맞은 성도들에게는 피해가 없겠습니까? 간접적인 피해는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10가지 재앙에서 주 타깃은 애굽 사람들이지만, 고센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간접적인 피해가 있었는 것과 같습니다.
5절에 보면, 그 기간을 다섯 달이라고 했습니다. 5개월입니다. 왜 5개월입니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도 150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입니다. 사탄은 무한정 자기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2절에 보면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다섯 달인 것입니다.
황충, 즉 메뚜기들의 정체가 뭡니까? 7절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부터 10절까지 보십시다.
(7-10)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전쟁입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전쟁을 위한 무기입니다. 말은 아니지만, 말처럼 사람이 그 위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6장에서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나는 현상을 배웠잖아요? 전쟁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다섯째 나팔 재앙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다. 전쟁의 양상이 더 확대되고 강해져서 큰 전쟁으로 변한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황충은 사람이 안에 탈 수 있는 로봇이라고 합니다. 전갈 같은 꼬리가 있고, 꼬리 끝에는 화살 같은 침이 달려 있습니다. 틀림없이 사람이 안에서 조종하는 로봇이라고 합니다. 요즘 영화에도 보면 그런 영화가 나오잖아요?
11절에 보면, 그 뒤에 우두머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11)“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그 우두머리가 “무저갱의 사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바돈(!Abaddwvn 파괴자), 헬라어로는 아볼루온(!Apolluvwn ,아폴뤼온, 파괴자)입니다.
황충들의 전쟁 뒤에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파괴자, 무저갱의 사자, 사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우두머리는 12장에 가면 정체를 드러냅니다. 붉은 용입니다. 12장 9절에 보면, “옛 뱀(아담과 하와를 속인 그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3절에 보면 황충의 무기가 뭡니까?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입니다. 전갈의 권세가 아니고,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입니다.
또 10절을 보십시오.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황충의 무기는 꼬리입니다. 전갈 같이 꼬리의 독침으로 사람들을 쏘아서 괴롭힙니다. 그런데 누구를 쏩니까? 4절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쏩니다.
그러니까 황 충에 의해서 전갈이 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믿지 않는 자들을 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삶의 원리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 뭡니까?
‘내 배’를 위해 사는 거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죄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배를 살찌우는 것’입니다. 그게 세상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저마다 내 배를 위해 살게 되면서 생기는 것이 뭡니까? = 물질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낳은 열매들이 뭡니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전쟁, 경쟁, 분 냄 이런 것들입니다. 이것이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 즉 전갈의 독침에 쏘여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딤전 6장 9-10에서 이렇게 똑같은 경고를 합니다.
(딤전6:9-10)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려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존재의 안전과 행복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죄인들을 총칭해서 ”부 하려 하는 자들“ 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사탄이 보내는 전갈의 독침을 받아서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게 마지막 때에 이 땅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게 다섯 번째 나팔입니다.
엉터리 철학과 이념, 교육, 엉터리 교리 이런 것들이 인간을 하나님 위로 올려놓습니다.
인본주의, 뉴 에이지, 기복주의, 물질주의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할 인간들을 오히려 신으로 추켜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나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모두 나를 존경해 줘야 하고, 모두가 나를 부러워해 줘야 하는 삶의 목표를 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이 결국은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사단이 무저갱의 문을 열어서 가짜 연기를 뿌려서 세상을 혼미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마귀의 정체를 숨깁니다. 마귀들을 땅으로 쏟아 부어서 첨담 무기로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하나님의 흉내를 내면서 믿지 않는 자들을 미혹하여 공격하고, 거짓 가르침으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빼앗아서 엉뚱한 것을 추구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올무에 빠지고 시험에 빠지고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부자 되고 병도 낫게 된다는 가르침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하셨던 복들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지키면 주시겠다.’고 하셨던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앞의 말은 쏙 빼버립니다. 정말 예수님을 잘 믿어야 된다. 정말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살고, 정말 신앙생활 똑바로 해야 된다는 것을 쏙 빼 버립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를 쏙 빼버립니다. 뒤의 것만 받겠다고 하는 것이 기복신앙 아닙니까?
이 세상의 것들만을 좇는 사람들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얼마나 괴롭습니까? 많이 가져도 괴롭고 없어도 괴롭고 참 만족이 없어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는 절대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면,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 맞다면 우리는 그 전갈에 쏘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전갈을 밟는 자들이어야 하고, 오늘 본문 다섯째 천사가 부는 나팔 재앙이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되고, 우리를 넘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 그런 것으로 해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그 메뚜기의 꼬리에 달린 전갈의 독에 중독되지 마시고 하늘 소망을 바라시며 늘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으시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