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6,[요한계시록59]음녀의 비밀
주일설교(2018/5/6)-요한계시록(59)
음녀의 비밀
계17:1-5
4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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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6장까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과 마귀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추종세력들을 어떻게 심판하는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를 경영하시고 계획하신 섭리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은 상황이 바뀝니다. 다른 배경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카메라를 여러 곳에 설치해 놓고 여러 배경과 상황을 바꾸어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 배경과 상황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16장에서 이미 일곱 대접을 다 쏟았습니다. 그리고 사탄(즉 붉은 용)의 몸통인 적그리스도의 도성인 “큰 성 바벨론”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라고 말씀하는 것은 17장의 말씀은 일곱 대접 재앙을 쏟기 전에 있는 이야기이고, 18장은 앞의 16장 17절에서 21절에 있는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을 확대해서 상세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더 앞으로 당겨서 자세히 보면, 17장은 앞의 12-13장의 말씀을 더 자세히 세밀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앞의 말씀을 뒤에 가서는 더 자세히 확대시켜 점진적이고, 더 자세히 확대된 것으로 반복해서 말씀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17장은 12장, 13장을, 18장은 일곱 대접의 내용을 다시 자세하게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으십시다.
(계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이 17장 이후의 일을 누가 보여줍니까?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보여 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일들을 설명해 주는 것도 그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17장부터 18장까지의 내용은 앞의 부분을 다른 모양으로 더 깊이 설명하면서 동시에 음녀와 짐승은 무엇이며,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음녀와 짐승이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6장의 일곱 대접 재앙은 카메라로 숲 전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면, 17장, 18장은 카메라가 숲 속에, 나무 사이에, 계곡 사이에 짐승들, 곤충들, 식물들, 나무들, 작은 나무, 큰 나무, 그 살아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촬영해서 보여 주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지금부터 전개 될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뭐지요?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입니다.
여기서 음녀는 누구를 말할까요? 17장 18절에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계17: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하지요. 요한계시록에서 큰 성은 바벨론입니다. 16장 19절에서도 “큰 성 바벨론”이라고 했고, 오늘 읽은 본문 5절에서도 “큰 바벨론” 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바벨론은 나라를 확장해서 중근동지역과 아시아까지 확장해서 다스렸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 라고 합니다. “많은 물”은 17장 15절에서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바벨론은 그 당시 번성했던 지역을 다 점령해서 다스렸습니다. 결국 이것이 페르시아, 헬라를 지나 로마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큰 음녀”는 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때 전 세계를 다스렸던 로마까지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거의 역사적 로마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전 세계를 지배할 로마, 즉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래에 있을 로마는 결국 세속도시요, 적그리스도의 총본산, 적그리스도가 있는 전 세계의 수도,행전 중심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과 사치 속에서 신앙을 배격하고 정신적, 영적으로 타락시켜 도덕적 퇴폐 가운데 향락으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을 “음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왜 음녀를 바벨론이라고 부르느냐 하면, 바벨론은 남 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 파괴하고, 포로로 잡아가 노예로 부려 먹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음녀가 온 세상을 다 타락시키고, 성도들도 변질시키고, 다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게 하는 적그리스도의 추종세력을 만드는 세력을 “음녀”, 또는 “큰 바벨론”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켜 ‘창녀, 음녀, 간음 한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좇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간음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음행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우상 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음행을 조장하는 음녀는, 하나님 말고 다른 힘 즉,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마귀의 세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바벨론이었지요? 그래서 바벨론을 음녀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세상의 힘을 약속하고, 세상의 힘과 부귀영화를 좋아하게 하고, 사모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게 해야 하는 성도들을 간음을 하게 만드는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이게 바벨론이고, 음녀인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요일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보세요, 우리 성도들은 그 음녀의 유혹을 뿌리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 그 화려한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2절을 보시면 그 음녀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지 땅의 임금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 즉, 하늘에 속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음행을 행하던 자들이라고 나오지요.
2절을 읽으십시다.
(계17: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1절에서 “큰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했는데, 많은 물은 “온 세상의 나라, 백성, 방언” 이라고 했지요? “물 위에 앉아 있다”는 말은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온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있을 게 아니에요. 그래서 “땅의 임금들”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대통령, 권력자들을 말합니다. 즉 나라의 정치인들이지요. 그들도 다 음녀의 영향을 받고, 그 권세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사는 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들”의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아닙니다. 다 사탄과 권력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 라는 말은 음녀가 주는 세상 권력과 세상 즐거움, 쾌락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음녀의 개념의 출발점은 구약 성경의 이세벨 왕비입니다. 그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였습니다. 그 이세벨 왕비는 아합 왕에게 시집을 오면서 자신이 섬기던 우상을 함께 들여와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을 섬기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그녀를 가리켜 ‘이스라엘로 행음하게 한 여자’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그 이세벨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미혹했는지 열왕기하 9장 22절에 보시면,
(왕하9: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음행과 술수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여자였습니다. 여기서 ‘술수’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케쉐프’이고, 헬라어 로는 ‘파르마케이아, farmakeiva(마술, 마법)’입니다. 이 ‘파르마케이아’ 는 요한계시록에서는 “복술”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똑같은 뜻입니다.
(계18:21,23)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여기 보시면 큰 성 바벨론이 만국을 ‘파르마케이아’, “복술,마술로 만국을 미혹했다” 고 하지요?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바벨론과 음녀는 같은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바벨론은, 즉 음녀는 이렇게 세상을 음행과 복술, 마술, 기적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왜 하나님 이외의 이 세상의 힘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음행’과 ‘마술, 복술’이 함께 등장할까요? 여러분 마귀가 교회를 공격해서 음행을 조장하는 무서운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기적, 마술, 복술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왜 사람들이 기적을 찾습니까? 그 기적이 나에게 적용이 되어서 나의 삶에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이 기적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마술, 복술이 곁들여지면 점쟁이식 기적을 바라는 것이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기적이 있지요, 그러나 마술, 술사들의 기적은 하나님이 몹시 싫어합니다. 그래서 점쟁이, 술사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점쟁이, 술사는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기적의 추구’는 ‘기복’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기적인 기복, 하나님 없는 기복은 세상에서 정욕으로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목적에서 오는 기복이기 때문에, 즉 사탄이 종 노릇하고,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탄이 주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음행’과 ‘복술’이 음녀와 함께 등장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둘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동일한 욕구에서 출발된 것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복, 복, 기복으로 빠지고, 기적을 통해서 계속 나에게 복, 기적만 일어나기를 바라면, 결국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것이 되고, 기독교의 핵심 복음은 없어져 버리고, 평안만 추구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추구하는 십자가가 없는 변질된 신앙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계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기서 “광야”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성도와 교회가 고난당하는 이 세상,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판치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성령이 사도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갑니다. 거기에 뭐가 있느냐 하면, 여자, 즉 큰 음녀가 타고 있는 “붉은 빛 짐승”이 있습니다.
그 음녀가 광야에 있다는 것, 그것도 붉은 짐승을 타고 광야에 있다는 것은 그 마귀의 세력, 음녀는 바로 지금 이 땅에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정신을 바짝 차려라. 우리 속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시면 그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데, 그 짐승은 붉은 빛 짐승입니다. 그런데 그 짐승은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머리와 열 뿔” 이 있는 짐승입니다. 이 짐승은 우리가 13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짐승입니다.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똑같지요? 그리고 이 짐승은 우리가 공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짐승은 12장에 등장하는 붉은 용과도 일치합니다.
(계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이 용은 사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짐승도 역시 사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적그리스도요, 사탄의 세력이지요. 그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 역시 그 짐승과 같은 운명 공동체이며 본질적으로는 같은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에서는 본문에서 “붉은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는 거짓 선지자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붉은 용인 사탄, 붉은 짐승인 적그리스도, 붉은 짐승 위에 탄 음녀인 거짓 선지자, 이 셋이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을 지배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할 사탄의 삼총사,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머리와 열 뿔”에 대해서는 7절부터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4절을 읽으십시다.
(계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여기서 짐승도 붉은 색이고 큰 용도 붉은 색입니다. 그리고 음녀도 붉은 빛과 자주 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있습니다. 이 붉은 색은 성경에서 ‘죄의 색’을 말하고, 그리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는 것은 ‘사치와 영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음녀는 붉은 색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를 타고 사상과 권력을 공유하고, 이 세상에서 사치하면서 최고의 호화스러운 사치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 잔”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금 잔 안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고 합니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금 잔에 술을 담아서 자기도 마시지만, 충성하는 부하들에게 술을 하사하기도 합니다. 권력자가 자기 금 술잔에 술을 부어 부하하게 하사하면 감개무량, 황송해서 더 충성을 맹세하지요.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총리가 되어 양식을 사러 온 형들에게 각자의 곡식 자루에 곡식을 넣어 돈도 도로 넣고,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있고 싶어서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는 요셉이 평소에 사용하는 금 잔을 넣어서 돌려보내고, 주막에서 쉬고 있을 때, 부하들을 보내어 ‘우리 주인의 금 잔을 가져 간 사람이 누구냐?’ 하면서 결국 베냐민을 다시 잡아 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그 당시 권력자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금 잔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금 잔을 말하는 것을 보면, 이 금 잔을 사용하는 이 음녀도 붉은 짐승을 타고 막강한 권력을 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도 붉은 용이었고 짐승도 붉은 빛이고, 음녀도 붉은 옷을 입고, 금 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세력은 항상 힘과 부와 사치로 사람들의 정신을 미혹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계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이 음녀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비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밀”은 ‘μυστήριον(뮈스테리온)’은 말 그대로 ‘mystery’입니다. 미스테리는 ‘신비’, ‘비밀’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안되는 숨기는 것을 말합니다. 국민들이 몰라야 통치하기가 쉽고, 잘 따라오고, 추종세력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이 알면 안되는게 많지요. 국민들을 속이고 숨깁니다.
그런데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하는 것을 보면, 계13장의 666(짐승의 표, 짐승의 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큰 음녀”는 666를 다 손과 이마에 받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세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를 돕는 자들이요, 적그리스도의 동상을 많이 만들어 거기에 절하게 하고, 섬기게 하고, 자기들은 붉은 짐승인 적그리스도 위에 올라타고 권세를 부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해서 경제활동의 제약을 주어 결국 짐승을 다 따르게 하도록 속이는 것이다.
음녀는 금 잔 속에 “가증한 것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 을 숨기고 그 잔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세상을 취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다 그를 따르게 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해서 결국 다 타락시키는 무서운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666의 표를 받은 자들이고, 그 미혹에 꿋꿋이 맞서서 이겨내는 사람들을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인 성도들인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4대 비밀이 나옵니다. “일곱 별의 비밀”(1:20), “일곱 촛대의 비밀”(1:20), “음녀의 비밀”(17:5), “짐승의 비밀”(17:7)입니다.
“일곱 별의 비밀”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의 비밀”은 일곱 교회라고 했습니다. 일곱 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완전한 교회,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말한다고 했지요.
오늘 본문 5절에서 “음녀의 비밀”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비밀”은 7절부터 나옵니다. 다음주일에 설명하겠습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의 4대 비밀을 모르면, 요한계시록도 잘 모르게 되고, 기독교의 신앙을 모르게 되고, 신앙의 변질이 오게 됩니다.
본문에서 음녀도 “큰 음녀”와 “땅의 음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1절에 나오는 “큰 음녀”는 “땅의 음녀들의 어미”입니다. “큰 음녀”가 “땅의 음녀들”의 수장, 곧 머리입니다.
그래서 “큰 바벨론” 이라고 부르는 이 “큰 음녀”는 거짓 선지자, 즉 적그리스도, 붉은 짐승을 돕는 혼합된 종교단체, 종교의 연합체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세상 임금인 정치와 결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고, 종교가 정치를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는 정치에 빨려 들어가 정치에 이용당해도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부터 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8:34)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았고,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십자가 없는 신앙을 요구하면 담대히 뿌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거짓 선지자들을 앞세워서 666으로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이 음녀는 붉은 짐승을 타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을 달고 성도들의 믿음을 변질시키기 위해서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금 잔에 우상숭배와 음행의 더러운 것들을 가득 채워서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걸려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를 감동시킨 어느 선배 목사님의 기도문을 드림으로 오늘 설교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마땅히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실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당신에게 힘을 구했으나, 주님은 내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당신에게 건강을 청했으나, 주님은 보다 큰 당신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 저에게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당신에게 부귀를 구했으나, 주님은 저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당신께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제가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님, 저는 홀로 있기가 외로워서 당신의 우정을 청했으나, 당신은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했으나, 주님은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주님께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요한 계시록을 사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위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