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7[요한계시록62]한 순간에 무너질 경제
주일설교(2018/6/17)-요한계시록(62)
한 순간에 무너질 경제
계18:4-13
4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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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에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큰 성 바벨론의 경제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경제는 마지막 때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사탄의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계시록 13장 16절 이하를 보면,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인 거짓선지자에 의해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요, 그 이름의 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수는 666”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받아야 매매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표를 받아야 물건을 싸고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666이라는 짐승의 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몸 안에 넣는 베리칩이라는 말도 있고, 오늘날 상표 옆에 붙은 바코드 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에 심어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 신경, 육체를 통제하는 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옛날 종들에게 주인의 재산이라는 표시를 했던 것처럼, 이 666인 짐승의 표는 사탄의 것,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탄과 적그리스도인 짐승에게 매인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짐승표인 666은 돈에 사로잡혀 살게 하는 도구입니다. 돈의 위력, 돈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돈의 힘으로 살게 합니다. 돈으로 통치하는 것입니다. 경제라는 이 원리 하나로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모든 것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경제 논리에 사로잡혀 적그리스도가 주는 포도주에 취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돈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게 되고, 이 돈 때문에 믿음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돈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고, 이 돈 때문에 짐승을 따르고, 섬기고, 그의 정책을 지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적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믿음을 지키고,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가 심히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배교해 버리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거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순교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을 보시면,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믿는 성도는 다 순교했다라는 말이지요? “발견되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사람들 모르게 위장하여 속이면서 자기들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 성도들, 그 외에 그들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은 사람들 몰래 다 죽였다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쳤지만, 안으로는 자기들의 체제를 반대하거나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진 자들은 다 죽였다는 말입니다. 이게 짐승이 다스린 큰 성 바벨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바벨론이 멸망하고 난 후에 보니 그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사실들, 선지자들과 성도들, 많은 죽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제일 먼저 성도들을 휴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대접재앙을 내리고, 큰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경제를 무너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17장, 18장의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분명히 말씀드렸지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 도시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 종교적인 성격의 도시입니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성격의 도시입니다.
17장과 18장은 똑같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다고 했지요? 17장은 정치적, 종교적인 세력으로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고, 18장은 경제적 세력으로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장에는 당시에 쓰이던 경제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그 힘과 권세와 경제로 대표되는 화려한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으로 참혹하게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모이는 곳”은 'fulakh; 퓔라케'는 '감옥, 형무소'라는 뜻입니다. (계18:2)
그리고 분명히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은 애굽도 바벨론이고, 앗수르도 바벨론이고, 바벨론도 바벨론이고, 페르시아도 바벨론이고, 로마도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불러내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고 외치십니다. 계속 시대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죄에 참여하지 말고, 함께 멸망해 가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하는 일이고, 교회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어 이 요한계시록을 처음 읽은 독자들은 로마시대의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이 요한계시록을 처음 읽었던 로마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 로마가 바벨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요한계시록을 읽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세상 나라와 이 세상이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활동하는 시대는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온 세상이 바벨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대 시대 마다 큰 힘의 논리로 다스려지고, 돈이 최고야 라고 하면서 경제적인 논리로 다스려지는 시대의 세상이 다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적인 논리에 속지 말고, 힘의 논리에 속지 말고, 세상 쾌락의 논리에 속지 말고, 무신론적이고 우상적인 세상의 문화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힘을 추구하고 경제적인 힘으로 다스려지는 이 세상 세력들은 귀신이 모이는 장소가 되고, 더러운 영이 모이는 정소가 되고,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는, 즉 감옥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바벨론은 겉으로는 화려한 붉은 옷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그렇게 처참하고 황량한 사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세상의 달콤함에 푹 젖어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미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와라' 'come out of her my people'이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4절). “거기서 나오라”는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헬라어의 부정과거 명령형은 단호하고 시급하게 순종해야 하는 명령을 하달할 때 쓰는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미적미적 미루거나 오래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듣는 즉시 나와야 하는 시급한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거기가 어디입니까? “갈대아 우르”이지요?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의 출발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굳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했을까요? 4,000년 전 이미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갈대아 우르에서는 구원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대아가 다른 말로 '바벨론'이지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갈대아, 바벨론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의 삶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의 조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생활의 시작은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내 마음과 내 육체와 내 삶은 바벨론에 그대로 머물러 미적미적 거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일행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 땅에서 그냥 머물러 엉거주춤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은 갈대아 우르, 즉 바벨론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엉거주춤 상태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믿음도 아니고, 신앙생활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회색지대인 엉거주춤 상태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나는 교회의 집사를 땄으니,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구원 받았고, 천국은 확실히 내 것이다’ 이렇게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죄입니다. ‘목사의 자녀, 전도사의 자녀, 장로의 자녀, 그리고 장로, 권사, 집사’가 되어 신앙생활을 엉거주춤, 회색지대의 신앙생활, 바벨론에서 나오지 않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엉거주춤한 상태 신앙생활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헷갈려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아!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나하고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죄입니다.
(마23: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하나님은 끝까지 이 세상의 삶의 원리를 고수하는 자들을 가리켜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사2:6).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으리라고 천명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거기서 나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양들이 오로지 자기 목자의 음성만을 알아듣고 그 음성만을 좇아가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회개'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 나옵니다. 이게 성도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계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여기서 얼마나 죄가 크면 “하늘에 사무쳤다” 라고 합니까? “하늘에 사무쳤다” 는 말은 “하늘까지 쌓았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죄를 지으면,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쌓입니까?
(계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얼마나 쌓였으면, “갑절”이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쓰면서 갚아 주겠다고 합니까? 그 이유가 7절부터 나옵니다.
7절을 한번 보십시다.
(계18: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첫 번째 죄목이 뭡니까? “자기를 영화롭게 한 것” 입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뭡니까?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소 요리 문답 1번 질문이 뭡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입니다. 답이 뭐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성 바벨론의 미혹에 빠진 멸망할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영광, 자기의 자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들의 죄목이 뭡니까? ‘사치’입니다. 이 ‘사치’라는 단어는 ‘쾌락을 즐기다’라는 뜻입니다. 앞의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 “사치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사치는 자기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과 13절을 보시면 그들이 얼마나 사치를 부리며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살았는지 조목조목 그 내용이 나옵니다.
(계18:12-13)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의 세력들이 거래하던 물품의 목록입니다. 이 목록들은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가 보석류입니다. ‘금, 은(당시 로마는 고급 소파나 욕탕, 식기를 만들기 위해 스페인에서 수입 해다 썼다) 보석(금, 은 이외의 벽옥, 황옥, 홍보석, 녹 보석 등 로마는 인도와 홍해 페르시아 만에서 보석을 수입 해다가 치장했다), 진주(당시 고대시대에는 진주가 보석의 여왕이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으로 취급했다.)
두 번째가 세마포, 자주옷감, 비단, 붉은 옷감 같은 고급 옷감들입니다. (이런 옷감들은 왕족들과 귀족들이 그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 이집트,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 해다가 썼다)
세 번째가 고급 가구와 그릇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각종 향목” 이라는 것이 나오지요? 향 목은 북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시트러스 나무를 말합니다. (당시 로마는 그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었는데 당시 로마의 여자들이 진주를 그들의 부와 사치의 표징으로 사용했다면 남자들은 이 비싼 향 목으로 테이블을 제작해서 집에 들여놓는 것으로 부와 사치의 표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상아를 이용해서 각종 그릇을 만들고 당시 상아는 그 테이블의 다리나 우상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릇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당시에 로마에서 얼마나 그 상아를 많이 썼으면 아프리카의 코끼리의 상아가 모자라서 인도에서까지 수입 해다가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리’입니다. 당시에 구리는 값비싼 예술품이나 집의 장식품을 만들 때 쓰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리석입니다. 요즘도 대리석은 부와 사치의 상징이지요. “상아 그릇, 값진 나무 그릇, 구리, 철, 대리석으로 만든 그릇” 사치의 꼭지점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가 고급 향료들입니다. 계피, 향료, 향과 향유와 유향이 나오지요? 이것들은 몸에 뿌리는 향수들이기도 하지만 잔치 때 포도주에 섞어 마시는 향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고급 음식들이지요.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가 나옵니다. 고운 밀가루는 당시 로마의 부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입 해다가 먹은 음식입니다.
여섯 번째가 가축과 농기구입니다. 소, 양, 말, 수레가 나옵니다. 수레는 부자들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입니다. 여기서 “종들” ‘swmavtwn 소마톤’는 ‘몸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몸둥아리를 싸고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영혼들”을 싸고 팔았습니다. 사람의 영혼들을 어떻게 싸고 팔았을까? “종들과 사람들의 영혼”은 인권은 유린되어 버린 철저히 복종만 있는,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정책과 다스림에 순응하고, 그 제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만 부가 있고, 그 외는 다 종이 되어 버리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사람들을 금과 보석과 진주와 붉은 옷을 가지고 사치로 미혹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결국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팔아서 사치를 조장하는 사악한 악의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누가, 어떤 나라가, 어떤 제도가 진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합니까? 오직 자기만을 위한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이웃과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것’을 사명으로 갖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누구인지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마귀의 세력은 겉으로는 사람을 위하는 척, 사람들에게 참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줄 것처럼 속이지만 결국 그들에게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벨론이 거래하는 사치의 목록에 ‘사람의 영혼들’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만큼은 나의 인생에 주어진 나의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단은 그러한 형제자매들조차도 나의 유익과 나의 배를 위해, 오늘 본문의 말씀 대로하자면 사치를 위해 미워하게 만들고 갈라서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단의 계략에 절대 속지 마시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물질과 이익과 편리를 조금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위해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절대 멸망해 버릴 사치의 세력에게 속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바벨론이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교만을 떱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바벨론의 세력에게 애통과 슬픔으로 갚으시겠다고 천명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기 힘을, 자기 주먹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러한 ‘교만’입니다. 그들은 ‘안상무신, 안하무인’입니다. 항상 ‘나’ 가 세상의 중심에 있지요.
8절을 보시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루 동안에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호탕하게 교만을 떨 때 하나님께서 돌연히, 갑작스럽게 그들을 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계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여기서 쓰인 ‘하루 동안’ ‘미아 헤메라’는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0절, 17절, 19절에 보시면 “한 시간에” 라는 똑 같은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도다”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여기서 쓰인 “한 시간에” 나 “하루 동안” 이나 다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도적처럼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재앙으로 그들을 치신다고 하시나요? “사망과 애통과 흉년”으로 치시겠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그들은 풍요와 쾌락과 이기심으로 자신들을 즐겁게 하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흉년과 사망과 애통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거기에 넘어간 자들도 역시 그들과 함께 불살라지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동안” - ‘미아 헤메라’ ‘한 순간’에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지요?
여러분, 이 세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미아 헤메라’- “하루 동안”입니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던 날에 한 순간에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그 날, 바벨론의 멸망의 날은 ‘미아 헤메라’ “한 순간” 에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치의 세력에게 놀아나지 마시고 잘 참아내십시오. 잘 견디십시오. 끝에 가서는 결국 여러분이 진짜 승리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