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요한계시록64]예수님의 재림과 혼인잔치
주일설교(2018/7/1)-요한계시록(64)
예수님의 재림과 혼인잔치
계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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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19장을 설교하겠습니다. 19장도 “이 일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이 일 후에” 라는 Meta; tau'ta ‘메타 타우타’는 장면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이제 바벨론의 멸망을 보여주는 환상에서 다른 환상으로 전환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메타 타우타’는 시간 적인 순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시간적인 순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 전체의 흐름을 보면,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시대를 지나고, 적그리스도의 통치기간이 지나면서 두 증인의 시대가 오고, 성도들이 휴거하는 때가 오고, 그리고는 예수님이 재림하고, 사탄의 세력인 적그리스도가 멸망하는 때가 오고, 그리고는 천년왕국의 시대가 오고, 마지막에는 새예루살렘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은 시간상 순서적으로 나타날 것을 계시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내용을 보면, 앞에 일어난 일들이 뒤에 또 더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14장도 바벨론이 무너지고, 낫을 휘둘러 추수하는 이야기, 포도송이를 거두어 큰 포도주 틀에 넣어 밟는 이야기를 통해서 마지막 때의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는 이야기입니다. 16장도 구체적으로 자세히 일곱 대접을 쏟아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는 이야기입니다. 17장, 18장도 더 자세히 가까이 세밀하게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며 돕던 붉은 짐승과 음녀와 그 세력들을 멸망시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가 멸망해 가는 모습을 배경을 바꾸어 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19장 전체도 똑 같은 이야기입니다. 19장에서 다른 점은 “어린양 혼인 잔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혼인잔치” 이야기가 앞에 나오고, 그리고 11절부터는 백마를 탄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 군대들이 사탄의 세력과 전쟁하는 모습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결국 붙잡혀 유황불 못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는 붉은 용과 붉은 짐승인 적그리스도, 그리고 거짓선지자, 즉 음녀가 멸망당하는 모습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19장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시는 모습 앞에 어린양 혼인 잔치가 있습니다. 이것을 순서적으로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어린양 혼인 잔치가 이루어 질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특징 중에 또 하나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과 24장로,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 많은 무리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중간 중간에 보여 줍니다. 이 찬양의 내용들은 승리의 모습과 앞으로 있을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장 1절부터 보시면, 첫 번째는 1절과 2절에 나와 있는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찬양이 4절과 5절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찬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6절 이후에 나오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관한 찬양입니다.
첫 번째 찬양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찬양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19:1-2)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①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 ②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 ③음녀를 심판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갚기 위해서이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되는 게 뭐냐?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작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면서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우상숭배하고, 교회를 박해하고, 교회를 대적하고, 성도들을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한 것에 대한 갚음,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6:9-11에 보면,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순교당하고 핍박당한 성도들이 그 피를 갚아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때가 되면 그 피의 댓가를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응답으로 오늘 본문 2절에서 “자기 종들의 피를 갚으셨도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8장 20절을 보시면,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하나님의 심판은 너희를 위하여 하셨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성도들, 주의 종들을 죽이고, 박해하고, 교회를 대적한 댓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대적하지 마십시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대적하거나 핍박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 찬양인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을 보겠습니다.
(19;4-5)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결국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찬송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차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제외시켜 놓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다 멸망할 자들이고, 사탄에게 협조하고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라고 말합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중도에 변질되지 말고, 중도에 예수 믿다가 마귀에 속지 말고,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가지 말고, 끝까지 잘 견디어 믿음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세상 마귀가 주는 쾌락과 즐거움, 음녀 바벨론이 주는 금잔에 취해서 더럽고 악한 것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말씀하는 어린양 혼인잔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찬양인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관한 찬양을 봅시다.
(19:7-9)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지금 이 장면은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먼저 순교하거나 휴거한 성도들과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이 세상 나라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메시야의 나라가 완성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을 더럽힌 사탄 마귀 권세와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멸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렇게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기 전에 먼저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은 성도들과 혼인잔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이 있을 줄 알고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라고 한번 더 강조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다” 라고 말씀합니다. 혼인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말합니다. 그 아내가 ‘그 혼인 잔치를 예비했다’라는 말입니다. 신부가 스스로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성도가 이 땅에서 힘써 종말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혼인 잔치를 하려면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말은 혼인할 신부가 생겼다는 말이지요. 아들이 어느날 ‘아버지, 장가보내 주세요’ ‘그래, 결혼할 여자는 있냐?’ ‘아직 없는 데요’ 그러면 아버지가 뭐라고 합니까? ‘야! 이놈아, 결혼할 여자가 있어야지! 결혼할 여자가 생기면 언제든지 결혼시켜 줄게’ 라고 할 것 아니예요.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말은 결혼할 신부가 준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는 말은 신부 입장에서 신랑이 확실히 내 신랑이 되려면 내가 혼인 잔치를 위해 내가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어린양 혼인잔치와 예수님의 재림은 맞물려 있습니다.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말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가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혼인할 때가 아직 안되었다는 말이고, 혼인할 때가 아직 안된 것은 신부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장가 가고 싶어도 신부가 없으면 못가는 것처럼, 아무리 예수님이 혼인잔치 열고, 어린양 혼인잔치하고 이 땅에 재림하고 싶어도 혼인할 아내가 준비되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본문 7절에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자” 하고는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아내”가 누구입니까? 모든 신실한 성도들이지요? 신실한 성도들입니다. 가짜 성도들이 아니고, 진짜 성도들입니다. 무늬만 성도는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신실한 진짜 성도들입니다.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 라는 말은 자신의 믿음, 자신의 구원을 지켰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자신을 준비했다는 말은 예수님과의 혼인잔치를 위해 평생 준비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언젠가 다가올 어린양 혼인잔치와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시면 그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하나님께서 입도록 허락해 주셨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된다 라는 뜻이 됩니다. 7절과 8절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요? 7절은 “아내가 자신을 준비했다” 하고, 8절은 “하나님이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밀어 주시고 도와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생활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은혜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사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여기서 “공의의 겉옷(의의 겉옷)”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옷” 위에 “공의의 겉옷”을 입혀 주셨다 라는 말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허락하셨다”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구원의 옷은 속옷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는 영적으로 두 개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는 구원의 속옷이고, 또 하나는 의의 겉옷입니다.
오늘 8절에서 신부가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는데, 그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신부가 입은 이 깨끗한 세마포 옷은 의의 겉옷입니다. 이것을 이사야 61장 10절에서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과 같다” 라고 하지요? 여자들이 보석을 끼고 목에 걸치는 것은 남에게 보이게 할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속에 감추고 있지 안찮습니까?
그러니까 신부가 준비한 깨끗한 세마포 옷은 겉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게 할려고 예쁘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눈에도 예쁘게 보이게 할려고 세마포 옷을 입고, 보석을 단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도들은 내가 행동하고 손발을 움직여 거룩한 행위를 드러내고 신앙을 지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보면 내가 다 견뎌야 하고, 내가 다 감수해야 하고, 내가 다 겪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시고, 도와 주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자신이 스스로 예배하고 자기 스스로 신앙을 지키고, 보석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목표를 세우시고 그 자녀들을 그 목표 지점까지 어르고 달래시며, 우리의 노력과 의지와 선택을 격발시켜서 끌고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장로교의 교리 중에 “성도의 견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견인이 뭡니까? 끌고 가는 거지요? 차가 고장 나면 견인차가 와서 정비공장까지 끌고 가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요? 어린양 혼인잔치까지요.
분명 구원은 믿음으로, 선물로,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옳은 행실이 조건이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신실한 신앙생활로 지켜야 합니다. 옷은 입고 있으면 때가 묻고 더럽혀질 수 있지요? 그러면 세탁해야 합니다.
구원의 속옷, 의의 겉옷도 빨아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는 회개하면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 성도에게 말씀하고 싶은 내용이 뭡니까?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예수님과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혼인잔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9절)”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때가 되어 갈수록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헛되게 하면 안 됩니다. 구원 받은 은혜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왜 쫓겨났습니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고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면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 내 생각, 내 이론을 더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고 불순종의 삶을 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보다 세상의 삶을 더 좋아하고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지요.
결국 나는 똑똑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지혜롭게 사는 것 같지만, 결국 나도 모르게 사탄의 이론에 속아 넘어가 내 생각, 내 뜻대로 살면서 불순종의 길을 가게 되고, 결국 신앙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신앙을 잃어버리지 말고, 주님의 혼인잔치에 다 참여하는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