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8,7,15,[요한계시록66]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 주님의 머슴 2018. 7. 15. 15:11

주일설교(2018/7/15)-요한계시록(66)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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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먼저 첫 번째로 하시는 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은 성경의 모든 예언서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것입니다.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 날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처음으로 오실 때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주님이 처음으로 이 땅에 오실 때는 정말 겸손한 모습으로 말구유 위에 오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배척을 받으셨으며, 채찍질 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올라가실 때는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런 겸손한 모습이 아닌 권능과 무한한 영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바로 무한한 권능의 모습으로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시는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계19장 전체를 순서적으로 보면, 제일 먼저 보좌 주위의 24장로와 네 생물들, 그리고 하늘에 허다한 무리들의 천상의 합창, 즉 하늘의 영광스러운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는 어린양 혼인잔치가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도의 휴거 사건이 끝난 후 예수의 재림이 있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첫 번째 목적은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앞에서 배운 16장의 일곱 대접 재앙과 17,18장의 큰 음녀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모습을 축소해서 요약으로 짧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앞에 1414-20에도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은 중요한 부분은 계속 반복해서 점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앞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해 왔던 것을 최종 결론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11절을 보시면 이 환상이 하늘이 열린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뭘까요?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대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밝히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늘의 일과 땅의 일, 하늘의 역사와 땅의 역사는 절대 무관하게 흘러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하늘의 비밀이 또 한 꺼풀 벗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하늘이 열린다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

 

계시록 41절에 한번 나오고, 1119절에 또 한 번 나옵니다. 그리고 155절에서 다시 한 번 나오고 오늘 본문에서 또 한 번 나오는 것입니다.

 

41절에서는 이리로 올라오라라는 음성을 듣고 사도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고는 하늘이 열리고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환상이 나옵니다. 1119절에서 하늘이 열리고 12장부터 붉은 용, 머리 일곱과 열 뿔 가진 짐승(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그리고 이것들과 싸워야하는 교회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155절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일곱 대접의 재앙과 음녀 바벨론의 멸망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오늘 1911절에서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전쟁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 계시록에서 하늘이 열린다.’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섭리대로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즉 그동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늘의 비밀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역사와 시간과 사건들이 왜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냥 역사는 우연이 이끌어 가는 도박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시고 말씀을 통해 이렇게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이 우주의 역사는 우연에서 시작되어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뚜렷한 목표와 계획 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왜 이렇게 더워지고 있는지, 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인간들의 범죄는 날이 갈수록 흉포해 지고 있는지, 왜 가정들이 풍지 박산 나고 있는지, 왜 자연 재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지, 지금 이 우주는 죄로 인해 점점 썩어 들어가고 있고 종말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보고 깨닫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인류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 대해 무언가를 하시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반드시 하나님은 이것을 해 내시고 말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보시면 백마 탄 자가 나오지요?

백마를 타신 분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입니다. 그리고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충신”(피스토스)충성, 성실, 믿을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실”(알레띠노스)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이름을 가지신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그 똑같은 단어가 계시록 314절에 나옵니다.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피스토스 알레띠노스)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서는 아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게 해 줍니다. “충신과 진실로 꽉 차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를 건드리면 충신과 진실만 나옵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충신과 진실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앞에서 배운 대로 인간들을 교묘하게 속이던 사탄과 적그리스도, 그리고 거짓선지자와 대조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변함 없이 충신과 진실하심으로 다스리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12절에 보시면,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했습니다.

 

그 눈이 불꽃 같다라는 말은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살피시고 공정하게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는 많은 관들(면류관)이 씌어 있습니다. 면류관을 원어로 살펴보면 헬라어에서는 면류관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디아데마타(διαδηματα)’ 입니다. 또 하나는 스테파노스(στεφανος)‘ 입니다. 이것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인데 반해, ‘디아데마타(διαδηματα)’는 통치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입니다. ’스테파노스(στεφανος)‘는 보통 월계수 잎으로 만들어지는 화관입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디아데마타(διαδηματα)’는 황금과 보석으로 만든 시들지 않는 면류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릴 영원한 권세를 가지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했습니다. 이사야 96절에서 소개한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기묘자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이 충신과 진실 이고, 두 번째 이름이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 입니다. “기묘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이름이고, 네 번째가 16절에 나오는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 속에서 성부 하나님의 언약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을 통해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 12절을 다시 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의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이 계시록 19장에서만 네 가지의 주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충신과 진실, 하나님의 말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그런데 뜬금없이 그 분의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벌써 다 말해 주고서 그 분의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의 개념이 아닌 그 존재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노아 모두 다 그 이름의 내용을 삶으로 살다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자기밖에 아는 이가 없다, 이름이 비밀이다라는 말은 그 존재의 내용이나 그 존재가 하는 일이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6:3-7)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여호와로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그 족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몰랐을까요?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미 셋의 아들 에노스 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나오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족장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이미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고 그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인 줄은 알았지만, 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가진 구속사 안에서의 특성, 즉 언약과 사랑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이 담고 계신 내용은 출애굽기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그들과 함께 홍해를 건너심으로써 비로소 그들에게 경험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전까지는 여호와의 이름이 비밀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드릴게요.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여기 보시면 많은 물위에 앉은 그 음녀의 이름이 비밀이라고 나오지요? 그렇게 비밀이라고 말해놓고 바로 그 이름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 이름은 큰 바벨론이라 , 그리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비밀이라는 것은 그 이름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그 이름이 담고 있는 그 존재의 내용을 우리가 모른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요한계시록 19장에만도 이미 주님의 여러 가지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충신과 진실, 하나님의 말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우리는 이 이름들을 통해서, 이 이름들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내용으로 담고 계신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아직 비밀인 이름이 있다는 것은 우리는 절대 우리 주님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 우주의 역사와 종말은 우리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감히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건방지게 추측하거나 상상하거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함부로 너 멋대로, 너 마음대로 평가하고 상상하고 생각하고, 말하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보좌를 흔들 생각하지 말고 애시 당초 항복하고 순종하라라는 충고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절에 보시면,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피 뿌린 옷을 입었다고 한 것은 이 피가 예수님이 흘리신 피라기보다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그 옷에 묻은 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1419-20에도 있습니다.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악의 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라고 했습니다. 종말의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이 이름 속에는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전체 성경의 내용이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구절은 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에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을 믿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절하고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마지막 날, 그들이 거절했던 바로 그 말씀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말씀이 곧 예수님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지 않거나 믿지 않은 자는 곧 예수님을 배격하고 믿지 않은 것이 됨으로, 마지막날에 반드시 말씀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는 천사들과 구약시대 성도들, 신약시대의 성도들, 특히 환난을 이긴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군대의 복장입니다. 그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군인들은 전장에 나갈 때 군복을 입지요? 그것은 위장을 하여 적에게 나타나지 않으려고 위장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철갑옷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하늘군대의 총사령관은 일찍이 없었던 전쟁사 중에 유일하게 자기의 군대를 흰색 옷을 입힙니다. 군인은 위장복을 입어야 되는데, 다 드러나는 흰색 옷을 입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는 직접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장되신 주님은 말씀 한 마디로 전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5절에 보시면,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했습니다.

이 검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실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은 그의 적인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그들을 따른 수 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휴거되거나 순교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20:6).

 

우리 204-6절까지 찾아 함께 읽읍시다.

(20:4-6)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 성도의 목표점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우리 성도의 목표점은 바로 천년왕국입니다. 이 천년왕국에 대한 부분은 다음에 20장을 설교할 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속해서 종말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라고 하십니다. 그 분의 첫 번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었고, 두 번째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이었고 세 번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이었고, 네 번째 이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하십니다.

 

만 왕의 왕, 만 주의 주라는 말은 원문인 헬라어로 Basileu;" basilevwn kai; kuvrio" kurivwn”(바실류스 바실레온 카이 큐리오스 큐리온)입니다. “왕의 왕, 주의 주”, 온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하고 있느냐 하면,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고 하십니다.

 

전사는 전장에 나갈 때는 그 다리에 칼을 찹니다. 전사는 모든 군사의 제일 앞에 서서 군대를 이끌게 됩니다.

그런데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의 군대를 이끄시는 예수님은 검 대신에 그 분의 다리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그 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하며 주님이 오셔서 다스릴 광경을 상상해 보면, 우리를 얼마나 감격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목표점이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땅에서 고생과 환난과 억울함을 잘 참고 견디면서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의 날이 반드시 옵니다. 믿음을 지키며 잘 견디십시오.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