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9,[요한계시록71]백보좌 심판
주일설교(2018/8/19)-요한계시록(71)
백보좌 심판
계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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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왕국은 성경에서 늘 예언되어 온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메시야의 왕국을 늘 예언했으며 사모했습니다. 특히 다니엘 선지자는 분명하게 그리고 강하게 말씀합니다.
(단2: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7장 26-27절에는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다 깨어지고 나면, 영원한 메시야의 나라가 온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26-27)”
사도바울도 메시야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바울서신 곳곳에 메시야의 나라를 말하고 있고, 메시야의 나라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이 “메시야의 나라”가 천년왕국입니다. 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을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둘째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5-6절). 둘째사망은 사탄 마귀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가는 불 못입니다. 이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잠시 사탄을 풀어 놓아 온 세상을 유혹하게 되고, 그 추종세력들이 또 한 번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이 끝나고 있을 최후의 전쟁입니다. “곡과 마곡”은 최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무리들입니다. 천년왕국, 즉 “메시야의 나라” 안에서도 죄의 싹이 싹트고, 사탄을 풀어 놓았을 때, 사탄을 추종하고 따를 자가 생긴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죄악과 불순종이 생긴 것처럼, 천년왕국에서도 사탄의 미혹을 받으면,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 쪽에 붙어 하나님과 전쟁할 인간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풍성하고, 평안하고, 부족함이 없는 왕적 삶을 살아도 항상 불만하고, 불순종하고, 은혜를 잊어버린 삶을 사는 자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열 가지 재앙과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 출애굽했지만, 그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에서 출애굽해 나와서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만일 제 생각에 이 때 애굽의 바로가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버리고 애굽의 바로 편에 붙어서 모세와 전쟁을 했을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7절에 보시면, “천년이 찼다” 라고 하지요? 이것은 천년왕국도 한시적입니다.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이 천년동안은 사탄 마귀가 활동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외적으로 나를 유혹하고 고난과 환난을 주는 죄악의 세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천년왕국 안에서도 인간의 마음에서 죄악이 생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싶어 하는 죄악의 씨가 나와 삯이 터는 것입니다.
또 “천년이 찼다” 라는 말은 ‘천년이 끝났다’ 라는 말도 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여기서 둘로 나누어지는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한쪽은 ‘구원의 완성, 또는 영생의 완성이 이루어져 구원이 주워져 영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라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한쪽은 ‘영원한 심판, 즉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두 부류로 나누어져 영생과 지옥으로 나누어져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실재로 천년왕국이 끝나고 두 부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두 부류로 나누어져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으로 바로 들어가는 자들도 있지만, 이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 부류는 “죽은 자들”로, 책들에 기록된 자들로 자기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 못에 던져져야 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인 “백보좌 심판”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갈 자를 나누는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분명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인간의 행위가 적혀 있는 책들이 들려 있어 그 책에 적혀 있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이 책을 그냥 “책들”이라고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biblivon(비블리온), 책들, 복수입니다. 여러 개의 두루마리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책이 있습니다. 하나의 책입니다. 이것을 “생명책”이라고 했습니다.
“책들”은 여러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이름 뒤에 여러 가지 행위를 기록하다보니 부피가 많아 “책들”입니다. 그 책들에 기록된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12절하반절에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라고 했습니다. 13절하반절에도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책”은 하나 뿐입니다. 생명책에는 이름 뒤에 나의 행위는 전부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가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면 그 심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모두 다 부활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모든 죽은 자들이 전부 살아납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 차에 치어 죽은 자, 전쟁에서 사망한 자, 불에 타 죽은 자, 자살한 자, 수명을 다 해 죽은 자, 모든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납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그들이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그 순간보다 억만 배 더 무서운 형벌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자들을 “죽은 자”라고 표현합니까?
12절상반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죽은 자들”이란 의인의 부활, 생명의 부활과 관계없는 자들, 그리고 천년왕국과 관계없는 자들,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사탄을 따른 자들을 통틀어서 “죽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보좌 심판은 첫째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는 모두 한번을 겪게 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라고 했습니다. 내주어 심판을 받기 위해 다시 살아나는 것, 이것이 “둘째부활”입니다. 둘째부활은 불 못인 지옥에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 견디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둘째부활은 “둘째 사망”과 연결됩니다.
6절에 보시면,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라고 했습니다.
또 14절에 보시면,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그러니까 둘째 부활한 자들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사망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해 보면, 5절에 보면 천년왕국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것을 “첫째 부활”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하고 “둘째 사망”이 없다고 합니다. “둘째 부활”이 뭡니까?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럼 다시 정리해 보면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둘째 부활이 없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활은 바로 둘째 사망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부활이 있는 자들, 즉 둘째 사망이 있는 자들은 첫째 부활이 없습니다. 첫째 부활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째 부활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바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둘째부활은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첫째부활에 참여한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기 때문에 바로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둘째 부활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지요? 오히려 책들에 기록되어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 즉 불 못에 던져져야 할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13절)라고 표현합니다. “죽은 자들을 내준다” 라는 말은 부활시킨다는 말입니다. 바다에서 죽은 자들, 질병 기타로 죽은 자들, 이미 죽어 그 영이 음부(사망과 음부)에 가 있는 자들,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을 영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엡2:1)들로 보고, 예수 믿는 그 순간에 다시 살아났다고 보는 겁니다.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5)” - 이 말씀을 적용해서 이때를 첫째 부활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은 지금 예수 믿는 현재가 천년왕국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그 순간, 천년왕국에 들어 온 것이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하시고, 최후의 심판 때, 다시 부활하는 것을 둘째 부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그대로를 보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첫째 부활로 보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을 둘째 사망이 없다고 했으니,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은 죽은 자가 아닙니다. 12절, 13절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과 책들에 기록된 자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책들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책들에 기록된 자들은 큰 자나 작은 자나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백보좌 앞에선 죄인들은 자기의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 집니다. 백보좌 심판 앞에 두 종류의 책이 펼쳐져 있는데, 바로 1)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과 2)사탄 마귀를 따르고 종노릇한 자들의 행적이 기록된 책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긴 자들은 그 이름 뒤에 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의 행위가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 심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은혜로, 선물로 우리는 그 심판에서 건져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떤 선한 일을 행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고, 믿고, 예배하고, 사역하고, 이렇게 살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장면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5: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생명의 부활”은 천국왕국을 통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심판의 부활”은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자신 있으세요?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자들, 즉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를 힘입어 구원을 얻게 되는데, 이 땅에서의 그들의 삶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더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도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선한 일은 어떤 일일까요?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셨다고 나오지요. 이게 같은 말입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잘 보시면 그 선한 일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가 그 앞에 적혀 있습니다. 뭡니까?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부으시니까 선한 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선한 일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 성령에 의해 이끌려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시지요?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6:7-8)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신지를 깨닫게 하시고,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며, 장래에 이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를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선한 일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행위에 앞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가며, 우리 인간의 장래가 어떻게 결론지어질 것인지를 깨달아 불 타 버릴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우리에게 그 엄청난 은혜의 선물을 안겨주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다른 말로 삶의 원리를 내가 죽어 하나님과 이웃이 덕을 보는 십자가의 삶으로 바꾸어 사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보세요. 여기도 똑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선한 일이나, 착한 일이나 같은 말입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누가 시작하셨다고 합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에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을 좇아 사는 착한 일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그리고 장래 일에 대해, 구원에 대해 점차 깊이 알게 됨으로 ‘나에게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자발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점차적으로 저 하늘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만든 것이 천년왕국입니다. 천년왕국은 메시야의 왕국입니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이 메시야의 나라에 눈동자를 고정하고 주목하고 살았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곤고가 있어도 이 메시야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히브리서11장에 보면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한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이것은 백보좌 심판을 말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 간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기에 새 예루살렘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둘째 사망, 불 못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선한 일”을 행함으로 천년왕국을 사모함으로 우리의 눈동자를 메시야의 왕국에 고정하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