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험의 때가 있다.
<마가복음묵상④>
4.시험의 때가 있다.
막1:12-13,마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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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매 년 초가 되면 입시철이다. 시험에 합격한 자는 기쁨을 나눌 것이지만, 불합격한 자는 패배의 아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시험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시험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시험은 사전에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참 신기하게도 우리가 당할 시험 내용이 다 나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셨다.
성경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알려주신다. 그 중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지도 알려주신다. 그 자가 마귀라고 말한다. 성경은 마귀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다. 우리를 대적하고 시험하는 마귀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는 책 중에서 이보다 더 자세한 책은 없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육적인 눈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마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가보고 있다. 복음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세례는 하나님의 격려요, 인정이요, 축복이라고 했다. 세례는 사명과 능력과 연합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시험이 다가온다. 아니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세례의 영광 바로 뒤에 시험의 투쟁이 다가온다. 시험의 때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의 때를 위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었다. 그것도 성령이 직접 역사하셨다. 세례 받을 때 임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 지금은 시험하기 위해 광야로 몰아내신다.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시험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시험은 실패케 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를 영적으로 더 강하게 하고 마음과 영혼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수많은 시험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실패한 일은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의 모습대로 똑같이 사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당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시험당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마귀의 대적을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여러분, 우리는 마가복음의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승리하고 축복을 받자.
오늘날 세상의 시험도 우리가 미리 알고 이기면 참 좋은데, 영적인 시험을 알고 이기면 그건 얼마나 더 좋겠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이다.
대학 시험에 떨어진 아이들이 마음이 약해져서 자살을 하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며 잘못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잃은 것도 아니고, 가난해진 것도 아니고, 천국에 못가는 것도 아니고, 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소망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좋다. 그러나 안 된다고 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 것도 아니다. 앞에 가는 사람만 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다. 뒤를 따라가는 사람에게도 고기를 잡는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시험에 떨어지면 불행이 온다. 멸망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의 어떤 시험보다도 영적인 시험을 이겨야 한다. 마귀와의 시험에서 지면 안 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여러분, 시험은 누구나에게 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시험이 더 있다. 시험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 시험은 피할 수 없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시험은 다 있다. 그래서 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13절에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칠 때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시험이 오지 않기를 조심하며 기도할 뿐이다. 그러나 시험이 오면 이겨내야 한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않았을까?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다. 마귀는 시험하기 전에 대상을 먼저 찾아낸다. 아무나 다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할 목표물을 먼저 정한다. 아담과 하와 중에 하와를 대상으로 시험을 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시험을 잘 당하고 유혹을 잘 당하는가 보다. 그리고 어디에 사는 자를 시험하는가? 에덴동산에.. , 즉 행복한 동산에 살고 있는 자를 시험했다. 마귀가 시험을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로 한다. 그래서 반대로 살아가게 한다. “하와야, 정말 하나님께서 너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아니야, 다 먹어도 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해서” “아니야 그것을 먹어도 괜찮아”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해서” 그 때 마귀가 이렇게 말한다. “먹어도 안 죽어,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된다”
그 말을 들을 후부터 하와는 그 나무를 볼수록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이는 것이다. 결국 따 먹과 만다.
마귀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사탄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사탄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정말 있기는 있나?” “꼭 믿어야 되나?” “그렇지 않다” 자꾸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꼭 교회에 나가야 하느냐?” “주일을 꼭 지켜야 되느냐?” 여러분, 성경에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씀한다. 마귀는 꼭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게 왜곡 시켜서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성경에 보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 멸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시험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은 어렵고 인간의 뜻은 쉽고 좋게 보였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죄악이 관영한 소돔성을 보니 하나님의 동산 같이 보이더라고 했다.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사람을 보면 모든 것이 다 좋게 보이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나쁜 것인데도 다 좋게 보이게 해서 시험했다. 돌이 떡이 되게 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높은 산에서 천하 영광을 보여 주고는 나에게 절해라. 전부 다 좋게 보이게 한다. 또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게 한다.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잠깐 시원한 것, 잠깐 편안한 것, 잠깐 행복한 것,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저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약한 아이들을 보면 대체로 군것질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약하다고 한다. 밥을 안 먹고 자꾸 돈으로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은 건강이 점점 나빠진다고 한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도 한 남편을 사랑하고 한 아내를 사랑하며 가정 중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밖으로 나돌면서 사랑의 군것질을 하는 사람은 끝내 불행해 진다고 한다. 하루 빨리 군것질 인생에서 돌아서야 행복해진다고 한다. 신앙생활도 군것질 신앙은 옳은 신앙이 될 수 없다. 결국 끝이 불행으로 끝나는 신앙이 되고 만다.
아가서 4장 12절에 “잠근 동산”이라는 말씀이 있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내 누이, 내 신부”는 성도들을 말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다 같은 뜻이다. 주인만 열 수 있고, 주인만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내가 잠근 동산이요, 내가 봉한 샘이다. 내 속에 주님만 들어오는 것이다. 내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시면 은혜가 되지만,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 마음에 나쁜 것을 잉태시켜 결국에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어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시험이 있다. 믿음이 큰 사람이든, 믿음이 적은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시험이 있다. 오히려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시고자 하는 사람은 더 큰 시험이 있다. 장래가 유망한 사람은 더 큰 시험이 있다. 아브라함(창22:1,2), 히스기야(대하32:31), 요셉(39:1), 예수님(막1:12) 등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시험을 당했다. 특히 다윗을 보자. 다윗은 하나님께 선택받아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부터 왕이 될 때까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시험을 겪는다.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로 계획하신 후부터 시험은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시험은 우리가 무언가 계획하고 시작하려고 하면 반드시 온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세 가지의 시험이 왔다. 우리가 예수 믿으려고 마음먹고 시작하면 반드시 시험이 온다. 예수 믿지 못하도록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말을 듣게 되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나면 축복과 영광이 온다. 마태복음 4장 11절에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난 후 “이에 마귀가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13절에도 “천사들이 수종들더라.”고 했다.
천사가 누구인가?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영들이다. 심부름꾼이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라고 했다.
모든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는 영(섬기는 영)이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그런데 누구를 돕는 심부름꾼인가?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심부름꾼이다. 여기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바로 우리들이다. 천사는 구원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를 위해 수종드는 자들이다. “수종 든다.” 는 말은 도와준다는 말이다. 늘 도와주고 동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긴 자들은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축복이 있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시험을 받으셨을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것은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도와주시려고 받으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8)
우리가 실족할 때도, 우리가 시험에 힘들어할 때도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왕으로 우리 곁에 계셔서 함께 동행하며, 우리가 그의 안에서 승리하도록 하신다.
악의 권세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최종적이고 대표적인 것이기에 온 세상이 악한 자의 권세 안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셔서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