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5.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주님의 머슴 2021. 1. 15. 16:05

<마가복음 묵상>

5.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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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우리 인생의 길잡이가 되자.

요한복음 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했고, 155절에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신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 크게 피부로 느끼는 것이 있다면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밥 한 끼 안 먹으면 배고파하며 힘 못 쓰는 존재요, 잠 하루 안자면 피곤해 하는 존재이다. 거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도나무 가지처럼 나무에 붙어 있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승리하자.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고, 내가 주님께 꼭 붙어 있는 가를 다시 확인해 보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처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때이다. 세례요한이 붙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선지자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시대가 끝났다. 신약시대가 시작되었다.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구약의 왕, 제사장, 선지자가 통합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제사장, 선지자로 통합된 메시야로 오신 것이다. 세례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힐 때 까지는 활동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비로소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활동하심으로서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누가복음 1616절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했다.

마태복음 1113절에서도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라고 했다.

 

구약의 시대가 끝나고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사람들은 메시야의 말씀, 메시야의 사상으로 사는 것이다. 메시야의 사상은 바로 기독교 사상이다. 기독교 사상은 기독교적인 문화, 기독교적인 생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다. 마태복음 32절에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외쳤다. 후에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 고 하셨다. 오늘 본문 15절에도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다.

 

세례요한이 외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두고 말한 것이다. 세례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 나라는 메시야의 사상이 통하는 나라,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권이 통하는 나라이다. 메시야의 사상으로 가득 찬 나라이다. 메시야는 예수님을 말한다. 이 세상의 어떤 사상도 예수님의 사상보다는 앞설 수 없다.

 

예수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자가 세상을 승리한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죄악으로부터 이길 수 있다. 박해와 배신과 대적, 멸시로부터 이길 수 있다. 예수의 사상이 우리 주위를 포위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 청년들도 예수의 사상을 가득 품고 있어야 범죄에 빠지지 않고 비행청소년이 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지식도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고, 세상의 어떤 지식과 힘으로도 윤리적이고 인간다운 인간, 인성을 바로 가진 인간을 만들 수 없다. 이것이 오늘날 증명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어린이들은 예수의 사상으로 키워야 하고, 어른들도 예수의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면 이 예수의 사상이 무엇인가? 바로 복음이다. 예수님이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 케리그마,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가장 복된 복음이다.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중요한 단어 네 가지가 나온다.

복음, 하나님 나라, 회개, 믿으라이다.

1.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신 것 중에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것이다. 축복 중에 축복이 복음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복음(2:5, 1:5), 소망의 복음(1:23), 평화의 복음(6:15), 약속의 복음(3:6), 영생의 복음(딤후1:10), 구원의 복음(1:13)이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진리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는 거짓이 가득 차 있다. 포장된 문화-대중문화, 광고, TV, 여러 곳곳에 거짓이 숨어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도 거짓이 숨어 있다. 세상에는 거짓으로 포장한 것이 많지만, 복음에는 거짓이 없다. 오직 진리만 있다.

 

또 복음에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절망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새 살이 돋아나듯 소망이 생긴다. 아무리 억압하는 곳이라도 복음이 들어가면 소망이 생긴다.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초대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보자. 그래서 복음은 핍박이 있는 곳에, 억압이 있는 곳에 버티는 힘을 가지게 하고, 위로부터 오는 힘을 흡수하게 한다. 그래서 소망이 없는 가난하고 천대받고 버림받은 곳에 들어 갔다.

본문에도 14절에 세례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다. 갈릴리는 유대인들에게 천시 받는 곳이다. 소외된 곳이었다. 갈릴리지방에 속한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님을 향하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라고 무시했다. 갈릴리지방은 특히 병자들이 많은 곳이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예수님은 이런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복음이 이런 곳에 소망을 불어 넣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예수님이 오신 후에 마태복음에서는 이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4:15-16). 복음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요, 삶이라고 해도 삶의 깊음으로 소망을 불어넣는다.

 

복음에는 평화, 평안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안식과 평안이 있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는 천사의 마음과 짐승의 마음이 섞여 있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때 그의 대답이 나는 파괴되어 버린 절간과 같습니다. 어떤 부분은 튼튼해 보이나 사실은 다 무너졌습니다. 아직도 좀 남아 있는 부분이 있으나 사실은 다 파괴되고만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인간의 고민은 죄와 선의 사이에서 항상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18-25).

우리 인간에는 평안이 없다. 이런 인간이 모인 사회나 집단에도 역시 평안이 없다. 평화는 인간의 마음에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이렇게 외치며 노래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우리가 복음만 받아들이면 혼란한 내 마음, 공허한 내 심령에 평화가 오고 안식이 생긴다.

 

복음에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비기독교의 신들은 약속의 말씀은 없고,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있다.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는 신으로 인간에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두려운 존재로 생각했다. 우리나라 무속종교의 신들은 다 두려운 존재로 나온다. 절에 가면 입구에 무시무시하게 해서 서 있는 것을 보면, 으스스하고 무섭고 기분이 나쁘다. 불쌍한 중생들은 무섭게 짓밟고 눌러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약속의 하나님으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셨다. 우리가 구하는 그 이상으로 준비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자기 몸을 던져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면서 우리에게 생명과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지금도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이루신다.

 

복음에는 죽음을 초월하는 영생으로 가득 차 있다.

또 복음에는 구원으로 연결시켜 준다.

 

이러한 복음을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내 것이 되게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의 삶을 미워하는 것이다. 예수 없이 살았던 삶을 철저히 끊고 미워하는 것이다. 과거의 죄와 함께 살았던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제는 온전히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며 이 삶을 사는 것이다.

 

둘째는 믿는 것이다.

본문 15절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다. “믿으라명령형이다.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무조건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믿으라이다. 내 생각과 안 맞아도 믿어야 한다. 내 지식과 내 경험과 안 맞아도 믿어야 한다.

 

내 환경이 어떠하든, 여러 가지 어려움과 역경이 있든, 믿음으로 나아가라. 주님의 축복된 복음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도 믿음으로 나아가라.

 

찬송가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 안에서 이루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