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장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심
<마가복음 묵상⑩>
10.가장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심
막1:40-45, (참고)마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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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1: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1: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1: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질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장수 시대라 해도 참 아프고 약한 사람이 많고 갖가지 사유로 죽는 사람도 많다. 사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 아프고 약하다. 나이 들어 갈수록 더 그러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현상을 겪는다. 정말 우울증이나 무기력, 분노의 감정에 감염되지 않도록 부단히 영육 간에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할 것 같다.
질병은 우리의 약함과 생래적 이웃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새롭고 더 깊은 방향을 찾게 하고, 삶의 의미를 묻게 하며, 우리를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죄가 많으니 병도 많은 것 같다. 참으로 병의 치유에 앞서 주님과의 관계가, 영혼의 건강이 본질적으로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주님을 만나 영혼의 치유, 마음의 치유, 전인적 치유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참으로 먼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일어남으로 더불어 육신도 질서가 잡히고, 치유도 일어난다.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히브리서의 말씀이 생각난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치유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정말 육신의 병에 앞서 무디어진, 완고해진 내 마음의 병이 먼저 치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40절)
예수님의 반응은 동정(pity)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는 가엾이 여기는 연민(compassion)이다. 마침내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연민의 마음, 사랑의 텃치, 능력의 말씀이 삼박자가 되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41절) 인생의 문제가 치유되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한 나병환자가 찾아 왔다. 이 나병환자는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기를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저를 고쳐 주세요.” 이 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사 그 피고름이 나고 보기가 흉하고 더럽고 추한 그 피부를 만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고 하셨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떤 인생의 문제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야 하고, 예수님과 일대일의 만남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불쌍히 여김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우리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가 복된 자인 것이다. 주님과의 만남이 일어날 때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것을 원하신다.
여기서 나병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최악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나병보다 더 무섭고 더러운 병들이 많다. 그러나 옛날에는 나병이 병중에 가장 무섭고 더러운 병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단번에 고치셨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나병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최악의 가장 나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성경에 나오는 나병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나병은 사회에서 추방된 질병이다. 성경에 가장 많이 언급된 질병은 나병이다. 고대 사람들은 나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지 못해 나병을 몹시 두려워했다. 나병은 피부에 반점이 생겨나 점점 짙어지다가 궤양으로 발달하고, 피부가 벗겨져 몰골이 흉해지고 몸이 마비가 오는 끔찍한 병이다. 레위기 13장에는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나병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나환자는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차림으로 '진영 밖에서' 살면서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치며 다녀야 했다. 병이 심한 나환자는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나환자 수용소에서 삶을 마감했다.
오늘날에는 나병을 한센병이라고 부르지만 고대에는 진짜 나병만이 아니라 피부가 손상되는 모든 질병을 나병이라고 불렀다. 성경에 나오는 나환자들 중에는 습진이나 건선처럼 지금은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린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에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어려웠고 대부분 전염성이 강했다. 그러므로 나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잔인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조치였다.
구약성경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선지자 엘리사는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을 요르단 강에 목욕하게 해서 치료했다. 유다의 왕 웃시야는 나병에 걸려 별궁에 격리된 채 살다가 죽었다(역대하 26:21). 복음서에는 예수가 많은 나병환자들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때로는 손으로 살짝 건드리고 '깨끗해져라'는 말 한 마디로 간단히 치료한다.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서 그를 찾아와 치료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들 중 한 명이 예수에게 돌아가 절을 하고 감사를 드리자 예수는 왜 한 명만 고마워하는지 의아해했다(누가복음 17:11~19). 예수는 성도들에게 나병의 치료는 곧 메시아가 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마태복음 11:5).
나병은 무서운 죄의 결과라고 믿었고, 실제로 사람 마음의 가장 나쁜 죄의 모습이 나병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나병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성경은 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한 분밖에 없다고 말씀한다.
1) 나병환자는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히 더러운 자로 여겼다. 나병환자는 자기 식구들을 포함한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2미터 이내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레13:45) 라고 해야 한다.
2) 나병환자는 죽은 자로 판정되었다. 살아 있는 죽은 자였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검은 옷을 입어야 했는데, 그것은 죽은 자라는 의미로 입는 것이다.
3) 나병환자는 이 세상 사회에서 뿐 아니라, 하늘나라로부터도 완전히 추방당하였다고 믿었다.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13:46). 나병환자는 그 어떤 도시의 성벽 안에서도 살 수 없었다. 그의 거처는 항상 성문 밖이었다. 이 성문 밖은 곧 하나님 나라 밖을 의미하기도 했다.
4) 나병환자는 전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능력만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이 메시야 되심과 하나님 되심을 증명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나병환자의 고뇌와 절망을 상상해 보자. 그 감정적, 정신적 고통을 상상해 보자. 이 나병환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마지막 기회요, 마지막 소망이다.
우리의 신앙의 자세가 이러해야 한다. 이 나병환자가 해야 할 일은 뭘까? 어떤 삶의 자세였을까? ‘강력한 소망으로....., 강력한 믿음으로......., 강력한 경배로.......“ 나아가는 길 밖에 없다. 성경에 나병환자들이 치료 받는 기록들이 나온다. 다 이러한 자세로 치료함을 받았다.
1. 예수님은 최악의 상태, 그리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장 더러운 자의 소망이 된다(40절).
소망이 없는 자가 예수 앞에 나오면 소망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문제들, 이런 유(類)의 문제들을 주님께 가지고 나와야 한다. 오늘 나병환자도 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주님께 나왔다. 그는 오래 전부터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병환자의 몸으로 많은 사람이 있는 예수님 앞에 나온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편견, 멸시, 천대, 사회의 고정관념, 율법적인 모든 문제 등등, 여러 가지 제약을 뚫고 예수님께 나와야 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2. 예수님은 가장 부정한 자(가장 죄악이 많은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41절).
멸시를 받는 나병환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아셨다. 그의 비참한 상태, 그의 마음, 그의 소망, 그의 믿음을 아셨다. 그래서 더 불쌍히 여기셨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셨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103:13)
예수님은 영혼을 고치실 때도 만지신다.
2) 그 다음 예수님이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한 마음인가를 알 수가 있다. 예수님은 모든 이가 깨끗케 되기를 원하신다. 온전케 되기를 원하신다.
3) 예수님이 원하시고 말씀하셨던 그대로 결과가 나타났다(42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합당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의 믿음에 따라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깨끗함을 받으라”고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과 더불어 능력이 나탄 순간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42절).
3. 예수님은 깨끗하게 된 자에게 자만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고 하신다(43-44절).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43-44절).
예수님은 엄히 경고하셨다. 왜 엄히 경고하신 것일까?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다. “가서”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어디로 가라 하는가? 제사장에게로 가라 하신다. 그리고 율법에 명한대로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신다.
신약시대인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교회에 와서 목사님께 말하고, 교회 전체에 감사 예물을 드리고 기쁨으로 감사와 섬김으로 입증하라는 것이다. “입증하라” - “증거하라”는 뜻이다. μαρτύριον(마르튀리온), 교회 전체에 증거하라는 뜻이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여 섬기라”는 의미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4. 그런데 이 고침받은 사람은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알려서, 즉 많이 자랑해서 널리 퍼지게 했다(45절).
그 일로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 가셨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를 잘 간직해야 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잘 받아드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면서 “엄히 경고”하셨다(43절). 이 “엄히 경고하사” 라는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엄히 경고하사”라는 원어는 ἐμβριμησάμενος(엠브리메사메노스), “위협함으로 금하신다.” 라는 의미심장한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병 나은 사실을 숨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44절).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했던 것이다.
아마 예수님은 두 가지를 염려 했을 것이다. 하나는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5:14)고 경고하신 것 같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교만의 죄를 말씀하기도 하고, 자랑하면서 떠벌리고 싶은 교만을 말씀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복음 전파에 걸림돌이 되게 하거나, 복음 전파에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거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후에 어떤 때는 말하지 말게 하시고, 숨기게 하시고, 어떤 때는 증거 하라고 하신다. 예를 들어 거라사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청년을 고치신 후에 네 친족과 동네에 가서 전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청년은 “데가볼리 온 지역”에 전했다. 우리는 주님을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나병환자가 알맞지 않을 때에 이 기적을 말하지 말도록 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 때나 모든 진리를 말하거나 고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모든 진리를 결코 부인해서는 안 된다. 증거해야 한다. 설령 강제적으로 억압을 받는다 해도 우리는 진리를 증거 해야 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진리를 감추어 두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때도 있다. 전도서 3장 7절에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라고 했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진리를 숨겨야 하는가?
1)그것을 말함으로써 진리 자체에 손해를 가져 오게 될 때, 즉 본문에서처럼 이 기적을 말함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멈추게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45절)
2)그 진리를 통하여 유익함을 얻기보다 트집을 잡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3)진리의 악독한 원수들이 무리 속에 있을 때(마7:6).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
우리에게는 나병과 같은 것이 없는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가장 악하고 더러운 것이 내 속에 없는가? 분명히 우리의 본성에 뿌리 박혀 있는, 우리 몸 전체에, 우리 혈액과 골수에 까지, 우리 DNA에 까지 맹렬히 달라붙어 있는 불결한 영혼의 질병이 없는가? 그 질병은 나병과 같은 죄라고 하는 질병이다. 아니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그 순간부터 우리의 전인적(全人的)으로 사탄화(化)가 되어 있는 질병이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 마음, 의지, 양심, 지성, 감성, 영성까지도 감염시켜 우리의 깊은 곳 속사람까지 감염시키고 자리 잡고 있는 질병이다.
나병처럼 죄는 우리로 하여금 불결한 자로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부적합하게, 하늘나라 영광과는 거리가 멀도록 한다. 코로나19보다도 무섭고, 변이된 바이러스보다도 무섭다. 그것은 지상의 어느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병이며,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우리를 제2의 죽음으로 끌고 가는 병이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이 병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부정한 자이다(사64:6).
그러나 이 병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고, 나의 생활의 아픔과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고침을 받는다. 할렐루야!
오늘 나병환자가 은혜를 받았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머물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