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5.[산상복음5]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2)

☆ 주님의 머슴 2021. 3. 8. 09:05

주일설교(2015/06/14) - 산상복음 설교(5)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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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다음 복으로 넘어가지를 못하고, 또 한번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설교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1년을 설교해도 늘 부족하고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기독교의 시작이요, 은혜와 축복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이 기독교인이 되는 출발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다 심령이 가난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주님의 빛을 받은 자는 자동으로 심령이 가난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팔복의 출발이요, 산상복음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모든 기독교의 복음이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천국의 문이 열리고, 구원의 시작이 되고, 은혜의 출발이요, 주님이 주시는 영육의 축복의 시작입니다. 기독교의 문은 영의 문입니다. 기독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한정의 은혜가 있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심오한 진리로 들어갑니다. 사람으로는 탐구할 수 없는 심오한 은혜와 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만난 자는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을 만나도 마음에 채워지지 않고 시시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4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은 작은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속에 이 세상의 어떤 것을 갔다 넣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보물을 다 가지고, 이 세상의 부귀 영화를 다 누려도 채워지지 않고,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본래 만드실 때, 인간의 구조를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되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속은 넓고도 넓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가 있고, 만족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는 절대 무능하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철저한 죄인입니다.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면, 더욱더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고, 그래서 더 깊이 깊이 하나님 속으로, 은혜의 자리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되십시오. 절대적으로 자기의 무능함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십시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으면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성도의 출발선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다 이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 이렇게 출발하십시다. 할렐루야!

그럼 심령이 가난하다는 이 가난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가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헬라어로 페네스” (pevnh")라는 가난입니다. 이것은 매일 매일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가난입니다. 지하실 이지만 전셋집이라도 있고, 소형이지만 냉장고라도 있고, 흑백이지만 텔레비전이 있고, 에어컨은 없어도 선풍기라도 있는 정도의 가난, 시내버스라도 타고 다닐 수 있는 가난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프토코스”(ptwcov")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가난이 아니고, 완전하게 파산한 ,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의지할 곳조차 없는 극빈을 말합니다. 전세는 고사하고 사글세방도 없고, 심지어 옷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가난을 말합니다. 거지처럼 구제를 받으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난은 프토코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입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그러나 심령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이렇게 가난하여 주님을 목마르게 찾고, 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실 때, 의도적으로 이 프토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를 만나 주세요. 예수님, 부디 저를 만나주세요.”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는 목마름, 주님을 의지하는 절대적인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 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D, 37)

 

(후렴)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 합니다

 

2.금보다 귀한 나의 주님 내게 만족 주신 주, 당신만이 나의 기쁨 또한 나의 참 보배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일을 많이 합니다. 우리 집은 생활이 안정 되어 있습니다. 직장도 안정되어 있고, 아이들도 공부 잘하고 있고, 건강도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신앙생활도 제법 했습니다. 설교도 많이 들어서 왠만한 말씀은 다 압니다. 성경도 많이 읽고 다 배웠습니다. 내 만큼 성경 읽는 사람도 없을껄요? 저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습니다. 이제는 더 큰 교회로 가서 배울꺼야이런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늘의 복, “심령이 가난한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늘 부족함이 많을 수 록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1.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후렴]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3.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찬송가 183)

 

내 마음은 빈 들과 같습니다. 내 마음은 메말라 있습니다. 갈급합니다. 주님, 시들은 나의 영혼이 성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 내 영혼에 생수를 부어 주옵소서.”

이런 자들이 복을 받습니다. 이런 자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 합소서 (찬송가 375)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 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 합소서.

 

아무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 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 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 주소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아기 같이 어립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찌해야 할지 모릅니다. 내 마음은 빈들과 마른 풀 같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성령의 역사도 간절히 사모하고 심령이 메말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에게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가는 이렇게 모두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을 통해서 은혜 받는 자들은 모두가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스스로 풍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은혜를 주시고, 죄 많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주시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리다”(5:8)라고 하는 베드로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심령이 가난했을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느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심령 관리는 정말 어렵습니다. 질병도 심령 관리를 잘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과 기업이 왜 잘못됩니까? 자녀가 왜 비뚤어집니까? 심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도는 심령 관리만 잘 해도 범사에 은혜가 오고, 염려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하면 육체도 정신도 도리어 더 건강해집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하면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십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한 자가 부유한 자가 되고 하나님도 그에게 자꾸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복을 받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이런 복을 받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그것이 한계입니다. 그 날로 망하는 길로 갑니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나?” 라는 마음을 가질 때 지식의 문은 닫히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도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 하는 그 때부터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불행해 지는 겁니다. 교회생활도 나같이 잘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만하면 됐지!” 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 때가 신앙이 시험들고 사단의 올무에 걸리는 겁니다. 모든 문은 닫혀 버리고, 그때부터 퇴보하게 되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큰 일을 하고, 무엇이든지 성공을 하게 됩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늘 승리하게 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찬송가 95)

 

아쉰 마음이라야 됩니다. 신앙생활은 늘 아쉰 마음이 남아 있어야 됩니다. 설교를 듣고나면 늘 아쉰 마음이 이라야 됩니다. 기도하고 나면 늘 아쉰 마음이라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늘 아쉽습니다. ‘설교 언제 끝나노’ ‘예배 언제 끝나지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아쉼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축복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육적으로도 큰 복을 받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었을 때에 이 민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대하1:11-12)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육간에 복을 다 받습니다.

 

4. 심령이 가난한 자는 주님을 찾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모레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온 새끼거북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향해 기어갑니다. 송아지는 태어나는 즉시 어미젖을 찾습니다. 너무 너무 신비 합니다. 그것이 본능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동물은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항상 주님을 찾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근원이 주님이시고, 인간의 영원한 삶의 터전은 천국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로 올 줄 모릅니다. 거북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향하고, 송아지는 어미젖을 찾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주님을 찾아 가고, 교회를 찾아 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다 교회로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할렐루야!

 

5.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교만을 경계합니다.

세상에서 육적으로 성공하면 자신도 모르게 배가 부르기 쉽습니다. 돈과 지위는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힘도 가지고 있지만, 나쁜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돈과 지위는 내 심령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고,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게 합니다.

돈이 성도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돈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다루기 어렵습니다. 돈은 가난한 심령을 배부른 심령으로 만듭니다.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보화를 가지면 가난한 심령이 서서히 배가 불러집니다.

심령이 배부르게 되면 기도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고, 열심히 식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서서히 식어집니다.

무엇이 우리의 심령을 배부르게 만듭니까? 성도는 아무리 성공을 크게 해도 심령은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늘 가난하게 유지하기 위해 영적인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6.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것에 늘 갈급합니다.

모든 이단들의 특색은 나는 부족합니다. , 나는 늘 부족할까?” 라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늘 최고로 잘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17:5)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늘 갈급해 하고, 늘 부족함을 느끼고, “주님 만을 의지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심령이 늘 가난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