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15.[산상복음15]화평케 하는 자의 복

☆ 주님의 머슴 2021. 3. 12. 11:12

주일설교(2015/08/23) - 산상설교(15)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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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1. 화평케 하는 자

2.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음

 

마음이 깨끗한 자가 화평케 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늘 하나님을 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그러므로 걱정 근심이 없습니다. 두려울게 없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늘 평안합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한 자, 마음이 평안한 자가 사람의 마음이 평안케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을 만드는 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험악한 분위기를 평화의 분위기로, 기분 좋은 분위기로, 사람들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 안식을 주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존귀한 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함으로 늘 곁에 두고 싶은 사람, 하나님에게 가장 귀한 존재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옆에 24장로, 네 생물, 천사들이 둘러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48번정도 나옵니다. 대부분이 예수님을 향해 말할 때 사용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말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면 예수님과 동격으로 예수님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예수님이 될 수는 없는 거지요. 구약성경에 보면 창세기6, 욥기1,2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님을 말씀하는게 아닙니다. 천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귀히 여긴, 하나님 곁에 늘 두고 싶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 중에는 하나님께 가장 존귀한 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이 곁에 두고 싶은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동으로 사람들에게도 인정 받겠지요? 이런 사람들이 자동으로 복을 받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조화의 삶이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화목입니다. 화평, 화목한 삶은 최고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는 민족과 나라를 들어쓰십니다. 헬라의 대표적인 두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국민성이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스파르타식 훈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 국민에게 강한 군사 훈련을 시켰던 스파르타는 지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의 나라 영토를 빼앗기 위해 모든 국민들에게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는 결국 망하여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와 달리 온유하고 평화를 좋아했던 아테네는 운동 경기를 위해 일체의 전쟁 행위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 받고, 이러한 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금도 전 세계는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픽을 열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는 아테네에서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밝히는 성화도 아테네의 올림푸스 산에서 채화해 옵니다.

 

하나님은 화목케 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싸움을 좋아하고 공격을 일삼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다 잠깐입니다. 고양이 같이 남을 삼키려는 자들은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은 오래 갑니다.

 

마귀는 연합을 싫어하고 화평을 거부합니다. 고립을 좋아합니다. 대체로 보면 늘 혼자 있는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합니다. 친구도 없고, 대화도 없고,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늘 고독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여러분! 우울증 환자들을 보세요. 친구가 없습니다. 대화가 없습니다. 늘 혼자 있으면서 고독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살하는 겁니다.

여러분! 불면증에 걸려 있는 사람은 대부분 혼자입니다. 대화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친구 만나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불면증도 없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잠 잘 오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아무리 잠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오는 사람들은 잠 안 자면 됩니다. 잠 안 오거든 억지로 누워서 자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잠 자지 말고, 일어나서 책을 읽든지, 성경을 읽든지 하면 됩니다. 그것도 조금 읽다가 치우는 게 아니고 잠 올 때까지 읽으면 됩니다. 아니면 밖에 서 운동을 세게 해서 피곤하게 하든지, 사람을 만나서 큰 소리로 수다를 떨든지 그러면 저절로 잠 옵니다.

마귀는 연합을 싫어합니다. 화평을 거부합니다. 고립을 좋아합니다. 여자들이 혼자서 강가나 호숫가를 거닐든가, 공원을 산책한다든가, 고독을 씹으면서 벤츠에 멍하니 앉아 있다든가..... 그런 여자는 위험한 여자입니다.(^^) 대부분 고독병에 걸리거나 우울증 환자들이 그런 증상을 보인답니다. 자꾸 혼자 있고 싶고, 말하기도 싫고,......... 이건 좋은 게 아닙니다. 마귀는 대부분 이런 사람들에게 잘 붙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음에 화목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만나 대화하면 뭔가 답답합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도리어 스트레스 받습니다.

답답하고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목이 없고, 평화가 없습니다. 무언가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옆에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그 사람만 만나기만 하면 기분이 안 좋고,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비둘기는 참으로 화목한 동물입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줘 보면 그들이 얼마나 화목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비둘기는 먹이를 앞에 놓고 싸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정하고 화목하게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중에는 새 종류로는 비둘기가 있습니다. 새 종류로는 비둘기가 유일하게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 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 요

 

하나님께 바치는 동물들은 모두 순 합니다 하나님께서 양이나 소는 바치게 하셨어도, 말은 바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말은 뒷발질을 잘 합니다. 이리나 늑대는 공격형이 강하기 때문에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맹수들은 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동물들은 번식도 잘합니다. 맹수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잡아 먹혀도 번식을 아주 잘합니다. 그러나 맹수들은 종족보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순한 동물을 깨끗한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동물만 바쳐지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새 종류 중에서 순하고 화목한 비둘기만 바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중에서 최고의 선물은 화평입니다. 화평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화평이요, 화목입니다. 너와 내가 하나되는 것이 화평이요, 화목입니다. 성도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화평케하고, 분위기를 좋게하고, 기분을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로마서129절부터 31절까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29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화평과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최고의 목적도 화목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후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님은 화평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화평입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에이레네”(eirene)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샬롬”(shalom)입니다. “에이레네샬롬첫째는 완전한 평화, 완전한 행복 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모든 만족과 모든 좋은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완전한 인격이 일어나고, 사람과의 사이에 친밀한 교제, 사귐이 일어나고, 그 사귐이 전혀 방해 받지 아니하는 상태를 에이레네또는 샬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도 인사가 다 있습니다. 그 인사 속에는 평화라는 뜻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각 나라의 아침 인사 속에는 모두가 평화, 평안을 비는 뜻이 다 담겨 잇습니다. 아마 옛날 전쟁, 기금, 전염병이 늘 있을 때는 살아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하는 인사는 대부분 평안하기를 비는 인사입니다. 각 나라의 아침 인사들을 대충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아침 인사>

안녕하세요? 밤새 안녕하십니까? <한국>

Good morning. <영국,미국>

구텐 모르겐 <독일>

봉주르 <프랑스>

오하요오 고자이 마스 <일본>

니 자오와(니 자오완) <중국>

부온 죠르노 <이태리>

봉 지아 <폴투갈>

부에노스 디아스 <스페인>

솨바-할 카이르 <아랍>

-브로에 우-뜨로 <러시아>

 

오늘 본문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은 ‘peace Maker’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평화를 만드는 것은 거창하고 큰 평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이웃에게,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 그게 바로 작은 화평을 만드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거창하게 큰 것이라야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면 꼭 그 사람만 오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좋은 분위기가 나쁜 분위기로 깨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못 느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런 실수들을 한 번 이상은 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말만 하면 되는데 너무 오버해서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교회는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괜히 자기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다 설렁해지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일 평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안 끼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근심을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도와준다는 게 도리어 도움은 안 되고 부담만 주고, 걱정만 끼치고, 힘들게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가 그 한 사람 때문에 웃음이 있는 분위기로,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평화를 만드는 ‘peace Maker'입니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고, 근심 걱정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좋은 말로 위로해 주어서 그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평안이 생긴다면 이 사람은 peace Maker입니다.

 

나이팅게일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돈과 정성으로 도우라.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도우라. 몸으로 할 수 없거든 말로라도 도우라, 말로라도 할 수 없거든 말없이 묵묵히 관심을 가지고 바라봄으로 도우라

 

화평의 기초적인 진리는 침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말없이 묵묵히 하는 것이 화평의 시작입니다. 말이 많은 것은 화평이 아닙니다. 말이 많으면 화평은 도로 깨어집니다.

 

내가 화평케 하는 자인지 아닌지 아는 비결은 내가 말을 많이 하는지 말을 안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들은 것을 다른 사람한테 많이 옮기는지를 보면 압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면 나로부터 시작해서 화평이 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혀를 제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는 불화가 살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한다는 말은 우리가 좋지 않는 말, 무가치 한 말, 남의 험담을 늘어 놓는 말을 듣거든 다른 사람들 한데 옮기지 마라라는 말입니다. “말하기를 더디 한다는 말은 무가치한 말은 옮기지 마라는 뜻입니다. 듣기는 하지만 나만 알고 다른 사람한데 말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말은 옮길 때마다 가지를 쳐서 덧붙이게 됩니다. 결국은 끝에 가서 싸움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만드는 사람은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말을 많이 옮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특히 교회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불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 불화는 주로 말 때문에 일어납니다. 내가 어떤 말을 전해 들었다면 다른 사람한데 전하지 마십시오. 설령 대꾸하려는 유혹이 생기더라도 대꾸하지 마십시오. 좋은 친구는 나쁜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 말을 전해주지 않는 자입니다. 나쁜 친구는 들은 대로 그대로 다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전 할 때는 더 화가 나도록 보태어서 전하기도 합니다. 가슴에 더 불을 지르는 게 나쁜 친구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말하고 싶은 충동이 많이 일어나더라도 화평을 위해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화평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면서 말이 없었습니다. 너무 말이 없어서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자기에 대한 변명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27:12-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여러분,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시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부부 싸움의 제일 큰 원인은 아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랍니다. 남편이 실수한 것에 대해 너무 많이 말을 합니다. 말로 다 끝장을 보려고 합니다. 남편이 화가 나 있으면 말을 안 하면 참고 넘어 갈 것도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속을 다 뒤집어 놓습니다.

 

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 하겠다고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다 표현하고 주장하는 사람치고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다 표현하는 사람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직장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없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화평을 만드는 자는 반드시 다음 세 가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화평이 있어야 됩니다. 세 가지의 관계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화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첫째는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화평입니다. 자기 자신 속에 평강이 없으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자신 속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도 화평하지 못한데 어찌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신이 늘 불평이 가득하고, 평안하지를 못하고, 비판적인데 어떻게 남에게 화평케 하겠습니까?

둘째는 하나님과 화평입니다. 육신의 일에 관심이 많고, 세상적인 생활에 젖어 사느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화평케 하겠습니까?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화평케 하는 peace Maker” 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사람과의 화평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화평하지 못하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좋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마귀가 침투하여 역사하면 믿음이 불신이 되고, 사랑이 미움이 됩니다. 없는 말을 만들어 퍼뜨리고, 나쁜 말만 전달하여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의 좋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마귀는 시기, 불신, 미움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3: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화목하게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아들들은 어떻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불신을 갖게 하고, 서로 싸우게 하고, 시기, 미움이 생기게 합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사이를 나쁘게 만듭니다.

 

어떤 며느리는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를 갈라 놓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과 시부모 사이를 갈라 놓게 합니다. 남편의 형제들 사이를 갈라 놓는 부인도 있습니다. 형제 사이가 나빠지게 되는 대부분의 원인은 부인한테 원인이 많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는 좀 어리석은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말을 더 믿게 됩니다. 또 집안이 조용해지기 위해서도 여자 하자는 대로 하게 됩니다.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여자분들이여,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남편 하자는 대로 하면서 삽니까? 결국은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남편이 권리를 가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결과적으로는 여자분들 뜻대로 하면서 안 삽니까? 집안을 화평하게 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형제들 사이를 화평하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형제들 이간시키기가 쉽습니다. 형제들 원수되게 하는 것 쉽습니다. 옆에 있는 부인이 살살 몇 마디씩만 없는 말 만들어서 해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교인들 간에도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말 한마디로 사이가 나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것은 전부 말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붙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화평은 거창하게 큰 일을 해야 화평하는 게 아닙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화평케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가는 곳마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