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산상복음21]등경 위의 삶을 살자(2)
주일설교(2015/10/04) - 산상복음(21)
등경 위의 삶을 살자(2)
마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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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빛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요, 인간 본성에는 다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이 이기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인간 속에는 빛을 비출 수 있는 빛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주님이 내 속에 빛을 주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에게 예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는 빛이 될 수 없지만,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가 빛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빛이신 예수님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내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로 인해서 예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삶에 예수의 빛이 나타나고, 내가 예수의 빛을 비추는 반사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을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등경 위의 삶을 사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등경 아래의 삶을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5절)
등불을 켜면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로 올립니다.
“등경 위에 있다”는 말은 반대로 “등경 아래에 있는 인생”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빛을 주신 것은 내가 등경 위에 인생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빛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은 불을 켜면 반드시 등경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 아래에서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등경 위에 올라가야 만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등불은 기독교인입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등경 위의 등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 스스로는 등경 위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등경 위에 올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등경 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두 가지의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등경 위의 인생이 있고, 또 하나는 등경 아래의 말 안에 갇혀있는 인생입니다.
먼저, 등경 위의 인생은 하나님이 그렇게 올리셨습니다. 등불이 자기 스스로 등경 위로 올라 갈 수 없습니다. 등경 위의 삶을 사는 자들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압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사람들은 다 등경 위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 능력, 내 힘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내 지혜, 내 지식, 내 경험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 등경 위에 올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올리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등경 위에 올리십니까? “집 안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집 안”은 내 삶의 자리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곳, 내가 살고 있는 그 시대를 말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장소, 그 곳, 그 시대에 하나님은 나의 삶을 위로 올려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는, 말 아래 갇혀 있는 인생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불을 켜서 사용하다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등불을 등경 위에서 내려 말 같은 그릇으로 덮어 둡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라는 말은 등불을 켜면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기 위해서 등경 위에 올려놓지 등경 아래 말 같은 것으로 덮어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 아래 둔다”는 말은 ‘말 안에 가두어 놓는다.’ ‘말로 덮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등불을 사용하지 않는 낮에는 등경이 넘어져 기름이 쏟아질 수 있으니까 등경 위에 올려놓지 않고 아래로 내려놓고 말 같은 그릇으로 덮어 놓습니다.
말 아래 갇혀 있는 인생을 말합니다. 제한된 인생입니다. 빛이 없기 때문에 말로 덮어 버립니다.
불이 켜져 있어도 말로 덮어 놓으면 서서히 불이 꺼져 버리고 맙니다.
어둠이 덮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포기, 주저앉아 버린 인생입니다.
삶이 답답하고 숨 막히는 인생입니다.
환경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가난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질병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가정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죄악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잘못된 사상의 말에 갇혀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에 갇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더 불쌍한 것입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
여러분, 예수 없는 인생은 말 아래 갇혀 있는 인생입니다. 내 속에 빛이 없기 때문에, 빛을 비추지 못하기 때문에, 방 구석진 곳으로 밀어내고, 말로 덮어 버립니다.
문제가 뭐냐하면, 내가 어둠에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빛이 와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세 번째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등경 위로 올라 갈 수 있을까요?
불이 켜지면 등경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주인이 호롱불에 불이 켜지면, 말 아래 두지 않습니다. 등경 위로 올리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빛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등 자체를 보고 올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다 등입니다. 고급 등이 있고, 아름답게 만든 등도 있고, 금으로 만든 등도 있고, 은으로 만든 등도 있고, 동으로 만든 등, 철로 만든 등도 있고, 흙으로 만든 등도 있습니다. 등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늘 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은 켜지지 않으면서 등을 잘 다듬고, 등을 꾸미기에 바쁩니다. 등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등은 아무렇게 생겨도 불이 켜져야 합니다. 불이 켜지지 않는 등은 겉이 화려하고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의미 없습니다. 불이 켜지지 않는 등은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다 등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다 등입니다.
여러분, 등은 볼품이 없어도 불이 켜지면 등경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을 켜려고 해도 불이 켜지지 않는 등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름과 심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은 항상 함께 붙어 다닙니다. 이 둘은 절대 필요합니다. 이 둘이 없으면 빛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기름이 절대 중요합니다. 기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름이 뭡니까? 기름은 주님의 생명입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주님의 영, 주님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인 것은 빛이신 주님이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성령이 내 속에 오셔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심지입니다. 심지는 뭡니까?
등불을 밝게 유지하려면 기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심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지도 평소에 손질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요즘 전기로 살기 때문에 심지의 중요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심지를 날마다 손질했습니다. 심지에 일단 연기가 나면 검은 연기만 나오지 불빛을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심지에 검은 연기가 나지 않도록 늘 손질을 해야 합니다.
심지가 뭡니까? 주일성수, 예배, 기도, 순종, 헌신, 십일조, 이런 것이 심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심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늘 점검해야 합니다. 심지는 늘 기름으로 젖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은 심지를 통과합니다. 심지는 늘 기름을 머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머금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며”(빌3:13)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4:11) 신앙생활은 성령을 품고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심지와 기름이 만나면 불이 붙습니다. 불이 붙어 빛을 내면 등경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을 등경 위의 인생으로 올리고 싶어 합니다.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28:13-14)
네 번째는, 하나님은 등경 위에 올리실 때 어떻게해서 올리시는가를 보십시다.
우리 다같이 고전1장 26-29절을 찾아 읽으십시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1) 미련한 자는 지혜를 주어 올리십니다.
지혜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등경 위에 올리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롭게 해서 올리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실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실력을 주어서 그 실력을 극대화시켜서 사용하십니다.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실력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 하라. 할렐루야!
2)약한 자는 봉사하게 해서 올리십니다.
3)천한 자는 섬기게 해서 올리십니다.
4)멸시받는 자는 충성하게 해서 올리십니다.
5)가난한 자는 심게 해서 올리십니다.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8-9)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고전15:42-44)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높이 올리셔서 1) 등경 위의 올려져 빛을 비추는 인생이 있고, 2) 말 아래 갇혀 있는 인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등경 위에서 중심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