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52.[산상복음52]나무와 열매

☆ 주님의 머슴 2021. 4. 26. 17:48

주일설교(2016/8/7)-산상복음(52)

나무와 열매

7:16-20,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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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징조를 보아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눈치 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신부들이 단장하는 것입니다. 신부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신랑이 오지를 못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는 이유는 신부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준비가 덜 되어 있으면, 결혼예식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신랑이 올 수가 없는 겁니다.

 

결혼식을 할려면, 우선 결혼 날짜를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 날짜를 잡으려 해도 신부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혼 날짜를 잡을 수 없습니다.

 

계시록 197에 보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고 말합니다. 혼인 기약은 혼인잔치 할 수 있는 날짜를 말합니다. 혼인날짜가 정해졌다는 말입니다. 혼인날짜가 정해지려면, 아내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신부가 없는데 결혼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아들이 어느 날 와서 아빠, 결혼시켜줘요?” “그래, 결혼 해!, 그런데 신부는 있냐?” “없는데요!” 그러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겠어요? “, 신부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해! 결혼할 신부를 준비해야지! 결혼할 신부 생기면 결혼시켜 줄게....!” 신부가 준비되면 결혼날짜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결혼하기 전 약혼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약혼한 상태에 있는 겁니다. 약혼식만 했을 뿐, 결혼식은 날짜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을 해야 메시야의 왕국에 들어가서 신혼방을 차릴 수 있는 겁니다. 결혼식을 할려면 반드시 신부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준비 안 된 신부는 결혼식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4,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간다고 하십니다. 이 처소는 혼인잔치 한 후에 함께 거할 신혼집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리 거처할 집을 마련하고, 혼인잔치를 하고 싶어도 아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혼인잔치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약혼만하고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입니다. 신부는 혼인잔치를 위해서 자기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7에 다시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했습니다.

-->신부는 자기를 위해서 자신이 준비해야 합니다. 누구가 대신 준비해 주는게 아닙니다. 신부들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되지 못하면 결혼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결혼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2장의 가나의 혼인자치 이야기22장의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이야기’, 25장의 열 처녀 비유 이야기이 모든 것이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혼인잔치 이야기는 앞으로 있을 주님이 오실 때 어린 양 혼인 잔치에 대한 예표입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 마지막 때에 반드시 어린양 혼인 잔치가 있다는 겁니다.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 9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다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믿지 않는 자가 있을 것을 생각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라고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양 혼인잔치에 신부가 되어 참여해야 메시야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아내로서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어떻게 자기를 준비해야 합니까?

8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세마포 옷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마포 옷을 입어야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가 준비되어야 주님이 혼인잔치 하러 오시는 겁니다. 그럼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는 이유가 뭐냐하면, 아직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들이 준비되지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신부들이 세마포 옷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들이 충만하게 준비되면 그 때 예수님이 혼인잔치 하기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모두가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그러나 신부라고 해서 다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세마포 옷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세마포 옷은 겉옷입니다. 옷은 겉옷이 있고, 속옷이 있습니다. 계시록79에 보면, 흰 옷 입은 무리가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흰 옷 입은 무리가 누구냐 하면,

그 다음 1314에 보면, “흰 옷 입은 자들...........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천국에서 찬양하고 있는 겁니다.

 

이 흰 옷은 겉옷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옷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의 가죽옷부터 굵은 베옷, 채색 옷, 흰 옷, 세마포 옷, 의의 옷, 구원의 옷 성경은 많은 곳에서 옷에 대해서 말씀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 우리가 지금 몸을 가리기 위해 입고 있는 이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영적인 옷을 말하는 겁니다.

 

옷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겉옷이고, 또 하나는 속옷입니다.

이사야 6110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여기서 구원의 옷은 속옷입니다. 그리고 공의의 겉 옷은 겉옷입니다.

 

*구원의 옷 - 속옷 -->속사람의 변화 믿음, 거듭남, 구원입니다.

*공의의 옷 - 겉옷 -->믿음으로 사는 것, 즉 행위 이것은 세마포 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가 하나가 되어야 주님 오실 때, 어린양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는 첫째는 정결해야 합니다.

계시록16:15에서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것 이것이 정결입니다.

믿음과 행위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옷을 지킨다는 말은 겉옷과 속옷을 지킨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믿음과 행위를 일치시킨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옷을 입을 때는 깨끗합니다. 자꾸 입고 다니면 때가 묻고,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옷을 빨아야 합니다. 옷을 빠는 것이 회개입니다.

 

22:14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두루마기는 겉옷입니다. 잘 더럽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빨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빨아야 합니까?

 

다시 7:13-14을 봅시다.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는 겁니다.

회개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회개가 되는 겁니다. 교회에 나와서 늘 예배함으로 어린 양의 피로 내 옷을 빨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옷은 예배를 통하여 늘 빨아야 합니다. 옷을 안 빨면 냄새가 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고약한 냄새를 풍깁니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는 고약한 냄새만 풍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욕 얻어먹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겁니다.

 

옷을 빨지 않아서 , 그리스도인의 옳은 행실이 나빠서, 세마포 옷을 입지 않아서 세상이 교회를 욕하는 겁니다.

 

우리는 속옷과 겉옷을 지켜야 합니다. 구원의 옷과 의의 옷을 지켜야 합니다. 이 옷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공짜로 주시는 겁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다 그냥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옷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서서히 나도 모르게 신앙에 변질이 와서 옷을 지키지 못하고 벗겨져 버립니다. “벌거벗었다는 말은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7:13-14에 보면,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라는 것은 큰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킨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을 옷이 벗겨져 벌거벗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옷이 벗겨져버리면,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둘째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벧후3:11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여기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은 계19:8의 오늘 본문말씀 옳은 행실과 같은 말씀입니다.

 

세 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제사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할 신부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살전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하노라

-->주님의 신부는 정결해야 되고, 거룩해야 되고, 깨끗해야 되고, 흠이 없어야 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과 결부시켜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나무와 열매를 말합니다. 여기서 나무 사람을 말합니다. 열매신앙생활, 또는 옳은 행실을 말합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16-20)

예수님은 여기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라는 말로 시작해서 20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게, 좋은 나무 좋은 열매, 그리고 나쁜 나무’ ‘나쁜 열매입니다. 여기서 나쁜이라는 말은 썩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냄새나거나 썩은 나무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쁜 나무도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품질이 좋지 못한 열매, 보잘 것 없는 열매, 상품 가치가 없는 열매를 말합니다.

여기에 두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오히려 나쁜 나무가 잎이 더 무성하고, 더 많은 열매, 더 좋은 열매를 맺을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의 영적상태, 신앙상태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가 실생활, 행실, 태도,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깨끗하고 빛난 세마포 옷입니다. 즉 구원 받은 자가 입는 겉옷입니다.

 

그 나무가 아름다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그 인격이 성숙되어 있어야 하고, 그 신앙이 그 나무 심령 속에 농축되어 있어야 하고, 신앙과 인격과 영성이 그 심령 속에 농축되어 있다가 그 열매에 공급해 주어야 그 열매가 추수할 때까지 빛깔 좋고, 영양분이 풍부하고, 성숙한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나무의 심령에 얼마나 영성이 농축되어 있는가? 신앙과 인격이 얼마나 농축되어 있는가? 이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얼마나 믿음으로 사는가? 그 믿음이 내 속에 얼마나 정확하게 농축되어 있다가? 생활 속에, 내 삶 속에 스며들고 내 삶 속에 나타나는가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본성이 바뀌어야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의 본성으로는 좋은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믿으면 성품이 거듭나야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성품으로는 천국에 못갑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인격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의 나무는 열매는 맺힙니다. 문제는 그 열매가 나쁜 열매라는 것입니다. 상품가치가 없는 열매입니다. 보통 일반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열매가 상품가치가 있는지 없는 잘 분간이 안 되지만, 전문가이신 하나님이 볼 때는 상품가치가 없는 나쁜 열매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19절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39-10절에서 세례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왜 열매가 중요하냐 하면, 세상 사람들도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열매를 맺었습니다. 자기들은 좋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볼 때는 상품가치가 없는 열매입니다. 나쁜 열매인 것입니다.

 

입었다고 다 옷이 아니고, 맺었다고 다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여야 하고, 극상품 포도여야 하고, 상품가치가 있는 열매여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외견상으로는 신앙이 좋고, 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과 본성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변화되지 않는 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면 마음은 대체로 감정의 자리가 아니라, 인격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233절이하에서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720-23에서는 “(20)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반드시 외부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그 신앙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실생활과의 관계에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같이 갑니다. 본성은 결국 외부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사람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항상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조심하고 감추고 있어도 언젠가는 속에 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18) 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19) 성도의 옳은 행실이 없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 1편에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성령의 강가에 깊은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교회의 말씀에, 교회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세상에 뿌리 내리지 말고, 물질만능주의에 뿌리를 내리지 말고, 사회집단에 뿌리 내리지 말고, 교회에, 말씀과 은혜가 충만한 곳에 뿌리를 내리십시오. 할렐루야!

그래야 구원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의의 옷, 빛나는 세마포 옷, 신부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