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54.[산상복음54]두 집

☆ 주님의 머슴 2021. 4. 26. 17:52

주일설교(2016/8/21)-산상복음(54)

두 집

7:24-27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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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산상복음 전체의 결론입니다. 이것을 행하면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되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 바로 입니다. 모든 성도는 다 입니다.

 

히브리서 34-6에서 (4)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4-6)

여기서 집은 우리 모든 성도를 말합니다.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니까 성전입니다. 모세는 집을 잘 관리하고, 집을 튼튼하게 잘 짓게 하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 맡은 아들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반석되신 예수님 위에 집을 지으면 튼튼한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에서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고린도전서 39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예수님이 반석이시고 모퉁이의 돌이십니다. 만세 반석이십니다. 절대 흔들지 않고 튼튼한 반석이 예수님입니다. 성도는 평생 집을 짓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의 집을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집을 지었는데, 어느날 한꺼번에 그 집이 무너집니다. 모든 인생이 사상누각이 되어 버립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말씀으로 든든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산상복음의 말씀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지면 자동으로 그냥 행하는 자가 됩니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1618절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교회도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신앙도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도, 내가 하는 사업도, 내가 꿈꾸는 계획도, 내 모든 인생 전체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든든히 서 가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십시다. 여기에 두 사람, 두 집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영적인 진리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집을 짓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머리에 상상을 해 보십시오. 심지어 내가 꼭 그 집 짓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 집 짓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니, 내가 그 집을 짓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이 두 집을 짓는데 비슷한 유사점이 참 많습니다.

첫째는 그들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가족과 함께할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집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같은 것을 원했습니다. 같은 것을 생각했고,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둘째는 그들은 같은 장소에 집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집이 정확히 같은 시험과 같은 압력, 같은 환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집은 서로 매우 가까이에서 같은 상태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두 사람은 분명 같은 종류의 집을 지었습니다. 설계도도 똑 같았고, 모양도 똑 같았고, 자재도 똑 같았고, 같은 장소, 같은 위치, 같은 모양, 아마 같은 색깔, 모든 면에서 똑같았습니다. 기초 이 외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다른 차이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골길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저 건너편에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똑같은 집들을 2층 집으로 남향으로 지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해안으로 차를 운전해서 가다보면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똑 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로 펜션들을 지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지요, 그것을 보면서 나도 저런 곳에 집을 지어 놓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집들도 이와 같습니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자재를 가지고, 똑같은 크기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다 똑 같은데 딱 하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작은 차이점 같지만 하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하나의 차이점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딱 그 하나의 차이점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집을 다 지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 만족 했습니다. 처음에 계획한대로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였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면서 이 부분을 깊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인 눈으로 속을 보아야지, 겉만 보지 말아라. 영적인 눈으로 인생의 깊은 곳을 보아라. 같은 것 같이 보이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같은 인생을 살고, 같은 집을 짓지만, 같은 집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같은 인생을 살고, 같은 집을 짓는 것 같지만, 같은 집이 아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같은 집을 지으면 안 된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교묘한 계략으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한 기독교인과 거짓된 기독교인은 차이점이 분명하다. 우리의 눈으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기독교인과 거짓 기독교인은 미묘한 차이점 밖에 없어서 구분해 내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는 진정한 기독교인과 거짓 기독교인을 구분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과 거짓 기독교인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차이점이 있거나 구분해 낼 수 있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대로 거짓 선지자도 양의 옷을 입고 오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도 표면상으로는 참선지자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라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경을 부정하거나 초자연적인 기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인정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여러분, 참 목자와 삯꾼 목자의 차이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차이점이 아주 미묘합니다. 그러나 이리가 올 때는 다릅니다.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고 늑대가 올 때는 양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입니다(10:12). 참 목자는 이리가 오고, 늑대가 올 때는 함께 싸운다는 것입니다.

 

참 성도와 거짓 성도의 차이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성도는 평소에는 모릅니다. 그 차이점이 아주 미묘합니다. 다 좋은 성도로 행세하고, 좋은 성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고난이 오고, 환난이 오고, 어려워지면 자기만 살겠다고 산천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양, 목자를 알고 목자를 따르는 양은 위기가 오고,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 뭉칩니다. 한 덩어리가 됩니다. 참된 성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한 덩어리가 되고, 한 공동체가 됩니다. 양들이 풀을 뜯어 먹다가 이리가 오고 늑대가 오면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면 그 양은 양도 아닙니다. 이리 밥이 되는 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지면 다 산짐승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덩어리가 되고, 약한 양, 어린 양은 안으로 들어가고, 강한 양, 어른 양은 밖으로 나오고, 그래서 원을 그리며, 한 공동체, 한 덩어리가 되면 이리를 이겨내고, 늑대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목자가 지키고, 이리를 쫓아내고, 그래서 양들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두 집이 있습니다. 똑 같이 집을 지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차이점을 알 수 없습니다. 누구가 거짓 성도인지, 누구가 참된 성도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입니다. 누구가 천국 갈 수 있는지, 누구가 지옥 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시험이 와서 홍수가 밀어 닥치고, 바람이 불 때에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때 알면 이미 늦는 것입니다. 이미 망하고, 이미 무너지고 난 후 알면 뭐합니까? 신앙이 왜 필요합니까?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렇게 홍수로 무너지기 전에 내가 미리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천국 갈지 지옥 갈지 아는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무너지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이 주시는 안약을 바르고(3:18), 성령이 주시는 기름 부음을 받고(요일2:20), 분별력을 받으면 이 두 집에 대한 차이점을 처음 지을 때부터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분명히 볼 수 있는 차이점이 뭡니까?

여기서 우리가 누가복음 646-49의 말씀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6:46-49)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현명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면에 믿음생활을 잘 하지 않은 사람은 땅을 전혀 파지 않습니다. 기초를 닦는 수고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래 위에 그냥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을 찾아 내려면, 어리석은 사람을 상세히 분석해 보면 됩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먼저 성미가 아주 급합니다. 무슨 일이든 즉시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아주 정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816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여기서 다급하게 되다 라는 말은 재촉하다”“서두르다라는 말입니다.

집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 사람은 결코 당황하거나 흥분하거나 동요하거나 성미가 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작정과 목적과 계획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기에 전혀 동요되지도 않고, 불안해 하지도 않고, 다급하지도 않습니다. 늘 마음이 차분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참을성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끈기가 없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생활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일수록 인내가 있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집을 지어본 전문가한테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자들의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때는 법규가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도 있습니다. 건축가는 설계도 대로 지어야 하고, 많은 전문가의 조언도 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사람은 교만합니다. 자존심도 강해서 전혀 이런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계획대로 짓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보다 나은 신앙의 선배에게 물어 보지 않습니다. 전문가인 주의 종에게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 은근히 무시하고 자기가 제일인 줄 압니다. 그래서 자기 방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왜 나오십니까? 우리는 다 우리의 심령에 집을 짓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에베소서 221-22그의(예수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1-22)

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될 때, 내가 최고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바로 믿고, 신앙생활 잘 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십시오. 최고의 집이 되십시오. 그러면 축복의 집이 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가장 중요한 말씀시험의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반드시 시험의 때가 옵니다. 성도는 여러 모양으로 일상생활에서, 교회에서, 신앙생활에서 시험이 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험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짓는 인생입니다. 성도가 신앙생활하는 것도 집을 잘 짓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성도는 내가 하나님이 거처할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해 집을 짓습니다.

 

신앙생활은 튼튼한 집을 짓는 일입니다. 사탄은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항상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생활 하면서 늘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25절과 27절은 집을 지은 성도들에게 시험이 오는 장면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이 시험에 무너지면 다 떠내려 가 버리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라고 말씀합니다.

 

바람은 옆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환경의 바람, 사람으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고난, 어려움입니다. 주위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창수는 밑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즉 자기 속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정욕, 성질머리, 혈기 등등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는 위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시험들은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합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 집을 못 짓게 합니다. 지어 놓은 집도 무너뜨립니다. 내 자신이 다 집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는 집은 무너집니다. 반드시 무너집니다.

 

집은 옆에서 부는 바람, 밑에서, 안에서 오는 창수, 위에서 내리는 비에 반드시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집은 뜨거운 햇빛, 추운 겨울에도 견디어 내어야 되고, 강한 바람, 폭풍에도 견뎌야 하고, 긴 장마철 비에도 견디어 내어야 합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집이 지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반드시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게 우리에게 산상복음의 말씀을 주신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 산상복음을 주시면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말씀 위에 인생의 집을 세우고, 반석되신 예수님 위에 나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반드시 반석 위에 세워지는 집이 되자.’ ‘무너지는 성도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