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40.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 주님의 머슴 2022. 9. 17. 15:45

<마가복음 묵상(40) - 2022/9/1>

40.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8:27-30, 16:13-20

================================================================

8: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8: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8: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예수께서 뱃새다를 떠나셔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 여러 마을을 둘러보고 나가서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제자들에게 생애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은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1)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는 앞에서 예수께서 전하신 많은 교훈과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런 교훈들과 기적들은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많고, 색다르고, 잘 증거되고, 다양하며, 여러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일들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 20:31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여기서 제자들과 앞으로 교회들에게 예수께서 참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세상의 구주이심을 깨닫게 하고 증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데리고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서 마을들 사이로 난 길을 다니시면서 그 도시를 보여 주시고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질문하셨을까?

 

이것은 그 당시 빌립보 가이사랴도시가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이 도시는 그 당시 열네 개 이상의 신전을 가진 바알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헬라의 자연신 판(Pan)이 생긴 곳이다. 그래서 빌립보 가이사랴의 본래 이름은 파니아(Panias)라고 불렀다. 후에 헤롯 왕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숭배하기 위해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대리석 신전이 지어졌다. 그리고는 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로 바꾸었다. 그런데 후에 헤롯 왕이 죽고 그 아들 빌립이 왕이 되자 자기 이름을 가이사랴앞에다가 붙여서 빌립보 가이사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빌리보 가이사랴는 군사 도시였다. 그 당시 로마가 팔레스틴(그 당시의 중동지역) 전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군대를 파송한 로마의 군사령부가 있던 도시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이러한 로마의 힘(팍스 로마), 군대의 힘, 군사력을 보여 주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시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로마의 힘, 즉 군사력을 보여 주고는 제자들에게 “1)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2)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두 번씩이나 물으신 것은 너희들은 다르다. 너희들은 로마의 힘 앞에 주눅 들지 마라. 세상은 로마의 힘 앞에 쭈그려 들지만,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 너희는 세상과 다르다. 로마의 힘 앞에 당당히 주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회는 당당하게 로마의 힘(세상의 힘) 앞에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의 힘은 예수님이 재림해 오실 때까지,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나타난다. 로마는 세상의 힘이다. 로마가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힘인 것이다. 로마의 힘은 계속 생성되어 지고, 이어져 가는 것이다. 이 로마의 힘, 세상의 힘 앞에 교회(성도)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항상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1.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28).

예수를 축소하고 과소평가 하기를 원한다.

1)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라고 했다.

2)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했다.

3)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다.

 

보통 예수를 의로운 위인, 세상에서 선생, 예언자,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분, -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읽은 위인전집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예수도 들어 있다. 거기에는 세계에서 위대한 위인들은 다 나온다. 여기에 예수가 끼워져 있다.

 

예수를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배척한다.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일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2. 제자들이 보는 눈(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어떤 보느냐에 따라 신앙고백이 달라진다.

제자들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생각하며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요, 신앙생활의 기초이다. 교회의 기초요, 가정의 기초이다. 교회는 이 기초 위에 세워진다. 교회는 이 기초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성도는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한다.

성도가 교회이다. 교회는 이 고백이 있어야 교회이다. 올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곳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 고백이 있어야 십자가를 극복할 수 있고, 부활을 맛보고, 영광과 천국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일곱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를 보았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13-16)

 

그리고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1:20) 했다.

 

일곱 촛대는 교회라고 했다. 교회 사이로 거니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교회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그 속에 거니시는 것이다. 성도가 진정한 교회가 되어 있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거니신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거니시게 하려면 내가 완전한 교회가 되면 된다. 완전한 교회는 온전한 신앙고백이 일어나는 곳이다.

 

모든 역사는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소유하고, 우리 모든 죄가 사해지고, 평안과 안식이 일어난다. 이것은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온전한 신앙고백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신앙고백이 있는 자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된 성도는 그분 안에서 크게 만족하며 산다. 그분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얼마 동안의 시련도 극복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나를 향한 질문에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 된 자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그와 함께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