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완전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
롬3:9~18
2013년 6월 16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설교: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신)총회 수원노회 소속입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이 “대한 예수교 장로회 장안중앙교회”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교회는 장로교 정치제도를 갖고 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장로교회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신학과 성경을 기초로 세워진 교파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강요’라는 책을 비롯하여 신구약 성경주석과 설교 등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저술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성경에 근거한 가장 건전한 교회는 타락한 천주교회가 아니고 ‘장로정치’제도를 갖춘 교회라고 믿고 장로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중에 ‘칼빈주의 5대 교리’라는 교리가 있는데 성경에 나타난 ‘인간론’과 ‘구원론’을 바르게 정립한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칼빈이 세운 교리가 아닙니다.
1600년대에 이단으로 정죄된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장한 교리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5가지 교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은 교리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알미니우스'와 그 제자들이 주장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1)부분적 타락입니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기에 자력(自力)으로 구원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조건적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택한 것은 조건적인 선택이며 그러기에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예정에 선행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선택된 것은 인간의 의지를 근거로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3)보편적 구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적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4)제한받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실 때 인간의지에 의해 거부를 당할 수 있고 그 결과 성령의 뜻이 좌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인인 인간이 자진해서 영생의 생명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성령은 생명을 줄 수 없다는 요지입니다.
5)은혜에서 떨어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행위에 의해 구원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도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럴듯합니까?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속음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전능성이 인간에 의해 제한당하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의 교리로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에 의해 실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주장 때문에 심각한 신학적인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화란 정부는 1618년 11월에 화란의 남부지역인 도르트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 129명이 모여 이 문제를 갖고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 회의는 이듬해인 1619년 5월까지 약 7개월간에 걸쳐 무려 154회에 걸쳐 회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알미니안들에 의해 제기된 조항들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에 의견을 모으게 됩니다.
동시에 종교개혁에서 매우 명백히 제시됐고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에 의해 체계적으로 형성된 개혁주의 교리적 입장을 재확인하고 알미니안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칼빈주의의 5대 요점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소위 칼빈주의의 5대 교리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입니다.
1)전적타락(Total Depravity)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입니다.
2)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이 우리를 택할 때 어떤 조건이 있어서 택한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3)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만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택한 백성을 위한 속죄라는 것입니다.
4)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인간이 거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한번 구원 받은 백성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를 영어 첫 글자인 이니셜을 나열하면 T, U, L, I, P,입니다.
우연하게도 꽃 이름 ‘Tulip'과 일치하여 5대 교리를 흔히, ‘튤립’ 교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칼빈주의 신학을 믿는 우리나라 장로교 성도들도 이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잘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5주 동안은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매주 하나씩 살펴보면서 교리 설교를 하려 합니다. 그래서 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5대 교리 설교를 통해 여러분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5대 교리 중 첫 번째 교리인 ‘전적 타락’ 교리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전적 타락의 교리가 무엇인가?
우리 교단에서는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 권사가 되려면 임직 서약을 해야 합니다. 그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신구약 성경을 교훈을 총괄한 것으로 믿고 따르겠느냐”고 묻습니다. 장로님! 안수집사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리요리 문답은 성경의 교훈을 총 정리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그 신앙고백서 제6장 2항과 4항을 보면 인간의 전적 타락교리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2항 “이 죄(원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렵혀지고 말았다.”(창3:6~8, 전7:29, 롬3:23, 창2:17, 엡2:1, 딛1:15, 창6:5, 롬3:10-18)
4항 “이 근본적인 부패로 인하여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가질 수 없고 행할 능력도 없고 선한 것이 그 속에 없으며 전적으로 악을 행하는 능력만 있으므로 여기에서 모든 실제적인 범죄들이 나오게 되었다.”(롬5:6, 8:7, 7:8, 골1:21, 창6:5, 8:21, 롬3:10~12, 약1:14~15, 엡2:2~3,마15:19)
또 신앙고백서 제9장 3항에서도 전적 타락 교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수반하는 영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자연인은 영적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죄로 죽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회개시키거나 또는 회개에 이르도록 준비할 수가 없다.”(롬5:6, 8:7, 요15:5, 롬3:10, 3:12, 엡2:1, 엡2:5, 골2:13, 요6:44, 요6:65, 엡2:2~5, 고전2:14, 딛3:3~5)
이것은 분명하게 성경적 근거를 갖고 정리한 것입니다.
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완전 타락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래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고 결국 구원을 위해서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오늘 구원받은 우리가 그렇다고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전적 타락’이라는 표현 속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명제가 분명하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 명제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관계에 근거해서 진단된 결과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신분의 고하와 출신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죄인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정죄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류의 시조 아담은 처음 무죄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될 당시에는 그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 언약에서 실패합니다.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선악과 언약을 어기게 됩니다.
이것이 에덴에서의 아담의 범죄사건입니다. 그래서 원죄의 기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믿지 못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이 타락은 그의 후손들의 본성에 유전적으로 전가되었고 그래서 온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선언 되었듯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의인은 한 사람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 죄인으로 정죄 당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체의 영적 교제에서 단절돼 영원히 결별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이산가족이 돼 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사59:2절을 보세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갈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 완전 타락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이토록 분명하게 완전 타락, 완전 부패를 말하는데 그래도 인간은 완전 타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갖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니 결국은 인간 구원의 공로는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2. 전적타락 교리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모든 교리에는 반드시 그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게 마련입니다. 전적 타락 교리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들을 몇 가지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창6:5~7절입니다.
이 성경은 노아 대홍수 사건의 원인이 뭔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셔서 쓸어버리기로 하신 것입니다.
2)렘17:9절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사람의 타락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됩니다. 심히 부패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3)엡2:1~5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탄을 따르던 자들이 우리였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던 자들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큰 사랑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에 의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아멘?
성경을 잘 보세요. 엡2:1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입니다.
‘죽어 가던’이 아닙니다. ‘죽을 것이던’이 아닙니다.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 사망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존재였던 인간이 뭘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살리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인이기에 그 사랑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적타락을 부인한다면 성경을 안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4)오늘 본문 롬3:10~12절 말씀입니다.
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 타락한 인간은 의인이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다 치우쳤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 주소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이 구절은 구원받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의롭다함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 그래서 의롭다함 받았고 그래서 말씀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전의 우리 인간은 완전 타락, 완전 부패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낮예배 설교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이렇게 몇 부분 성경만 살펴봅니다.
이외에도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존재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타락한 이후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모든 죄의 배후는 ‘전적 타락’이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적 타락의 모습은 성경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을 보세요.
자식이 부모를 죽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성폭행을 합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엇그제 인터넷에 올라온 중국에서의 시내버스 여자 사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30대 여자가 80대 노인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고 난리를 치는 영상입니다. 그 여인이 옆 창가자리가 비게 되자 창문을 열려고 창가 쪽 의자로 가자 노인이 그 여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그곳은 자기 자라라고 비키라며 노인을 밀쳐냅니다. 그러자 노인이 창가 쪽에 앉으라고 해도 막무가냅니다. 그러더니 노인의 비키지 않으니 다리위에 깔고 앉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밀쳐내며 야단을 쳐도 그 자리를 내놓으라며 싸웁니다.
그러면서 싸우는데 내릴 때까지 욕을 하며 싸웁니다. 다른 자리도 있는데 그 자리가 자기 것이라고 노인과 싸우는 여자, 참으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 타락’ 교리를 증명하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타락했지만 양심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 양심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기에 양심이 완전 타락이 아닌 부분 타락의 증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양심은 하나님 창조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마저도 화인 맞았습니다. 그러니 완전 타락입니다.
3. 전적 타락 교리가 주는 교훈과 은혜는 무엇인가요?
전적 타락이 주는 교훈과 은혜가 있습니다.
전적 타락 교리는
1)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 줍니다.
이 전적 타락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타락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교리가 전적타락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적 타락 교리는 현재 구원받은 신자들의 영적인 상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거듭난 신자들도 아직 부패한 본성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새로운 피조물이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며 사는 성도는 믿지 않는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성화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적 타락 교리는
2)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은 불필요함을 교훈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시체에 불과합니다.
죽은 시체는 스스로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장례를 많이 치루어 보았습니다. 장례식에서 입관하기 전에 수의를 입혀 드립니다. 그런데 죽은자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전부 입혀드립니다.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죄와 사망의 늪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어떤 노력과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마치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손과 발이 속박되어 있으며 부패가 붙들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은 시체 속에 생명의 빛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나사로야 나오라” 고리치실ㅇ때 생명이 그속에 들어갔습니다.
그처럼 타락한 인간 속에도 생명의 불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죽은 자들에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본질상 주께 속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타락의 교리는
3)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을 강조합니다.
죽은 인간이 살아났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 나사로의 노력이나 사람의 의지가 아니듯이 우리의 구원도 사람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뭡니까? 선물입니다.
엡2:8~9절을 보세요.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졌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적 타락 교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러기에 겸손하게 감사하며 감격하고 살아야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었어도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노력도 구원에 한몫을 했다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는 우리 인간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것은 뭡니까?
구원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태중에 아이가 탄생하는 일에 아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탄생한 후에는 열심히 먹어야 하고 배고프면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배하고 배우고 헌신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닮습니다. 그러기에 헌신과 봉사, 감사와 예배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이 전적 타락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깨끗하게 양심껏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예수님을 안 믿어도 천국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은혜로 구원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그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직도 자신이 타락한 죄인즐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다음 주에는 ‘무조건적인 선택’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도합시다.
http://cafe.daum.net/ilhwan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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