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

[스크랩] 그분과 나의 감사차이/ 시16:1~7 / 2016년 6월 26일 주일 설교

☆ 주님의 머슴 2016. 7. 24. 15:28

그분과 나와의 감사차이

시편16:1~7

2016년 6월 26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설교:

여러분은 누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여러분이 그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이유가 뭔가요?

“나는 이유 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는 거기에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면 내 기분이 좋다. 그 사람은 항상 나를 이해해 준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 또는 그 사람은 나와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 등등....

겉으로는 이것 때문이다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내게 유익이나 기쁨이 있으니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처럼 뭔가 유익이 있고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왜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시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싹수가 있어서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뭔가 조건이 있어서 좋아하시는 것일까요?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사랑을 하지만 하나님은 조건이 없는 사랑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그러면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 주신 본문을 보세요.

왜 하나님은 다윗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것일까요?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를 욕보였습니다. 그 여자가 잉태하자 그 신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자기 부인으로 삼는 못된 짓을 했던 사람이 다윗 왕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형편없는 그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인정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지난 몇 주 전에 보았던 것처럼 그는 자기 죄를 깨닫고 속히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시51:1~3절을 보세요.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는 나단 선지자가 자기 죄를 지적할 때 하나님이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것으로 알고 그 즉석에서 깊이 통회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은혜를 누린 비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죄를 짓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죄를 깨닫고 즉각 회개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합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만이 다윗을 좋아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신 말씀을 통해서 다윗의 감사와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감사와 우리의 감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떤 감사와 영광을 돌렸기에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는가를 살펴보고 우리 감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려 합니다.

 

다윗의 감사와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나요?

1. 다윗은 하나님 한분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 한분 밖에 나에게 복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고백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기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 고백이고 이것이 그가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한 고백입니다.

 

부부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상대방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게는 당신밖에 없어/ /내가 당신을 만나 결혼한 것은 /내 일생 최고의 복이야/ 그런데 당신이 내게 이렇게 할 수 있어?/

이러면 그 싸움은 끝납니다. 여성성도 여러분! 여러분 남편이 그러면서 여러분과 싸웁니다. 그러면 더 열 받을 사람도 물론 있겠지요. “말로만? 웃기고 있네”

말은 그렇지만 그 고백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실제로 효과를 본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라고는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내게는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내게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감동을 먹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신앙고백을 좋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자체가 곧 복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최고의 복이 아니고 뭐가 복일까요?

하나님 자체가 복의 근원이시고 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있나요?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돈을 복으로 여기고 건강을 복으로 여기고, 자식이 잘되는 것을 복으로 여기고.... 물론 그것도 복의 열매이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할 줄 알아야 진짜 온전한 성도인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윗은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즐거워했습니다.

3절을 보세요.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든 이유 중에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는 자기 주변에 믿는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겼고 그들을 대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함께 주를 섬기는데 함께 섬기는 그들을 존귀한 자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존귀하게 대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쁨인 것을 아십니까? 누가 여러분 자식을 칭찬한다 합시다. 그러면 기분이 어떤가요?

어떤 목사님이 제 아들을 보더니 “와~ 아버지보다 훨 낫네”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기분이 안 나쁜 이유는 뭐죠?

남들이 내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에게 최고의 기쁨인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 없는 성도라도, 아무리 못생긴 성도라도, 아무리 볼품없고 가련한 성도라도 그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왕자고 공주입니다. 아멘? 그러니 존귀한 신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도는 마귀를 대적하는 자이고 마귀를 미워하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존귀한 자입니다. 아멘?

그래서 다윗은 성도를 존귀하게 대했고 그를 인해 늘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그들과 교제하고 함께하는 것이 즐거움인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가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고 기쁘셨겠습니까?

그러니 그에게 하나님이 엄청난 복을 주시고 엄청난 직분과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고 계시나요?

그들이 존귀한 자로 보이나요? 아니면 업신여겨지지 않나요? 그들이 외모상으로, 또는 성품상으로 내 맘에 안 들어도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존귀한 존재로 대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보기에 형편없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내보기에 맘에 안 든다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업신여기지 마세요. 만약에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진노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부모도 자기 새끼를 귀하게 여기기에 남들이 그 자식을 업신여기면 싫어하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성도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면 결코 그를 인정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아멘?

 

왜 성도를 존귀하게 여겨야 할까요? 성도가 완전해서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잘 낫든 못 낫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존귀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만들어갈 사람이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아멘?

이 세상에 완전한 자가 누가 있습니까? 다 불완전하고 다 미완성이지만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만들어 쓰시기에 존귀한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옆에 계신 성도를 기뻐하세요. 그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면 내 가족이고 내 형제자매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사랑하고 섬기고 존귀하게 여기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 약4: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이 말은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물리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요?

다윗을 미워하고 다윗을 대적했던 사람들이 다 어찌되었나요? 골리앗도 죽었습니다. 사울왕도 버림받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을까요? 하나님의 종인 다윗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가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따라서 합시다. /나는 존귀한 자입니다/ 당신도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니 성도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그 성도와 함께 하는 시간, 즉 예배시간, 교제시간, 그리고 그냥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다윗은 하나님이 왜 우상숭배를 싫어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세요.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다른 신이 뭘까요? 하나님 이외에 신을 말합니다. 바알신, 아세라신, 각종 우상 신들을 말합니다.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여물을 드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고 괴로움이 더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목적이 뭡니까? 그것을 섬기면 재앙이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재앙은 누가 주는 것인가요? 욥기에 욥에게 재앙을 준 것은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합니다. 그의 행동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 우상의 배경에는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고전10:20절을 아실 것입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그러기에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대적자이고 결국 마귀를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 성도는 그런 사람을 상대도 하지 말고 그렇게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는 어리석은 짓은 다 물리쳐야 합니다.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양다리 걸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실까요?

그것은 마귀를 섬기는 것이기에 싫어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인데 인간이 그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인간을 타락시킨 마귀를 섬기니 하나님이 어찌 적당히 넘어가겠습니까?

 

그래서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에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로보암, 아합왕 등 수많은 왕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행위가 악하다는 것도 있으나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웃시야 히스가야 등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안해서 정직했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경제를 잘 운영했다 못했다. 정치를 잘했다 못했다 그런 것은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느냐 아니면 우상숭배를 했느냐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기본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기본이듯이 인간이 자기를 만드신 인간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일을 피하라 하십니다. 고전10:14절을 보세요.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심지어 구약 성경에서는 그런 우상 숭배하는 접신 자, 박수, 무당은 반드시 죽이라고 하십니다. 레20:27절을 보세요.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래서 다윗은 자기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우상의 이름을 입술에서 언급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의 복을 누린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셨고 그를 하여금 더 큰 영광을 돌리도록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상숭배가 집안에 믿지 않는 부모 형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거나 피할 길이 없다고 적당히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우상숭배를 우습게보고 적당히 넘긴다면 결코 하나님은 우리 행위를 묵인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4. 다윗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유에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본문 5~6절을 보세요.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기 “여호와는 내가 누리는 모든 산업이고 소득이이시다”라는 말은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또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내가 통치할 수 있는 영역, 내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사업, 그리고 내 자식까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정말 믿습니까? 입으로만 아멘을 하지 마시고 실제로 그렇게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자식, 하나님이 길러주신 것 믿습니까? 내 직장과 사업,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믿습니까? 내 건강도,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알고 믿고 감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유명한 고백을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도 그렇게 고백하기를 축원합니다. 고전15:10절을 보세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할렐루야 그러니 이런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며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특별히 다윗은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라고 했습니다. 누가 주셨나요?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다 하고 줄로 재어준 구역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 왕, 그분과 우리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요?

그는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왕이었을까요? 그도 시골 목축업자의 아들로 태어 난 촌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위대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용서로 덮으시고 복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감사의 수준이 차원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숙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신앙이 성숙해서 그가 감사하며 그가 기뻐했던 것을 우리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훈계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송축하라 했습니다.

7절을 보세요.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그는 훈계 하시는 하나님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렇게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 한 분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하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즐거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우상숭배를 싫어하는지를 알고 단호하게 배격하시길 바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유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가 오늘 여러분에게도 임할 줄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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