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8/4/29)-요한계시록(58)
공중에 쏟은 마지막 재앙
계1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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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주에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는 아마겟돈 전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 세력이 이스라엘과 전쟁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기도 하지만, 마지막 때를 대비해서 성도들이 이 마지막 때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탄과 싸워야 할 영적전쟁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아마겟돈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마겟돈 전쟁에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7년 환난기에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그것도 예루살렘을 지배하면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추종세력을 많이 규합해서 온 천하의 왕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온 천하의 왕들을 규합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겁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혹시키는 겁니다. 그것을 13절, 14절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 – 이들은 귀신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의 왕들을 모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해서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왕들을 모은다” 라고 했습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은 온갖 감언이설, 거짓말, 유언비언, 없는 말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고대사회에는 개구리를 더러운 동물로 보았고, 개구리가 입에서 소리 내는 ‘개굴, 개굴’ 하는 소리는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저주의 소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지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영은 입의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에서 그 사람의 영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인성, 영성을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인성과 영성을 알아낼 수 있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에게는 영적 아마겟돈 전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들” 이 있습니다. 거짓말로 유혹하고, 인터넷 댓글로 거짓말하고, 현혹시키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거짓말로, 없는 말을 만들고, 크게 부풀리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누구가 이기느냐? 하나님이 이기고, 믿음이 이깁니다. 세상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 이기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 문화가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기고, 복음이 이기고, 믿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아서 강물을 말루고, 그 강물이 마르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서 속아서 마른 강 안으로 대군을 거느리고 들어오다가 결국 다 멸망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이기고, 말씀이 이기고, 믿음이 이기고, 복음이 이기고, 성도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시 17절을 보겠습니다.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일곱 번째 대접이 어디에 쏟아집니까? 공중에 쏟아집니다. 여섯 번째 대접까지는 땅, 바다, 강, 물, 해, 짐승의 왕좌, 유브라데 강, 이렇게 구체적인 장소가 등장한 반면에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은 공중에 쏟아집니다. 이 일곱 번째 대접 재앙까지는 점점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목표물을 정해 놓고 주변 변두리에서 중심 목표물로 점점 좁혀 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 ‘공중’이라고 번역이 된 ‘ajhvr 아에르’는 에베소서 2장 2절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서 “공중”과 오늘 본문 계16:17의 “공중”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접재앙의 목표물이 누구냐 하면,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사탄입니다. 성경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바로 사탄이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붙잡고 있는 세상이 “공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번째 대접이 “공중”에 쏟아졌다는 것은 사탄과 그가 권세를 잡고 부리고 있는 악한 세상 전체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성경은 이 “공중” 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은 물이나 땅이나 해 같은 지엽적인 심판이 아니라, 절대 피할 수 없는 총체적인 심판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공중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개역 한글성경에는 “공중”을 “공기”라고 번역했습니다. 공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시리아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지역에 화학무기를 대량으로 살포해서 많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개입해 화학무기 시설을 미사일을 쏘아 파괴하고, 계속 보복하겠다고 합니다. 만약에 지구 전체의 공중에 오염된 나쁜 공기, 모든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생겨나거나, 공기가 다 없어지고 산소가 부족한 현상이 일어나면 이 지구상에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생물들 전체가 살겠습니까?
그러한 일곱 번째 대접심판은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는 심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더 명확하게 증명시킵니다. 일곱 번째 대접이 공중에 쏟아지자, 그 대접 재앙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그 보좌에서 큰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다 되었다!”. 이 ‘다 되었다’ ‘게고넨, gevgonen’은 ‘It's done’이라는 뜻입니다. 이 선언은 사단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멸망되고 피조물이 깨끗하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 행위의 완성을 선언하는 ‘완료 동사’입니다.
우리는 이 한 단어 안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완전성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되었다” 라는 이 말과 비슷한 말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도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승리는 마귀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장으로 그 마귀의 허리를 꺾어 버리셨고 이제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영원히 멸망하게 될 날이 ‘곧,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8절을 보세요.
(계16: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일곱 번째 대접이 쏟아지자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심판을 묘사할 때 계속 등장하던 것들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나타나실 때에 동일하게 이러한 단어들이 사용 되었습니다.
(출19:16-19)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계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그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심판의 모습을 보여 줄 때는 언제나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지진과 우박’이 동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하늘의 보좌로부터 여지없이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지진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이 공중에 쏟아지자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나타나심에는 두 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축복이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 신실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현현은 함께하심이요, 축복이요, 큰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계속해서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왜 유독 지진에 대해서만 이런 부연 설명이 붙이고 있을까요?
이 마지막에 있을 진동은 구약에서 예언자들이 이미 많이 예언한 것입니다.
(학2:6-9)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드디어 성전을 새로 지었는데, 그 전의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시면서 그 전에 온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이 땅을 진동시키고 오는 영광의 나라, 영원한 메시야의 나라의 영광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도 이러한 마지막 때에 이 땅을 진동시킬 것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히12:26-29)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마지막 때에 또 한 번 하늘도 진동하고, 땅도 진동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때 진동되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히 보존(영존)하시기 위해서 진동될 것들 즉 만드신 창조물들은 변동, 즉 새롭게 바꾸어 버리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큰 지진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물게 될 진동치 못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됨을 알리는 축포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공포의 진동이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축제의 진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는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그 어떤 것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경영해 가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요, 세상을 향하여서는 경고인 것입니다.
시편에 이미 그 마지막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46:1-3)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리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바다가 넘쳐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환난 중에 만날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요동치 않는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형 집행 전날 감옥에 갇혀서도 깊은 잠에 빠져 잘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예수님께서 풍랑이 이는 바다 가운데서 곤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요동치 않는 평안 때문이었지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으시다 면 여러분은 두려울 것이 없으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한 순간에 불로 태워 버리실 수 있는 하나님, 그 분의 자녀들입니다. 그 분의 성실한 보호 아래 안전하게 천국까지 갈 사람들입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지요?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나? 내가 진짜 바로 믿고 있는 것인가를’ 두려워 하셔야 지요.
영국의 마지막 청교도 신학자요, 설교자라고 하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던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40년간 장로로 헌신하셨던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서 ‘목사님 아직 저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돌아가셨답니다. 그 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대단히 충격을 받으셨다고 그 분의 책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분의 장례식장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결심하셨답니다. ‘나는 더 열심히, 더 강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리라,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수 십 년을 함께 했던 나의 동역자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그 예배당 안을 가득 메운 그 사람들 중에 정말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몇이나 될 것인가?’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열심을 내고도, 그렇게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 순간 ‘정말 내가 바로 가고 있는 것인가?’를 두려워해야지요. 그리고 열심히 바른 길을 찾아가야지요. 그 것만 확인된다면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이 세상은 멀지 않은 미래에 최종적인 심판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9절과 20절은 더욱 더 선명하게 세상 권세 잡은 자들과 그의 세력들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19-20절을 함께 읽으십시다.
(계16:19-20)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여기에 보면 그렇게 하나님께 멸망당하는 자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게 될 자들을 “큰 성”, “만국의 성들”, “큰 성 바벨론”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큰 성’은 우리가 11장에서 배웠습니다.
(계11: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그 큰 성이 어디입니까?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소돔은 ‘타락한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그리고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고 핍박하던 곳’을 상징하지요.
그러니까 그 큰 성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고 핍박하며 타락과 더러움을 조장하는 마귀의 세력과 그들이 거하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큰 성을 다른 말로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 큰 성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 큰 성을 ‘바벨론’이라고도 부릅니다. 원래 이 바벨론 이라는 이름은 창세기의 ‘바벨 탑’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바벨’은 ‘혼란’이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의 탑을 쌓던 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세상 세력을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을 바로 그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들어서 때리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적들을 지칭할 때나 불경건한 세력 혹은 인간의 타락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썼습니다.
이렇게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과 악으로 대표되는 마귀의 세력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14장이나 21장, 예레미야 51장 같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는 부분에서 항상 바벨론의 함락에 대해서 그렇게 통쾌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계시록18장 2절에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그 바벨론과 바벨론 왕을 역사 속에서 멸망을 시키심으로 그 바벨론과 바벨론 왕으로 상징되는 사탄과 사탄의 세력도 반드시 멸망할 것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자기들이 영원할 줄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곧 멸망의 불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추호의 실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죄인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었다” 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무엇을 기억하셔야만 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전지(omniscience)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시지 않으시는 분,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1절을 읽으십시다.
(계16: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여기서는 “큰 우박”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우박은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입니다. 한 달란트는 약60kg이나 됩니다. 내 몸 무게가 60kg입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늘어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았습니다. 안 먹어도 60kg, 먹어도 60kg입니다. 먹는 걸 적게 먹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 몸 무게 만한 우박을 맞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즉사입니다.
이 우박 재앙은 애굽의 재앙 때에 일곱 번째 재앙으로 내렸습니다. 이 우박은 구약 성경에서 특히 최후의 종말을 상징하는 전쟁 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대적들을 진멸 하는 하나님의 무기로 사용되던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최후의 종말 전쟁을 상징하고 있는 ‘곡과의 전쟁’을 한번 볼까요?
(겔38:22)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곡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무기는 “큰 우박덩이”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쳐부수실 때도 꼭 “폭우, 우박덩이”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아모리 다섯 왕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국을 막아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큰 우박으로 다 죽여 버립니다.
이렇게 우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방해하는 ‘영적 소돔과 고모라, 큰 성 바벨론’을 진멸 할 때 쓰시던 무기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을 맞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비방 합니다” 그게 21절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얼마나 강퍅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없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극도의 이기심, 극도의 강퍅함, 극도의 자기만 아는 인생, 죄악이 가득한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믿는 자,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죄악과 사탄의 성품을 따라 가는 자들만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점점 그런 시대를 닮아가고, 따라가고, 점점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가까워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느끼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제 이만큼 요한 계시록을 배웠으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가? 어떠세요. 여러분의 인생 속에도 이러한 종말의 모형들이 나타나고 있나요? 먹고 살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편안하게 살고, 고생 안하고 살려고 발버둥만 쳤지, 오늘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어떤 모습이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재난, 즉 정치적이며 경제적이며 군사적인 재난이나 자연 재해 같은 것은 재난으로 생각하지만, 세상 풍조나 유행이나 사상, 시대정신 같은 것들 속에 들어 있는 정말 무서운 재난은 재난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의 영혼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은 정신적인 재난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그 더러운 영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악한 시대정신과 더러운 세상 풍조 속에서 자멸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전히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용의 입에서 나오고 있지요. 이것은 마귀, 사탄의 영입니다. 또 짐승의 입에서 나옵니다. 거짓 권력자, 거짓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또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거짓 종교인들입니다. 거짓 교리, 이단 교리, 변질된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을 속입니다. 계속 복만 외치고, 복만 받으려고 하지,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고 하고, 예수님을 닮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도 죄 짓고 살면서, 자기도 잘 믿지 않으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비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미워합니다.
이게 정신적인 재난이요, 영적인 재난입니다. 이게 죄악 속에 파묻혀 허덕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재난이 재난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로마서 1장에는 “내버려 두는 재앙” 이 세 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롬1:24)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롬1:26)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우리의 죄 성을 말리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고, 말해 주지 않고, 충고해 주지 않는 것은 이미 “내 버려 두심의 재앙”이 내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시대는 점점더 그 깊음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마지막이 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그 마지막이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고, 신실함을 잃지 않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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