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8/8/5)-요한계시록(69)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리라
계20:4-6
17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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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0:1-6에서는 두 가지의 환상이 나옵니다. 1절과 4절에서 “또 내가 보니”라는 말은 ‘환상을 보니’ 라는 말이지요? 천 년 이라는 기간 동안에 나타나는 모습을 이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절에서 3절 까지는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지게 되는 사단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오늘 읽은 본문인 4절부터 6절 까지는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에 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쪽은 심판의 모습, 한 쪽은 영광의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부분은 천년이라는, 같은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사건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이하에서부터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이 보좌에 앉아서 심판을 하며 왕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분명 이 부분은 교회가 휴거했거나 또는 순교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아마 어린양 혼인잔치에 다 참여하여 세마포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일 것입니다.
먼저, 이 천년왕국 동안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 천년동안 결박되어 있을 것입니다. 천년왕국 기간에 세상을 미혹하던 사탄과 그를 추종하던 적그리스도의 무리가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히므로 이 기간 동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탄의 유혹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살면서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배도의 길을 갈 것이라고 성경을 경고하고 있습니다(20:8).
이런 의미에서 천년왕국은 인간의 범죄와 타락이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마음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천년왕국을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땅에 실현할 실재적인 나라가 아니고, 교회시대를 표현해 놓은 상징적인 용어로 해석합니다. 이 무 천년설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은 사탄과 그를 추종한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결박해서 무저갱에 집어넣어 놓은 사건은 이미 2 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승리하고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초림해 오심으로 천년왕국이 시작된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사탄의 세력을 무저갱에 집어넣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결박도 이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년 이라는 기간도 이 교회시대에 일어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사탄 마귀는 현재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어야 하고, 이 땅에서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하는데, 즉 예수님이 초림하신 이후부터 사탄 마귀가 활동하지 못해야 되는데, 하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나타나 예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했고, 예수님이 못 박히기 전에 가룟유다에게 들어가서 가룟유다가 예수님은 팔려고 하는 생각을 집어 넣었고(눅22:3),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의 활동을 여러 가지로 방해한 것들을 많이 봅니다. “아나니아의 마음속에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말했습니다(행5:3). 고린도후서4장4절에서는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고, 11장 14절에서는 사탄이 때때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현재 사탄 마귀가 결박되어 사람들을 미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런 사탄 마귀의 역사는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2천년 동안 교회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계속 일어났다는 것이다. 안으로 교회를 타락시키고, 변질시켜 배도의 길을 가게 만들었고, 밖으로는 말씀 안에 바로 서려고 애쓰는 성도들을 핍박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권력이나, 이슬람을 통해서 교회를 말살하고, 성도들을 죽이고 있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와 같은 하수인들을 내세워서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천년 교회시대에는 사탄이 결박되고 영적전쟁이 없는 시기가 아니고, 영적전쟁이 더 치열한 시대입니다. 이것은 결국 마지막 때, 예수님 재림하시고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적그리스도를 다 잡아 무저갱에 집어넣고, 결박한 후에야 천년왕국이 오고, 에덴동산과 같은 평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첫째 부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오늘 본문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첫째 부활”를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성도가 예수 믿고 거듭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해석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두 번째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육체를 입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번째 부활” 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부활은 영적, 또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죄악 가운데 있던 믿지 않던 자가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예수 믿어 거듭나면 다시 살아 난 것이니, 이것을 첫째 부활로 보는 겁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서 2장 1-6절에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오늘 계2장4절과 비슷하지요? 이것을 그들은 첫째 부활로 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기 전에 이방 신을 섬기며, 귀신을 섬기며 살았던 때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믿어 거듭났기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지막 때에 우리가 죽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 다시 부활하는 것을 “둘째 부활” 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에, ‘천년왕국은 예수님이 이 땅에 초림하신 이후부터 이루어졌고, 그리고 내가 예수 믿고 거듭난 이후부터 천년왕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첫째 부활”은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는데, 예수 믿고 거듭나서 영적으로 살아난 그 부활을 말하는 것인가? 위의 4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상징적으로, 영적으로 보지 말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더 정확하게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첫째 부활” 은 무엇이냐?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4절과 5절을 연결시켜서 읽으십니다. 괄호 안에 있는 구절은 빼고 연결해서 읽어 보십시다.
(20:4-5)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이는 첫째 부활이라”
“첫째 부활”이 뭐예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것, 이것이 첫째 부활이지요? 그러니까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6절 상 반절에 “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부활, 즉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지키려고 하다가, 즉 믿음을 지키려고 하다가 순교한 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라고 했습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단지 다르다면, 영혼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있고, 살아서 육체로 들어가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종합을 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7년 환난 동안에 모진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살아남은 육신의 몸으로 천년왕국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마 이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일 겁니다.
둘째는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영접하고, 메시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믿은 자들로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예수를 믿고 굳건하게 믿음을 지킨 자들일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20절 이하에 보면,
(사65:20-23)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셋째는 부활의 몸으로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그중에는 1)휴거한 자들입니다. 2)그 전에 신실한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성도들입니다. 3)말씀을 선포하고, 전도하고, 믿음을 지키려다가 핍박받고, 고난 받다가 순교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부활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5절의 괄호 안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이라는 말은 “그 외에”는 이라는 말입니다. “그 외에”는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위에 있는 4절의 말씀을 연결시켜서 보면, “그 외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마와 손에 그 표를 받은 자들”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을 지칭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마와 손에 그 표를 받은 자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나머지”는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하는 말입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이 없다고 합니다.
“둘째 사망”이 없다는 말은 “둘째 부활”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둘째 부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둘째 부활로 자동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둘째 부활은 백보좌 심판을 거쳐 영원한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은 뭐냐? 14절을 보시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둘째 사망은 최후의 심판, 즉 백보좌 심판 때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천녀왕국에 들어간 자들은 이 둘째 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 즉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 즉 천년왕국에 참여한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고, 이들은 둘째 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하반절에 보시면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라고 하지요?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데, 그냥 왕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왕 노릇한다”고 하지요? 일반적이고, 세상적인 왕과는 다릅니다. 무족건 군림하는 왕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되어 왕 노릇한다” 라는 말은 권세를 부리면서 군림하는 왕 노릇이 아니고, 낮아져서 섬기는 왕 노릇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이 뭡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중간에서 백성들을 위해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중보자는 섬김의 자세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서 섬김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섬김의 자세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도 섬김의 자세로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하게 되는데, 그 왕 노릇은 남들 위에 올라서서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왕 노릇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사는 제사장적인 왕 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에서의 제사장적인 왕 노릇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이미 섬김의 왕 노릇,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섬김의 왕 노릇”을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벧전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라는 말은 “섬김의 왕 노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섬김의 자세의 왕 노릇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에 들어간 왕 같은 제사장들, 섬김의 왕 노릇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이미 가시적으로 그렇게 살았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는 고통을 당하는 모습으로 살았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않아서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그런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 역사 속에서 섬김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섬김의 왕 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게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게 그대로 천년왕국으로 들어가서도 그렇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자세로 사느냐? 섬김의 왕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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