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7.예수님의 권세

☆ 주님의 머슴 2021. 1. 26. 14:16

<마가복음 묵상>

7.예수님의 권세

1:21-28

=====================================================================

1: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 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1: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 도다 하더라.

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옛날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높은 산길을 오른 후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술 취한 어떤 사람이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그를 때렸다. 김익두 목사님은 때리는 대로 아무 저항 없이 한참 맞다가 그가 잠잠해지자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라고 했다. 그 말뜻을 몰라 하는 그에게 내가 김익두이다.” 라고 하자 술꾼은 이젠 죽었구나!’ 하며 싹싹 빌었다.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 믿기 전에는 유명한 강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익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자넨 여기서 끝장이었을 텐데 내가 예수 믿은 덕에 자네가 살지 않았나? 그러니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을 자네가 받은 셈이지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라고 묻는 그를 데리고 부흥회에 참석시켰는데 그가 후일에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참 많다. 복음이 바로 들어가면 모든 인간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킨다. 인간을 변화시키고 제압하시는 권세는 예수님의 권세뿐이다.

 

성경에도 예수님의 권세로 인간을 제압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성전을 깨끗하게 사건 예수님의 권세로 제압하신다. 누구 하나 말할 수 없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사건 누구 하나 돌로 치지 못하고 다 떠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계도 제압하는 권세가 있었다. 무화과나무를 바로 마르게 하신 사건도 있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권세도 있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인간 세계, 즉 인간 전체의 삶을 제압하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볼 수 있다. 21~22절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으로 인간세계를 제압하시는 모습이다. 말씀이 스며들면 인간을 제압시키고, 변화시킨다. 인간은 성령이 역사하는 말씀으로 제압되는 것이다. 말씀이 곧 영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 성령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이 그 심령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지..의를 만져 말씀을 전한 자의 영과 하나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영이 전하는 자의 영과 만나 듣는 자의 지..의를 만져 전하는 자와 하나 되어 버린다. 반대로 악한 영을 가진 자를 만나 그 악한 영을 가진 자의 말을 계속 들으면 그 악한 영이 나의 지..의를 만져 결국 그 사람과 같이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영과 영이 만남으로 연합되어 버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4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 이 영은 내 속에 있는 영이다. 예배는 영과 영이 만나는 곳이다. 영과 영이 만나 연합이 일어나는 것이 예배이다. 하나님의 영과 나의 영이 만나는 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 형식적으로 예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예수님의 영이 있는 말씀) 인간세계를 제압해 가신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압당하는 자가 가장 복된 자이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 동네를 떠나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에 와서 살게 되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본부이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2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자마자 첫 안식일부터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회당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 권세가 있는 것을 보았다. 다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그런 권세 있는 말씀은 처음 보았다.

 

정말 예수님의 말씀에는 감동이 있다. 능력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일 정도로 세상의 학문과 달라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1)권세가 있다.

2)능력이 있다.

3)영적인 진리가 있다.

4)생명이 있다.

 

(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권세.

(4: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권세.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 능력.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영적 진리와 생명.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영생

(10:27-28)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영생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도 처음부터 예배를 귀하게 여기셨다. 21절에 (즉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라는 말씀을 주목하자. 안식일은 오늘날 주일이다. 회당은 오늘날 교회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10명만 모여 살아도 회당은 반드시 있었다. 그들은 회당에서 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율법을 해석했다. 랍비가 그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당연히 구약의 한 부분을 읽고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소문이 가버나움 시내에서 조금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회당장은 예수님께 구약의 한 부분을 읽고 말씀을 전해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서기관들과 율법학자와 같이 않았다. 새로운 해석, 새로운 계시가 보였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예배로 시작했다. 인생은 평생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쳐야 한다. 예배함으로 말씀이 스며들고, 성령이 스며들고, 연합이 일어난다. 주님의 영이 내 속에 스며든다. 예배야 말로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고, 불완전함을 메꾸어 준다. 여러분,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말자. 예배의 귀함을 알자. 예배를 통해 듣는 말씀이 진정한 말씀이다. 예배를 시시하게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 인생을 가볍게 취급하게 귀하게 여기시지 않는다. 예배를 통해 자기의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여러분, 말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는 똑같이 귀하다. 덜 귀하고 더 귀한 것이 없다. 다 같이 귀하다.

1)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다. - 예수님 자신이 순수한 무공해 말씀 그 자체이다.

2) 기록된 말씀이다. - 성경이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다. 인간의 손을 빌려 기록된 것이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령님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입의 기운(푸뉴마 성령) 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딤후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3) 선포되는 말씀이다. - 설교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신약의 바울 서신이나 사도행전에서 설교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했다.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설교라고 하니까 인간의 가르침, 인간의 말로 생각하고 가볍게 취급한다. 설교는 인간의 소리, 인간의 말이 아니고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배가 왜 중요한가? 예배가 왜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기 때문이다. 예배를 통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다. 내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다.

 

말씀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다. 진리의 샘이 있어서 생명을 소생시킨다. 가난한 자에게 소망을 주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회복시킨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갇힌 자를 해방시키는 은혜의 말씀이다.

 

말씀이 함께 있는 곳에는 악이 분쇄되어 버린다. 사람의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죄를 깨닫게 하고 진리의 길을 밝혀 준다.

 

23절 이하에 있는 말씀은 영적세계도 제압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다. 즉 악한 영을 다스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준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증거 해 준다.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다. 예수님에게만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24). 그 때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면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왔다.

 

마가복음 59절에 예수님이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 그 때 귀신이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라고 대답한다. “군대는 로마 군대의 병력 단위로 레기온이다. 대략 6,00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끔찍한 위력을 표시하는 말이다.

 

오늘 본문 24절에서도 귀신이 우리라고 말한다. 귀신들의 끔찍한 위력을 들어낸다. 더러운 귀신이 로마 군대의 한 군단 병력만큼이나 달려들어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는 꼼짝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음을 말씀 한마디로 입증한 것이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권세가 있는 동시에 많은 무리의 더러운 귀신과 병을 고치신다는 것이다. 말씀과 능력 있는 행위,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이다.

 

더러운 귀신은 악령이라고도 불리는데 거기에 붙들려 자기가 자기를 조정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귀신이 역사하는 사람, 귀신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지금 잘못되어 간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빨리 고치고 회복되어야 한다. 빨리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라고 소망하고 있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어도 거기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 많이 나오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귀신에게 붙들리게 되면 그 정신상태가 분열되어서 바른생활을 할 수 없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귀신 들린 청년을 보면 비록 젊은 나이이지만 귀신에 들려 자기 몸을 자기가 상하는 한다(5:5).

 

정신분석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대인 가운데는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볼 때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사는 것을 볼 때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많다 , 담배, 도박, 욕심, 불만, 이기심, 성적 타락 등등..........

성경적으로 봐도 그렇고, 하나님이 보셔도 그렇고, 다 비정상적이다. 다 정신분열증이 있는 자들이다. 은혜를 알고,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이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래서 결혼상대를 구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신앙상태, 정신상태, 인격상태, 즉 인간성(인성)을 봐야 한다. 가문보다, 학벌보다, 재산보다, 외모보다 말이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이라는 말에서 들린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엔(ν)으로 ‘~안에 있는, 함께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더러운 귀신에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러운 귀신의 세력 아래서 귀신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세상은 악의 세력 안에 놓여 있다. 온통 악의 세력이 꽉 차있다. 요한일서 519절에 보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하신 말씀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지만, 그러나 반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악이 가득하다. 산소 같이 많다.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안 된다. 죄를 떠나 살 수가 없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한탄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2-24).

 

그래서 구약에 보면 항상 성전에는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데 끊임없이 계속 드린다. 항상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항상 기드론 시내에는 양의 피, 제물을 씻은 붉은 핏물이 항상 붉게 흘러내린다. 왜 그런가?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오르기 위해 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서 인간의 죄를 위해서 수많은 짐승이 대신 죽는구나. 그러나 죄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늘 짓는 것을 생각하면서 단번에 십자가를 통해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죄를 해결하는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건넜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악의 세력을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래서 예수 안 믿으면 누구나 우상숭배자가 되고 악의 세력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안 믿으면 악의 세력에 속해 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 가만히 보면 회당 안에도 마귀가 들어와 있다. 역시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마귀가 들어와 있다. 예수의 능력이 아니고는 멸할 수 없다.

 

마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예수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그렇게 생활하게 한다.

 

본문 24절에 보면 귀신이 큰 소리로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어리석어서 예수가 누군지 모른다. 하나님도 모르고, 성령님도 모른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안다. 마귀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인간을 마귀의 권세 아래 눌려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 나는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예수님이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너의 죄를 해결 하셔서,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셔, 너를 죄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셔...“ 이렇게 아무리 설명해도 웃기네! 내가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예수가 왜 나를 위해 죽어, 웃기네!‘ 아무리 말을 해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라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이 많다. 혹 우리 성도들 중에도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없는가?

 

예수님은 인간세계와 영적세계를 제압하는 능력 있는 분이시다. 예수 안에 있으면 문제가 없다.

'설교 원고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예수님의 정신과 생활  (0) 2021.02.13
8.치유하시는 예수님  (0) 2021.02.01
6.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0) 2021.01.26
5.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0) 2021.01.15
4.시험의 때가 있다.  (0) 2021.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