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8.치유하시는 예수님

☆ 주님의 머슴 2021. 2. 1. 16:31

<마가복음 묵상>

8.치유하시는 예수님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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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1: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앞에서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귀신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라고 외쳤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때,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그의 능력을 모르고 있을 때, 혹은 안다고 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때에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도 알고 있었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그의 권능을 인정하고 두려워했다. 본문 34절에서도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했다.

 

귀신이 예수님을 잘 알고 그 능력을 인정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예수님을 알고 그 능력을 인정하고 두려워한다고 해도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원수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기 때문이다(요일3:8).

 

마귀는 예수님을 항상 대적하는 관계로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경을 무시하고, 심지어 없애려 하고, 예수님을 싫어하고, 교회를 싫어하고, 성도들을 싫어하고 대적하는 것은 마귀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마귀를 이롭게 하고 곧 마귀가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도 이런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호통을 쳤으며, 예수님도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호통을 쳤다.

 

<고치시는 예수님>

본문 29절 이하는 예수님이 제자 중에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인간의 고독과 회의와 갈등과 병을 고치시는 분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준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 누구인지 깨닫게 해 준다. 예수님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고 많은 문제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도 그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심을 보여 준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후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셔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는 장면을 통해서, 아마 베드로의 집은 회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32절에 저물어 해 질 때에라고 정확하게 시간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안식일이 끝나는 오후 6시 이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일 규칙에 저촉되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이 기다렸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각종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한 가정에 식구 중에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것보다 더 큰 아픔과 문제는 없다. 예수님은 가정의 각가지 문제들을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한다. 예수님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해결자이시다. 상상해 보라. 저물어 해 질 때(오후 6시경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시면서 고쳐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서 그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듯이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섭섭하게 해서 돌아가게 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에 대해서도 우리가 인간적인 삶의 모습으로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베드로가 그렇게도 열심히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나가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직업을 버리고,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한 이상한 젊은 랍비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기 혼자가 아니고 동생 안드레와 함께 말이다.

 

제일 충격 받은 자는 당연히 그의 장모였을 것이다. 든든한 사위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식구들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예수라는 젊은 청년 랍비를 따라 방랑자로 살아간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생계를 짊어져야 할 가장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 버리는 것과 똑같다. 이때부터 아내와 장모는 압박을 하면서 달달 볶았을 것이다. 나중에는 장모가 화병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베드로는 이 압박을 견디어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동료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을 것이고, 동료들은 예수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누구복음 438절에 보면 약간의 상황설명이 나온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동료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만반의 준비를 해서 식사초대 형식으로 예수님을 초대했을 것이고, 예수님은 식사에 초대받아 가셔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보고는 고쳐 주신 것이 아닐까? 베드로의 장모 입장에서는 인물도 훤하게 생기고, 랍비로서도 손색이 없고, 능력도 있으신 분이 자기의 사위의 선생이 되었으니, 마음에 들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당시는 남녀의 구분이 분명한 시대에 자기 손을 잡고 일으키시는 그 감격에 화병도 씻은 듯이 나아버렸을 것이다. 이 후 일어난 정모는 그들에게 수종들었다고 했다.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1) 라는 이 짧은 구절 속에 모든 상황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한 가정의 골치덩이, 가장 큰 아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1.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가정에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가 아니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 예수님이여야 한다. 항상 예수님이 우리의 가정에 임재 해 계셔야 한다. 항상 주님 모시고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예수님을 항상 모시고 있는 가정에는 소망을 가져 온다(30). 예수님을 항상 모시고 있는 가정에는 치유의 역사와 문제해결의 도움이 일어난다. 예수님을 항상 모시고 있는 가정에는 가족 상호간에,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헌신과 섬김이 일어난다(31).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을 경배하며 가정에 주님을 모셔 드리면 주님은 그 가정에 오신다. 그리하여 함께 하신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도와주신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30).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셨을 때 마침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상황을 설명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가를 배우게 된다. 예수님께 간구했던 사람들의 본을 배우자.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을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조금도 의심 없이 (즉시)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30) 라고 했다.

 

이 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없다. 확실하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여러 가지 방도를 부지런히 강구해야 한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야 한다. 재산이나 사람을 변호해야 할 때는 변호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친구의 도움도 필요하다. 목사님께 기도의 요청도 필요하다. 그러나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도움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분이 하실 수 있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 누구보다도 주님만큼 동정을 가지고 기꺼이 구해 주시는 분은 없다. 야곱이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 그는 먼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32:11) 라고 그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히스기야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먼저 산헤립의 편지를 펼쳐 놓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왕하19:19) 라고 간구했다.

 

나사로가 아파 누웠을 때 그의 누이들이 즉시 예수님을 모시러 보냈다. 그들은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11:3) 라고 말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었을 때에 속히 예수님께 찾아와서 구원을 요청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5:22-23).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고통과 수모는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그 고통과 수모를 마음속으로 삭히면서 오직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만 간구했고, 엘리 제사장의 축복과 응답을 받고 그 후로는 다시는 얼굴에 근심 빛이 없었다고 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1:17-18). 그 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었고, 그 아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사사 겸 선지자인 사무엘이다.

 

이제부터 우리도 이와 같이 하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리로다.”(55:22)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벧전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우리가 이 법칙을 기억해 놓았다가 실행해 옮기는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죄와 슬픔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예견할 수 없는 많은 어둠의 날들이 있다. 굳이 우리가 예언자나 특별히 미래를 볼 줄 아는 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 세상 다 하는 날까지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고 마음의 고통을 느껴야 하고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할 수 가 있다. 혹 우리에게 질병이나 사별이나 손실이나 실망 같은 것들이 무장한 군사처럼 몰래 스며들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버나움의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빨리 예수님께 알리자라고 해야 한다.

 

3. 주 예수님께서 고치실 때는 참으로 완전무결하게 치료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31).

예수님이 아픈 여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즉시 열병이 떠났다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났다.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고 했다. 육신적인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정신적, 영적인 병이든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증거이다. 사람은 조금만 기분 나빠도 섬김과 봉사는 하기 싫어진다. 수종든다는 것은 완전히 고침 받아서 감동과 기쁨이 충만하다 라는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열병이 떠난 후에는 쇠약함이나 피로가 남게 되는데, 그녀의 경우에는 이것들이 완전히 퇴치되었다.

 

본문에서 죄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보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병들이 있다. 이름 모를 병들도 있다. 병은 여러 가지 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병나면 아프다. 괴롭다. 마찬가지로 죄도 여러 가지 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고통이다. 신음한다. 죄 지은 자의 마음이 평안 할 리가 없다.

 

그리고 병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결과는 똑 같다. 뭘까?

병나서 고치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작은 병이라도 오래 가면 심해져서 고치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감기도 심해지면 그로 인해 합병증이 생겨 그로 인해 죽는다. 죽지 않는 병은 없다. 심해지지기 전에 치료해서 고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죄도 아무리 작은 죄라도 장성하면 사망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 크고 작은 것이 상관이 없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병에는 장사(壯士)가 없다고 했다. 누구든지 병에는 약하다. 마찬가지로 죄는 믿음이 든든하다고 안 짓는 것이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죄를 짓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멸시하거나 조소하거나 비판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우리는 늘 죄지을 가능성이 늘 있다. 병에 걸릴 위험이 늘 있는 것과 같다. 신앙에 교만을 떨지 말라. 잘 믿는다고 자랑하지 말라. 못 믿는다고 비판하기나 멸시하지 말라. 늘 조심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2:12).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의사이시며, 참 상담자이시며, 참으로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진정한 치료자이시다.

 

거룩하신 그 구원자는 자비와 용서를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새롭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그를 자신의 치료자로,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는 자신의 보혈로 그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인치시고 늘 동행해 주신다. 그가 의롭다 하신 이를 또한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한 자를 또한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용서해 주실 때는 또한 새 마음을 부어주신다. 죄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신 후 그대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 마음과 올바른 정신을 공급 받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주님의 손에 잡히시기 바란다. 주님의 손에 잡히는 사람은 산다. 베드로가 무서워서 물에 빠져 갈 때 주님은 얼른 손을 내밀어서 건져 주셨다. 죽은 소녀도 달리다굼하시면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 주셨다.

우리가 어려울 때 주님의 손에 잡혀야 한다. 그러면 산다. 그러면 일어난다. 주님이 손을 내 밀어 주시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고된 일 하다가 힘을 얻으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주가 늘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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