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1.[산상복음1]산상복음 서론

☆ 주님의 머슴 2021. 3. 8. 08:54

주일설교(2015/5/17) - 산상복음 설교(1)

산상복음 서론

5:20

====================================================================

마태복음 57장까지를 산상복음, 또는 산상수훈, 산상설교 등으로 부릅니다. 마태복음 5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말씀합니다. “산에 올라가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17절이하부터 보면 산상복음과 비슷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61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의 말씀을 평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평지에 서셔서 말씀을 전했다고 평지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산상복음과 누가복음의 평지복음은 같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은 여러 곳을 다니시면 말씀을 전하셨는데, 가는 곳마다 비슷 비슷한 말씀들을 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똑같은 말씀을 전하기도 했고, 반복해서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전한 말씀을 저 지역에 가서도 전하고, 저쪽 동네에서 전한 말씀을 이쪽 동네에 와서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산상복음과 누가복음의 평지복음은 같은 장소에서 전한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말씀대로 사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제가 산상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 말씀대로 살자 라는 것입니다. 산상복음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들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소개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성도가 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라는 의미로 신앙의 길잡이, 인생의 길 안내자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보아야 하는 산상복음도 그냥 소개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이렇게 살아라.’ 하는 의미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마태복음 5-7장까지의 산상복음을 설교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오래 전부터 전하기 위해서 준비하면서 주저 주저했습니다. 마음속에는 산상복음을 설교해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늘 들리는데, 이것을 과연 우리 성도들이 이해하고 소화해 낼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 밭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유익이 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냐하면, 지금 현재에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듣고, 변화되라 라고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이대로 사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변화된 것도 내가 많이 양보해서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변화하라는 것은 너무 싫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목사님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만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다녀라.’ 라고 하면서 이런 산상복음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이 산상복음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변화를 원치 않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더 변화해라. 끊임없이 변화해라.’ 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이 산상복음 같은 설교를 소화도 잘 못 시키지만, 듣기를 아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리석게도 이 산상복음을 설교하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하나님도 자꾸 내 마음에 설교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이 산상설교는 틀림없이 교인들이 싫어 할텐데, 그 싫어할 것을 뻔히 알면서 설교를 해야 하는 내 마음도 심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산상복음이 여러분들의 심령에 새겨지고,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고, 주님의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 산상복음이 여러분들의 복음이 된다면, 여러분들은 큰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일어날 것이고, 신앙의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용해시켜 엑기스로 만든다면, 마태복음 5,6,7의 산상복음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산상복음의 모든 말씀의 꼭 지점, 최고의 정상의 말씀이 마태51-10까지의 팔복입니다. 그러니까 이 팔복을 확대하면 산상복음이요, 이 산상복음을 확대하면 신약성경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들이 쓴 서신서의 기초, 서신서의 출발점은 이 산상복음과 팔복입니다. 이 산상복음에 있는 교훈을 하나도 빠짐없이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산상복음의 가르침을 목록으로 만들고 이것과 서신서들을 비교해서 보면 산상복음의 가르침이 서신서에도 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오늘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산상복음의 가르침도 오늘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산상복음과 팔복이 내 속에 심겨지고 내 것이 된다면,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이 되고, 신앙생활에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빠지지 말고, 이 산상복음의 설교를 꾸준히 연결해서 듣고, 말씀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고,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에 큰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유감스럽게도 교회생활의 피상성-표면적(superficiality),’ 또는 신앙의 얄팍함입니다. 신앙의 피상성-형식적인 신앙, 신앙의 얄팍함-무게있는 신앙이 아닌, 쭉정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겉으로는 교인이지만, 실재로는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성경을 안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더 좋고,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고 싶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좋아하게 되고, 예배가 더 소중하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지요? 하나님을 안 믿는 원인이 뭐냐하면, 세상에 의지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보다 세상으로 향하고, 세상의 물질, 세상의 돈에 마음들이 다 빼앗겨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고, 환경이 열악했어도 신앙이 무게가 있었습니다. 신앙이 두꺼웠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성경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환경에서 예수를 믿으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교회를 나오고, 좋은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옛날처럼 가난하지 않는데도, 온통 마음은 다 세상에 빼앗겨 있습니다. 온통 마음은 돈에 다 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더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집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복은커녕 더 신앙이 얄팍해지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빠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오늘 우리가 가난합니까? 왜 오늘 우리가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까? 왜 오늘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멸시당합니까? 우리의 신앙이 형식적이고, 얄팍한 신앙 때문입니다. 무게있는 신앙, 예수의 은혜에 깊이 뿌리내린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여러분, 성경을 읽습니까? 성경을 연구합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과 많이 친해져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성경은 머리를 명석하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능력있게 하고, 삶을 바르게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고, 하나님과 친해지게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두껍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세상으로 마음을 두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유일한 교범이요, 유일한 근거요, 유일한 권위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참된 의미의 기독교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자연계시, 신비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가 있지만,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두껍게 하고, 깊이 있게 합니다.

장구한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세상에는 선한 영도 있고, 악한 영도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 가짜 체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지도 못해 놓고, 하나님을 체험한 것처럼 사기치고, 거짓말하는 거짓 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삶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성경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고, 성경이 우리를 깊은 신앙으로 이끌고, 성경이 우리를 그렇게 살게 하고,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산상복음은 우리를 성경과 친해지게 합니다. 성경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산상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우리의 신앙을 두껍게 합니다. 얄팍한 신앙을 벗어던지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산상복음은 우리를 성경과 친해져라, 성경을 믿으라.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 라고 외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외칩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도들이여,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 때에 복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그렇게 살아야 세상에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를 우러러 보고, 두려워하고, 멸시하지 않는다. 그래야 우리가 능력있는 자가 된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이것이 첫 번째, 산상복음의 핵심되는 말씀이고, 산상복음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산상복음을 주신 목적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율법학자)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복음은 우리의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현재의 신앙의 모습에서 안주하고, 만족하며, 주저앉아 있는 신앙에서 변화시키는 능력이 이 산상복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이 산상복음을 싫어합니다. 이 산상복음을 쭉 설교해 나가다가 보면, 이 산상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안 나와 버립니다. 나는 변화되기 싫은데, 자꾸 변화하라고 압박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기는 오는데, 설교 듣는 자세가 삐딱합니다. 비판하는 자세거나 안 받아 드리는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안 그럴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또 하나, 두 번째로 산상복음의 목적은 산상복음은 예수님의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드리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 드립니까?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산상복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서면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나는 말씀이 필요 없다. 이제까지 말씀 없이도 잘 살았다하면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 드리지 않고, 말씀 앞에 교만하면 안됩니다. 산상복음은 말씀 앞에 솔직하게 만듭니다.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인정하게 합니다. 산상복음은 나를 진실하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긍휼함을 받아야 할 사람임을 진지하게 받아 드리고 인정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산상복음이 필요한 똑 하나의 목적입니다.

 

세 번째는 산상복음은 나의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의 사고(思考), 나의 세상을 보는 관점과 하나님을 향한 관점, 그리고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내 머리 속에는, 내 생각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합니다.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그래서 결국은 내가 은혜와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야할 사람이구나, 나의 능력,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지금 나의 위치가 너무 너무 위태 위태하고,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이 산상복음은 천국을 바라보게 합니다. 천국관을 확실하게 합니다.

잘못된 천국관은 신앙을 변질시킵니다. 이 산상복음은 우리의 눈동자를 천국을 향하게 합니다. 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합니다. 성도가 세상에만 관심이 있고 천국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천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에, 이 세상의 삶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천국에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에서 돈 잘 벌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천국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천국에 대해서 많이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산상복음도 우리의 관심을 천국으로 향하게 합니다. 천국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천국관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성경에 관심을 가진다면, 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산상복음도 우리의 관심을 세상에 두지 않고 천국에 관심을 두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고, 곤고함이 있어도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산상복음의 또 하나의 목적이 우리의 얼굴과 우리의 마음을 이 세상을 향하지 말고, 천국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천국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사실 참된 기독교인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은 항상 참된 기독교인을 두려워합니다. 사탄은 참된 기독교인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교회이며, 기독교입니다. 말세가 되어 갈수록 사회는 점점 혼탁해져 가고,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불의가 판치고, 비진리가 판치고, 거짓이 판치는 시대가 됩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무너지고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는 시대가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분명한 것은 교회가 더 우뚝 서야 합니다. 복음이 더 우뚝 서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보루는 기독교요, 복음입니다.

 

말세가 되어 갈수록 하나님은 더 참된 기독교인을 찾습니다. 절실하게 하나님은 더 참된 기독교인을 찾습니다. 요즘은 전도가 잘 안됩니다. 교회가 전도대를 조직하고, 전도지를 뿌리고, 전도용품을 나누어 주어도 전도가 안됩니다. 그렇다고 전도하지 말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 전도가 안 됩니까? 나의 친구들이, 나의 친척들이, 나의 이웃들이 우리를 보고 왜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까요? 우리를 통하여 예수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독교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상복음은 바로 우리를 참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천국에 잇대어 사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주며,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가 예수 믿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산상복음입니다.

오늘 우리 다같이 디모데후서 31-5절까지를 찾아서 함께 읽으십시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말세입니다. 기독교인은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설 수 있습니까? 산상복음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산상복음이 내 것이 되십시다. 산상복음을 소유하십시다.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이 산상복음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에 이 산상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합니다. 이 산상복음의 설교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여러분의 마음 밭에 이 산상복음을 뿌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복된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으십시오. 이 산상복음이 복된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