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51.[산상복음51]거짓 선지자들

☆ 주님의 머슴 2021. 4. 26. 17:47

주일설교(2016/7/31)-산상복음(51)

거짓 선지자들

마태7:15-16

455

=========================================================================

국내의 기독교 신문의 오피니언에서 전문칼럼니스트가 쓴 글에서 교회 선택의 이유가 은혜인가? 이익인가? -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이유?” 라는 제목에서 오늘날 교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대형교회로 교인들이 몰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놓았습니다.

1.시설이 좋다. 안락하고 편리한 시설이 좋아서... 예배당도 널찍하고, 최신식 건물에다 의자도 편하고, 냉난방이 잘 되어 있고, 교회 안에서 놀기도 좋고, 커피솝도 있고, 여러 방이 많아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놀 수 있어서 좋다.

2.교인들이 많은 걸 보면 좋은 교회구나 라고 생각한다.

3.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사람들이 많으니까 묻혀서 조용히 교회를 다닐 수 있어서 좋다. 간섭 받지 않고 신앙생활하기 매우 편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묻혀서 그냥 살짝 주일예배 드리고 오면 된다.

4.일주일 내내 교회프로그램이 있으므로 시간 보내기가 딱 좋다.

실제로 일주일 내내 교회에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예를 들어 여전도회원)이 주의 일한다는 명목 아래 수다도 떨고 재미도 있으니, 계모임 같은 것도 하고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5.주일학교 체계가 나이별, 학년별로 잘 조직되어 있어서 아이들을 맡기기에 좋아서...

6.주일 예배가 여러 번 있어서 사정에 따라 맞는 시간에 가서 예배하면 되니까 좋다. 주일 오전에 예배를 일찍 드리고 다른 볼 일을 볼 수 있어 여가 생활을 즐기기에 좋아서....

7.무슨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대형교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좋아서..

 

그리고 대형교회의 목회자의 설교의 특징에서 대형교회의 교인들이 좋아하는 설교는 기복설교(복을 많이 선포하는 설교), 무속적 설교(교회 열심히 다니면 복 받는다. 헌금 많이 하면 더 많이 복을 받는다. 기도 하면 할수록 더 잘되고 더 복을 받는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설교, 엘리트 의식을 주는 윤리적 설교(이런 경우 는 옳은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 그 생각만으로도 편안하게 교회생활하면서 자신을 좋은 교인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설교이다), 아주 높은 지적인 설교(이런 경우는 목사님이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자), 아니면 담임목사의 교주화, 카리스마 있는 설교로 끌고 가는 설교, 아니면 유머적이고 코메디 적인 설교로 아주 재미있게 웃게 해서 한 시간을 보내는 웃다가 보면 설교시간이 끝나 버리는 설교 등등.

 

교회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큰 교회들이 이렇게 해서 교회를 부흥시켜 가니까, 다른 작은 교회 목회자들도 교회를 부흥시켜 보려고 이런 대형 교회를 따라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교회는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재미 없는 교회이지요?

 

이런 교회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의 보혈, 십자가, 구원, 천국, 지옥, 죄에 대하여 선포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많이 말씀합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읽어 보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싸웠고, 계속 거짓 선지자에게 속지 말 것을 외쳤습니다. 신약에서도 사도들은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 이단들과 계속 싸웁니다. 신약성경 전체는 이단들, 거짓 예언자, 거짓 사도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는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들, 이단들과 싸움입니다. 지금도 교회를 넘어 뜨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변질시키고, 복음을 바꾸어 놓는 것이 거짓 선지자요, 이단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자기가 좋은 교인인 줄 아는 것입니다. 잘 믿고 있는 줄 압니다. 내 신앙도 꽤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교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단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 믿는 정통신앙인 줄 압니다. 나는 잘 믿는다. 내 신앙이 최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만하고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앙에는 항상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부족하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다 됐다. 이만 하면 됐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 나는 늘 모자란다. 나는 늘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늘 은혜를 더 사모하고, 은혜 받기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고, 진정한, 성경적인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위대했던 사도 바울도 자기는 늘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고 생각하고, 주님 앞에서는 늘 부족한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나는 잘 믿는다. 이만하면 됐다. 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빌립보 312-14에서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거짓 선지자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좀 읽으면 이단과 거짓 선지자를 쉽게 구분해 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잖아요? ‘민주주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이다. 그 나라의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교인들의 수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단이 별스럽게 많은 것은 우리나라 교인들의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수준 낮은 교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물론 목사님들이 수준이 낮으니까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이단이 없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이단이 많습니까? 왜 재림 예수가 그렇게 많습니다. 무인가 신학교, 2년짜리 신학교가 무지기수로 많습니다. 성경만 살짝 가르쳐 가지고 다 안수해서 목사 만들어 버립니다. 신학이 없으니까 이단으로 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거짓 선지자의 특징을 말씀드릴 테니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삼가라 는 말은 주의하다.’ ‘조심하다. 구분하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보시면, 앞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하시고 바로 이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은 이 좁은 문, 좁은 길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 중에 첫 번째 특징은 그 속에 좁은 문’, ‘좁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좁은 문밖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산상복음을 들었습니다. 산상복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좁은 문, 좁은 길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제 좁은 문, 좁은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고생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풍성하고, 축복이 있는 넓은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좁은 길을 걷지 못하게 설득합니다.

 

그들은 바른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양의 가죽을 입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반듯합니다. 아무도 거짓 선지자인지를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이요, 처음에는 바람직한 것을 모두 갖춘 외모로 다가옵니다. 그는 마음에 들고, 붙임성 있고, 유머도 있습니다. 그는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보이고, 옳은 것을 말합니다. 그의 가르침은 대체로 아주 옳고 참된 기독교인으로, 선지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생활방식과 일치하는 생활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좁은 문이 없습니다. “좁은 길이 없습니다. 항상 넓은 길로만 갑니다. 항상 넓은 문만 주장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의 복음에 좁은 문좁은 길을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즐겁고, 기쁘게만 합니다. 그는 너무 멋지고 기분 좋게 위로와 긍정과 축복의 말씀만 합니다. 죄에 대한 말씀, 회개에 대한 말씀은 한 마디도 안합니다. 오직 모든 좋은 말만 합니다. 위로가 되는 메시지만 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이 거짓 선지자에게 좁은 문’, ‘좁은 길이 없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설교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대답은 구약성경을 찾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21절에서 그러나 백성(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 읽어보면 됩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그와 같은 참 선지자가 올 때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를 문제 삼고, 그를 적대하고 탄핵하고 조롱했습니다.

예레미야 614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811절에도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2316-17절에도 보면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예레미야 27,28장을 보면,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의 대결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레미야는 예언하기를 이 나라는 망한다. 그러니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러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다 잘 된다.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잘되게 하신다.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까지 돌아오게 하실 것이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멍에도 꺾어 버리고, 하나님이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해 주신다. 예레미야의 말을 믿지 말라. 그는 거짓말하는 자다이렇게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예레미야의 말대로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열왕기상225-28절에서도 보면 참된 선지자 미가야 선지자와 400명의 거짓 선지자와 대결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결국 참선지자 미가야의 말대로 아합왕은 아람왕과의 싸움에서 결국 패하고 죽고 맙니다.

 

구약성경에서도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축복만 선포했습니다. 무족건 잘된다는 말만 했습니다. 책망과 회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한 잘못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백성들이 거짓선지자들이 전하는 평화의 외침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평강하지 않는데도 평강하다는 말만 했고, 죄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는데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축복만 계속 선포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은 축복만 계속 선포하기를 좋아합니다. ‘잘 된다. 잘 믿고 있다. 지금 처럼만 해도 된다.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늘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좋은 말만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넓은 문이요, 넓은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오는 고난과 어려움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가장 중요한 거짓 선지자의 특징 중 핵심입니다.

 

두 번째 특징이 기독교의 교리가 없고, 최후의 심판과 버림받은 자가 가는 영원한 지옥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은 교리를 모릅니다.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지도 않고, 교리를 배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요즘은 딱딱하고, 싫증나는 설교는 안합니다. 왜요?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특히 성령에 대한 설교는 일 년에 성령강림절에 한 달 이상씩 꼭 해야 합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과 구원은 잃어버릴 수도 있고, 구원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특히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는 시대이기에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우선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재미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미있고, 유머스럽고, 마음에 기쁨을 주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듣기에 좋은 부담이 없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자녀들이 잘되고 성공할 수 있는지, 건강하게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오래 살 수 있는지, 지적이고, 세상 살아 가는데 많은 용기와 도움이 되고,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시대에 선포하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이 세태에 발맞추어 듣기를 좋아하는 듣기에 좋은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이 세상을 따라가고, 자기 편리한 대로 살고, 고난의 길을 가지 않고, 평안의 신앙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는 책망도 하고, 잘못 믿으면 잘못 믿는다고 하고, 교회 안 나오면 안 나온다고 찾아가서 책망도 하고, 십일조 안 하고, 헌금 안하고 빼먹으면, 안 한다고 책망하고 - 우리 교회는 보니까 주일헌금을 잘 안하더라고요. 십일조나, 감사 헌금이나, 절기 헌금을 하는 날에는 주일 헌금을 안 하고, 그걸로 때우더라고요 또 예배 안 오려고 살살 피하고, 가끔 얼굴 내밀고, 한 달에 한번 오고,,,,, 이렇게 하면 책망하고, 그렇게 믿으면 지옥 간다. 그렇게 믿으면 믿음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믿으면 망한다. 이렇게 강하게 책망하고 강하게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못하는 겁니다. 속만 답답한 겁니다. 왜요? 삐져서 안 나올까 싶어서,,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라도, 졸더라도 자기 발로 걸어 나와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라도 참석하는 게 낫지, 안 나오는 것보다야 낫지,, 라고 하면서 가만 보고 기도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거짓 선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책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제대로 안 하고 있으면, 그렇게 믿으면 안된다고 책망해야 되는데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삐질까 싶어서,,,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에는 구원으로 인도하는 매우 큰 문과 천국으로 인도하는 매우 넓은 길이 있다. 여러분은 자신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위해서 믿기로 결정만 하면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치료하며, 모두 괜찮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기만 하면 된다. 교회 매주 열심히 나오기만 하면 된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교인들이 세상에서 죄 짓고, 믿음대로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도 가볍게 취급하고, 주일에 교회에 예배나 빠지지 말고 나오느라.‘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세상을 대항해 싸워 이기는 군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동안 세상에 살면서 죄 실컷 짓고,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다 얻어 맞아서 상처 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어서 교회에 와서 아까징기 좀 바르고, 소독약 좀 마르고, 마이신 몇 개 먹고, 영양제 주사 한 대 맞고, 힘 내라, 승리 할 것이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로 위로 받고, 세상으로 나가서 또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면서 얻어 터지고, 이리 맞고, 저리 맞고 해서 또 그 다음 주일 교회에 옵니다. 교회가 십자가 군병을 길러 내는 훈련소가 아니고, 세상에서 얻어 맞고 상처 투성이가 되어 온 교인들에게 약 몇 개 주고, 소독제 좀 발라주는 병원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세 번째 특징은 십자가,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죄에는 보상(補償)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축복을 말하고, 기적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고난과 십자가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빼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가 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10:37-38)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여러분, 이것을 꼭 아십시오. 우리가 예수 믿으려고 처음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반드시 고난이 옵니다. 이 고난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고난을 피해서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가 구원 받고, 예수를 만나고, 내 속에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면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의 순서입니다. 핍박도 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환경에 따라 고난이 따릅니다. 이것은 필수적인 순서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이 고난을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는, 고난 없는 신앙만을 말합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회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회개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다 잘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믿고 있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다 엘리트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문제가 없는 좋은 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없는 변질된 신앙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좋아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내 마음을 기경하게 되고, 좋은 옥토로 만듭니다. 회개는 교만을 없애 줍니다. 회개는 신앙의 나태함을 없애줍니다. 회개는 굳은 마음을 바꾸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눈물이 많은 신앙이 좋은 것입니다. 성경 시편을 보시면, 주님을 만나고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감격과 기쁨의 삶은 눈물을 많이 흘린 자들입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은 회개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멸망의 길이 있고,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분명히 멸망의 길이 있는데도 멸망의 길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허약해 졌습니다. 성도들도 너무 허약해 졌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왜 이렇게 허약해 졌습니까? 설교 때문입니다. 70년대, 80년대를 거치면서 기복설교, 기복신앙, 축복, 성공만 외쳤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고난과 핍박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했는데, 이제는 십자가를 안 지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이제는 점점 영적으로 체질이 나약해지고, 핍박과 고난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편안히 예수 믿는 것을 좋아하고, 고난과 십자가를 피해 갈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여러분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만 바로 듣고, 바로 읽어도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은 앞으로 제가 축복만 선포하고, 괜찮다 다 잘 될 것이다 라고만 말하고, 평안과 안식만 설교하고, 주일에 한번만 교회에 나오면 된다고 하고, 책망도 안 하고, 잘못 믿는다 라고 말해 주지도 않고, 책망도 안 하고 그러면, ‘우리 목사님도 거짓 선지자가 되어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목사님, 요즘 거짓 선지자가 되어 가는 군요!’ 라고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