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7/8/20)-요한계시록(31)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설 자들
계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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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장 전체는 6장 17절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입니다.
여섯째 인을 떼고 일곱째 인으로 바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곱 째 인은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할 8장에 나옵니다. 그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사이에 7장이 삽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7장에서 6장 말미에서 던진 질문,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에 대한 대답을 확실하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서운 것이다. 누구도 그 앞에서 견뎌 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그들은 그 앞에서 건짐을 받는다. 하나님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고 교회와 성도에게 힘과 용기와 격려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4장부터 바로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일곱 재앙을 일정기간 동안 세상과 함께 겪어 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와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재앙에 가까운 징조들이 일어나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7년대환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3년 반 동안은 이 세상과 똑 같이 환난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기독교의 전 역사 속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중간 중간에 작은 종말들이 있을 것이고, 이 작은 종말들을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과 함께 겪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가 순교자적인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가 사탄에 의해서 다 오염되고 더럽혀졌기 때문에 기존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처음 바다는 다 없어져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순교자적인 삶을 통해서 옛 사람, 옛 성품은 죽이고 새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재앙들을 통해서 온 우주가 재창조되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고난과 환난과 핍박과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옛 사람을 죽이고, 옛 성품을 없애고, 우리의 자아도 죽이고, 내 뜻은 다 하나님께 반납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스스로도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로부터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있는 환난과 같은 작은 종말들 때문에 때로 낙담하고 때로 절망에 빠지고 때로 힘에 부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의 중간 중간에 우리 성도들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이 7장인 것입니다. 7장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 시간에 7장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본문의 흐름을 끊는 것과 같은, 배경이 전혀 다른 말씀들이 중간 중간에 나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삽경이라고 합니다. 여섯째 인에서 일곱째 인으로 바로 넘어 가야 되는 데 그렇지 않고, 그 중간에 다른 환상을 넣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6장까지를 본경이라고 하고, 7장을 삽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8장부터는 일곱째 인을 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것을 본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본경에다가 중간 중간 끼워 넣어 놓았다고 삽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본경, 삽경이라는 말은 몰라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섯째 인에서 일곱째 인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리고 여섯째 나팔에서 일곱째 나팔로 넘어가기 전에, 그리고 일곱째 나팔을 불고 일곱 대접이 부어지기 전에, 그리고 일곱 대접을 다 붓고 난후 어린 양 혼인 잔치가 열리기 전에 삽경 환상들을 넣어 놓았는데, 이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카메라 두 대로 하늘의 사건과 땅의 사건을 동시에 찍어서 보여주는 것처럼, 땅의 세계와 영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7장은 일곱째 인을 떼기 전에 영적세계를 보여 주면서, 우리 성도들의 신분과 성도들의 영적인 실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겪으며 살고, 작은 종말들을 맛보며, 순교자적인 삶을 살지만,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면, 이미 승리했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예수 앞에 서 있고, 해와 뜨거운 기운과 온갖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쳐주시고,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해 주시고, 그 눈에는 눈물을 씻어 주신다 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미리 당겨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7장은 미래에 우리 성도가 받을 축복, 영광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것을 미리 당겨 보여 주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미리 알아라. 그리고 힘을 내라. 겁 먹지 마라. 사탄이 힘 있는 권력자, 즉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앞세워 교회를 대적하고 핍박하겠지만, 그들은 얼마 못 간다. 성도들은 반드시 이기고, 하나님과 어린 양 보좌 앞에 선다. 그러니 잘 믿으라. 신앙을 굳건하게 지켜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7장을 설명하겠습니다. 7장1절을 보시면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이 일 후에” 라는 단어는 시간적인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이 본 환상의 순서입니다. 환상의 순서가 꼭 시간 적 순서를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일부 세대주의자들은 이 단어를 가지고 7장을 여섯째 인을 뗀 후에 막간(연극에서 극과 극 사이를 말함)을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잠깐 쉬는 시간을 주시고, 그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을 치신다고 주장을 합니다. 막간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막간이 뭐냐하면, 우리가 극장에서 연극을 본다고 가정을 했을 때, 연극 중간에 휴식을 주기 위해 막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관중들은 화장실도 갔다 오고, 담배 피울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고, 이렇게 휴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이런 막간을 이용해서 광고도 하고, 또 개그맨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웃기기 위해서 개그도 한곤 합니다.
그러니까 세대주의자들은 7장을 일곱째 인을 떼기 전에 하나님께서 잠시 쉬는 시간을 주시고, 막간을 이용해서 다른 영적세계인 삽경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그런데 7장은 막간과 아무 관계가 없고, 요한이 환상을 본 순서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본 환상은 시간적 순서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시간적인 순서로 역사를 나열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들을 끼워 맞추어서 ’맞나 안 맞나‘를 풀어 보는 수수께끼 책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여섯 째 인의 환상 후에 다른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계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바람은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이 네 천사가 붙들고 있는 네 바람이 무엇인가? 2절을 다시 보십시다.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여기에 보면,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는 어떤 천사냐 하면,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입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네 천사가 붙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람이 땅, 바다, 각종 나무에 분다”는 말은 앞의 6장 전체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 연장선에서 8장부터 나타나는 재앙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일어나고, 온갖 질병, 죽음이 일어나고, 순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온 지구에 지진, 각종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현상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고 있습니까? 3절을 다시 읽어보십시다.
(7: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다 칠 때까지만 잠시 동안 이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다 치고 나면, 바람을 풀어 놓겠지요? 이 말씀은 뭐냐하면 인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도 바람의 고난을 겪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고 보호해 주시고, 별도로 다른 곳에 옮겨 놓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 아닌 겁니다.
7장 밑으로 쭉 내려 가서 9절에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큰 무리”가 나옵니다. 이들이 누구냐 하면, 14절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인을 받은 성도들도 다같이 환난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을 받은 144,000명이나, 9절의 흰 옷 입은 무리들이나 다 같은 뜻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후에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1절의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붙잡고 있는 네 바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스가랴서로 한번 가보지요.
(슥6:1-5)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그 네 바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6장에서 공부한 네 말 탄자들입니다. 이 땅에 재앙을 선포하는 네 말 탄자들을 누가 붙들고 있습니까? 네 천사가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칠 때까지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3절)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서 그 재앙을 선포하는 네 바람, 네 말 탄자들을 천사들이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 고대 시대에서 인을 친다는 것은 ‘이 물건, 이 가축, 이 노예는 내 것이다’라는 주인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호 한다’는 주인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내 것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한다’ 라는 뜻입니다.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그러니까 그 이마에 인은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새겨 놓은 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모든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재앙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진공 상태로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앙을 함께 당하지만 그 재앙의 궁극적인 결과인 사망으로 가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부터 보면, 인을 받은 자의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마다 일만 이천 명이라고 말합니다.
4절부터 8절까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다.
(4-8절)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144,000은 구원받은 완전수를 상징합니다. 12=3×4, 3은 삼위일체 하나님, 4는 동서남북 온 우주를 가리키는 숫자,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요, 12는 이 우주는 12지파인 이스라엘을 위해 존재하며, 하나님이 12지파를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2×12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완전한 이스라엘, 완전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12지파는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좀 다릅니다. 우선 5절 이하에 거명 된 열두 지파에는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 대신에 요셉지파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레위 지파는 계수에서 빠지게 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에는 레위 지파도 들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12지파의 모습을 나열해 놓고 있는가?
사사기 18장에 보면, 단 지파는 처음 가나안에서 받은 기업을 버리고 북쪽 가장 끝부분 ‘라이스’라는 곳에 정착을 하고 살게 되는 데, 제일 처음 신상을 세워서 하나님이라고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제일 먼저 망해 없어져 버립니다. 에브라임 대신 요셉지파라고 넣은 것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질 때 에브라임 지파가 앞장서서 분리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북이스라엘을 다른 말로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에브라임 대신 아버지의 이름인 요셉을 넣은 것입니다. 레위지파는 원래 기업이 없기 때문에 12지파에 안 들어가는데, 마지막 때에 구원의 완성을 이룰 때는 단 지파 대신 들어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구원을 보여 주면서,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불완전한 12지파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 6-8절에서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라고 했고,
또 이사야 10장 21-22절에서는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4-8절에 나오는 인 받은 자 144,000에 대한 말씀은 구원에 대한 구약적 표현입니다. 인을 친다는 말이나, 12지파의 표현은 구약적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1-8절까지의 말씀은 구약교회 성도들의 구원 받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9-14절까지는 신약성도들의 구원 받는 모습입니다. 여기서는 인 받는다는 표현 대신 어린양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희게 된다 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인을 받는다는 말이나,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희게 된다는 말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인을 친다라는 말은 구약적 표현이고, 예수님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된다는 말은 신약적 표현인 것입니다.
4절을 다시 자세히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 이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그리고 9절을 자세히 보시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는 구약적 표현이고, 하나는 신약적 표현입니다. 다같이 구원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특히 9절에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라는 말은 유대인을 뺀 이방인을 표현할 때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방인을 말할 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라고 늘 말합니다.
예를들면 앞의 5:9에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이방인을 말합니다(그 외에도 10:11, 11:9, 13:7). 신약교회는 이방인들의 교회이고, 구약교회는 이스라엘의 교회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늘 본문 7장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의 구원 받은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진노의 큰 날”에 하나님 보좌와 어린 양 예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의 전유물인 144,000에 다 들어가야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에 속아 넘어가면 안되는 겁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본문 13-14절을 함께 읽으십시다.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이라는 말은 구약성도이든, 신약성도인든 일정기간 동안은 큰 환난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이 큰 환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이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큰 환난을 다 받게 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환난은 일정기간은 받겠지만, 다 받게 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다음 주일에 배울 8장부터는 큰 환난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8장부터는 재앙이 점점더 커집니다. 그리고 9장에 들어가면, 그 중에서도 3대 환난을 별도로 뽑아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환난으로 들어가기 전에 7장에서는 그 큰 환난을 극복하고 이긴 성도들, 하나님 보좌와 어린양 앞에 선 성도들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 7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하면, 구원 받은 성도는 반드시 이기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에게 흰 옷 입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요, 이들이 나중에 어린양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5절에서 17절까지 읽으십시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으며,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까? 바로 이렇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최종 목적은 바로 이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은 최후 마지막에 성도들에게 나타날 현상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똑 같은 말씀이 21장, 22장에도 나옵니다.
(21: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또 22:3-5을 보시면,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말씀이 비슷하지요?
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우리가 배운 대로 2-3장에서 일곱교회를 보면서 “이기는 자, 이기는 자” 계속 이기는 자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한 것도, 결국 성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모두 이기는 믿음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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