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7,8,27(일)[요한계시록33]일곱 나팔

☆ 주님의 머슴 2017. 9. 3. 15:55


주일설교(2017/9/3)-요한계시록(33)

일곱 나팔

8: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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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순교자적인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요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모두가 고난과 핍박과 죽음입니다. 이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통해서 거룩을 완성하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 역사는 핍박의 역사요, 고난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계시록 앞의 2,3장의 일곱 교회의 모습을 배웠잖아요? 교회의 고난 받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고, 이겨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자세히 보면, 교회와 성도만 고난 받는 게 아니고, 이 우주의 자연만물도 고난을 당합니다. 7, 7나팔, 7대접 다 자연만물이 고난을 겪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야 거기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21:1-2).

(21:1-2)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교회와 성도는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거룩을 완성해 가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연만물도 자연재해와 같은 고난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최종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 완성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는 성도들의 기도가 합쳐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재앙과 환난의 내용은 전부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서고, 그리고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거룩을 향한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밑거름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우리가 배운 대로 일곱째 인을 떼고 난 후에, 첫째 나팔을 불기 전에 반 시간 동안 고요한 그 시간에 예수님의 향연성도들의 기도가 합쳐져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했습니다.

(8: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그리고는 5절에 그 향연과 합쳐져서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간 그 성도들의 기도는 응답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8: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간 향로, 즉 예수님의 향연과 성도들이 기도가 담겨져 있는 그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서 다시 땅으로 내려 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져 이 땅에 내려오는 모습이다. 향로에 담겨져 있는 예수님의 향연과 성도의 기도가 종말의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종말이 속히 와서 거룩함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 임하도록 기도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610절에도 보여주고 있고, 오늘 85절에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이 종말시대에는 우리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기도 없이 버티기가 힘듭니다. 기도 없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고, 7절부터 일곱 천사가 하나씩 하나씩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나팔을 언제 불었느냐 하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전투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나팔에 대해서 먼저 좀 설명을 드리고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나팔 재앙을 위한 서론 부분으로 나팔에 대한 보충 설명이 여러분들이 나팔 재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을 뿐만 아니라 대적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릴 때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이야기를 다 찾아서 오늘 본문과 비교해 보면, 나팔재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6:4-5)

“(4) 제사장 일곱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 나팔 재앙에서 일곱 천사가 나팔을 들고 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붙들고 불 준비를 하는 모습이 비슷하지요? 일곱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 어떻게 됩니까? 철옹성인 여리고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일곱 나팔 재앙은 그렇게 악의 완전한 소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언제 나팔을 불었는가하면, 기쁨을 동반한 예배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10:10)

“(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러니까 이 나팔재앙은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그 때를 위한 나팔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같은 내용이지요.

 

그리고 왕이 등극을 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왕상1:39)

“(39)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우리 주님께서 영원한 왕이 되셔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그 날을 위한 나팔인 것입니다. 역시 같은 내용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 메시야의 나라의 완성을 향한 나팔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 우리 주님의 대관식의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11:15-17)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새해인 71일에 (티쉬리 월 1)나팔을 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날을 나팔절 혹은 신년절로 지킵니다. 모든 어두운 것들, 묵은 것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23:24)

“(2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그렇게 이 나팔 재앙은 새로운 창조의 완성을 향한 나팔인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2:12-15)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1:14-17)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33:2-5)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 할 때도 나팔을 붑니다.

(24:29-31)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살전4:16)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렇게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나팔을 언제 불었느냐 하면, 1)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하러 진군해 나아 갈 때, 2)기쁨의 날과 예배할 때, 3)왕이 등극할 때, 4)우리 주 님이 영원한 왕으로 등극하실 때, 5)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가 시작할 때, 6)회개를 촉구할 때, 7)임박한 심판을 견고할 때, 8)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팔을 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일곱 나팔은 위의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불라고 하신 것은 모두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 즉, 우리의 인생에 닥치게 될 환난과 고난과 같은 재앙의 내용과 의미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경고이며, 악한 세력과의 싸움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들의 거룩을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새 해에 나팔을 불었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인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의 새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팔 재앙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그러한 삶의 질곡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 나팔재앙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곱 나팔재앙의 내용을 잘 읽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일곱 재앙은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 나팔의 첫 번째 재앙인 우박은 애굽의 몇 번째 재앙입니까? 일곱 번째 우박 재앙입니다.

일곱 나팔의 두 번째 재앙으로 물이 피가 되지요? 그리고 세 번째 나팔 재앙으로 물이 쑥이 되어 못 먹게 됩니다. 출애굽 때의 몇 번째 재앙입니까? 첫 번째 재앙이지요? 나일 강이 피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든 사건도 생각이 나시지요?

그리고 네 번째 나팔재앙으로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집니다. 몇 번째 출애굽 재앙입니까? 아홉 번째 재앙입니다. 깜깜한 암흑이 애굽을 덮지요?

 

그리고 다섯 번째 나팔의 황 충(메뚜기) 재앙은 출애굽 몇 번째 재앙입니까? 일곱 번째 재앙이지요?

 

사도요한은 지금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리셨던 재앙들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열 가지 재앙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출애굽의 재앙은 하나님께서 당시 악을 상징하고 있던 애굽의 바로에게 전쟁을 선포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구원과 애굽의 바로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과 심판입니다. 이 일곱 재앙들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고센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들이 모두 다 100% 피해 갔습니까? 100%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물론 100% 피해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또 미리 알려 주셔서 피해를 보지 않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지요.

 

(4:34-35)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전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요, 우리의 거룩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첫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두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세 번째 나팔은 무엇인가 거기에 궁금증을 갖기 전에 먼저 이러한 재앙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내리는가, 그리고 그 재앙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눈이 열려 알고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재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되지만 왜 그 재앙이 임하는가는 정확히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삶에 닥치는 환난이나 고난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의 이유가 뭡니까? 환난의 이유가 뭐예요?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나팔 재앙의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원리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천지의 주관자이십니다. 그 누구도 그 앞에 적으로 맞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과 싸우십니다. 악이 하나님의 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두 팔 걷어 부치시고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하나님께 패배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과 싸우실 때, 우리 보고 함께 싸우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과의 싸움에서 우리를 동참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악과의 싸움에 동참시켜서 악이 무엇인지, 영적싸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거룩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싸워야 되는 이유를 배우고, 신앙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거룩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순결함, 순전함, 거룩함을 만들어 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 집에 무슨 일을 하던 저를 불러서 같이 거들게 했습니다. 담을 쌓을 때도 옆에서 함께 일하게 했습니다. 닭장을 만들 때도 옆에서 심부름시키고 붙잡으라고 하고, 거들게 했습니다. 누에를 많이 쳤는데, 잠실을 지을 때도 흙벽돌을 만들고, 담을 쌓고, 지붕에 스레이트를 올리고, 계속 같이 일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힘든 것도 배우고, 일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것을 배웁니다.

한번은 자전거를 다 분해 해 놓고 부품을 갈고 새로 고치는데, 저를 불러서 이렇게 고치는 거다. 타이어 빵구 났을 때는 이렇게 떼우는 거다. 다 가르치시는 겁니다. 체인 줄이 끊어졌을 때는 이렇게 연결하면 된다. 자전거는 부품이 많기 때문에 그 사이사이에 기름칠을 해 주어야 된다. 앞으로 자전가방 차려서 먹고살 것도 아닌데 다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렇게 배우는 겁니다.

망치질 하는 방법, 못질 하는 방법, 톱질하는 방법, 초등학교 때부터 다 배우는 겁니다. 칼을 가는 방법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주시면서, 싸워서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줄을 그어 분배해 주면서, 다 점령해서 완전하게 살 수 있도록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부터 빼앗아서 완전히 살 수 있도록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면서 너희들이 나가서 싸워서 빼앗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으라고 열심히 싸워서 빼앗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 어디입니까? 가나안이지요? 그런데 왜 안식의 상징이요,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전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통해서 조금 씩 조금씩 얻어가게 만드십니까?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재앙들은 전부 그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결국 승리하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치시는 하나님의 전쟁을 보고 배우면서 실제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한 발 한발 성숙하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구원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어요. 그런데 전쟁을 통해서 갖게 만드세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확실하게 알아가게 되고 그 분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조금 씩 조금씩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 나에게 주어진 천국의 안식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천국의 안식을 이 땅에서 직접 체험하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던 사람들입니다.

 

청교도 시대의 유명한 목사님 중에 리차드 백스터같은 분은 그의 회심이리는 책에 당신들의 삶 속에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다면 당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셨습니다.(리차드 백스터의 회심중에서)

그 분들은 그러한 전쟁을 열심히 치러 내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많이 깊이 맛보고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을 겪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고 감격스럽지도 않고 평안이 없는지 아세요? 홍해를 건너긴 건넜는데 자기 안에 있는 대적들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매일 그 적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은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8-11)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을 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안식을 향한 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계속 싸워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전투를 매일 매일 치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정으로 느끼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평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역동적입니다. 다이나믹한 것입니다. 구원은 역사성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신분적이며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은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 가는, 거룩해져 가는, 성숙을 위해 열심히 전투를 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초대 교회 때 그 엄청난 박해 속에서 이 일곱 재앙의 이야기를 읽고 가슴 벅차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감격이 오늘 동일하게 이곳에 있는 여러분의 심령 속에도 임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