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7,10,22(일) [요한계시록40]일곱 번째 나팔

☆ 주님의 머슴 2017. 10. 22. 16:22

주일설교(2017/10/22)-요한계시록(40)

일곱 번째 나팔

1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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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앞에서 우리는 두 증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두 증인은 마지막 때,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특별한 사람들이라기 보다, 마지막 때에 순교자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입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글자 그대로 순교자적인 삶을 살기로 각오한 자들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세상은 그들의 죽음을 보고 크게 기뻐합니다. 장사도 지내주지 않습니다. 죽어 있는 자에게까지 모욕을 가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서로 예물을 주고받으며 교회와 성도들의 죽음을 축하합니다. 그 기간이 사흘 반이라고 하지요? 사흘 반은 바로 삼 년 반입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은 사흘 반, 또는 한 때 두 때 반 때, 또는 1260, 또는 마흔두 달입니다.

 

사흘 반 이라고 표현한 것은 잠깐, 짧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고난을, 핍박을 받는 것은 잠깐이다. 짧은 기간 동안 고난을 겪는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반 동안 죽어 시체가 땅에 버려져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이 순교당하고, 고난당하고, 핍박당하고 멸시 천대 당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 때에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모세와 엘리야 같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두 증인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파와 세상의 혼탁한 바람, 물질의 풍요와 화려한 문화로 불의와 거짓으로 세상에 혼탁한 바람이 불어 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바람에 다 날라 가 버리는 것입니다. 쭉정이 교인, 겨와 같은 가벼운 교인들은 다 날라 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곡성도, 말씀에 붙잡힌 충실한 성도,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두 증인된 자들은 바람에 날라 가지 않겠지요. 오히려 더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겠지요. 그러다가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고, 순교하고, 고난당하겠지요. 그러나 사흘 반, 짧은 기간 동안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3년 반 동안 내내,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고, 세상이 보기에는 무참히 밟히는 모습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면 우리는 우리 두 발로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게 1112절 말씀이죠? 그렇게 우리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에 세상이 우리를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구경하다', 'qewrevw(데오레오) '인식하다''바르게 알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에서야 ', 저 사람들이 맞았네' 하고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불쌍히 여깁니까? 이렇게 좋은 날, 교회당에 앉아서 고리타분하게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를 듣고 있지요, 이런 이틀 연휴에 놀러 가면 얼마나 좋은데, 교회에 와서 앉아 있지, 쉴새 없이 교회에 와서 봉사해야지, 우리가 얼마나 불쌍해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우리가 맞았다는 것을 , 'qewrevw 데오레오’, ‘정확하게 인식하게 될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은 큰 성 길,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사흘 반 동안 죽어 있다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면 살아나서 두 발로 일어서,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성도의 삶이 누구의 삶과 흡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똑같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게 휴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살아내야 하는 자들이고, 마지막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다가 이리로 올라오라주님의 부르심 따라 휴거하게 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시는 거 힘드시죠? 여러분은 지금 그분의 고난, 그 분의 죽음, 그리고 그 분의 부활을 함께 겪어야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이 계시하고 있는 성도의 삶을 정말 그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가 하늘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일곱 번째 나팔로 넘어가겠습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자 재앙이 떨어지지 않고 또 천상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원래는 일곱째 나팔을 불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성도는 휴거하게 되고, 악의 세력들을 다 멸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큰소리로 찬양하고, 24장로들이 경배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가 81절에서 배운 대로 일곱째 인을 떼니까 하늘이 반 시간 동안 고요하더라고 했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나고, 악의 세력을 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와 승리의 하는 찬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장부터 영계의 영적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 다음에 마지막 재앙인 대접재앙이 나오는 것입니다. (재림, 휴거,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12,13,14장을 설명할 때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궁극적 우주의 종말이 오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루어지게 됨을 찬양하는 모습을 통해서 미리 당겨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렸을 때 재앙의 내용이 다음으로 유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앙이 극에 달해서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계획,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 되어져 있는 장면을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을 잘 보시면 24장로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옛 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이라고 묘사를 합니다. 뭐가 하나 빠졌지요? 뭡니까? 장차 오실 이가 빠졌습니다. 전에 1장에서 우리가 본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과 어떻게 다릅니까?

 

요한계시록 14절과 8절을 보시면,

(1:4,8)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 설명하고 있지요? 그런데 17절에서는 장차 오실 이가 빠졌지요? 장차 오실 이, oJ ejrcovmeno"(호 엘코메노스)미래로부터 역동적으로 현재로 오고 계신 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표현이 빠졌습니다. 그 말은 일곱 번째 나팔이 우주의 최후의 종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번째 나팔을 불면 장차 오실 이그 분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오실 이가 빠진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의 징조와 재앙들은 교회시대를 지내면서 과거, 현재, 미래 전체가 연결되어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과 완성까지를 전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은 항상 어떤 목표지점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과 우주의 역사는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정확하게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 목적지를 잘 설명해 주고,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그 목표지점인 마지막 종말 때가 되면 이 세상 나라가 우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당겨서 알려주시면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이 여기에 맞추어 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분을 고린도전서 1524-2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다니엘 726-27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7:26-27) “(26)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적그리스도)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원래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악의 세력인 사탄의 세력과 그의 추종자들, 즉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심판하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땅을 회복하고 메시야의 왕국을 세워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세상 나라는 헬라어 원어로 basileiva tou' kovsmou (바실레이아 투 코스무)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용한 말과 동일합니다.

(4:8-9)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8절의 천하만국 basileiva" tou' kovsmou (바실레이아 투 코스무), 세상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천하만국, “세상 나라가 같은 말입니다. 마귀의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담에게 다 주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사탄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함으로 세상나라(천하만국)가 다 사탄의 손에 넘어 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예수님께 나한테 절만 한번 하면 이 세상 나라를 네게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 세상 나라가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까? 우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그 나라의 왕 노릇을 하실 것이라는 것이 15절의 내용입니다.

 

16, 17절을 읽으십시다.

(11:16-17)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조금 전에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장차 오실 이가 빠졌다고 그랬지요? 장차 오실 이가 오셔서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한 대로 이미 완성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메시야의 나라를 통치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15절의 마지막 끝을 보시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로 끝나지요? 미래시제로 끝납니다. 미래에 되어질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읽은 17절 끝을 보십시오.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로 끝나지요? “because you have taken your great power and have begun to reign.” 현재완료시제로 끝납니다. ‘이미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 15절의 내용과 17절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계획하고 목적한바 대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완성되어져서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는 것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리 당겨서 보여주시는 목적이 뭘까요? 마지막 때에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 두 증인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의 힘에 짓눌려 쫄지 말라, 주님은 반드시 이기시고, 회복하시고, 메시야의 나라가 완성되어 우리가 영원히 거기에서 함께 거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정확한 순서로 따진다면, 1111, 12절에 성도들의 휴거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마지막 천사가 마지막 나팔을 붑니다. 이것은 시간간격이 없습니다. 동시에 일어납니다. 12장부터는 후반부 3년 반 동안에 되어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21-6절을 보면, 앞의 교회시대 전체와 연결시켜 놓고 있습니다. 사탄의 활동은 이미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즉 교회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후3년 반도 하나님이 허락해 놓으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놓은 시간인 후3년 반 동안에 사탄은 온갖 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받은 자세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음 18절을 읽겠습니다.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8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후 심판하시기 까지 그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요약해 놓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 구절을 확대시켜 펼쳐 놓은 것이 12장부터 나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핵심되는 클라이막스가 12, 13, 14장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대환난기 후반기 동안에 일어날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대환난기 전반기에는 교회와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총력전을 벌입니다. 오직 세상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은 복음전파이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순교자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교회를 버리고 떠나는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참으로 믿는 자가 심히 적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교회는 휴거해 올라가게 됩니다. 두 증인이 오고 있습니다. 두 증인의 시대는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선명합니다. 선과 악이 선명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분명합니다. 믿는 척 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과 핍박입니다.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자만 남습니다. 가짜신앙, 형식적인 신앙은 다 없어집니다. 알곡성도만 남는 겁니다. 이 두 증인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적그리스도가 정체를 드러내고, 예수님은 재림하게 되고,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인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그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최고로 발악을 하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고 진멸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설명해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12, 13, 14장인 것입니다.

 

이것을 한 구절로 설명해 놓은 것이 18절인 것입니다. 세상은 두 종류로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는 상 받을 자들이고, 또 하나는 멸망당할 자들입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두 갈레로 나누어 끝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신론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소멸된다고 믿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토해내고 반드시 심판이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다 성취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휴거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모두 멸망하게 되고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은 모두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 성도들,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 반드시 상주십니다. 반대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 이들이 누구입니까? 18절 처음에 분노하는 이방입니다. 왜 분노합니까? 전도한다고, 예수 믿는다고, 교회를 향하여 분노하고, 기독교를 향하여 기분 나빠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을 미워하고, 이것을 분노한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나팔이 불면 그 때가 이들이 멸망할 때라는 것입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그 위의 18절 마지막을 보면,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라고 말하지요? ‘그 때가 지금 다가오고 있다, 그 때를 하나님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하늘성전 문을 활짝 열어서 보여 주고,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 성전이 열리고, 그 안에 언약궤가 보이고, 거기에서 번개와 음성들과 우뢰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라고 말합니다. 있더라 라는 말은 givnomai(기노마이), ‘생겨나다. 자라다. 만들어지다. 일어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안에서 번개, 음성들, 우레, 큰 우박이 준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언가 일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처음에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45절에 나옵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했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말합니다. 하늘 성전의 언약궤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거기서부터 뭔가가 일어나려고 합니다.

이 구절을 12, 13, 14장을 빼고 바로 151절 앞에 연결시켜서 읽어보면 더 이해가 빠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상태,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12장에서 14장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악의 세력은 때가 되면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목적지를 어디에 두고 사십니까?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분명치 않고, 목적지를 잃어버린 분들은 오늘 말씀을 분명히 들으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살고 있습니다. 광야를 거쳐야 목적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광야 저 건너편에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살지만, 우리는 관심과 눈동자는 저 건너편 목적지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눈동자가 이 광야에 있으면, 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이 창조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자연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은 창조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에 의해 영이 불어 넣어졌고 그들에게는 인격과 성품이라는 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만물을 다스리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그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는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이라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선악과는 모든 인간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설명하는 하나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관계를 깨 버렸습니다. 절대 상위에 존재하고픈 마음이 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자기의 위치를 이탈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선과 악도 자기들의 판단에 의거해서 정의를 해 버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는 것을 선하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는 것을 악하다고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만든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들 마음대로, 선과 악을 정해 놓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 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 안에서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담 안에 있다는 것은 아담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았던 그 죄를 우리도 동일하게 짓고 있는 자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51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 안에 있던 자들을 자기 안에 넣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게 구원이지요.

바울 서신에 두 줄 건너 한 번씩 나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서, 예수 안에서이 말이 어떤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아담 안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하다고 우기고, 자기가 자기의 기준에서 악한 것만을 악한 것이라고 우기던 자들이었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사람들입니까? 자기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낸 구원의 방법이요 수단으로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아직 반쪽 밖에 모르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단순히 그렇게만 이해하고 계시니까 자꾸 하나님께 뭔가 보답을 해 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나와서 가야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구원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넣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만들어 살게 하시고, 더 나아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데 까지 이르는 것, 이것을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이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어떤 보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성품 적으로 이미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는 사람들, 존재의 가치가 바뀌어져 있는 사람으로, 저 멀리 메시야의 나라까지 내다보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인생은 언젠가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하나도 빠짐없이 서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저주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한 그 목표 지점이 있습니다. 남은 인생을 바른 목표지점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