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8,2,4,[요한계시록48]이긴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 주님의 머슴 2018. 2. 4. 16:22


주일설교(2017/2/4)-요한계시록(48)

이긴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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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대의 역사를 보면, 앗수르 제국 이후 잇달아 바벨론, 메대, 바사에 뒤이어 헬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난 후에 휘하의 세 장군이 세 지역을 나누어 통치하게 됩니다. 안티고누스는 마케도니아지역을 셀류커스는 수리아지역, 메소포타미아를 그리고 프톨레미는 이집트를 지배하게 됩니다. 3세기 동안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의 세 장군들의 후손들이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를 헬레니즘시대라고 합니다.

3세기 동안의 헬레니즘시대의 특징은 융합 정책입니다. 동서 문화가 하나 되고, 정치가 하나되고, 종교가 하나되는 융합정책입니다. 언어, 예술, 학문 분야에도 헬라의 영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잡은 왕을 신격화되고, “에피파네스”- ‘이 땅에 나타난 신’, “소테르”- ‘구원자라는 이름을 붙여서 신격화 시켰습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 하나의 통일된 종교를 강조하면서 억압정책을 추구하게 됩니다. 언어는 헬라어만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 때 헬라철학이 발달하게 되고, 의학, 법률, 학문이 발달하게 됩니다.

 

3세기가 지난 후, 로마제국이 지배하게 되는데 이름만 로마로 바뀌었지, 모든 사상과 학문과 언어는 그대로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헬라의 문화를 뛰어 넘지를 못하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 고대의 역사를 말하느냐 하면, 다니엘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탄은 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과거에 고대시대에 헬레니즘 문화처럼, 강력한 그리스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한 것처럼, 종말에 하나의 문화, 하나의 정부, 단일 경제, 종교통합, 하나의 법률정책의 단일 정부를 만들어 통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꿈꾸는 적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설명해 주고, 미리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 13장 말씀인 것입니다. 13장의 핵심 되는 말씀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선지자를 통해서 적그리스도를 신격화시키고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666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666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흉내 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온 세계를 하나로 묶어 통치하려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666을 통해서 세계를 하나로 통치하는 것이다.

 

헬레니즘시대에 가장 억압받고, 고난당한 민족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서서히 빼앗아 갔습니다. 대제사장은 레위인 중에 아론계통의 사람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헬라를 지지하고, 정치적으로 협력하는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그 후 로마가 통치한 후에도 여전히 똑같이 헬레니즘문화로 통치했습니다. 유대인들을 많이 억압했습니다. 마음대로 율법을 가르칠 수 없고, 안식일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똑같은 방법의 시대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에 의해 다시 또 한 번 재연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실하게 믿은 성도들은 후 3년 반이 되기 전에 휴거하게 되지만, 휴거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휴거하지 못한 남은 자손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지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만사형통, 소원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땅에서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경제적, 정신적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 13장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12, 13장에서는 우리는 이 땅에서 짐승에게 당하게 되고, 고난을 당하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 순교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배반하고, 신앙을 버리게 됩니다. 지금도 신앙의 눈으로 기독교를 바라보시면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신실한 성도들은 사라지고, 쭉정이 성도는 많아지고, 알곡성도는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점점 갈수록 돈에 집착하고, 쾌락을 즐기는 삶으로 바뀌면서 666이 우리를 덮어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666이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현상이 경제제일주의로 살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버티고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666짐승의 표라고 했습니다. 표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표는 소유를 말한다고 했지요? “누구에게 속해 있다, 누구의 것이다. 표를 준 사람이 내 주인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군인이나 노예나 신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하나님 백성들에게 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6:17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대조적으로 짐승의 표하나님의 표를 대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표를 받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1절을 보시면, 1절을 함께 읽으십시다.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666를 표로 받은 세상은 모두 짐승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짐승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시온 산에 쓴 성도들, 이긴 성도들은 모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입니다.

여기서 시온 산은 새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완성되어 있는 천상의 교회, 메시야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이 서야할 메시야의 나라를 미리 당겨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반복해서, 지상의 불완전한 교회, 전투하는 교회, 핍박당하는 교회와 천상의 이미 승리한 교회, 완성된 교회를 대조해서 보여줌으로 해서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 땅에서는 지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너희는 이미 승리한 사람들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까 기죽지 말아라이게 요한계시록입니다. ‘버티고, 견디고, 인내해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천천히 읽어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은 이미 이긴 자로, 이미 승리한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이 땅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날뛰고 있고, 경제가 제일이야! 이러면서 돈!, !, !,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 이러면서 666을 주어서 경제활동으로 얽어매어 세상을 끌고 가고, 사람들을 경제활동의 수단인 666으로 사탄을 섬기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고난을 당하고, 힘들어 하고, 신앙을 떠나고, 예수를 버리는 혼란 속에서도, 또 한 쪽의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는 짐승의 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 승리의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이중으로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 주려고 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고난 없이 편안하게 안일하게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편안하게 예수 믿습니까? 힘들게 고난 가운데 예수 믿습니까? 안일한 신앙생활은 다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안일한 신앙생활은 고난을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약간의 고난이 와도 다 교회를 떠나버리고, 예수를 버리는 겁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종합병원이기도 합니다. 치료하는 권세가 있는 곳입니다. 모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이것도 훈련을 잘 받은 믿음 있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동시에 훈련소입니다. 훈련을 제대로 받은 군인이 전쟁에서 적 앞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훈련이 없이는 무조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제대로 목회하는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혹독하게 훈련을 시킵니다. 저는 아직 여러분들을 제대로 훈련을 못시키고 있습니다. 힘들다고 교회에 안 나오거나 다른 교회로 가버릴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진짜 군사들에게는 악독한 훈련교관이 붙게 마련입니다. 제대하고 제일 생각나는 사람이 훈련소 조교들입니다. 고등학교 때 몽둥이 들고 다니면서 혹독하게 공부시켜 주셨던 선생님이 제일 생각납니다. 그 분들은 강인한 국군용사로, 훌륭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해병대, 공수부대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입니까? 혹독한 훈련입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 대원들이 왜 무서운지 아세요? 사회에 나와서 아무리 맞아도 부대에서 훈련받을 때 맞는 것보다 덜 하거든요. 평소에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실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잘 이기고 계십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은 경상도 말로 포시랍게 예수 믿으면 안 됩니다. 편안하게 예수 믿지 마세요.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조금만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오면 교회 안 나오는 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아이들을 포시랍게 키워 놓으면, 추위에 못 견디고, 더위에 못 견디고, 조금만 아파도 못 견디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못 견딥니다. 세상살이에 힘들고 어려움이 오면 이겨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이 없이 살 수 있습니까? 다 어려움이 옵니다. 바람 불고, 비 오고, 폭풍이 불고, 회오리 치고,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햇빛 나고 따뜻한 봄날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중간에 한번도 고난이 없고, 시험이 없고,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포시랍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견디어 내지를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이겨내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13:10)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에는 믿음만 있으면 안 됩니다. 인내도 함께 따라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믿음은 인내와 같이 나란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14:2-3)“(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그 시험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시온 산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는 우리가 5장에서도 이미 배웠습니다만, 다시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5:2-3)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새 노래는 성도들을 구원하신 어린양과 그 어린양을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래는 구원받은 성도 144천 밖에는 배우지 못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도들만이 그 구원을 감격 속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찬송과 새 찬양은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들이 부르는 것입니다. 천상의 완성된 교회, 메시야의 나라에는 구원의 감격으로 새 노래를 부르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고, 찬양을 부르지 않습니까? 입으로만 부르는 게 아니고, 몸과 마음과 영을 합쳐서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데 입을 다물고 있다든가, 눈을 감고 잠자는 것은 구원의 감격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4절과 5절을 보시면 이기고 승리한 자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4:4-5)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첫번째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정절이 있는 자입니다. 여기서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남자만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되지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정절은 영적인 순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각기 다른 두 여자가 등장합니다. 한 여자는 우리가 12장에서 배운 신약교회를 낳은 구약교회를 상징하는 여자이고, 또 다른 여자는 17장에 나오는 음녀 바벨론을 말합니다.

 

바로 이 여자, (세상, 음녀)로부터의 정절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정혼을 한 후에 신랑이 그 신부의 지참금을 다 지불할 때까지 신부와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만일 신랑이 돈이 없어서 지참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에 신랑은 노동으로라도 그 만큼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신랑이 그 빚을 다 갚은 후에 신랑은 보무도 당당히 신부의 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보통 밤에 그 신부의 집으로 찾아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옵니다. 그 동안 신랑의 집에서는 잔치가 준비되고 신랑 신부가 도착하게 되면 화려한 혼인잔치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혼 기간 중에 만일 신부가 정절을 지키지 못하면 그 혼인은 즉시 파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7절에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유대인의 혼인관습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 혼인잔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성도들과 정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빚을 다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마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동안 우리 신부들은 정절을 잘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물들고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고전6:9-11)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구원받은 우리가 완전하게 정절을 지켜낼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점점 밝히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신분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되면 우리는 점차적으로 정절을 지키는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맞는 삶을 추구하고 또 그렇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변화가 없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4절에 있는 대로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자니다.

우리가 이기서 착각하면 안됩니다, 어린양이 이끄는 곳은 전부 만사형통의 길인 줄 압니다. 그 반대입니다. 어린양이 이끄시는 길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자입니다. 여기에는 고난도 있고, 핍박도 있고, 온갖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걸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8:34-35)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의 꿈을 좇아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마저도 동원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말씀대로 사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러한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10:34-38)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때로는 바른 신앙을 위해 가족들과도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 두말 않고 어린양이 이끄시는 대로 좇아갔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든지 푸른 초장이든지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좇아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해 보면 가짜와 진짜들이 금방 티가 납니다. 가짜들은 굉장히 언짢아합니다. ‘진짜 그런 길이라면 가기 싫다이게 얼굴에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해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두말 않고 그 예수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갑니다. 성도라면 이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보상을 해 주십니다. 분명 여러분은 이 땅에서 그 보상을 받습니다.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여기 30절에서는 아버지가 빠졌지요? 아버지가 빠진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와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면 이 땅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30절의 현세에 있어” - ‘nu'n ejn tw'/ kairw 눈 엔 토 카이로지금 여기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강하게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앞으로 미래의 일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승리한 교회의 모습, 승리한 성도의 모습, 순교했거나, 휴거했거나, 참고 견디어 인내 하면서 신앙을 지켰거나 새 예루살렘 메시야의 나라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자들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들이다. 이긴 자들이다. 세상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고,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고난이 닥쳐와도 이기고 견디어 내어 신앙을 지킨 자들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축복, 땅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