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8/3/4)-요한계시록(52)
구원받은 자들의 노래
(계15:1-4)
4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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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무질서 속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무질서를 질서로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 태초에 천지는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창조되고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고 하신 것은 이제 질서가 잡혔다는 말인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생육하고 정복하는 만물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만물은 인간의 아래로 서열이 매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의미하듯이 하나님의 아래 서열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도록 질서가 매겨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을 때 아담은 조금도 막힘없이 그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그 자리에서 지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모두 파악한 후에 줄 수 있는 것이 이름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그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그 자리에서 지었다는 것은 아담이 만물을 네 아래에 두고 “정복하고 다스리라” 는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그 질서를 다시 무질서로 엎어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에게 인간들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자리에 너희가 앉으라고 미혹했습니다.
이렇게 아래서부터 차례대로 질서를 깨 버리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이렇게 질서가 깨지고 인간이 타락을 하게 되자 인간을 비롯해서 피조물들까지 전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제 그 죄 속에 들어가 버린 존재들은 전부 자기가 최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짐승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위협하기 시작했고, 땅도 인간들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과 인간끼리 피나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많이 차지하고, 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피나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한 후에 나타난 결과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점진적이고, 확대되면서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삶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할 때의 모습과 상황에서 너무나 멀리 달라져 버리고,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무질서를 질서로 바로잡는 것을 새창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인간이 마귀에게 속아 창조의 질서를 무질서로 만들어 버린 것을 바로 잡아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 사탄을 추종하는 인간들을 다 멸해 버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 그 사탄의 세력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다 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성도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되겠지요? 그대로 놔 둔 상태에서는 제대로 청소가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집을 새로 고치고, 니모델링 하려면 모든 가구, 살림도구를 다 들어내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천지를 새롭게 재창조하려면, 하나님의 성도들을 안전한 곳으로 다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휴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휴거시켜 놓고,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 모든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을 멸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무질서를 질서로 잡아가시는 것을 창세기에서 벌써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원 복음, 원시 복음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여자는 구약교회를 의미하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의 몸된 신약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타락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구원해 내시겠다는 원시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신약교회를 낳은 여자에 대해 공부를 했지 않습니까? 거기서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이 성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시면,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옮기신 후, 즉 휴거시키신 후에 이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멸해 버리는 모습을 휴거된 성도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승리의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다.
(계15: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오늘 본문 1절에 보시면 이 대접 재앙을 가리켜서 ‘마지막 재앙’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의 재앙과 나팔 재앙을 공부했습니다. “인 재앙”, “나팔 재앙” 그리고 16장부터 나오는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 라는 것입니다.
“재앙”,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에게 왜 진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 즉 우상을 숭배하고,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섬기며 살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돈만 의지하고, 물질만 추구하고 세상의 쾌락으로 향락을 즐기며 사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 드린 대로 인 재앙은 “징조”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두루마리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해 놓았기 때문에 일곱 개 인이 다 떨어져야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두루마리가 다 펼쳐져야 본격적인 재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인 재앙은 재앙이라기보다 재앙 앞에 나타나는 징조에 더 가깝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는 재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앞으로 닥쳐올 더 큰 재앙의 징조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재앙이라도 우리 성도는 징조로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세상은 재앙을 보고 두려워하겠지만,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겸손해지고, 더 신실해지고, 더 믿음으로 살고,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팔재앙까지는 이 땅에 함께 사는 성도들도 겪게 되지만, 마지막 재앙인 대접재앙은 성도들이 다 옮겨진 상태에서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 있습니다. 거기서 승리의 노래, 영광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계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2절에는 유리 바다가 등장합니다. 에스겔 1장 22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수정 같은 궁창”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유리 바다가 수정 같은 궁창입니다. 계4:6에도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했습니다. “수정 같은 궁창”, “수정 같은 유리 바다”, 다 같은 말입니다.
유리 바다는 12장에 나오는 짐승이 올라오는 바다, 즉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세상, 즉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다스리는 세상과 비교해서 하늘의 보좌가 있는 천상의 교회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맑고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죄악이 없는 곳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죄악, 죄인들의 삶이 다 내려다 보입니다. 궁창 아래의 짐승이 올라오는 그 바다, 즉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다스리는 세상과 대조를 이루는 곳입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짐승이 다스리는 이 땅에 이미 불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접 재앙으로 세상을 이미 심판하고 있는 모습을 미리 당겨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일곱 대접 심판을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곱 대접재앙을 벗어나 휴거한 자들이 하늘의 보좌 앞에서 지상의 심판의 모습을 보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또는 “불타는 유리 바다가”에 서서 노래하는 자들이 누군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 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웠잖습니까?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그리고 그 짐승의 우상(동상)을 만들어 섬기게 하고, 또 666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짐승을 섬기게 하고, 따르게 하는 것을 배웠잖습니까? 이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휴거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휴거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이 휴거하여 불타는 유리 바다가에 서서 무슨 노래를 부릅니까?
3절, 4절을 읽으십시다.
(계15:3-4)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넌 뒤에 불렀던 노래를 말합니다. 본문은 그 모세의 노래를 어린양의 노래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넌 후 자기들을 추격해서 죽이려고 하던 애굽 군대들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홍해를 건넌 후 홍해 바닷가에서 승리의 노래를 불렀는 것과 같이, 그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받고, 승리한 성도들이 휴거해서 불타는 유리바닷가에서 자기들을 죽이고, 대적하고, 핍박하고 고난당하게 했던, 이 세상이 불로 심판당해 멸망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들은 “짐승과 우상과 666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휴거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의 주체가 모세이고, “어린양의 노래”의 주체가 어린양 예수입니다.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함께 붙여 놓은 것은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어나게 될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구약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역과 그 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구원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 사건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영적 출애굽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8-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9:28-31)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말씀을 나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켜 “별세” 라고 표현합니다. 이 “별세”가 출애굽을 말합니다. 출애굽을 헬라어 원어로 “e[xodo" 엑소더스”라고 합니다. ‘엑소더스’가 뭐지요? departure, 탈출, 출애굽기를 헬라어로 ‘엑소더스’라고 하지요? 이렇게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전부 예수님의 ‘엑소더스’‘예수님의 출애굽’으로 수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면서 홍해를 건넌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인류를 구원할 사건, 인류를 ‘엑소더스’시킬 사건임을 예표해 주고 있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내용을 보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아주 중요한 내용임을 보여 줍니다.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가리켜 “전능하신 이”, “만국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3)“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며 만국의 왕이시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은 평소에 하나님을 이렇게 인정하고 불러야 됩니다. 이것은 평소에 이 땅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으며, 어떻게 인정하고 불렀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바로 인정하고, 바로 부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진정한 신앙고백의 찬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그 분은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만국의 왕이시라”는 말은 이 세상 만국은 지금 그 분이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뭐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 여러분을 지금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불만투성이 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환난과 고민과 고통들이 우리를 늘 괴롭힙니다. 그런데 우리를 통치하시는 분께서 그렇게 놔두십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라 다 막아 줄 수 있고 모두에게 우리가 원하는 만사형통의 삶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신데 그냥 이렇게 놔두십니다. 왜 이렇게 통치하실까요? 지금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 왜 그 능력을 다 발휘하셔서 나를 이 지경에 놔두고 계신 것입니까? 왜 그렇게 통치를 하실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는데 있으시지 이 땅에서 여러분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 백성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고난입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롬8:17-18)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실 일은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구제도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우리의 주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짐승과 우상과 666을 이기고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 불 타는 유리 바닷가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신실하게 잘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는 유리바닷가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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