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2018,7,8,[요한계시록65]가짜 신부

☆ 주님의 머슴 2018. 7. 8. 14:52

주일설교(2018/7/8)-요한계시록(65)

가짜 신부

19:7-10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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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혼인 관습을 보면 먼저 유대인들은 마음에 드는 신부 감을 부모가 점을 찍어 두었다가 나중에 정식 청혼을 하게 되고, 그 청혼이 받아들여지면 약혼식을 합니다.

 

그 약혼식이 거행되고 나서 결혼식까지는 오랜 기간을 떨어져 있게 되는데, 그 동안 신랑은 신부를 데려오는 값으로 신부 집에 신랑이 지불해야 하는 돈을 다 지불해야 합니다.

 

그 지불금이 모자랄 때는 육체적인 노동을 해서라도 다 갚아야 신부를 데려 올 수 있습니다.

 

그 지불금이 다 지불되면 그 때 신랑은 보부도 당당히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려다가 자기 집에서 혼인 잔치를 치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정혼 기간 동안에 신부가 정혼한 신부로서 정숙치 못한 행동을 한 것이 신랑에게 알려지면 신랑은 언제든지 그 약혼을 파기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 유대인들의 혼인 관습을 구속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예수님의 신부 될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부의 신랑이 되실 예수님에게 그 신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랑 되실 예수님을 이 땅으로 보내셔서 약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그 신부의 몸값으로 지불되어야 할 지불금을 다 지불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이 신부의 몸값을 지불하시고 신부를 데리고 오는 이야기를 예표로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3:1-3)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창녀 고멜을 호세아가 은 열다섯 과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삽니다.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열다섯 입니다. 그러니까 합이 은 삼 십 이지요. 이 호세아는 은 삼 십 을 주고 고멜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호세아서에서 고멜의 이야기는 바로 창녀와 같은 우리 죄인들을 신부 삼으시겠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해 주고 있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 맞추어서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 의해 은 삼십에 팔렸지요?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이렇게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은 삼십에 팔렸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죄 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몸값으로 은 삼십으로 우리 신부들의 목숨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혼인 잔치를 위해 모든 것이 지불되었고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그 신부들은 마지막 혼인 잔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신랑이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부들이 신랑이 올 때까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옳은 행실로 거룩하고 정결한 혼인 예식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신부의 행실이 신랑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 신부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33절이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했으니 너는 이제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부가 계속해서 간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라는 사람이 신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다른 남자, 즉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냥 놔두면 그 약혼은 깨질 판입니다. 그러나 그 신랑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자기의 목숨까지 신부의 몸값으로 지불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신부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그렇게까지 해서 정혼을 한 신부를 놓치시겠습니까? 그 신랑은 반드시 그 신부를 정숙하고 순결한 신부로 만들어 내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 옳은 행실이 반드시 나타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필코 그 혼인은 성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한번 결심하신 것이 포기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결심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2:16-20)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난 반드시 너와 결혼 할 거야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결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랑은 우리 신부들이 하나님을 반드시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 는 구절이 있지요? 그것은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그 혼인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준비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신랑은 자기 신부와 기필코 결혼할꺼다 라는 굳은 결심과 예수님의 신부인 성도들은 나도 기필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기필코 결혼해야지라는 강한 믿음이 하나 되어 합작품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이 어린양 혼인잔치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26:26-29)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유월절 예식입니다. 보통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을 먹을 때는 항상 빵을 찢어 먹고 난 후에 적포도주를 마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포도주를 마신 후 이 후부터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으로는 마시지 않겠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에 우리가 진정한 유월절을 먹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것이라는 말은 새로운 유월절’ ‘진짜 유월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그 여호와의 유월절인 진짜 유월절, 즉 하늘의 유월절,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 그 날이 반드시 온다 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하게 구원을 얻게 되는 그 날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어린양 혼인잔치는 바로 그 결실이 드러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그 마지막 잔을 드는 날인 혼인 잔치가 드디어 열리게 되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인 예수님의 신부들이 옳은 행실이라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드디어 혼인 식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유월절, 새 유월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고대하고 바라든 하이 라이트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이렇게 반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오늘 본문의 혼인 잔치를 보면서 지금 상태 같아서는 나는 그냥 창녀처럼 버림받을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그 혼인 잔치에 세우고자 하시는 그 열심과 그리고 우리도 반드시 그 자리에 세마포 옷을 입고 서야겠다는 그 열심히 합하여 져서 하나의 어린양 혼인잔치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부들을 택하시고 약혼을 해 놓으시고 아들을 장가보내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에게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결혼지참금을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약혼해 놓은 상태에서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인 신부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어떤 상태로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는 깨끗한 세마포 옷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 이라고 했습니다.

 

이 옷은 겉에 입는 겉옷입니다. 성경은 옷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성도는 영적으로 두 가지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는 구원의 옷이고, 또 하나는 행위의 겉옷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처음에 인간에게는 옷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완전성, 죄가 없는 본래의 인간은 옷이 필요 없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마귀의 말을 따라 죄를 지음으로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처음 입은 옷이 가죽옷입니다. 그 가죽옷은 양을 잡아 피 흘린 댓가였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옷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옷을 보호하기 위해 겉옷을 더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의의 겉옷입니다. 오늘 본문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의의 겉옷입니다. 이것을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110에 보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구원의 옷속옷입니다. 그리고 공의의 겉 옷겉옷입니다. 이 겉옷은 신랑이 사모를 쓴 것처럼,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한 것 같습니다. 화려합니다. 구원의 옷 만해도 되지만, 공의의 옷을 내게 더해 주시는 겁니다. 여기서 내게 더하심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옷위에 공의의 옷을 더해야 합니다.

 

*구원의 옷 - 속옷 -->속사람의 변화, 즉 거듭난 것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말합니다.

*공의의 옷 - 겉옷 -->믿음으로 사는 것, 즉 행위입니다. 공의의 겉옷으로 구원의 옷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위가 없으면 거룩성이 없는 것입니다. 공의의 옷은 화려합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할 때 입는 것처럼 화려합니다. 구원의 옷은 속옷이라서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공의의 옷은 겉옷이기 때문에 화려하게 보여야 합니다. 겉옷 때문에 속옷이 빛이 나는 겁니다. 겉옷은 구원 받은 성도가 입는 행위의 옷입니다. 성도가 행위가 화려할 때 구원이 빛이 나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2:17).

 

여러분,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구원을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 즉 삶으로 지키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화려해야 합니다. 여러분, 화려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3:1-5)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후 70년 만에 돌아 왔습니다. 70년만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고,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70년 만에 돌아 온 이스라엘의 모습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같고, 누더기 옷 같은 더러운 옷은 거지 같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대표입니다. 전체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러운 겉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에 구원 받은 성도에게 구원의 속옷과 의의 겉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의의 겉옷은 구원의 속옷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옷은 오래 입으면 입을수록 때가 묻어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늘 세탁해야 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회개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있는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하려면, 옷을 잘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혼인 잔치를 통해 우리는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요, 이 혼인잔치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혼인잔치에 와서 땡깡을 부리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의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가운데 혼인 잔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습니다.

 

신부가 아닌 사람들이 예복도 아닌 엉뚱한 옷을 입고 와서 내가 진짜 신부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주께 배우고 주와 함께 먹고 마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주님이 배고플 때 밥을 드렸고, 주님이 아프실 때 병간호했고, 주님이 감옥에 가 계실 때 사식 넣어드렸던, 진짜 신부입니다그렇게 우기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말이지요. 그 때 신랑이신 예수께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을 모두 쫓아내십니다. ‘도대체 너희들이 누구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랑은 모르는데 자기 혼자 나는 저 사람의 신부야하고 신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스토커라고 부르지요. 그건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예배당 출입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정신병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정신병자들을 다 쫓아내십니다. 그 가짜들을 처리하셔야 진짜 혼인 예식이 거행 될 수 있으니까요.

 

챨스 스펄젼 목사님은 그들을 매춘 교회’, ‘매춘 교인라고 부르십니다. 엄밀히 말해 그건 교회가 아니고, 교인이 아니지요.

 

그들은 예수의 이름은 부르고 있지만 그들에게 예수는 주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예수는 그냥 자기들의 소원이나 들어주고 문제나 해결해 주는 그런 잡신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그렇게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힘의 논리와 성공주의, 물질주의, 자연주의에 의해 굴러가는 그런 집단은 음녀 바벨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창녀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배당 안에 있던지 예배당 밖에 있던지 그들은 모두 여전히 창녀인 음녀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예배당 안에 들어와 있는 가짜 신부들을 히브리서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이렇게 해석하게 됩니다. ‘봐라, 처음에는 잘 믿었는데, 구원받은 사람도 타락해서 구원을 잃어버리고 떨어져 나간다라고 해석합니다.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구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10:28-29)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러면 두 말씀이 모순되는 말씀이 되잖아요. 성경은 성경끼리 충돌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성경구절들은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순되는 게 없습니다. 이단들이 모순을 만들고 충돌을 일으키게 해석하는 것 뿐입니다. 이단들이 성경구절끼리 모순을 만들고 충돌하게 해서 의심하게 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히브리서 6장의 내용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척 하다가 중도에 배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그들이 처음에는 잘 믿었다가 중도에 타락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안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일2:19)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예배당 안에서 아무리 경건한 척하고 열심을 부려도 끝까지 그 길을 못 가고 중도에 차를 바꿔 타는 사람은 원래 처음부터 아니었는데, 열심히 믿는 척 연극했다는 뜻입니다. 즉 철저히 가면을 쓰고 교회에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인 7,8절을 보시면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6:7-8)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땅에 자주 내리는 비를 받아 좋은 채소를 내는 것을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은 성도들의 심령 상태를 말하고 있지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땅은 성도들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는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은혜, 축복을 말합니다. “합당한 채소는 신앙생활, 신앙행위, 옳은 행실을 말합니다.

 

8절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는 말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신앙행위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행위를 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저주받은 게 뭐예요? “땅이 저주를 받아 평생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하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했잖아요?

 

똑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땅(성도)은 자주 내리는 은혜, 말씀, 축복을 받아 합당한 좋은 채소(성도들의 옳은 행실)를 내면, 복을 받고, 반대로 계속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결국 저주 받고 망한다. 불사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천국 못 들어간다. 어린양 혼인 잔치에 못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순종했다. 말씀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은혜 없는 삶을 살았다. 믿는 척 했을 뿐이지 실재로는 제대로 안 믿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믿지 않고, 딴 마음을 품고 교회에 왔다 갔다 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가짜 신부라고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것을 매춘교인, 바벨론 교인, 창녀 신부 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하고, 그러한 변화된 삶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중도에 타락을 하여 아예 복음의 외인이 되어 버린 가짜 신부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부분을 읽으시면서 똑같은 회개의 권고를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 있으십니까? 정말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분명 진짜 성도들은 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반드시 세우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가짜 신부들과 우리가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것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표지점이 어디입니까? 여러분과 저의 진짜 목표지점은 그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오매불망 기다리시며 스스로 준비하십시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생활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