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13.[산상복음13]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2)

☆ 주님의 머슴 2021. 3. 8. 09:44

주일설교(2015/08/09) - 산상설교(13)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2)

마태복음 5:8

============================================================================

기독교의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심령이 중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부하면 교만합니다. 심령이 부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의 사람이요, 기독교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내 것이 됩니다.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천국이 내 속에 들어오니까,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 속에 죄가 가득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며, 내가 얼마나 큰 죄임을 깨닫고 안타까워하며, 회개하며, 애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심령의 아픔을 느끼며, 철저히 회개의 애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위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내 속에 샘솟듯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그동안 돌 같았고, 굳어 있었고, 강퍅했던 내 마음이 온유해집니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마다 온유해집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말과 행동이 온유해집니다. 그래서 온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팔복 중에 땅의 기업, 땅의 축복은 온유한 자에게만 옵니다.

온유한 자는 그것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온유는 의에 목말라 합니다. 의에 관심을 가집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가져도 의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합니다. 의에 목말라 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배부름이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돈을 아무리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채워도 인간의 마음은 만족이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심령이 배부르고 만족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배부르고 만족함이 있으니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긍휼의 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더 큰 긍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큰 긍휼을 받으니 마음이 청결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이 없습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15-16)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늘 만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는 자들은 어디를 가든지, 어느 자리에 있든지, 화평케 합니다. Peace maker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장소를 가든지, 어느 누구를 만나든지 싸움을 붙이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해서 하나님을 보는 자는 화평케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을 줍니다. 화평케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케 하다가 보니까, 의를 위해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대적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높은 천국을 소유합니다. 새예루살렘, 메시야의 나라, 부활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팔복은 한 단 한 단계 서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팔복을 자세히 보면, 우리의 심령이 중요한 것입니다. 심령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심령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마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은 혼입니다. 마음은 영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은 영의 영향을 받아 육신에 지시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정욕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사람은 영의 컨트롤을 받지도 않고, (마음)의 컨트롤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합니다.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이 아닌 겁니다. 대표적으로 육신의 습관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지, 마음()의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영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지난주일에 이 마음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것, 청결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십시다.

 

<청결함에 대해서>

2.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는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청결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타로스, kaqarov"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때가 묻어 더러워진 옷이 깨끗하게 세탁했을 때

흠이 없는, 섞임이 없는, 이물질이 전혀 섞여있지 않는 사물을 말할 때

물을 섞음으로 질이 떨어지지 아니한 순수한 포도주나 우유를 말할 때

키질을 잘해서 쭉정이는 완전히 제거된 알곡을 말할 때

제일 좋은 밀가루로 빚은 빵을 말할 때

전혀 불순물이 들어 있지 않은 금, 은을 말할 때

 

그러니까 마음이 불순물이 없고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불순물이 많았고 깨끗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 회개하고 죄 씻음 받고 깨끗해지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과거에 믿음의 조상들도 하나님을 만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 시절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 만큼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마음이 깨끗하지를 못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만나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 어떻게 하면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이 있습니다.

 

1) 마음의 오염을 막는 겁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밖에서 받아서 삽니다. 지식도 밖에서 받아 들이고, 모든 정보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 옵니다. 지식과 정보가 들어 올 때 마음이 그릇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만 받는 게 아니고 마음을 오염시키는 나쁜 것도 받게 됩니다. 사람을 오염시키는 것 중에 공기, 물 등 환경이 사람을 오염시켜 병들게 하고 결국 죽게 만듭니다. 그런데 환경의 오염보다 더 무서운 게 마음의 오염이 아닙니까?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마음이 오염되어 보세요, 제대로 인격이 성장하겠습니까? 제대로 자라겠습니까? 노아시대 홍수가 왜 왔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의 오염 때문에 아닙니까? 마음이 오염되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오염되면 하나님을 향한 눈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2)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 신앙은 순순해야 합니다. 헌금도 순수해야 합니다. 남에게 보일려고 하는 헌금은 순수한 헌금이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거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명예를 얻으려고 헌금하는 게 아닙니다. 칭찬받으려고 교회 봉사하는게 아닙니다. 남이 안 알아주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겁니다. 성도는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 신앙은 순수해야 합니다.

 

3) 마음이 단순해야 합니다.

루터는 식사 시간에 자기 집에 개가 음식 접시로 오가는 자기 손을 움직이는대로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개가 내 손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바라 보았으면..... 나에게도 저런 단순한 믿음을 주옵소서라고 했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이 너무 복잡합니다. 복잡한 마음은 잘못된 마음입니다. 마음이 너무 분주합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8:8)

백부장의 마음이 얼마나 단순합니까?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하인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베드로는 마음이 단순했습니다. 물 위에 걸어오라 할 때 물 위로 뛰어내렸습니다.(14:28)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마음이 단순하지 못한 사람들이 의심이 많고, 잘 믿지를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단순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판을 잘 합니다. 단순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이 교회로 저 교회로 옮깁니다. 절에도 갔다. 점도 치러 다닙니다. 단순한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단순한 사람들이 순수합니다. 복잡한 사람들이 성공을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했습니다. 단순하였길래 본토 친적 아비 집을 떠나라하니까 그냥 떠나는 겁니다. 그냥 가나안으로 가는 겁니다. 노아도 단순하니까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겁니다. 단순한 믿음을 가진 자, 단순한 마음을 가진 자가 마음이 청결합니다.

 

4)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 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닙니다. 교회의 신앙생활은 세상도 사람하고, 교회도 다니고 이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을 영적으로 간음했다. 더럽다. 거룩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찬양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 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G.327)

 

찬양 --->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정결케 하소서.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하소서.

내 영혼에 한 소망 있으니, 주님과 같이 거룩하게 하소서.

나의 삶을 드리니 거룩하게 하소서. 오 주님.

나를 받으소서. 나를 받으소서.(E,75)

 

여러분, 우리는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우리의 삶의 최고의 의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를 알고자 열망하며, 그를 사랑하고 섬기고자하는 의욕으로 삽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런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를 뵙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해진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마음이 깨끗한 자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입으로도 깨끗한 말을 할 수 있고, 행동으로도 깨끗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왜 교회는 술 담배를 하지 못하게 할까요? 왜 교인은 나이트 클럽, 룸살롱, 술집에, 죄짓는데 가면 안될까요?

 

왜 교인은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자기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같이 섞여 다니면서 이런 곳에 출입하면 안될까요? 우리가 깨끗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보고 만나며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깨끗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