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14.[산상복음14]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3)

☆ 주님의 머슴 2021. 3. 8. 09:48

주일설교(2015/08/16) - 산상설교(14)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3)

마태복음 5:8

============================================================================기독교의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심령입니다. 심령이 중요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애통이 일어나고, 애통이 있어야 온유해질 수 있고, 온유한 자만이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일어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긍휼할 수 있으며, 긍휼한 자만이 마음이 청결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화평케 할 수 있고, 화평케 하는 자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팔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도 독립되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령은 가난한데 애통함이 없다든가,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있는데 긍휼이 없다든가, 그런 법은 없다는 겁니다. 팔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적으로 다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온전한 축복은 팔복을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팔복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평생 예수 믿으며 추구해야 하는 기독교인의 최고의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바로 이 팔복을 소유하는 것을 말하며, 기독교인이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은 바로 이 팔복을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복은 곧 천국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팔복은 다 심령과 관계가 있습니다. 내 심령 속에 들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 신앙생활은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셔서 내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마음이 스스로가 청결해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엇에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팔복은 내 마음이 성령에 붙잡혔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두가 성령에 붙잡혀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은 내 스스로는 깨끗해질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하고, 하나님을 만난 사건 때문에 애통이 일어나야 하고, 하늘의 큰 위로를 맛봄으로 온유한 성품으로 바뀌고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만족감을 얻게 되고, 긍휼의 영이 임함으로 더 큰 하늘의 긍휼함을 입게 되고, 그 긍휼 때문에 내 마음이 깨끗해진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욕심이 없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더 사모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땅에 것보다 하늘의 것을 더 사모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세계의 것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영적세계가 더 깊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적세계가 더 깊이 열릴수록 세상적인 것이 더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것은 영적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영적세계는 마음이 깨끗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죄 때문에 애통하고, 세상을 볼 때 애통이 일어나고, 마음이 온유해지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을 체험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영적세계를 보게 되고, 영적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 것을 쟁취하려고, 안달을 내고, 세상 것을 가지지 못하여서 우울증 생기고, 있던 것이 없어졌다고 삶을 포기하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것보다 더 크고 신령한 것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큰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나를 만족시키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충분이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해서 하나님을 보는 자는 1)마음의 오염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염된 세상에 살지만 마음은 오염되지 않습니다. 오염된 세상에 살지만 마음은 항상 영적세계를 바라보며 사모하며 삽니다. 2)마음이 순수합니다. 3) 마음이 단순합니다. 4)두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찬양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 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G.327)

 

찬양 --->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정결케 하소서.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하소서.

내 영혼에 한 소망 있으니, 주님과 같이 거룩하게 하소서.

나의 삶을 드리니 거룩하게 하소서 오 주님. 나를 받으소서. 나를 받으소서.(E,75)

주님보다 더 사랑 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여러분, 팔복이 내 것이 된 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팔복을 맛보고, 팔복을 소유한 자들은 영적세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늘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1)예배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특히 주일을 귀하게 여기고, 예배에 생명을 바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2)십일조 신앙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나의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보다 더 귀하고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사람에게 가장 귀하고, 높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물질에 붙잡혀 삽니다. 물질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생명까지 바치기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게 물질인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의 권세, 물질의 능력보다 더 위에 가치있는 것이 팔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복을 소유한 자는 물질의 주권을 하나님께 넘겨 버립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한 자는 십일조의 법칙으로 삽니다. 십일조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압니다.

3)순종의 삶입니다. 말씀에 순종합니다. 성경의 권위 앞에 교만하지가 않습니다. 겸손은 순종하게 하지만, 교만은 대적하고 반발하고 자기를 드러내고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은 자기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의 의가 더 세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한 자는 영적세계를 사모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꽉 차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만납니다. 늘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것임이요.” 라는 말은 하나님을 한번만 본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늘 하나님을 보면서 산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늘 대면하고 삽니다. 늘 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을 늘 뵙는다. 하나님을 늘 보고 하나님과 늘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노래한 찬송가가 있습니다. 바로 430입니다. 옛날에 에녹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늘 뵙고, 늘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심프슨(A.B.Simpson)이라는 사람이 옛날 그 에녹을 그리워하면서 에녹과 같이 살고 싶어서 이 찬송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얼마나 에녹의 삶이 그립고, 얼마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었으면 이 찬송을 만들어 불렀겠습니까? 우리도 이 찬송을 불러보십시다.

<찬송가 430>

1.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후렴>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2.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3.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4.옛선지자 에녹 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 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하나님을 본다는 것>

그럼 하나님을 본다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본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순간 우리는 녹아버립니다. 3318-23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모세는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나에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모세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요구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해 주는 것이 뭐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모세가 그렇게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형체를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손으로 덮었다가 모세 옆을 지나가신 후에 하나님의 등만 조금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신 하나님입니다. 다른 모든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세의 요구를 다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본다라는 말은 뭡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눈이 열린다라는 말입니다. ‘꿈으로, 환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혹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라는 말도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나에게 임하셔서 나를 뜨겁게 역사하고 지나간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보았다. 음성을 들었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런 종류를 말합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만남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왜 나에게는 하나님이 안 나타나 주십니까?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데, 왜 오늘날 나에게는 없습니까?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책을 통해서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납니까? 마음에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남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을 체험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둘째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늘 느낍니다. 정말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삽니다. 내 영으로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늘 느낍니다. 우리가 육신으로도 내가 눈을 감고 있어도 누가 옆에 있으면 느끼는 것처럼, 숨결만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누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알 때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주님을 느낍니다. 영적으로도 주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영적으로도 내 곁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압니다. 영이 죽은 자, 영혼의 감각이 무딘 자는 주님이 옆에 계셔도 모르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처럼 주님이 옆에 계셔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진행형으로 늘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내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의 청결은 예배로부터 옵니다. 말씀을 늘 듣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늘 기도하면서 나의 의를 죽이고,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진행형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동행의 삶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정말 미래에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볼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볼 것을 약속받은 종교입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

 

이것은 언제가 우리는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 참모습으로 하나님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분을 대할 때가 옵니다. 우리는 늘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의 존전에 들어가서 그 분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언젠가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게될 날이 오고 있습니다. 거울로 보는 것 같은 희미함이 아니고, 확실함으로 실재로 현실이 되어 얼굴과 얼굴로 밝히 보는 날이 옵니다. 그 때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이 세상의 삶의 고민꺼리, 힘들게 했던 모든 것, 육신의 삶의 고단함이 다 사라지고 의미없이 되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만이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한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왜요? 그 분을 뵈게되는 영광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무시하는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내 교만을 드러내고, 내 의를 높이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 날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애착을 가지고 사십니까? 신앙생활에 애착을 가지십시오. 위엣 것을 사모하고 위엣 것을 생각하십시오.

 

히브리서 12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