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6/3/6) - 산상복음(34)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마태복음 5:43-48
452, 4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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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47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다.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서 “남보다 더하다” 라는 말은 περισσός(페릿소스)-“풍성한, 필요 이상의, 뛰어난”
이란 뜻입니다.
(a) “보통의 수나 규칙을 벗어나거나 초과한”,
(b) “비상한, 비범한, 뛰어난, 보통이 넘는”,
(c) “필요이상의, 충분하고도 남은 여분의, 과도한, 지나친”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궁금해 하고 묻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너가 저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더 보탠 것, 뭔가 더 나은 것, 더 하는 것’이 있느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어느 마을에 예수를 잘 믿는 어떤 처녀에게 마을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남과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모델이 되는 중요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뭔가 특출하게 달랐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창6장). 아브라함을 보십시오(창12장). 이삭을 보십시오(창26장). 특히 이삭은 그랄이라는 땅에 거주했습니다. 농사만 지었다하면 풍성하게 거두는 겁니다. 한번은 그 해에 농사를 지어 백배나 거두었습니다(창26:12). 성경에 보면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들이 심히 많았다”(13절) 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랄 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을 그 지방에서 내 쫓고, 우물도 다 빼앗았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아무 말이 없이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브엘세바라는 곳으로 옮겨 가서 삽니다. 그곳에서도 크게 복을 받습니다. 크게 번성합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삭은 가난안 사람들과 뭔가 달랐습니다.
야곱도 그랬고요, 요셉도 그랬습니다. 야곱도 자수성가한 사람이고, 요셉도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애굽은 오늘날의 미국에 비교해 보면, 10배, 100배 강한 나라이고, 강대국입니다. 전 세계가 애굽으로 통합니다. 모든 문화, 학문, 경제, 모든 분야에서 애굽이 중심입니다. 애굽에는 내노라 하는 사람들, 쟁쟁한 사람들, 권력가들, 돈 있는 사람들, 학자, 지혜 있는 자, 수 만 가지의 능력 있는 자들이 빼까리로 많은 곳이 애굽입니다. 그런 애굽에서 총리까지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고, 뭔가 애굽인들과 다르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은 뭔가 “남보다 더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바울이 그랬고,,,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남보다 더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약에 들어오면 하나님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더 영적인 부유함, 영적인 권위, 영적인 특출함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 땅에 교회를 남기시고, 이 교회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자신의 몸이라고 하시면서, 이 몸된 교회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누구든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의 몸된 교회에 붙어서 주님이 주시는 영양분을 받으면서 교회에 붙어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몸되신 교회 공동체에 붙어 있으라. 그러면서 내가 주는 영양분을 공급 받으면서 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의 특징, 세상 사람들과 다른 특징을 가져라. 이 세상 사람들과 더 나은 것, 더하는 것을 가져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기독교인은 본질적으로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의 이 특유하고 특별한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그냥 그렇게 살아 갈려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비극입니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잘 모릅니다. 기독교인은 특별성, 특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속해 있고, 이 세상에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해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유성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도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대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합니다. 5리는 누구라도 갈 수 있습니다. 권력자가 5리를 가자고 하면 다 가야 합니다. 하지만 10리를 가는 것은 기독교인만이 가능합니다. 기독교인은 항상 다른 사람보다 더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본질적인 면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에게 눈에 잘 띄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첫눈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척하고 사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면 평범한 삶을 살아도, 행동이나, 말이나, 삶을 보면, 기독교인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향기를 풍기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매우 도덕적이고, 아주 윤리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곧 보증서요, 고지식하고, 정직하고, 바르고, 곧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기독교인들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성경의 가르침을 온통 경멸하며 거부하며,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위선자들이라고 멸시합니다. 그렇지만 그들 나름대로 바르게 정직하고 진실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45절). 팔복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절)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은 그 이상 나아가 그 이상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이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고, 독립된 사람이고, 저 악한 사람들과도 다른 사람이고, 저 세상의 최고, 최선의 사람들과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향하여 선을 베풀고, 그를 멸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런 역량을 일상 생활에 보여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 주님을 닮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특별함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다른점입니다.
둘째는, 기독교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기독교인은 항상 자신을 새롭게 된 자, 새 사람이 된 자라고 생각합니다. 겉 사람만 새롭게 된 것이 아니고, 속 사람까지 새롭게 된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내가 새 사람이 되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감격이 일어나고, 감사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새 사람, 나는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라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이 ‘새롭게 되었다’ 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들과 달라서 생각하는 사고도 다릅니다. 기독교인은 현재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육체적인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생각은 미래적인 것이 더 강하고, 영적인 것이 더 강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늘 복음적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양심의 법과 실재적인 국가의 법, 사회적인 법을 존중하고, 그 법 안에서 순종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간의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벧전2:13)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롬13:1-7) 했습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은 억지로 마지못해 합니다. 세금을 하나 내어도 마지못해 냅니다. 사회의 법을 부정합니다. 사회의 도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렇지 않다 라는 겁니다. 기독교인은 사회적인 법과 국가 법, 윤리적인 법, 양심의 법까지도 적극적입니다.
인간이 짓는 죄에 대한 관념도 비기독교인들은 드러난 죄만 죄로 봅니다. 보이는 죄만 죄로 여깁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보이지 않는 죄, 드러나지 않는 죄, 마음의 죄, 영적인 죄까지도 죄로 여기고 회개합니다.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과는 다르게 믿는 자는 작은 죄 하나라도 생각나면 회개합니다. 회개의 정신이 있습니다. 회개가 일상생활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더나아가 회개가 없습니다.
또 기독교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배우면 배울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겸손해집니다.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뭡니까? 겸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교만해 집니다. 더 많이 가지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인은 겸손합니다.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해 하는 심령으로 바뀝니다. ‘지옥가야 할 마땅한 죄인이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았다면, 십자가의 보혈로 나에게 소망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와 감격으로 더 주님의 진리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기를 사모하고, 더 순종의 삶으로 바뀝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 것이니 주님을 위해 살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은 절대로 이런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점입니다.
그 외에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점이 많습니다. 삶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식도 다릅니다. 비기독교인은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神)에 대한 개념도 다릅니다. 설령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비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심령에 가득하게 차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감싸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 살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간섭하고, 나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다릅니다. 매사에 삶의 동기가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삶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래서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삽니다.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항상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의 나라를 품고, 그곳에 마음을 두고 삽니다. 항상 그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기독교인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있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것은 천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천국과 연결되어 사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장 큰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섭섭한 일, 가슴 아픔 일, 온갖 시련이 있어도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천국을 향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 기독교의 역사 속에 앞서간 모든 성도들은 이 꿈을 가지고 살았고,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여러분, “너가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우리는 분명한 대답이 있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축복으로 아는 자에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할 때에 그 축복은 의미가 없고, 가져도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내가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축복인 줄 모르고, 다른 세상것에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리고 사는 자는 그 있는 축복까지도 잃어 버리고 빼앗길 것입니다.
“너는 지금 현재 위치에서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내 속에 있는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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