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묵상⑭>
14. 안식일의 주인
막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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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적인 사상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랜 전통으로 유교적인 사상과 불교적인 사상이 젖어 있다. 이런 민족적 전통과 사상은 그 민족에게 늘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이런 유교적이고 불교적인 전통과 사상이 조금씩이라도 배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보는 눈도 기독교 세계관 렌즈로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히브리인으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세계관은 유대를 넘고, 율법을 넘어 새로운 세계관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주의에 묻혀 있는 유대인들과 늘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금식문제에서도 그렇고, 오늘 본문의 안식일 문제에서도 충돌이 일어났다. 새로운 세계관을 내다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주의에 갇혀있는 유대인들과는 늘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안식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왜 예수님이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셨을까?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를 원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는 율법이 훼손되지 않아야 했다. 사람들이 모르고 훼손할 수도 있고, 범할 수도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율법 주위에 울타리를 쳤다. 사람이 실수하여 모르고 율법을 범할까 싶어서 울타리를 친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동적으로 울타리가 본 율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다시 본 율법을 훼손되지 않게 지키기 위해 또 울타리를 쳤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울타리가 본 율법이 되고, 또 울타리가 본 율법이 되고, 그래서 율법이 613개가 된 것이다. 안식일 규례도 마찬가지이다. 안식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자꾸 울타리를 치다가 보니 안식에 대해 규례도 39개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고 했으면 어디까지가 일이며, 타작하지 말라고 했으면 어디까지가 타작이며, 짐을 나르지 말라고 했으면 그러면 짐이란 무엇인가? 짐이란 마른 무화과 두 송이 만한 무게는 무엇이나 짐이다. 추수도 어디까지가 추수인가?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도 추수이다. 타작은 어디까지가 타작인가? 손으로 그것을 비비면 타작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까지도 키질이다. 안식일에 여행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디까지가 여행인가? 1km 이상이 여행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회당에 가야되는데, 회당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1km이니까, 1km이상 걸으면 여행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12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을 제자들이 지켜본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말씀이 나온다. 거기에 보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고 한다. 이것은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안식일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은 세계가 다 공통으로 7일을 일주일로 해서 7요일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이전 시대의 역법으로 돌아가서 보면, 민족과 나라마다 바스크인들은 3요일을 일주일로, 고대 중국과 이집트인들은 10요일을 일주일로, 아즈택인들은 13요일을 일주일로 사용했다.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난 후 기독교에서 벗어나 “이성숭배”의 일환으로 10요일을 일주일로 하기 위해 강제로 밀어 붙였지만, 전통적인 7요일 일주일이 국민들의 심리 속에 배어 있었고, 그리고 유럽 전체가 7요일 일주일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요즘 사용하고 있는 7요일 일주일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때에 와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 각 민족과 지역 나라마다 다 다르게 사용해 오다가 서기 321년에 완전히 정착되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8요일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바벨론시대에는 8요일이었는데, 여덟째 요일은 시장(market)을 위한 날로 시골에서 사람들이 도시로 농산물을 가져 오는 날이었다. 이것이 헬레니즘시대를 지나 로마시대까지 지켜져 왔다. 그러나 알렉산드대왕 이후 7요일도 도입하면서 8요일과 7요일이 계속 충돌하면서 경쟁하듯 사용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7요일이 그대로 로마시대에로 도입되면서 그리스어로 각 요일이 “태양, 달, 아레스, 헤르메스, 제우스, 아프로디테, 크로노스의 날”이 되었는데, 어떤 지역에는 여기에 시장의 날이 하나 더 붙어 사용하기도 했다.
후에 로마시대에는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태양, 달, 마르스, 메르쿠리우스, 유피테르, 비너스, 사투르누스의 날”이 되었다.
원래 7요일들의 이름은 바벨론시대를 지나 헬레니즘시대로 거쳐 오면서, 천제연구가 발달했는데, 지구와 가까이에 있는 7개의 천체인 해와 달,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다섯 행성을 나타낸다. 제일 크고 밝은 빛을 내니까, 태양부터, 그리고 달, 그리고는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그리스 로마에서는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
그런데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오면서 태양, 달을 빼고는 그리스의 신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헬레니즘시대를 지나면서 일주일 중에 중심 되는 날이 중요했다. 일주일 중에 시작하는 날이 중요했는데, 지금 우리가 토요일 이라고 부르는 “사투르누스”의 날을 중요하게 여겨 이 날을 중심 되는 시작의 날로 삼았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때 유대인들의 활약이 커서 사투르누스의 날이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인데, - 지금의 토요일로 – 유대인들에 의해서 이 날을 중심 되는 시작의 날이 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로마시대로 들어오면서 태양의 날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시대에는 황제를 태양의 아들로 숭배하게 만들면서, 인간은 태양을 정복할 수 없고, 정치 거물들이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을 끌어들여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태양 숭배(솔 인빅투스 Sol invictus)를 강조했다. 그래서 태양의 날을 일주일의 시작 중심이 되게 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되고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요일 이름에서 이교도와의 연관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래서 동쪽(동로마) 그리스어권에서는 성공하게 되지만, 서쪽(서로마)에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가장 눈에 띄는 예외가 있긴 있다. 현재 포르투갈에 해당하는 지역(포르투갈어)에서는 성공했다. 그 결과로 포르투갈어에서는 첫째 날은 주님의 이름을 따라서 도밍고(domingo)로, 일곱째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 이름을 따라서 사바두(sabado)로 짓고, 그 나머지 날들은 단순히 서수로 이름을 붙여서 세군다 페이라(segunda-feira 제2요일), 테르사 페이라(제3요일), 쿠아르타 페이라(제4요일), 킨타 페이라(제5요일), 세스타 페이라(sexta-feira 제6요일) 로 부른다.
동쪽 그리스어권에서도 성공하여 지금 그리스어에서는 첫째 날의 주일은 키리아케, 주의 날로 부르고, 순서에 따라 듀테라(둘째), 트리테(셋째), 테트라테(넷째).......등으로 부르고, 일곱째날은 유대인 안식일 이름을 따라서 사바토(sabbato, 우리의 토요일이다)로 부른다.
지금 이탈리아어에서는 주일을 도밍고(Domingo 주의 날)로 부르고,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 이름을 따서 사바토(Sabsto)이다. 그 외에는 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부른다. (월요일은 ‘루네스’ 달의 날, 화요일은 ‘마르데스’ 마르스의 날, 수요일은 ‘미에르꼴레스’ 메리쿠리우스의 날, 목요일은 ‘후에베스’ 유피테르의 날, 금요일은 ‘비에르네스’ 비너스의 날)
지금 영어권과 북유럽은 일요일, 월요일만 Sunday, Monday 로 부르고 나머지는 북유럽의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화요일은 투즈데이(Tuesday. 티우의 날), 수요일은 웬즈데이(Wednesday. 오딘의 날), 목요일은 뜰스데이(Thursday. 토르의 날), 금요일은 프라이데이(Friday. 프리그의 날), 토요일은 새터데이(Saturday. 사투르누스의 날)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는가? 오늘 우리에게는 이것이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주위 환경이 바뀌든, 이방지역에 문화가, 언어가 어떻게 바뀌든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서도 안 바뀌었다. 그렇게 극심한 문화의 통합과 흡수가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에도 헬라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온 세계의 언어가 헬라어로 바뀌어 가는데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이름과 안식을 지키기 위해서 요일 이름을 그들은 지켰다.
다른 민족, 다른 나라, 다른 이방지역에서 일주일을 8요일, 13요일로 고수하고, 요일 이름에 이방지역의 신들의 이름을 붙여 사용해도 유대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했다.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구약성경대로 일주일을 7요일로 지켰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의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에 쉬시고는 복되게 하셨다는 창세기 2장 2-3절의 말씀을 믿고, 그 7일을 안식일로 삼고, 일주일의 중심 날로 삼았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일주일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부터는 “안식 후 첫날”, “안식 후 둘째 날”, “안식 후 셋째 날” ....... 이렇게 부른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 외에 다른 날은 이름이 없다. 그냥 편리하게 안식 후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이렇게 부른다. 다른 날들은 안식일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날로 본다. 안식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요,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시고 쉬신 날이다. 그런데 인간이 일을 하다니,,,, 이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다. 인간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갈릴리 나사렛에서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나 또래의 청년들을 몇 명 데리고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적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고, 안식을 어기면서 “인자가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를 “인자”라고 부른다. “인자” 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것도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아무도 완전한 사람이 없는데, 자기는 완전한 사람인 “인자”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신성을 모독하는 무례한 이었다. 결국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했다(마12:14). 마가복음 3장 6절에는 바리새인들이 정치권력을 가진 헤롯당 사람들을 이용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다(막3:6).
그러면 왜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했는가? 어떤 학자들은 “인자”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 앞 절 27절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자”는 일반적인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한다(에스겔서에서도 하나님은 에스겔을 향하여 인자라고 불렀다). ‘사람이 안식일의 노예가 아니다“는 의미로 말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마태복음 12장 6절에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인자“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저도 복음서에서의 ”인자“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럼 왜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했을까?
구약성경의 안식일은 구약성경의 모든 절기의 중심축이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삶의 중심이다. 안식일 일곱 번 한 50일째 되는 칠칠절도 절기의 중심이요, 성전예배, 회당예배도 안식일의 중심이요, 율법의 모든 중심도 안식일이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 중심인 안식일이 그냥 일반적인 안식일이 아니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제도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8:5)”,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히9:23)”, “참 것의 그림자(9:24),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님(히10:1)“ 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 2:2-3절의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라는 이 말씀은 그냥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도 안식하셨으니, 우리도 안식해야 한다는 단순한 일반적인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보다, 한 단계 뛰어 넘어 하나님이 하늘에 예비해 놓으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사모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 땅의 안식일이 내 것이 될 때, 영원한 하늘의 안식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히4: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그러나)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창세기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내 것이 되어야 되고, 이 땅에 살면서 믿음으로 이 안식일을 맛보며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참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참 안식에는 누구를 통해 들어가는가? 누구를 믿음으로 들어가는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안식 후 첫 날” 부활하신 것이다. 일요일인 태양의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부활하신 것도 아니고, 로마인들이 그렇게 중요하고 귀하기 여기던 일요일 태양의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의도하심이요, 하나님의 크신 계획하심이다.
구약의 안식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은 것은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하시기까지 임시로 있는 모형일 뿐이기 때문이요, 또 일요일인 태양의 날에 부활하신 것은 대제국 로마의 신으로 불리는 태양, 그리고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로마 황제가 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그 날에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왕이요, 안식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요, 진정으로 태양을 지배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양이요, 태양을 주관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말하는 “안식 후 첫째 날”, 로마인들이 말하는 태양의 날인 Sunday 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날”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주의 날” 이라는 ἐν τή κυριακή ἡμέρα 엔 테 큐리아케 헤메라는 본래 로마 황제를 위한 일요일을 말하는 것이고, 로마황제를 큐리오스 κυριος 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날을 예수님을 위하여 “주님이 부활하신 날”, 또는 “주님의 날”로 부른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안식일은
첫째, 법과 규례로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하늘의 안식을 위해 주신 모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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