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35.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치유

☆ 주님의 머슴 2022. 7. 11. 17:28

<마가복음 묵상(35) - 2022/5/23>

35.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치유

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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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7: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7: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세상인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환경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면서 사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람들의 언어로 하늘의 이야기와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실 때,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물론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실 때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인간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비유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들이 인간의 의식이나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받아들이다가 보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함께 사시다가 보니 인간이 겪는 한계를 느낀다. 시간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공간의 제약을 받기도 한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인간처럼 쉽게 피곤하시기도 했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하고 인터넷 등 통신이 발달하여 인간들이 시공간을 단축시키며 살고 있다. 그러나 고대시대에는 말을 타거나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는 없다. 특히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나라를 벗어나 먼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 당시 예수님도 제자들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지역을 벗어나 여행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본문의 앞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지역을 벗어나 서북쪽의 해안 도시 두로 지방을 가셨는데, 거기서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의 딸을 고치시는 사건이 나온다. 이후에 곧바로 더 북쪽 지방의 시돈 지방을 거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갈릴리 호수 동쪽 지역인 헬라인들이 모여 사는 데가볼리(데카폴리스-열 개의 도시)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동쪽 지역에 이르러 귀 먹고 말 더듬는 한 사람을 고쳐 주시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스라엘 북쪽과 동쪽의 헬라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 문화와 언어와 종교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른 이방지역을 순회하면서 이방인들을 고쳐 주시는 이 장면은 순전히 제자들을 위한 실물교육 차원에서 진행한 것 같다. 훗날 제자들이 헬라 전 지역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차원에서의 실물 교육인 것이다. 실제로 훗날 제자들은 헬라 지역 뿐만 아니고 로마 전 지역을 순회하면서 헬라 문화 속에 복음을 심었다.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실 복음 전파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 특히 과거에 교통이 어렵던 시대에는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은 정말 힘든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여행한다는 것도 위험한 일인데, 언어가 다르고, 종교,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은 생명의 위험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우리 앞에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복음은 전파하기 위해서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고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복음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생명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그 뿌린 씨앗이 싹을 터고 살아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문화를 잡아먹고, 세상의 전통을 잡아먹고 세상의 습관과 세상의 죄악을 잡아 먹어야 되는 것이다.

 

(10:9-16) “(9) ......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세상을 잡아 먹어야 한다.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잡아 먹어라했다. 세상의 더러운 모든 사상과 관습을 잡아먹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동쪽은 주술이 성행하고 있는 이방지역이다.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어눌한 사람을 치유하신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 안수를 청하자 예수님은 그 사람을 무리에서 분리시켜 데리고 나갔다(33a ).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왜 이 사람을 분리시켜 따로 데리고 나가셨는가? 이 지역 사람들은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는데, 예수님도 마술사쯤으로 알고 마술을 하는 것을 보러 모여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이 사람을 고치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기적을 주술적인 눈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에게 마7:6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는 말씀대로 사람들 앞에서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따로 조용한 곳에 가셔서 첫째는,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댄다.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다. 셋째는, “에바다”(열리라)라고 외치신다.

 

먼저, 이 치유에서 침이 어떠한 약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환자에게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유대식 방법으로 하신 것이다. 유대 문헌에는 침이 병을 고치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8:22-26에서도 맹인을 고치시면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눈에 침을 바르고 안수 하심으로 맹인을 고치신다. 오늘 본문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성도는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적인 방법으로나 미신적인 방법이나, 다른 종교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방법, 예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불교식으로, 유교식으로, 미신적인 방법으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또 하늘을 우러러보고 탄식하신 것은 치료 의식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습이다(2:24, 6:5, 8:22-27 참조).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주로 권위 있는 말로 환자를 치료하셨는데 에바다 열리라는 말은 환자의 병이 여러 가지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과 관계가 있으므로 예수님은 환자가 그 모든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말씀을 한 것이다. 5:41에서도 죽은 소녀를 살리실 때, 비웃는 자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곧 소녀가 일어나 걸었다.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죽음에서 일어나고,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세상의 죄악과 습관과 온갖 얽매여 있는 문제로부터 벗어버리고 자유함을 얻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열리라라는 말을 하자마자 이 환자는 즉시로 귀가 열리고 혀 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분명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환자가 치료되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엄하게 말할수록 그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다고 말씀한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 37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37)“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여기서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완전히 압도되어 말하기 시작한다.

1)“그가 모든 것을 다 잘 하였다.”

2)“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들도 말하게 한다.”

 

첫 번째 말은 창조에 대한 마지막 말씀인 창세기 1:31을 생각나게 한다.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두 번째 말은 이사야 35:5-6에 있는 메시아 도래 시대의 소망과 관계된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35:5-6) “(5)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즉 예수님은 귀가 바르게 열리지 않았고, 입이 어눌하여 바르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 눈을 뜨지 못하여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로 듣고 바로 말하고, 바로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이 없고, 사고하지 못하는 자들을 눈을 뜨게 하고, 깨닫게 하고,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느끼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일이 뭘까? 또 교회에 나와 은혜받고 변화된 사람들이 특징이 뭘까?

의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이 없고, 사고하지 못하는 자들을 눈을 뜨게 하고, 깨닫게 하고,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느끼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하는 일이다. 교회에 나와 은혜 받고 변화된 사람들은 바로 보고, 바로 말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보고, 말해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을 똑같이 보지 말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지 말라.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할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사모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1)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바른 구원은 예수로부터 오는 것이다. 진정한 바른 삶은 예수의 말씀이 들려져야 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고, 볼 수가 없고, 들을 수가 없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가 나에게 와야 하고, 복음이 와야 하고, 말씀이 들려져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들려지는 자는 복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