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7/4/23) - 요한계시록(18)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
계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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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어 예수님께 충성하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더욱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이 교회를 향하여 칭찬만 하십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칭찬 받은 교회입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교회들이었습니다. 이들 일곱 교회들은 각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일곱 교회들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3장의 일곱 교회는 오늘날 교회시대의 여러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 가운데는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들이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지금도 핍박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그 성결함을 지키지 못하고 두아디라 교회처럼 죄로 얼룩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실상은 영적으로 죽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 읽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한 마디로 “충성된 교회”(The Faithful Church)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서 예수님의 책망을 전혀 받지를 않고 칭찬만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칭찬만 받은 교회가 일곱 가운데서 두 교회 밖에 없습니다. 숫자적으로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예수님의 칭찬만을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도시 빌라델비아>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라는 말은는 헬라어로 필리아(사랑)와 아델포스(형제)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형제 사랑”(brotherly love)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주전 2세기, 버가모 왕 아탈루스 2세(Attalus II)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아탈루스 2세는 자기 형 유메네스(Eumenes)에 대한 형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형제 사랑” 곧 ‘빌라델비아’였습니다.
아탈루스 2세는 그의 형 유메네스가 헬라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기의 형 유메네스를 대신해서 버가모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형을 생각하며 그는 하나의 도시를 짓고 그 이름을 ‘빌라델비아’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죽었다던 그의 형이 뜻밖에 살아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때 아탈루스 2세의 신하들은 형을 죽이고 왕위를 유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탈루스는 그러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기 형 유메네스에게 왕위를 고스란히 넘겨주었습니다.
도시 빌라델비아의 특징은 세 가지였습니다.
▲1. 빌라델비아는 지형적으로 “동방의 관문”(gateway to the East)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그 당시 무시아, 루디아 그리고 브루기아의 세 지역이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탈루스 2세는 그 당시 꽃을 피우던 헬라문화를 동방 오지에 있는 성읍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해서 그곳에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는 “동방의 관문”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헬라문화가 이 빌라델비아 도시를 통과하여 동방으로 동방으로 쭉쭉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8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열린 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확산되어지고 천국 문까지 활짝 열리게 되기를 기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빌라델비아는 지질학적으로 지진이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화산 활동으로 인하여 종종 지진이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주후 17년에 있었던 대지진은 빌라델비아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빌라델비아에는 계속되는 여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집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지붕과 벽에 그 몸이 깔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진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에게 이 지진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의 기둥은 지진이 일어나고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교회는 기둥 같은 일꾼들이 있으면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들을 성전의 기둥들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3. 빌라델비아는 산업적으로 포도가 많이 생산되던 곳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주변의 농토에는 많은 화산재가 쌓여 있어서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는 그 수호신으로 술의 신 ‘디오니수스’(Dionysus)를 섬겼습니다. 빌라델비아가 그 수호신으로 술의 신을 섬겼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향락과 방탕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에는 이외에도 많은 신전들이 있었으며, 각종 종교적 행사들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덴(아테네)”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고 신실하며 충성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전혀 받지를 않고, 예수님의 칭찬만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헬라의 모든 문화와 종교가 동방으로 퍼져나가는 관문이요, 술의 도시였던, 이 빌라델비아에 주님의 신실한 교회가 있었으니,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사도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간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때 복음이 흥왕했습니다. 아시아에 사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에 빌라델비아 사람들이 그 당시 가장 번창했던 도시 에베소에 사업차 왕래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때 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빌라델비아에 돌아와 교회를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는 것이 기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주후 2세기 초 안디옥 교회의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위하여 빌라델비아를 지나가면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뒤에 그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그들을 칭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에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기록하면서 칭찬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Ignatius, Ad Phil. 3, 5, 10).
또한 2세기 중엽, 서머나 교회의 교부였던 폴리갑이 순교했습니다. 그는 86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때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왔던 성도들 몇몇 사람들도 폴리갑과 함께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견실하게 유지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시면서,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내용>
이제 본문 한 절 한 절을 읽으면서 풀어 가겠습니다. 7절을 읽으십시다.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각 교회의 형편 처치, 신앙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시는데,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세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① 예수님이 거룩하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본시 구약성경에서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룩’이라는 단어가, 신약성경과 계시록에 예수님께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말씀하는 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거룩”이라는 최고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만큼 교회의 거룩성을 잘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② 예수님이 진실하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진실’이라는 단어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에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칭호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에게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진실한신 분으로 오시는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거짓 없는 진실한 모습, 진실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③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영적으로 제2의 다윗 왕국과 같은 메시야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열쇠를 예수님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결정할 권세가 오직 예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십시오. 8절을 함께 함께 읽으십시다.
“(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①“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린 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 동방으로, 동방으로 복음이 확장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로마제국의 도로에 접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복음전도와 선교적 사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메시야의 왕국, 즉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확실하게 천국의 문을 열어 놓고 그 누구도 닫을 수 없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것을 보장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고,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미 천국의 문을 열어 두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 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졌을 뿐입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켰다” 고 하십니다.
언뜻 들으면 이는 칭찬이 아니라 책망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외관상으로는 큰 교회였습니다. 교회당도 크고, 교인 수도 많았습니다. 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죽은 교회요, 생명력이 전혀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겉보기에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도 적었습니다. 건물도 초라했습니다. 시설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능력이 있다고, 생명력이 있다고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었기에 성령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을 굳게 지켰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 사랑하면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었기에,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③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습니다.” 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오는 핍박보다, 이방인들로부터 오는 핍박보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더 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정통성이 있고, 자기들이 진짜 하나님의 자녀요, 자기들만이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고 자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멸시하고, 교묘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핍박이 교묘하게 이루어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을 함께 읽읍시다.
“(9)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①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쉬나고게, συναγωγή)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없애버릴 궁리를 하고 모의를 하고 핍박할 꺼리를 찾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짜가 아닌 “자칭유대인”이라고 부르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교묘하게 핍박했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자기들은 의인처럼 행동하고 빌라델비아 교인들에 대해서는 중상모략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온갖 방법으로 대적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따라 다니면서 사람들을 충동시켜 소요를 일으키고, 방해하고 핍박한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② 그런데 결국 유대인 중에 몇을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게 하겠다는 승리의 보장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온갖 방법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대적하며 핍박하던 자칭 유대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앞에 엎드려 자기들의 모든 잘못을 사죄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믿는 예수님이 참 메시야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게 되고, 함께 구원의 복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의 일부가 돌아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로마서 11장에서 사도바울도 인정했습니다. 교회시대가 끝나고 나면, 유대인들이 돌아와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기초는 다 닦여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3:1,2)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9:4-5)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앙의 기초, 말씀에 든든히 서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로, 메시야로 받아 들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세주로 받아 들이는 날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 믿습니다.
이때부터 이방인들의 구원은 닫혀 버립니다. 이방인의 때는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유대인들이 돌아와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①“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라고 하십니다.
왜 “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인내의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인내가 아니고는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인내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고, ‘휘포모네(ὑπομονή), 용감하게 참아나가는 인내, 누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참아나가는 인내입니다. 복음과 관련되어 있고, 신앙과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입니다. 이렇게 인내로 말씀을 지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은 인내와 나란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는 말씀을 지키고, 믿음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켰더니,
②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때”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 에 인내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살면서 우리 주님이 지켜 주시는 것보다 더 좋고, 더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도 지켜 주시고, 장차 올 시험의 때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나의 특별한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장차 있을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들의 반대입니다.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하늘에 속한 자가 심히 적음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내세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의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계6: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계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장차 이들에게는 큰 시험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큰 환난입니다. 이 큰 환난에 대한 설명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계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장차 모두 무서운 시험의 때를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시험의 때를 면할 것입니다. 이것은 환난 자체를 면한다는 말도 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지만, 재림 직전에 있을 최후의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고 면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으면 이 환란을 면하게 되겠지요.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이 되십시오. 할렐루야!
11절을 읽으십시다.
(11)“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①“내가 속히 오리니” 예수님은 반드시 속히 오신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사상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는 환난과 심판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2장 5절과 16절에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심판으로 오심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위로와 축복으로 오심입니다. “네 환란을 면해 주겠다.” “너를 지켜 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②그리고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뭐였습니까? 10절에서 보았잖아요? ‘예수님의 인내에 대한 말씀’을 지킨 것 즉,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정확한 복음을 잘 지키는 것이 교회가 살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면류관을 빼앗긴다”는 말은 빼앗는 자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결국에 가서 인내가 없어서 인내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믿음을 잃어버린 자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결국 면류관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리고 이들은 시험의 때를 면하지 못하고 통과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같은 성도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인내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면류관을 빼앗기고, 시험의 때를 통과해야 되고, 어떤 사람들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①그리고 이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은 결코 다시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다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교회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새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그 기둥은 성전을 지탱하는 것입니다. 그 기둥이 빠져 버리면 성전은 붕괴되고 맙니다. 예수께서 교회더러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가 빠진 성전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임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성전은 붕괴되고 말 것처럼 묘사를 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기둥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둥이 ‘난 도저히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기둥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끌고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입니다. 새 예루살렘, 완성된 참 성, 완성된 메시야의 왕국의 일원이 되기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계21:12-14)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②새 예루살렘의 성곽과 성문 위에 교회를 상징하는 12지파와 12사도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우리가 바로 12지파, 12사도인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절대 포기될 수 없고 중도에 탈락할 수 없는 이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다녀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푸른 초장으로도 다니고 여러 상황과 조건에 처해 지지만 ‘난 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
왜? 난 여호와의 성전의 기둥이니까?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시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이 여호와의 집의 영원한 기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자신이 겪는 여러 가지 난관과 어려움 들이 자기를 괴롭히지만 결국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까짓 것들 쯤이야 괜찮다’ 하고 간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을 향해 외치세요.
‘내가 가난하고 작고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냐? 괜찮다. 실컷 조롱해라. 그러나 어떤 것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 난 이미 여호와의 집의 영원한 기둥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고 이미 내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다. 난 그 소망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다’
<결론>
①종말에는 지키는 싸움입니다.
②인내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③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④우리가 받은 모든 영적인 것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⑤장차 온 세상을 시험할 때가 오는데 육적인 것 위해 영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⑥먼저 배도하는 일이 일어나는 시기에 적은 능력으로도 예수의 이름을 배반 하지 않고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작고 초라하고 가난했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2000년 전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위로와 격려가 지금 이 시간에 동일하게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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