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16/5/1) - 산상복음(39)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마태복음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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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물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돈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돈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돈을 자기 생명과 피와 같이 여깁니다. 설교에서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돈에 대한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먼저입니다. 신앙은 돈보다 앞섭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물질보다 하나님 나라가 더 귀합니다. 돈 때문에 신앙생활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돈이 아까워서 헌금 못하고, 돈이 아까워서 교회에 못 나오는 것은 그것은 예수 믿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나의 믿음보다 더 나의 재물을 소중히 여기고, 더 귀하게 여기고 아까워하면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 하는 자를 제일 싫어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한 마디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았는데요?”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재물도 믿고, 하나님도 의지 하고 재물도 의지하는 것을 겸하여 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돈을 소중하게 여기고, 돈에 인색하고, 하나님께 드릴 줄 모르고, 돈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왜, “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까? 네 마음이 다 재물에 가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재물을 의지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더 의지 하고, 재물을 모으는 데에만 모든 인생을 거는 자는 결국 땅에 보물을 쌓는 자이고, 그는 결국 그 보물도 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 나라도 잃어버리고, 자기가 붙잡고, 좇아가면서 살았던 그 보물도 잃어버리고, 그 인생도 실패의 인생이 되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로움이 더 많습니다. 너무 너무 놀라운 깨달음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 하나만 봐서는 안됩니다.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사24-27장, 마24장, 막13장, 눅21장, 그 외에도 고전15장, 살전4,5장, 살후2장, 딤후3장 등등 성경 구석구석에 나오는 종말론적사건과 예수님 재림 때의 말씀들을 다 종합해서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해답은 성경 속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찾아서 맞추어 보면 너무 너무 신비롭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모든 역사경영은 저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예루살렘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영원한 메시야의 나라에 있습니다(헬라말로는 βασιλεία τοϋ θεοϋ, 영어로는 ‘Kingdom of God’ ).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지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선포한 기독교의 복음도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경이 강조하고, 기독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의 눈동자, 우리의 관심을 고정시켜야 하는 곳이 바로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의 복음은 여기에 고정시켜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여기를 지향합니다. 예수님의 활동도 여기를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조금씩, 조금씩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반대로 사탄이 지배하는 나라는 그에 비해서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가고 있습니다. 사탄의 나라가 조금씩, 조금씩 밀리면서 좁아지고 설 자리가 좁아질수록 더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이 임박해서는 사탄의 세력들은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아주 강하게 발악을 하면서 악의 세력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다가오고 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둑 같이 온다”’(벧후3:10)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 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준비하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은 자들은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무섭고 두려워서 기절한다.”(눅21:26)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고개를 든다”(눅21:28) 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사모하고 기다렸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기절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머리를 들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늘 결단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늘 결단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 하나님 쪽인가? 세상인가? 특히 하나님께 붙잡혀 살 것인가? 아니면 물질에 붙잡혀 살 것인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이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누구든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의 부(富)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많이 생기면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막10:25) 라고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5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물질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어떻게 버리는지를 한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해서 밭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비유에는 왕은 하나님입니다. 왕자는 예수님입니다. 종들은 선지자들이요, 말씀을 선포하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왕은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누리고, 다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왕자가 자라서 결혼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종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잔치에 초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밭을 샀기 때문에 일하러 가야 하기에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또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하러 가야 함으로 잔치에 갈 수 없습니다 - 소를 몰고 밭을 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소를 샀으니 소를 훈련시키러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장가 들었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밭도 없고, 소도 없고, 장가도 갈 수 없었던 자들을 밭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가게 해 주었는데, 잘 살게 되어 밭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가게 되니까,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죄악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소에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여도 돈이 많이 생기면 이렇게 신앙이 바뀐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의 위험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TV에서 로또 복권 1등에 당선 된 사람들을 추적해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방송한 일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다 망해서 그 전보다 더 못 살았습니다. 그 중에 두 명이 좀 특별했습니다. 1등에 당선 되어 40억, 50억 정도를 받았는데, 이 때부터 사람들이 나의 돈을 빼앗아 갈까 싶어서 모든 사람과 소식을 끊어 버리고, 심지어 결혼할 예정인 여자 친구하고도 소식을 끊어 버리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추적을 해서 찾아 내었는데, 전국을 떠 돌아 다니는 겁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친구들, 다 소식을 끊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겁니다. 왜 떠돌아 다니느냐 피디가 물으니까, 누군가 내 돈을 빼앗아 갈 것 같아서,,,, 그래서 SUV 차를 한 대 사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 겁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끔 사람들에게 표시 안 내게 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기도 한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1등 되면 교회에 잘 나올 것 같습니까? 십일조만 몇 억을 내야 되는데, 교회 나오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교회에 가서 몰래 다닐 수도 있겠지요. 아무도 모르니까.
오늘 읽은 본문은 종말론적인 말씀입니다. 성도가 물질을 대하는 자세를 말씀합니다. 성도는 항상 물질을 대할 때 종말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는 물질에 대하여 초연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있으면 더 좋고, 없으면 그만이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겠지,,’ 이런 초연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25절에 보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합니다. 목숨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데 결국 그 염려 때문에 목숨을 잃게된다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 도리어 돈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잃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우리의 신랄함, 격렬함, 분노, 경멸, 짜증, 신경질, 근심, 걱정, 욕심, 극도의 이기심 등등, 우리의 감정이 물질에 끌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초연하게 하나님 나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초연하게 살자 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물질은 쌓으면 쌓을수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부패시킨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땅에 쌓으면, 우리의 마음이 땅에 다 가 있기 때문에, 땅이 우리의 전체를 소유해 버립니다. 반대로 물질을 하늘에 쌓으면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다 가 있기에 하늘이 우리를 소유해 버립니다.
땅은 온갖 부패와 더러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땅에는 사망이 있고, 멸망이 있고, 질병이 있고, 근심과 두려움과 절망이 있습니다. 땅에는 온갖 사기와 거짓과 부패와 악취를 풍기며 썩게 하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절망을 주고, 아픔을 주는 것입니다. 도둑이 판치고, 사기와 분노가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본문에서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19절)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 세상, 이 땅에 물질을 쌓으면 이 땅에 우리의 모든 삶이 삼킴 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물질과 함께 “좀과 동록과 도둑”이 함께 묻어 딸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빠지면, 우리의 마음과 삶은 부패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가 세상의 물질에 빠지면, 신앙도 부패하고, 말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보다 더 물질을 숭배하고,,, 점점더 하나님과 멀어 진다는 것입니다.
좀은 갉아 먹는 자입니다. 다 먹어치웁니다. 동록은 다 부패시켜 녹슬게 하고 없애 버립니다. 도둑은 다 빼앗아 가는 자입니다. 결국 물질을 땅에 쌓으며 물질에 빠져 사는 자는 삶이 황폐해 집니다. 마음이 다 녹슬게 됩니다. 결국 다 빼앗겨서 내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의 눈, 영적인 눈이 나빠집니다.
물질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까지도 지배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은 “재물의 신(神)”입니다. 돈(Money)은 마몬(Mammon)이라는 낱말에서 왔습니다. 마몬은 재물의 신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돈(Money) 뒤에는 마몬이라는 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마몬은 우리의 영을 지배해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어느 곳에 지배를 받아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우리의 영적인 눈도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 마음도 어두워지고, 몸도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22절,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나쁜 눈”이 있고, “좋은 눈”이 있습니다. 나쁜 눈은 멀리 볼 줄 모릅니다. 나쁜 눈은 질투, 시기, 탐욕, 이기심 등등 온갖 속물인간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멀리 볼 줄 모르니까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눈(성한 눈)은 온 몸을 밝게 합니다. 등불 역할을 합니다. 멀리 보게 합니다. 모든 것에 자유롭습니다. 돈에 붙잡혀 살지 않습니다.
원래 돈이라는 이 Money는 아람어 ‘아멘(amen)’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아멘은 ’신뢰한다. 믿는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돈에는 이중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 돈은 우리를 신뢰하게 하고, 믿게하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를 속이기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타락하게도 하고, 질투심, 시기심, 우리를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물질관을 가지면 결국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인간과도 멀어지고, 결국 마지막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도 섬기고, 돈도 섬기고, 이렇게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 그 자체가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면 그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 믿는 교인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람하면, 그 돈이 그 사람에게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은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많이 강조합니다. 돈을 사랑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 한다”(딤후3:2)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목사, 장로, 집사, 권사), 이런 중직자들은 절대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딤전3:3).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교인은 두 주인이 있으면 안됩니다. 한 쪽을 택해야 합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 하고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교회에 나왔는데도, 돈을 사랑하고, 돈을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산다면, 교인도 아닙니다.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살지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재물의 신 마몬의 지배를 받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도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면, 한 쪽은 미워하게 되거나 가볍게 여깁니다. 성도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첫째는 십일조를 꼭 하십시오. 그것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나의 신앙고백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일에 나의 돈을 아까워하면 안됩니다.
둘째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십시오. 나의 재물은 하나님 것입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나의 작은 수입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게 하는 것이 청지기 의식입니다. 청지기 의식은 항상 감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여러분의 마음을 항상 하나님의 나라, 오실 메시야의 나라, 그 분이 이루실 메시야의 왕국에 두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항상 예수님께,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신 그 분에게 마음을 두십시오. 할렐루야!
영원한 축복, 영원히 누리는 하늘의 축복, 영원한 하늘의 창고 보물을 채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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