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26. 열 두 제자의 시작 - 새로운 장자의 시작

☆ 주님의 머슴 2022. 2. 17. 11:10

<마가복음 묵상(26) - 2022/1/16>

26. 열 두 제자의 시작 새로운 장자의 시작

6:7-13

================================================================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6: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6: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6: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나온다. 에서는 형이고, 야곱은 동생이었다. 그러나 동생인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나면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먼저 태어나려고 싸운 것 같다(22). 나중에 결국 에서가 먼저 태어났는데, 뒤따라 태어난 야곱은 억울했는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는데,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다고 했다(26). 이후 동생인 야곱은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늘 장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원래 사회의 규범으로 보나 한 가정의 질서를 보나 또 인간의 윤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차자가 장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혹 형이 죽게 되거나 장자가 될 수 없는 환경, 즉 다른 집안으로 양자를 가게 된다든가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차자가 장자가 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리에 의해서 차자가 장자가 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유교적인 예법에서는 차자가 아무리 왕이 되든, 높은 벼슬을 했다해도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재산권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권은 장자로 내려오는 종손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형제간에 사이가 나빠지고 원수가 되고 더 나아가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에서와 야곱 중에서 동생인 야곱이 장자가 되는 바람에 형제간에 원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몸을 피하는 일이 생겼다. 다윗도 여러 아들들을 놔두고, 즉 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가장 나이 어린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그래서 형제간에 싸움이 있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장자의 구실을 다 하지 못하고 애굽에 내려가서는 요셉에게 장자의 직분을 빼앗기고, 그래서 장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장자의 기업이 요셉에게 돌아가서 요셉에게는 두 기업이 주어져 두 아들인 에브라임므낫세에게 기업이 주어졌다. 다른 아들들에게는 한 개의 기업을 주었지만 요셉에게만은 장자에게 돌아가는 기업 두 개를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으로 각각 기업을 하나 더 주었다.

 

후에 가나안에 올라와서는 유다 지파가 장자가 된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와 갈렙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사람이고, 갈렙은 유다 지파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지도를 받으며 출애굽해서 바란 광야 가데스에 와서 각 지파의 한 사람씩 정탐군을 뽑아서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내었는데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다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과연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는 하지만 그 땅의 성읍은 견고하고 그 땅의 거민들은 거인들이고 우리는 거기에 비하면 다 메뚜기 같아서 우리가 거기에 올라가면 다 붙잡혀서 죽고 하나도 살아날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런 보고를 듣던 모든 백성들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면서 우리가 애굽에서 죽을 무덤이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이 땅으로 인도했느냐? 우리가 사로잡히기 전에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모든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우리가 가나안으로 올라가자.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요,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자.” 하면서 온 백성을 설득 시키려 했다. 그러나 온 백성은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그런 사건이 있고 난후에 애굽에서 나온 세대는 40년간 광야에서 머물러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광야에서 다 죽고 그 후손들만 40년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셨는데, 갈렙이 속해 있는 유다 지파에는 가나안땅에서 제일 기름지고 좋은, 그리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유다 지파의 북쪽 지방에 제일 기름지고 넓은 땅을 여호수아가 속해 있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다.

 

그런데 후에 이 두 지파가 서로 장자 지파라고 주장하면서 힘을 과시하게 되는데, 다른 지파들을 지배해서 힘을 과시하려고 경쟁관계에 있게 된다. 그러다가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이 왕이 되면서 힘의 균형은 깨어지고 유다 지파가 장자 지파가 된다.

 

후에 남북이 나누어지면서, 북쪽의 에브라임 지파가 앞장서서 유다에서 떨어져 나가 나라를 세우게 된다. 남왕국을 유다왕국이라고 부르고, 북왕국을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북왕국은 가장 큰 에브라임 지파가 장악하게 되면서,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제국에 멸망하면서 열 지파는 이방민족에게 혼합되면서 영원히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남 왕국 유다는 후에 바벨론제국에 멸망하지만, 7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우고, 다른 민족에게 혼합되지 않고 유다 민족을 보존하게 된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유다에 흡수됨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유다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스라엘을 유대인 또는 유다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열두 지파 중에 다른 민족에게 혼합되지 않은 살아남은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가인이 장자로 태어나고, 아벨은 차자로 태어났다. 그 후 장자의 직분이 아벨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분해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고 주경신학자들 중에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셔서 아벨을 미워한 것은 표면적인 문제이고 그 내막은 장자의 직분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후에 가인이 장자가 되지 않고 아벨 대신 새로 이 장자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장자를 아주 중하게 여겼다. 우리나라는 아예 호적에다가 올려놓았기 때문에 장자는 바꾸어질 수가 없게 했다. 장자는 자동적으로 아버지의 호적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호주제도가 폐지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만큼 장자를 중하게 여겼다. 장자가 되는 것은 대를 잇는 것이고, 조상의 축복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었다.

 

성경에서는 족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족보는 정통성을 가려낸다. 족보는 장자인 것을 확인시켜 준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족보도 정통성이 있는 장자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신약에 들어와서 족보가 먼저 나오는 것도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잇고,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장자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족보가 먼저 나오는 것은 예수님이 왕의 왕이이요,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후손으로 장자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며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뒤를 이어 정통성이 있는 장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이하의 신약성경 전체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장자가 되고 예수 앞에 나와서 자기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구약에서 내려오는 정통성이 있는 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가서는 장자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국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이다(12:23).

 

그러니까 신약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야 장자가 되고, 장자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장자가 되는 길은 예수를 믿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3:3).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만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표면적으로는 예수님 대에 와서 끝난다. 그러면 예수님의 족보는 대가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후손이 없으니 대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보면 예수님의 이름 다음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난 자들의 이름이 예수님 다음에 올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올려져 계속 대를 이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에서와 장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왜 장자가 되지 못하였는가? 성경에서 장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장자가 되지 못하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 보면 하나 같이 장자의 직분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적인 것에 소홀히 여기고 육적인 것에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산다. 그래서 육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것이 불행이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물질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야곱과 같은 사람을 보자. 영적인 가치에 우선권을 두었다. 그래서 야곱은 장자가 되어야 진짜 복을 받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우선 장자가 먼저 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곱의 이 생각과 계획은 적중한 것이다. 장자권을 우선 받고 지팡이 하나만 집고 얍복강을 건넜는데, 돌아올 때는 두 떼를 이루었다.

 

여러분, 물질 만능적 사고는 반드시 폐망한다. 영적 가치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순간이 아니라 영원이요, 육신의 배부름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이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자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첫 장자들을 교육시켜서 배출해서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내 보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능력을 주어서 내 보내신다. 그냥 내 보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을 정통성이 있는 첫 장자들이다. 장자들은 세상의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육적인 능력으로도 사는 것도 아니다. 제자들은 이제 완전히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권세를 받아서 사는 것이다. 장자는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제자들은 여행을 위해서 지팡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가지지 않았다.

 

주님의 장자인 제자들은 장자권만 가지고 출발하였다. ”지팡이는 장자자권을 상징한다. 지팡이는 지도자를 상징한다. 지팡이는 권세를 상징한다. 앞에 선 대장에게만 지팡이가 주어진다. 군대에서도 지휘권이 있는 자에게만 지휘봉을 주어진다. 아무리 별을 달아도 장군이라도 지휘권이 없으면 지휘봉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팡이는 권세를 상징한다. 능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주님의 장자는 지팡이만 있으면 된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래서 모세도 하나님의 지팡이만 손에 들고 광야로 갔고, 그 지팡이의 능력으로 바로 앞에 섰고, 그 지팡이만 들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켰다. 야곱도 지팡이만 들고 떠났다.

 

여러분, 기독교는 장자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권세만 받아서 출발했다. 기독교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8:7)

 

여러분, 주님의 영적 장자가 되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먼저 장자권을 소유하자. 어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아서 예수를 믿겠다고 말한다. 크게 잘못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장자권을 가져야 두 떼를 이루는 것이다.

 

여러분, 장자가 되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다. 욱신의 장자도 먼저 맏이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리로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자가 아니더라도 야곱처럼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세로 장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택해 주시지 않았으면 제자가 될 수가 없고, 사도가 될 수 없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15:16).

 

예수님 믿고 제자가 되는 자만이 장자가 되는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적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힘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천국은 장자들만 들어가는 곳이다.

(12:22-23)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또 장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