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32. 형식만 남은 신앙

☆ 주님의 머슴 2022. 7. 11. 16:10

<마가복음 묵상(32) - 2022/3/14>

32. 형식만 남은 신앙

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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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부터는 장면이 바뀐다. “장로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καί(카이, 그리고, and)라고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앞의 6장 말미와 시공간적으로 연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새로운 이야기인 것 같다.

장로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은 크게 예수와 유대인 지도자 사이의 논쟁 부분(1-13)과 뒤이어 무엇이 부정한 것인가에 대한 예수의 설명(14-23)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이야기의 발단(1-2), 주제에 대한 삽입적 설명(3-4),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공격(5), 이에 대한 예수의 반박과 그들의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공격(6-13)으로 구성된다. 둘째 부분 은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미 행한 반박의 내용에 대해서 예 수님이 설명하는 것인데, 이 부분도 그 설명의 대상에 따라 무리에게 행한 설명(14~16)과 제자들에게 행한 설명(17-23 )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몇몇 서기관들이 예수께 왔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닌 일주일이나 더 걸리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방까지 왜 왔을까? 만일 그들이 예수에게서 배우기 위해 그 먼 길을 왔다면 그들의 태도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한 자들일 것이다. 마태복음의 병행구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기이한 말과 행동을 살피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고 묘사하고 있다(15:1). 마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은 예수를 죽이는 도시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주 논적들이기 때문에 예수에게 나타나는 문제들을 모아 예수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탐색하다가 드디어 제자들이 부정한 손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는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건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5).

 

여기서 부정한 손씻지 아니한 손을 말한다. 유대 관습에서 제의적으로 깨끗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 뒤에 씻지 않은 손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 것을 보면 유대인의 관습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방인 독자들에 대한 배려인 것 같다.

 

본문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을 잠시 멈추고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문제가 된다는 내용을 삽입해 놓고 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손을 씻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데 이것은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이다(3-4).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핵심 논쟁인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유대인들에게 전통”(유전, 전승)이라는 단어는 구전(oral tradition)”을 가리키는 것으로서(1:14 참조) 에스라 이후 성문 율법(written Law)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서기관들에 의해 작성된 것인데 후에는 이것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서 성문 율법과 같은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원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십계명을 뜻한다. 그리고 둘째는 모세 오경이라 부르는 구약성경의 최초의 다섯 권을 의미한다. 이것을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만족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4, 5세기 전부터 율법의 전문가 즉 서기관이라 알리진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십계명과 모세 오경에서 도덕적 원리를 만족하지 못하고 확대하고 확장하여 인생의 모든 활동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지배하는 수천의 작은 규칙과 규정을 만들어 세분화하는 것을 원했다.

 

그리하여 생활은 벌써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고, 규칙이나 규정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이러한 규칙이나 규정은 예수의 시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성문화되지 않고 지켜왔다. 그리고 그것을 구전 율법이라고 불렀다. 즉 이것이 장로의 유전이다. 여기서 장로라는 말은 회당의 임원, 연장자, 어른, 연장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율법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주후 3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규칙과 규정을 집약해서 기술하였는데, 이것을 미슈나(Mishnah)라고 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어서 왜 장로들의 전통을 거슬려 행동하는지를 예수께 따져 묻는다(5). 여기서 이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동을 문제 삼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보다 큰 주제로 대화의 이슈를 옮겨 간다. 이러한 도전에 대해 예수는 먼저 이사야 29:13을 인용하여 질문자들의 외식을 책망한다(6-7).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겉으로 말하는 것과 속마음이 다른 것 같다. 또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에게서 배운 교훈대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러한 섬김은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형식만 남은 신앙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이사야 29:13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주 강도 높게 비판한다.

(6-8)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며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8)” 라면서 강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예수가 장로들의 전통을 아주 싫어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행위가 없는 말뿐인 형식만 남은 신앙을 아주 싫어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예수는 장로들의 전통사람의 계명”, “사람의 전통”, “너희 전통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을 예수는 하나님의 계명과 대비시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짓이라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예수는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구체적인 실례를 하나 들어 설명한다. 이것은 인간의 전통을 앞세워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해 버리는 것에 대해서 정의도 없고, 양심도 없고, 윤리 도덕도 없고, 신앙도 없고, 선함도 없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상식 이하의 아주 악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르반이라는 전통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자연의 법에 따라서도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10).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부모가 빈곤하게 되었을 때에 힘이 미치는 대로 정성껏 잘 봉양해야 하며, 그리고 만일 그 부모를 저주하거나 부모를 굶어 죽게 하였다면 그 자녀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철저하게 장로의 전통들을 따르기만 하면, 부모에 대한 이런 의무는 준행치 않아도 된다는 구실을 내세운 것이다(11)

만일 부모가 어려운 가운데 있으며, 자녀가 도와드릴 여유가 있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고르반(헌물) -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맹세하면 그 부모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는 그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들이 자식에게 무엇을 요구하게 되면 부모에게 고르반이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마치 이 악한 맹세로 자식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에 대한 의무에서 해방된 것처럼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명보다 인간의 교훈, 사람의 교훈, 장로의 전통을 더 높이고 더 우위에 두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거나 버려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0-13)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특히 13절에서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라고 하신다.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버린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위선적인 신앙이 오늘날 교회 안에, 성도들의 삶 속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신앙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시대와 뒤이은 초기 교회 시대와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속에, 또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속에 유대인들의 장로들의 전통과 같은 전통(유산)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덮어씌워 호도하는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종교개혁이 아닐까?

사회적으로 주로 낮은 계층을 차지하던 예수의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전통을 억지로 지키게 하려는 것에 대해 예수는 이러한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과 반대된, 인간적인 기원과 전통에 의한 것이라고 교훈하여 제자들이 이러한 전통을 지킬 필요가 없음을 가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