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산상복음

22.[산상복음22]예수님과 율법(1)

☆ 주님의 머슴 2021. 3. 12. 11:51

주일설교(2015/10/11) - 산상복음(22)

예수님과 율법(구약성경)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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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이 말씀은 앞의 말씀의 계속이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말씀의 서론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부터 723절까지는 새로운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산상복음은 네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51-12은 팔복입니다. 13절부터16은 팔복이 임하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7절부터 723까지는 새로운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24부터 29까지는 반석 위에 세워진 인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부터 723절까지는 율법을 확대시키고 심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은 본문인 17절에서 20절은 그 심화시켜 놓은 율법의 서론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그 율법이 뭐냐 하는 것을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진짜 의미, 율법이 요구하는 진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516절에서 우리를 향하여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고 하십니다. 여기서 너희 착한 행실이 바로 21절부터 말씀하시는 확대된 율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말씀은 착한 행실입니다. 착한 행실은 내 힘으로, 내 의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행실은 율법적인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선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해봐야, 거기에서 거기입니다. 인간의 착한 행실로는 산상복음의 말씀을 지킬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고의 지고선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생들에게 있어서는 착한 행실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0:17,18)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선이 온전한 선입니다. 그 외의 모든 인간의 선은 율법적인 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착한 행실”, 착한 행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21절 이하에서부터 나타나는 산상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산상복음의 말씀은 오히려 구약의 율법보다 더 심화시켜 놓고, 확대시켜 놓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일반적인 율법, 일반적인 착한 행실로 보고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앞에 있는 팔복이 나에게 와야 합니다. 팔복의 빛이 나에게 비추어져야 합니다.

 

먼저 오늘 읽은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첫째는, 1718절에서 예수님이 하시고자하는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말씀과 예수님이 가르치시려는 말씀은 모순되는 것이 없고 일치 한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게 아니고 같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구약성경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롬3:31에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지만 예수님시대부터 바울시대를 그치면서 기독교 역사에 구약성경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신약시대이고, 새로운 시대이니까, 구약성경은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어느 이단 교파에서는 구약성경은 보지 않고, 신약성경만 인정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신약성경만 하면 됐지, 구약성경은 필요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또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의 율법을 수정하러 오셨다.’ 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율법을 파괴하고 수정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 - 구약을 성취하고 실현하며 완전히 순종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모든 율법과 모든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키며 가장 작은 항목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리라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점(頂點)에 달하며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본문 17절에서 완전하게 한다라는 말은 성취를 말합니다.

 

완전하게 한다라는 참 뜻은 완전히 순종하여 수행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83-4절 함께 읽으십시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본문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다 이루고 완전케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율법을 무시하거나 버리면 안됩니다. 기독교는 구약성경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하거나 버리거나, 수정해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더 완전케 하고 성취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한 번 읽으면 신약도 한번 읽고, 구약을 신약보다 차별하면 안됩니다.

 

두 번째는, 19-20절에서 예수님이 하시고자하시는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철저하게 모순된다 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만 가르쳤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18-19).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큰 것만 가르치고 작은 것은 버렸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마23장에서 나오는데, “화 있을지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면서 형식적인 신앙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그 중에 23, 24절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예수님은 율법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완전히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다시 로마서 83-4절을 다시 함께 읽으십시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율법을 완전히 이루는 방법은 사랑과 희생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모든 율법의 핵심은 사랑과 희생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오는 산상복음의 모든 말씀은 이 사랑과 희생의 바탕 위에 있습니다.

 

예를들어 마태복음 129-14을 찾아서 우리 함께 읽으십시다.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율법의 정신은 사랑과 희생입니다. 율법은 십자가의 희생으로만이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방법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방법이 늘 충돌이 일어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늘 예수님을 대할 때마다 적의(敵意)를 품고 대하게 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상태>

그러면 율법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왜 중요합니까? 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까? 세 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즉 율법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의 상태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전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연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연인에게 율법이 임할 때는 몽학선생으로 임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연인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율법이 몽학선생, 즉 가정교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구원받았지요? 자연인이 아니지요? 여기에는 자연인이 한 사람도 없을 줄 믿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에게는 몽학선생, 즉 가정교사로 나타나 예수에게로 갔다 붙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율법이 나타나는 두 번째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율법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구원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씨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입니다. 이 사람에게 율법이 임하는 것은 목적이 다릅니다. 율법이 이 사람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나타납니다.

 

몽학선생으로 나타나는 것은 구원을 모르는 자연인이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율법이 나타나는 것은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믿음이 깊지 않고 육에 속한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에게 율법이 나타나는 것은 성화시키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 사람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이 신령한 사람에게 율법이 임하는 이유는 율법이 몽학선생도 아니요, 율법이 성화도 아니요, 율법이 신령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상급을 일으키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567장은 상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 세 개가 대단한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이 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냐? 이 세 가지 때문입니다. 율법을 이렇게 설명하는 분들이 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입니다. 요약하면 십계명이 됩니다.

이 율법이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든지, 인간에 대한 계명이든지, 사람에게 찾아올 때는 이런 상태로 오는 것입니다. 자연인에게 율법이 나타나는 것은 구원으로 채찍질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 받았으나 육에 속한 사람에게 율법이 나타나는 목적은 성화입니다. 신령한 사람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성화된 신령한 사람에게는 율법이 나타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에게 율법이 나타나는 것은 상급을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으나 음란한 사람은 그대로 음란하고, 거짓된 사람은 그대로 거짓되고,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대로 육에 속해 있고, 그런 사람에게는 율법이 성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나타납니다. 율법을 통하여 성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화된 신령한 사람은 성령이 육체까지 잡아 버립니다. 성령 받으면 내가 압니다. 육체까지 충만하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온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함으로 나에게 상급을 만들어 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상급에 문제가 생깁니다.

 

율법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화되어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해선입니다. 모든 사도들과 위대한 성도들은 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 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3-25).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