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마가복음

17.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 주님의 머슴 2021. 5. 27. 16:51

<마가복음 묵상(17)>

17.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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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선택하셔서 부르셨다. 12제자였는가? 예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예수 공동체를 원하셨다. 이것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는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가면서 유다지파 외에는 없어졌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면서 가나안 땅에 12지파의 이스라엘을 만드셨는데,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그 완전한 이스라엘이 없어진 것이다. 즉 변질된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제2의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12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연장선에서 12제자를 뽑으시고, 새로운 예수공동체를 만드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12제자는 12지파의 상징이다. 예수 공동체는 12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어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14,15절에 예수님이 12제자를 뽑으신 이유를 말씀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 이러라.”

 

우선은 예수님은 1)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2)전도도 하며, 3)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예수 공동체의 특징을 여기서 보여준다. 예수 공동체, 즉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즉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한다. 교회는 영적전투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예수 공동체는 마귀의 진영을 무너뜨려야 하는 십자가 군병들이다.

 

교회의 특징,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공동체를 확장하기 위해 전도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공동체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사탄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도 1)하나님과 함께 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와 계시기를 원했다. 이스라엘과 함께 동거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회막을 세우시고 거기에 와 계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12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다. 이웃나라의 우상을 가져와 하나님을 대신했다. 하나님을 배반했다. 2)또 이스라엘은 이웃나라와 동화되지 않고, 그들을 전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어야 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이 해야 할 사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3)그리고 이웃나라의 종교와 문화와 그들의 생활이 침투해 오지 않도록 영적전투에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웃나라의 문화와 동화되었고,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가나안인들 처럼 살기를 원했다. 결국 영적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땅 가나안을 잃어버리고 각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유다지파만 남고, 열 한 지파는 없어져 버렸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교회는 예수 공동체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공동체이다. 교회는 1)예수님과 함께 해야 하고, 2)전도도 해야 하고, 3)사탄과 영적전투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셔서 부르셨다. 12제자는 예수님에 의해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일하셨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며, 병을 고치시며 이스라엘 전 지역을 순회하셨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땅에 있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떠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그의 전한 말씀을 계속적으로 대대로 전하여질 방법이 필요했다. 즉 예수님이 가르치고, 전한 말씀이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이어져 가기를 원하셨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을 길러서, 즉 제자가 되게 해서 그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제자가 제자를 길러서 또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역사를 보면, 12제자들의 제자들을 속사도들이라고 하고, 속사도들의 제자들을 속속사도, 또는 교부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부탁한 그대로 이루어 내려갔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시대에 12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을 제자라고 부른다.

(6:1-2)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7)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엄격하게 말하면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나 제자라야 한다. 제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무엇인지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 교회는 예수의 제자를 길어내는 훈련소이다. 예수 공동체는 제자 공동체이다. 1)예수와 함께 있고, 2)전도도 하고, 3)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져야 한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고 예수 공동체가 확장되어 가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12제자로 시작했다. 작은 무리로 시작했다. 교회는 작은 무리로 시작했다. 물론 출발은 예수이다. 그러나 교회는 혼자 할 수 없다. 나 혼자의 명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가 다 함께 모여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한 것이다. 성도가 교제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더 나아가 교회는 혼합된 그룹으로 시작되었다. 두 극단의 만남이다. 여기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자. 베드로와 같은 어부생활로 잔뼈가 굵은 성미 급한 베드로와 또 마태는 세리이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자다. 민족의 배신자요, 반역자로 낙인찍은 자다. 그리고 가나안인 시몬은 누가복음에 보면 열심당원(셀롯)이라고 했다(6:15). 열심당원 외국인이 자기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반항하여 지도자를 암살해서 나라를 찾겠다는 극렬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항상 몸에는 무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테러를 자행했던 자들이다. 이렇게 민족을 배반한 세리와 반대로 극렬한 애구심이 불타는 사람이 한 공동체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보니 의견이 다르고 배경과 관점이 다르다. 사상이 다르다.

 

이렇게 교회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더구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택한 사람들이 성분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부자도 없다. 문벌이 좋은 자도 없다. 좋은 가문도 아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도 없다. 특별한 교육을 받은 자도 없다. 그리고 당시의 높은 계급의 종교 지도자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열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그들은 예수님께 매력을 느꼈다. 예수님께 끌렸다. 세상의 다른 것에 끌린 게 아니고, 오직 예수에게 끌렸다. 그래서 좀 더 주의를 기울려 말씀을 들었다. 좀 더 깨어 방심하지 않았다. 감동된 심령으로 반응했다. 군중이 실망하여 떠나 간 후에도 그 분께 더 애착을 가졌다. 뜻과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섬기기를 원했다. 오늘날 세상의 온갖 것에 매력을 느껴 그 쪽으로 끌려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는 예수에게 매력을 느껴, 예수에게 끌려가자.

 

둘째는 예수를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한 용기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벌써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이 생기고, 모략하고 중상하고, 시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전에서 나병환자를 고치고, 손 마른 자를 고치고, 안식일에 밀을 잘라 먹고, 등등으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꼬 의논할 정도였다.) 이럴 때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물론 이 열 두 제자들이 다 여러 가지 실수를 하였다.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실수 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밀 이삭을 잘라 먹을 때, 금식하지 않을 때 등등.)

또 제들도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것이 제자된 성도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더 구체적으로 강조해 본다. 예수님이 이 열 두 제자들을 왜 선택해서 부르셨는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나에게 적용해 보자. 왜 나를 예수님이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는가? 아니 왜 나를 선택하셔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아니, 제자가 되라고 하신다. 제자가 되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첫째는 예수님은 그들을 선택하셔서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기도 했지만, 왔다가는 떠나갔다. 하루는 헤아릴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그 이튼 날 다 떠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파도치는 물결과 같이 밀려들었다가 미끄러져 떠나갔다. 그러나 이 열 두 제자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들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먹고 자고 살았다.

 

둘째는 그들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보내사 전도도 하며”(3:14),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의 대리자로 삼기를 원하신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에 대하여 말해 주기를 원하신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부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목적과 똑 같다. 언제나 주님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나가서 세상에서 예수를 자랑하고 전하기를 원하신다.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먹을 것 먹고 헤어지고, 좋은 말이나 듣고 헤어지고, 내 욕구나 만족시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지 않다.

 

셋째는 1)말씀과 2)능력을 주었다.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3:15)

귀신을 내쫓는 것은 말씀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말씀과 능력이다. 이 세상을 살아갈 지혜와 능력이 주어졌다. 사도행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자들은 말씀과 능력으로 살았다. 제자들은 평생 동안 제자로 살면서 많은 핍박과 고난, 죽음 앞에서도 말씀과 능력으로 살았다.

 

귀신을 내쫓는 것은 영적싸움을 말한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적전투이다. 요즘 성도들을 보면 세상에 나가서 영적싸움에서 패배하여 피투성이가 되어 얻어 터져, 만신창이가 되어 치료받고, 주사 맞고 약 먹고, 위로 받고, 다시 세상에 나가 일주일 동안 패배하고 얻어터지고, 낙심되어 교회에 와서 약 먹고 치료 받고 나가서 일주일 살면서 전투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교회가 종합병원 같다. 원래 교회는 훈련소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나가 승리해야 한다. 이것은 말씀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겨야 한다. 유혹을 이겨야 한다. 말씀과 능력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순간부터 모든 문제가 뒤로 물러가고 그 후에는 항상 행복만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경이적인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대항하는 다른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왕국, 즉 사탄 마귀의 왕국에 대적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탄의 요시찰 인물이 되어 진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험이 우리의 신앙을 증명해 주고, 나의 위치, 나의 신분을 증명해 주기 때문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부터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특별한 관심을 가진고 그만 두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 마귀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홍역을 치루 듯이 영혼의 홍역을 치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홍역을 잘 견디면 다시는 그런 홍역에 걸리지 않듯이 영적질병에 걸리지 않고, 그리고 면역이 생겨 영적전투에서 패하지를 않는다.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자. 제자가 되자. 말씀과 능력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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