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요한계시록

9월23일[요한계시록76]내가 교회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 주님의 머슴 2018. 9. 23. 15:51

주일설교(2018/9/23)-요한계시록(76)

내가 교회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21:1-2,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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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명절이기에 계시록을 잠시 멈추고, 교회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은 오늘날의 교회를 예표하며, 천년왕국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덴, 교회,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은 같은 연결선상에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경영의 한 맥이요, 처음이요 나중입니다. 이 에덴, 교회,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며, 나의 속에 거하게 되며, 성취요, 구원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에덴에 사람을 두시는 장면도 교회가 되는 방법과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방법을 예표로 보여주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교회가 되고,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21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하와를 지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2:21-23)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이끌어 오십니다. 아담이 자기의 갈빗대로 만든 그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514절에서 아담을 오실 자의 모형- 즉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절에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했습니다. 하와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미리 당겨서 예표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담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하와는 교회, 또는 성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옆구리의 갈빗대는 피와 물”(19:34, 요일5:6-8)을 말합니다.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일5:5-7)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물과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성령이 덮으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는 말은 성령님이 교회와 성도를 이끌어 예수님께 붙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늘 우리는 성령님께 이끌림 받아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에덴동산 안에 사람을 지으셔서 두시는 장면을 통해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와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과 연결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오시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셉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찾아 오신다고 했습니다(50:24-25, 13:19). 그래서 요셉은 죽기 전에 자기가 죽으면 애굽 땅에 장사하지 말고, 입관만 해 놓게 했습니다. 그 때 나의 유골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는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 삶 속으로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간 기착지로 시내산(호랩산)’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속으로 오시기 위해서 중간 기착지로 시내산 오셔서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내산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시내산 까지만 내려오신 것입니다.

 

시내산(호랩산)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찾아 오셔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양을 치는 곳에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모세를 만나 하나님은 거기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사명을 주십니다. 그 때부터 모세는 성막이 지어질 때까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매번 시내산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2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고 했습니다(9-10). 그리고는 하나님의 영광이 엿새 동안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니 맹렬한 불같이 보였다고 했습니다(15-17).

 

이들은 여기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을 소위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여기서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언약을 굳게 맺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시고, “성막을 지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율법과 계명을 가지고, 성막(성전) 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부터 진을 칠 때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진을 칩니다.

동쪽은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

남쪽은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갓 지파,

서쪽은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베냐민 지파,

북쪽은 단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이렇게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진을 쳤습니다. 성막 중심의 생활,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말씀을 가지고 예배중심의 생활,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 그 성막에 하나님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40장에 보면 모세가 성막을 다 만든 후 시내산에 계시든 하나님이 성막 안으로 옮겨 오십니다. 모세가 성막을 다 완성하자, “구름이 회막에 덮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34).“ 하나님이 중간 기착지인 시내산에서 성막 안으로 옮겨 오신 것입니다. 이후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십니다. 회막에서 말씀하시고, 회막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출애굽기 3318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조룹니다. 하나님 자신, 즉 얼굴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게 되니까 하나님이 보여 주시지 않지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의 자신입니다.

성막을 다 완성하자 하나님이 직접 성막 안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도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오시고 싶어 하시든 하나님이 성막이 완성되자 이스라엘 속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후부터 성막 위에는 낮에는 구름이 덮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과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후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성막(회막)에서 부르십니다. 지금까지는 시내산에 머물러 계시면서 모세에게 시내산으로 올라오라라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성막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성막을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막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나중에 어디로 옮겨 가십니까? 솔로몬이 지은 성전으로 옮겨 가십니다. 열왕기상 8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다 완성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 솔로몬이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참고,대하7:1-3).

 

이 성막과 성전은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실 교회를 말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우리 성도들의 심령 속에 세워질 심령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성전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룰 때,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내 속에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구원 받은 성도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후6: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에 와 계시기를 원하셔서 성막을 거처 삼으시고 이스라엘 속에 와 계셨던 것이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내 속에 성령이 와 계시는 것과, 다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셔서 내 속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원리를 잘 알기에 오늘 읽은 본문 에베소서 222절에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헬라어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 katoikhthvrion(카토이케테리온), 거처, 처소, 성전, 히브리어로는 오헬또는 미쉬칸이라고 합니다. lh,ao(오헬) - 거처, 처소, 회막 - ‘오헬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처소라는 뜻 더 강함, 성경은 회막이라고 번역했습니다. @K;v]mi(미쉬칸) - 거처, 성막 - ‘미쉬칸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이라는 뜻이 더 강함, 성경은 성막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는 구약의 회막, 성막을 말하고, 신약에서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본래, 하늘 보좌입니다. 에스겔서에서 에스겔이 본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다니엘도 그랬고,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계4장에서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창세기에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든 야곱도 벧엘에서 꿈에 긴 사닥다리 꼭대기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벧엘 -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게 되지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높은 하늘 보좌에 계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모든 재앙과 심판과 역사는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보좌를 축소해 놓은 것이 성막 안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위의 뚜껑입니다. 그룹천사가 좌우에 호위하고 있는 형상의 작은 속죄소를 말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성막 안에 계실 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바로 지성소의 언약궤 위의 속죄소인 것입니다.

 

그 하늘 높은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속에 오신 사건이 시내산 사건이요, 성막 안에 오신 사건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교회로 삼으시기 위해서 오신 사건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인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때 짧게나마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육체로 오셔서 인간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입니다. 33년 동안 짧게나마 육신의 예수로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한계가 있기에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다시 성령으로 다시 오신 것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보다, 성령으로 오신 예수가 더 능력이 있고, 더 큰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않을 것이요,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가 오시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며,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으로 오신 예수는 내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는 내 옆에는 와 계실 수는 있지만, 내 속에 와 계시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 안에 오셔서 이스라엘 안에 와 계시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나를 거처(성전) 삼으시고, 내 속에 와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구약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것이 성막에 하나님이 오셨을 때도 그랬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오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나타난 사건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인 것입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고, 바람 소리 같이 임한 오순절의 성령이 임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그 속에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성령의 예수가 오셔서 나를 거처 삼으시고, 내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성전 삼으시고, 나를 거처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성전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것을 두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시록 1장의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이십니다(2:1 참고).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요, 촛대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 사이로 거니시는 예수님으로 보여 주십니다. 교회가 누구입니까? 바로 내가 교회이지요? 구원 받은 성도가 교회입니다.

 

또 하나는 어린 양 예수님의 신부요, 교회와 성도인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화려하게 보석으로 신부 단장한 새 예루살렘은 교회요, 성도입니다.

 

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이 거니시는 촛대가 교회와 성도인 것처럼, 21장의 새 예루살렘도 교회와 성도인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령한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처소, 성전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으로 교회가 되어 가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 못하리라”(16:16,18).

 

진정한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교회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위해 성전이 되어 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내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굳건한 믿음으로 내가 예수님이 거니시고, 거하시는 교회가 되십시오. 내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십시오. 그리고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새 예루살렘이 되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주님이 얼굴의 광채로 비추십니다.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심령에 임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